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가수가 되겠어요...

주방보조 2011. 12. 3. 11:02

 

 

 

 

며칠전

학교에서 약간 늦게 온 교신이가 약간 얼굴이 상기되어 제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풀어놓았습니다.

"학교에서 놀고 있는데

3학년때 담임선생님을 만났는데요

부르셔서 교실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었어요.

장래희망이 뭐냐 물으셔서

별로라고 대답했더니

너는 학자가 될만한 자질이 보였다고 하셔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과학자, 역사학자 같은 거 라고 말씀하셔서

전 그런 것은 관심없다고 하니

아 그래 너 노래를 잘했었지 음악가는 생각없니 하셨어요"

숨도 안 쉬고 이야기하는 품새가 영 기이했지만

저는 평소처럼 시쿤둥하게 어 그래 하고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

마눌님이 저를 보고 할말이 있으시다고 하시길래

들어보니

교신이가 가수가 되겠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전날 제게 던졌던 이야기는 하나의 복선이었던 것이지요.

학교선생님이 자기 노래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고 계시라는, 그래서 가수가 되겠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충격을 덜 받으시라고

 

어느정도냐 하면요

가수가 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하고 오디션도 보아야 한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고

가수 누구처럼 20여번 오디션에서 떨어질 각오도 되어 있다고 하고

엄마가 안 들어 봐서 그렇지 자기가 노래할 때는 평소 목소리가 아니라 정말 다들 놀랄 정도로 잘한다고 굳세게 믿고 있고

이번 제주도 수학여행에서도 앞에 나가 노래를 못한 것이 가장 속이 상했다고 하고

그래서 중학교 올라가면 작은 음악회 때 반드시 실력을 뽐낼 거라고 했어요.

 

...

 

그날 저녁 교신이를 불러 넣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난 네가 가수되는 것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네가 알아서 해라.

재치도 있고 무대체질인 것도 알고 음악성이 제법 있다는 것도 알고

그리고 무엇보디도

네가 간절히 원한다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자기 적성을 따라 대학에 진학하고 인생을 가는 것도 길이고

너처럼 초딩 때 일찍 가수의 꿈을 품고 공부를 그만 두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연습생으로 춤 열심히 추는 준비하여 가는 길도 있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뭐 열심히 하면 '강타'정도는 안 되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해야겠지요.

 

...

 

제 속마음은 솔직히 흠씬 두둘겨 패 주고 싶었지만^^

그리고 마눌님이 옆에서 계속 '당신이 찬성한다고하면 어떻해요!'하며 나무랐지만 ...

저는 끝까지 반대하지 않았고

자기가 알아서 열심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1.좀 하다가 안 되면 다른 길을 찾게 되겠지.

2.그러나 그러는 동안 공부에 공백기가 생기게 되면 참 낭패인데.

3.노래 몇곡 부르면 천만원 번다는 데 늙어서 호강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군.

4.나중에 왜 안 말렸냐고 따지면 뭐라할까.

5.남자아이니까 여자아이보다는 덜 위험하겠지.

6.혹 정신과에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닐까? 과대망상이나 자아도취증같은데...

7.충신이를 매니저로 두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하고...

8.왜 아들들은 나와 이토록 다른 걸까?

9.변성기나 지나야 오디션이든 뭐든 볼텐데.

10.이건 모두 3학년때부터 한번도 빼놓지 않고 학급회장, 학생회장을 해온 저주야.

11.악몽이야...에세트라...

 

현재 제 머리 속은 온통 뒤죽박죽...미칠 지경입니다.

아 쪼끄만 건방지기 한이 없는

막내 녀석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도

지켜보기로 한 약속은 충실하게 준행할 것입니다.

 

 

빨리 아프면, 빨리 낫겠지요. 

 

 

 

 

  • 한재웅2011.12.03 16:35 신고

    애들에게 한 번 씩 겪게되는 홍역과 같은 겁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1.12.05 01:37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중, 진실이는 만화가, 충신이는 게이머 되겠다며 엄청난 시간과 정열을 허비한 전례가 있네요.
      교신이의 이 홍역이 짧게 끝나면 좋겠는데
      진실이나 충신이처럼 길어지면 ... 정말 재미없게 되거든요. 공부 시기도 놓치고...휴...

  • malmiama2011.12.03 17:56 신고

    교신아~~남자는 여자와 달리 변성기가 지나야 제 목소리를 알수 있는 거란다.
    잘한다..라는 것의 가장 기본은 '소리'지 않겠니?
    아직 일러...관심을 갖되...변성기 지나서..고1때쯤 테스트 받아도 늦지 않단다.

    좋아한다해서...소질있다해서...좋지.
    그런데...가수는...타고난 목청...그것도 남자는 반드시 변성기 이후 목청이 가장 중요해.
    가수 되고프면,
    목을 아끼고...

    답글
  • malmiama2011.12.03 18:00 신고

    교신아...나는,
    가수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스카웃 된 적이 있었어.
    대학 다니면서 등록금 마련을 위해 소질을 사용해 노래하다가 방송국 PD에게 띄었거든.

    군대가기 전 날도..방송에 출연했는데..그게 끝이었던 이유는,
    경험 하고프지 않은 상황들을 많이 봤거든!(간접 체험)
    유명 가수라 하는 이들의 초라함을...유명해지기 전에야 말해 뭐하겠니.

    무대에 서는 것..인기로 먹고 사는 것...
    치루는 댓가가 너무 크단다. 유명 성악가도 마찬가지야...그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1.잘 참고(간접경험) 하기 바래.
    2.잘 참고(인내) (생각)하기 바래.

    답글
    • 알 수 없는 사용자2011.12.03 22:11 신고

      凡人이 아니셨군요! ^^*

    • 주방보조2011.12.05 01:44

      제가 간접적으로 장로님의 말씀을 전부 전했는데
      대답은 네...인데...

      그리고 주일 하루 종일 마음을 못잡고 ... 티비앞에서 컴퓨터 앞에서 방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대답은...네 라고 했으니. 저도 더 말할 것이 없고, 인상만 찌푸렸다 폈다 했습니다. ㅎㅎ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그래도 제가 권하는 말보다 장로님의 말씀에 더 고민하며 생각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11.12.03 22:09 신고


    "7.충신이를 매니저로 두는 것도 생각해 볼만 하고..."에서 뻑갔습니다. ㅎㅎㅎ
    ... 역쉬~ 주방보조님...

    "8.왜 아들들은 나와 이토록 다른 걸까?"

    두 아두님이 그 부친과 다른 것 같으시다고요?
    글쎄요~
    충신이와 교신이...
    아무리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제 이드(id)의 영역 인체조직의 감각기관 눈 4개로 볼 때,
    그리고 제 에고(ego)의 영역 理性으로 판단해 볼 때,

    똑 닮았습니다(외모가 아니라 그 이상의 뿌리깊은 그 무엇이요)!!!

    답글
    • 주방보조2011.12.05 01:49

      그렇게 느껴지십니까?

      ㅎㅎㅎㅎㅎ...

      그건 제가 정말 볼 수 없는 시각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그냥 제 눈에 보이는 아들놈들의 정면만 보는 것이고
      린님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저와 제 아들의 옆얼굴을 보고 있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근데 저는 정말 게이머나 가수나 만화가 같은 것은 꿈도 못 꿔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