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
우리집 놀맨 대학생 두 자매의 시험 끝나던 날
저는 두 녀석을 데리고 롯데시네마에 가서 함께 밤10시40분에 시작하는 '여고괴담5'를 보는 것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진실이는 아주 재미있게 본 반면
나실이는 영화 초입부터 끝날 때까지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연년생으로 거의 쌍둥이처럼 함께 해온 세월이 어디인데...이처럼 다른 것인지...^^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들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우리 셋이 동해바다 구경 한번 가자.
...
두 가지 안을 내 놓았습니다.
제1안)아침일찍 버스를 타고 가서 ...놀다가 ...저녁에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제2안)밤 열차를 타고 가서...놀다가...오후에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나실이와 진실이 둘 다 제2안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외쳤습니다.
저도 물론 제2안이 맘에 더 들었었습니다.
1박2일 여행이면서 ...청정하늘의 무수한 별빛도 보고 ...해돋이도 볼 수 있고...얼마만의 기차여행인지...^^
인터넷에 들어가 코레일에 회원가입을 하고 청량리에서 정동진까지 표3장을 집에서 발매했습니다.
2만3백원이었는데 400원씩 깎아주어 19천9백원*3...^^
수요저녁예배를 마치고 우리들은 간단하게 몇가지 준비하고 청량리역을 향했습니다.
마눌과 동생들의 부러운 눈동자들을 뒤로 하고...^^
긴 팔 옷 하나, 카메라, 삶은 달걀, 사이다. 기타등등...배낭을 하나씩 뒤에 매었으나 가볍기 그지없는 발걸음이었습니다.
밤10시40분, 청량리역에서 열차는 정시에 출발했고...보통 무박2일이라 불리는 1박2일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무궁화 제1641열차 5호차 49,50,53번 좌석...의자를 마주보게 해 보았더니...우리들의 굵은 다리들이 부대껴서 다시 원위치...^^
밤인데...거기 젊은 아이들이 쌍쌍이 제법 있는 때문인지...열차의 내부는 출발부터 끝까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유리 창 밖에는
오직 실망한 표정의 내 낡은 얼굴이 나를 보고 있을 뿐...하늘의 별은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 한가지는 유감스러웠습니다.
삶은 계란을 너무 일찍 먹었다며 먹을 것 타령을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둘이 포개지듯 쓰러져 잠이 들고
별을 볼 희망이 사라진 저는 '사람은 왜 쉽게 속는가'(유키모토지음,이수진역)라는 책을 돋보기를 끼고 절반쯤 읽어내려 갔습니다.
차라리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강원도의 산야를 구경했더라면 더 좋았을껄...
귀에 익숙했던 사북이니 태백이니 하는 역을 지나 어느 역에선가 희한하게도 열차가 5분간 뒤로 가는 동안 그런 생각도 하였습니다.
...
기차 탄 지 6시간을 3분정도 넘어 새벽 4시43분 우리는 정동진 역에서 내렸고
세상은 이미 그리 많지 않은 모든 이들의 얼굴을 알아볼만큼 환해져 있었으며 게시판에는 오늘 해뜨는 시간 5시 3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람이 좀 심하게 불었으나 전혀 춥지 않았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잠시 해뜨기를 기다렸고
잠시 후 ...벌건 둥근 해가...수평선 위에 낮게 깔린 운무를 뚫고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아차산에 올라 언제든지 동쪽 산 위를 올라오는 해를 만날 수 있습니다만 ...동해에서 만나는 일출은 그 맛이 좀 다릅니다.
몇년전 경포대에선 날이 맑고 깨끗해...해가 뜨자마자, 황금 빛 빛줄기를 우리 발밑에 갖다 놓았는데...이번엔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약간 더 걸렸습니다.
...
해를 맞으면서
두 아이를 향해...한마디 해 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다. 아빠가 너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말이다.
공부열심히 해라, 정직하고 성실해라, 전공도 중요하고 영어도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함께 이런 깜짝 여행을 하는 것 까지가 아빠의 몫이지 싶다.
이제부터는 너희들의 인생은 전적으로 너희들의 손에 달려 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 어떤 일을 하게 되는 일, 자신의 인생관을 세우고...남은 80년을 살아가는 일...말이다...운운..."
ㅎㅎ..저의 중얼거림은 모래를 우리 등 뒤로 날리는 아침 바닷 바람에, 파도 소리에,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에 묻혀버리고
우리 아이들은 사진을 찍는다고 핸드폰을 열심히 눌러대고 있었습니다.
...
한참을 바닷가에서 놀다가^^7시30분 아침을 역 앞 식당에서 사 먹었는데...맛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유감...둘...
강릉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오전 10시55분 109번 버스를 타기로 정한 뒤
우리는 迎仁亭이란 정자가 있는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제비들이 우리의 눈높이에서 날아오르내리고, 멀리까지 펼쳐져 높이 오른 해의 흰빛으로 충만한 바다는 참 보기 좋았습니다.
거기, 담요를 깔고...한참동안 우리는 잠을 청했습니다. 10시경 한 중년의 여인이 혼자 올라와 우리를 일어나게 하기까지...
다시 바다로 내려가 한참을 놀았고^^
얼마나 쉽게 바닷가의 태양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지 깨닫고...계획대로 10시55분 109번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1450원*3
...
강릉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경포대는 포기...^^
그리고 터미널 근처에서 점심을 사먹었습니다...이번 것은 정동진보다는 좀 나았는데...5십보 백보...유감...셋...
1시25분발 동서울행 시외버스 13천3백원*3 ...4시경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걸어서 집으로...^^
...
벌써 오셨어요? ㅋㅎㅎㅎ...남아 있던 네 식구를 엄청나게 놀라게 한 즐거움을 끝으로
우리들 셋의 1박2일 여행은 추억으로 남겨졌습니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우리가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울이 좋아...음식도 맛이 있고...^^ 돼지3부녀라서요.ㅎㅎㅎ
-
요리왕님,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답글
우리말을 한참 쓰지 않았더니, 요즘 많이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글 사이트 둘러보면서 감각을 찾으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벽에 부딪친 것 같은 느낌입니다. ㅎㅎ
독수리 5형제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지요?
지난 글들 조금 읽어 보았습니다.
시... 정말 보고 싶더이다. 하하.
그런데, 노르웨이는 언제 오실 겁니까? ^^-
아, 우리말로 인사를 주고 받으니 참 좋네요. ^^
말미암아님은 우째 지내십니까?
저는 여전히 바쁜척 하면서 허둥지둥...그러고 지냅니다.
시간은 자꾸만 가고, 밀린 일은 늘어나고... ㅎㅎ
한국에선 보자기 유령 스텔라라는 아가들 책 시리즈가 꽤 팔리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부랴부랴 또 2권 번역을 끝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선... 숨 좀 돌리려 하니 미루어 두었던 일들이 저를 위협합니다. ㅎㅎ
요리왕님은 정말 어려운 부탁을...저도 그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ㅎㅎ
그러면, .. 저도 갈치고기를 먹을 수 있을텐데요. ㅋㅋ
왜 갑자기 갈치가 생각이 나는지...ㅎㅎㅎ
한국은 노르웨이 석유 좀 끌어다 쓸 수도 있을테고...
재미있는 상상이 자꾸만 덤빕니다. 만약! 이라는 가정이 참 재미있네요. ㅎ
잘 지내세요... 종종 들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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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아빠 브라보입니다.
답글
동해에서 달리는 기차를 보면서 언젠가는 저 기차를 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밤 기차는 좀 지루하지요?
두 딸의 아빠랑 함께 하는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이 될까요?
비록 주변의 아이들이 부러울 수도 있었겠지만요.
맞아요.
정동진의 음식점은 만족스럽지 않았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그렇더군요.
자가용 없이 움직이는 것이 좀 번거롭기는 하시지요? 여럿이라면 교통비도 차이나지 않으면서요.
강릉은 결혼전 5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혼자서 여행하던 때에 들렸던 곳이랍니다.
그 후 가족여행에서는 지나쳤을 뿐이구요.
한얼이는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투혼을 발휘했는데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네요.
끝나는 날 한국을 방문한 미국에서 알았던 형이랑 만나 저희집에서 잤더랬습니다.
어젯밤에는 그런 말을 하더군요. 절더러 고마워하라구요. 그 형이 아직도 멀었다면서요.
3살 위인데 아직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넌 잘해야 해, 그사이 충분히 걱정 끼쳤잖아..."라고 했더니만
"그건(아팠던)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던 일이다"라더군요.
"그래 고맙다 잉! 어찌된 게 한빛이도 너도 고맙다고만 하라는구나"라면서 웃었답니다.
자식들에게 부모가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잇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겟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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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쟈게 추운 겨울에 무박 2일 정동진~~ 가 본적 있는데....
답글
음~~여름방학 때 같은 일정으로 다녀오고 싶군요.
유민이랑 둘이 갈지도 모르겠지만..ㅎㅎ -
^^* 가난한 여행자의 출발은... 언제나~ 청량리역 마지막 밤기차!
답글
전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꼭! 매번!" 그랬답니다.
제 여행의 출발 노하우 1번이었지요.
밤새... 그리고 새벽을 맞아 시작하는 여행길~
한 번은 울릉도 들어가는 배를 타려고 속초까지 가던 때였는데요, 좌석이 없더라구요.
배편을 오래 전부터 예약해 놓고 있었고, 여름휴가를 이용한 때라... 날짜를 바꿀 수도 없었는데...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하며 강행한 적이 있었는데... 크~
그건 정말 못할 짓, 말씀하신대로 달리는 기차 창 밖을 감상하는 것도 아니고... 잠도 못자고... 쌩고생!
홀로 울릉도 기상대(?)를 지키시던 아저씨, 작은 속초 여객선터미널의 직원분들~
한 달 전부터(한 달이 뭐야~ 그 이전부터죠^^*) 쑤셔대 연락하고... 밤새 그 고생해서 갔는데요...
크~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 배가 못들어 간대요~~~
제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던 그 작은 여객선터미널의 직원분들이 안타까워 하시더라고요... ㅋㅋㅋ
그리고는 지금까지 울릉도와는 빠빠이~~~
(두 번 도전했었는데... 두 번 다 태풍때문에~못 들어갔어요. 담엔 포항으로 가자 했는데... 여적~ㅠ.ㅠ)
.......그래도 저도 요리왕 같으신 아빠와 같이라면 다시 도전해 보고 싶네요...^^*
진실나실씨 부럽습니다.(_._)* -
행복한 아빠
답글
민하는 아빠와 여행은 커녕
산책하기도 싫어 합니다.
운동삼아 하라고 해도...
아빠도 포기한 상태...
참 착한 딸이고
지혜로운
진실&나실
아빠랑 여행가면
아빠가 돈을 다 쓸텐데...-
주방보조2009.06.29 15:36
약20만원이 들었습니다.^^ 겨우 그저 갔다 온 것에 불과한데...
저희집에도 그런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산책이든 자전거든...'안녕히 가세요~'...그럽니다. 저랑 같이 가는 것이 싫은 것이죠. 충신이...ㅜㅜ
나머진 모두 저를 좋아합니다. 함께 산책하는 것이든...여행하는 것이든...다행인 중이죠^^
민하도 그렇고, 충신이도 그렇고...나이들면 반드시 후회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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