좀 억지가 없지 않은 제목으로 야베스의 기도가 갖는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라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인간이 갖추어야 할 도덕성이 잘 갖춰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이런 표현이 얼마나 아전인수적인가 염려합니다.
복에 대한정의가 그렇고 ... 지경에 대한 이해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야베스의 기도다라는 주장입니다.
정말 야베스의 기도가...하나님을 위해 나의 지경을 넓혀달라는 것이었을까요?
반기독교도들이...되는대로 자기들의 이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말씀을 가지고 견강부회하는 것과 똑같이
그리스도인들도...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해 말씀을 가지고 견강부회하는 것 아닐까요?
...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만 뽑아 봅니다.
로마서에는 사는 것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도 주를 위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그 앞에는 먹던지 먹지않던지 다 주를 위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고린도 전서에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바울이 갇힌 자신의 일을 주를 위하여 그리되었다라고 하십니다.
...
나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만 하나님을위하는 것일까요?
죽든지 살든지...먹든지 마시든지 굶든지 갇히든지...
무엇을 하든지..다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
고난과 죽음조차도 기꺼이 하나님을 위하여...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믿음의 자세 아닙니까?
...
지경을 넓혀 달라는 야베스의 기도만이 ...
적극적으로 성공을 향하여 도전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그것만이...기적을 체험하게 하는 비결입니까?
반쪽짜리...진리는 결국...거짓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식의 반쪽짜리 진리들이
얼마나 올바른 신앙을 파괴해 버리는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하여 영향력의 확대를 꾀한다는 식의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이해는
물신주의나 세속주의와 다를 바가 없는... 결과를 야기 할 것입니다.
...
그리고...
주를 위하여...고난받는 모든 이들을
^^^^^^^^^^^
모독하고 있습니다.
01/22 아들이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31
막내가 오줌을 가리기 시작하고는
어른 변기에 깨꿈발을 하고는 쉬를 했습니다.
특히 제가 쉬를 할때면 별로 남아있지도 않은 오줌을 찔끔짜면서 같이...하곤 했죠^^
처음엔 자신이 쉬하는 게 끝나면 무조건 물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제가 쉬를 마친 후에 물을 다시 한번 더 내려야 했지요.
어제는
같이 쉬를 했는데...
이녀석이...제가 쉬를 다 하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나서 물을 내리더군요...
...
다른 사람을 배려해 준다는 것...성장의 기초 아니겠습니까?^^
하두 기특해서...마구마구 뽀뽀를 해주었었습니다...^^
원필
01/22 이건 세속주의 일까? 물신주의 일까? 29
만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들어,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그의 모든
명령을 성심껏 실천하면,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땅 위에 사는 만백성 위에 너희를 높여
주실 것이다..... .... ....당신의 풍성한 보물창고인 하늘을 여시어 너희 밭에 철따라
비를 내려 주시고 너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너희를 머리로
삼으면 삼으셨지, 꼬리가 되게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다만 치솟을 뿐 내리
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신명기 28장 ---
** 틀림없이 다른 잣대를 동원한다는데.. 한표.~! **
바쿠스
01/22 Re:시야암점증/차이가 뭐죠? 24
시야암점증...이 너무 어려운 말이라서요
바쿠스님의 놀이터에서 보긴봤는데...
차이점을 좀 설명해주세요^^
원필
: **********
: 바쿠스님의 반기독적 질환은...
: 종합하는 사고의 결핍으로부터 온 것같습니다.^^
: ***********
: 원필
: 저는
: 시야암점증(視野暗点症)이라 생각하는데요! (>.,<)"
:
플씨
01/23 Re:마음의 상처는 아물기 힘든다. 20
배규태 형제님의 추정중에서 아무거나 골라잡고 굳건하게 믿으세요.
그게 바로 형제님이 지니고 있는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럼 잘 믿으시길 바라며.. :)
바쿠스
: 바쿠스님의 사고는 언젠가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 예를 들면 친척이나 아니면 본인이나 사이비 교회에 재산을 빼앗겼다든지, 아니면 부인이나 친척이 사이비 교단에 미쳐서 집안에 큰 피해를 주었다든지, 아니면 신학을 공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며 배신감을 느꼈다든지 그런 것으로 추정합니다.
:
: 종합적 사고니 뭐 그런 거창한 것도 아닐듯 싶습니다.
배규태
01/23 Re:진정한 믿음/ 믿음은 원래 동사(動詞) 15
"믿음은 설득 당하기"라는 정의에 "흔쾌히"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갓바위님의 글을 읽으면서 덧붙여 드리고 싶은 말씀이 한가지 더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믿음은 정체되었을 때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며
>끊임없이 확인하고 스스로 깊어지고 자라나야
>영혼을 순화시키는 힘을 가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정체되었을 때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말씀에 공감하게 됩니다.
믿음은 "끊임없이 확인하고 스스로 깊어지고 자라나야"한다는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이런 식으로 바꿔서 말씀드려 보고 한번 싶군요.
한국말 "믿음"은 원래 동사(動詞)입니다. 동사 "믿다"의 명사형이지요.
영어의 동명사(動名詞)라는 개념이 있잖습니까?
명사는 명사이되 동사의 성격을 갖는 명사라는 말입니다.
한국어의 "동사의 명사형"이 바로 영어의 동명사에 해당합니다.
"먹다"의 명사형인 "먹기"와 "먹음"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마찬가지로...
"믿다"의 명사형인 "믿음"과 "믿기"는 모두 문장내에서 명사의 기능을 할 뿐,
실제로는 그 개념적 내용은 여전히 역동성을 갖는 동사적 개념입니다.
어떤 낱말이 원래 동사였는지... 명사였는지가 그다지 중요할까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한국말의 "믿다"가 동사라면... 그래서 그 개념에는 역동성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곧... 한국인의 사고방식 속에서 "믿다"나 심지어 그 명사형인 "믿음"조차도
역동성이 깃든 개념이 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동적인 개념을 고정된 정태적인 개념으로 바꿔놓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저는 그게 바로 개념의 소외(疏外)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소외(疏外)는 독일 철학자들이 정리해 놓은 중요한 개념이지요.
엔트프렘둥(Entfremdung)이라는 독일 낱말을 우리말로는 소외(疏外)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의 어근(語根) 프렘트(fremd)는 "이상한, 낯선, 엉뚱한" 등의 뜻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엔트프렘둥, 즉 소외는 원래 "이상하게/낯설게/엉뚱하게 만들기"라는 뜻입니다.
원래의 성격을 버리고 전혀 다른 엉뚱하고도 낯선 성격을 갖게되었다는 말입니다.
원래는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사용했던 것인데,
후에 마르크스가 노동의 산물인 상품과 그 전화된 형태인 화폐가 바로
노동의 소외라면서, 그 개념의 원래 뜻을 다치지 않고 훌륭하게 응용해서 써먹었습니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은, 그래서, 그냥 "왕따 시킨다"의 뜻이 아닙니다.
"따돌림을 받아서 외롭다"는 정도의 뜻에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본질을 벗어나서 이상하게 변질(變質)된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이상하게 변질된 것이 거꾸로 주체를 억압(抑壓)한다는 뜻입니다.
소외(疏外)가 원래 바로 이런 뜻이라면... 우리는 "믿음의 소외"라는 말도 쓸 수 있습니다.
믿음은 원래... 갓바위님의 말씀대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자라가는 것입니다.
역동성을 갖춘 동사 개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믿음을 명사화하고... 그것을 정태화시키곤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이제 마치 고정된 물건인 것처럼 생각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믿음을 갖다"는 표현도 원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진짜로 "믿음"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고...
그것을 사람이 소유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지요.
동사의 명사화... 즉, 믿음이라는 개념이 소외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을 "하나님께 설득 당하기"로 정의하면 이런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 당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에베소서 4장13장의 말씀은 아주 적확하기 짝이 없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께 설득 당한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첫 번째 설득은 "내 말을 들어라"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설득하시는 내용을 차례차례 접하게 됩니다.
그 과정은 우리가 인생의 여정을 지내는 동안... 내내... 끊임없이 계속된다고 봅니다.
내 마음가짐과... 행동거지가 모두... 그런 설득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하나님의 "설득에의 의지"가 자유의 침해와 구속으로 느껴지게 될까요?
하나님께 설득 당하면 당할수록... 그것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롭게 되는 것 같습니다.
헛된 욕심이나... 쓸데없는 생각이나... 불필요한 걱정에서 벗어나게 되고....
인생에서 좀 더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짧은 인생을 더 보람있게 살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믿음은 원래 동사입니다. 역동성이 있는 개념입니다.
믿음을 한번 소유하면 내게 영원히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소중한 믿음을 소외(疏外)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설득에 귀를 열어놓고...
그 말씀에 기꺼이 설득 당해 나가는 생활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입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 믿음의 본질에 대한 토론이 있었을 때
: 「설득 당하기」라는 정의와 그 숨은 의도를 보고 흔쾌히 동의를 했습니다.
: 왜냐하면 종교적인 믿음은 정체되었을 때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며
: 끊임없이 확인하고 스스로 깊어지고 자라나야
: 영혼을 순화시키는 힘을 가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 그러나 믿음이 단독으로 영혼을 맑게 하지는 못합니다.
: 반드시 사랑의 힘이 필요합니다.
: 믿음은 당기는 힘이고 사랑은 풀어 주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 영혼은 실타래처럼 엉키고 오염되고 굳고 병들어 있습니다.
: 따라서 사랑으로 녹이고 풀어 주면서 믿음으로 당겨 줘야 정리되어 맑아집니다.
: 당기기만 하면 더 꼬이고 더 홀쳐집니다.
:
: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말은 지독하게 오해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 성경에는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 최후의 심판은 영혼이 순수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 심판관이 앉아서 옳은 믿음을 가진 삶을 살았는지
: 문답식으로 판정하는 게 아니라 영혼의 순수도에 따라 자동으로 분류됩니다.
: 추가 설명도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 사과의 빛깔만 보고 영양 상태와 햇볕을 받은 정도를 알 수 있듯이
: 영혼의 순수도만 살피면 사랑과 믿음의 정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하나님은 자기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 남을 해롭히거나 불편하게 하는 믿음의 증거보다는
: 이웃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 더 믿음이 깊다고 판정합니다.
: 하나님을 욕하는 사람을 마주 욕하면 믿음이 깊다고 판정받는 게 아니라
: 원수를 사랑하지 못했다고 판정받습니다.
: 영혼이 더 홀쳐져서 더럽혀지기 때문입니다
: .
: 너무 쉬운 얘기만 했습니까?
: 그걸 왜 얘기하고 싶어졌을까요…
:
: 갓바위
01/23 야베스의 기도 13
지기님은 처음부터
계속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계시는군요.
아무래도 책값을 바가지 썼기 때문이 아닐까?
첫인상이 중요하니...
(하하~ 농담입니다.)
어제 서점 갔다가 원문판이 눈에 띄어
뒤적거려봤는데 오늘 다시 가서
자세히 좀 읽어볼 생각입니다.
전 읽으면서 아마 은혜를 많이 받을거 같아요. ^^;;
뵈뵈
01/23 용언의 명사형 14
'신앙하다'를 우리말로 '믿다', 다시 명사형으로 '믿음'.
'설득하다'를 우리말로 '꿰다', 다시 명사형으로 '뀀'
:)
바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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