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역전의 용사...^^

주방보조 2009. 6. 26. 03:17

지난 6월6일엔

교신이와, 그토록 바라던 행주산성을 "눈으로만" 정복하였습니다.

그날 아무도 따라 나서지 않는 '자전거로 한강 달리기'^^...에 교신이만 참여를 하였고

우리 둘은 여의도를 지나 가양대교를 지나 방화대교 아래까지 거의 쉬지도 않고 달렸더랬습니다.

교신이는 행주대교까지 가서 다리를 건너 행주산성으로 가자고 하였고

늙고 지친 저는...방화대교 남단에 있는 편의점에서 강 건너를 바라보면서...

거기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행주대첩비와 몇몇 건물들을 핑계로  ..눈으로 정복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타일렀습니다.^^

자기는 더 갈 수 있는데...다음엔 꼭 올라가보자고 하였고...저는 글쎄 생각해보자 말을 얼버무렸지만

속으로...내 아들이지만 꽤 괜찮은 놈이야...대견해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주일 밤에 아주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집 아이들 교육은 모두 제가 맡고 있는데(이젠 원경이와 교신이 둘 뿐이지만^^)..,

제가 그 전날의 무리한 운동으로 딸들이 사는 새집에서 정신없이 골아떨어진 시간에

교신이가 다음날 가지고 갈 알림장과 과제의 싸인을 받으려다가 ...제가  없자 엄마에게 그것을 들이밀었던 것입니다.

거기 무엇이 있었느냐 하면

금요일에 본 수학시험지가 ... 채점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만일 그것을 먼저 봤더라면...

잠시 놀라고 킬킬거리며 웃고...녀석을 놀려대다가 앞으로 공부를 정신차리고 하라고 이야기하는 정도였을 것입니다만

 

엄마란 존재들은 전혀 그런 것이 잘 안 되는 본능적 사랑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제가 좀 늦게까지 새집에서 푹 자고 돌아가 보니

그 살벌한 분위기라니...

제게 쏟아지는 온갖 비판들을 저는 묵묵히 들어야만 했습니다.

위 세 녀석들의 지지부진에 대해서, 그리고 최근 원경이의 부진에 대해서...저는 몰아서 혼이 났으며

이번 교신이가 가져온 수학시험지에 대해서 ...저는 엄청나게 혼이 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아이들의 교육권까지 박탈당할 위험에 처했습니다.^^

 

도대체 교신이의 수학시험지에 어떤 점수가 있어서 그렇게 되었냐구요? ㅎㅎ

그건 비밀입니다. 녀석에게 프라이버시란 게 있잖습니까?

아마 녀석에겐 평생의 큰 "오점"이 될 그런 점수입니다.^^

 

너 왜 이 시험지를 아빠한 테 미리 말 안 했니?

아빠랑 행주산성간다고 하다가 잊었었어요.

그래도 미리 이야기 했더라면 ...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거 아니냐.

죄송해요.

죄송한 게 문제가 아니라...너 잘못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게(교신이가 이런 속담을 좋아하거든요^^)된단 말이다.

  

아내는...이번 일로 제 자녀 교육권을 빼앗고 ㅜㅜ...

그동안 진실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15년동안이나 유지되어 오던 우리집의 교육방침을 바꾸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미 아내는 인터넷으로 '구몬수학'이라는 것을 검색하여 신청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학원 다니지 않기, 과외 하지 않기, 학습지도 절대 시작하지 않기...이 아름다운^^우리집의 전통이 깨어지게 될 위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애 데리고 자전거 타고 행주산성이나 찾아다니지 말고...수학실력이 어떤지 살펴봤어야 하는 거 아녜요!!!

 

아내가 펼쳐 놓은 녀석의 '오점의 시험지' 앞에 저는 사실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다음날

아무래도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아이들 교육에서 물러난다는 것이 억울하여

아내를 붙들고 설득을 시작하였습니다.

진실이가 공부를 잘 하지 못한 것은 ... 야자를 하면서도 계속 만화를 그려댄 탓이며

나실이가 고전한 것은 ... 특히 아무 말없이 수학을 스스로 손 떼어 버린 탓이며

충신이가 형편없는 성적인 것은 ... 녀석의 뇌 속엔 아직도 딴 세상이 어른거리는 것 때문이다.

원경이는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채워나가고 있으므로 ...곧 회복할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교신이는 아직은 열심히 놀고 자유롭게 자라야지  학습지로 억지로 공부하는 일...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나를 믿어달라.

 

아내는 원래부터 저와 아이들 교육방침엔 뜻이 통했었던 터라...그리고 첫날의 충격이 가시고 좀 진정이 된 상태가 되었는지...

호호...당신을 믿은 결과가 참 참담하다는 것은 아시죠?...한마디를 던지고는

구몬...에는 남편이 반대를 하여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문자를 보내 마무리를 하고

저...에게는 교신이를 그냥 그대로 놔 두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교신이... 문제 있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1시간 놀다 오고

오자마자 태권도 가서 끝나면 또 1시간 더 놀다 오고

집에 와서 저녁 먹으면 곧 바로 잠들어버리는 것이 굳어진 일정이 되었더랬습니다.

피아노 체르니30번의 11번을 한달 넘게 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못치는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었습니다.

겨우 일기쓰고 숙제만 해 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6월 9일에 아내는 반디에 가서 표준기말 기출문제라는 문제집을 사왔고

6월 10일부터, 엄마의 진노에 벌벌 떨었던 교신이는^^...그 문제집을 착실하게 풀어나갔습니다.

풀고 채점하고 틀린 것은 다시 공부하고 ... 

 

그리고

국어수학사회과학...네과목의 기말고사가 6월 22일과 23일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첫날은 시험을 잘 본 것같아요,,,라고 말하여, 지적해 주었습니다. 잘봤다 못봤다는 말은 하지말라고... 그건 네 수준에서 네 멋대로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다음날은 아무말이 없었습니다. 아빠가 아무말 하지 말라면서요...잘봤니 하고 무심결에 묻는 저에게 말입니다.^^

 

엇그제...시험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무척이나 행복해했습니다.

백점짜리가 셋이나 나왔으며  그 중에 하나가 ...오점을 남겼던 수학이었기 때문입니다.^^

 

...

 

초등학교 때는

학교 갔다 와서 팡팡 놀다...열흘만 제대로 공부하면 되는 일입니다.(동의하지 않으셔도 할 수 없습니다. 교신이가 증인이니까^^)

매일 매일 학원으로 학습지로 아이들을 괴롭힐 필요가 없습니다.

정확한 평가가 있고 ... 그 평가에 우리처럼 화들짝 놀라든 고개를 끄덕이든 ...대책을 세우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시험을 자주 보는 일...찬성입니다.

 

이해찬씨가 교육부 장관이던 시절

우리집 큰 딸과 둘째 딸이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그때는 초보부모였고 우리 자신을 믿고 아이들을 믿었으며 이해찬씨의 방침에 일견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 일이 전혀 없어, 줄창 '다 안다'...고 했던 아이들의 말을 검증할 수 있었던 것은 '중학생'이 된 후였고

그때는 거의 회복불능의 상태가 된 후였습니다. 분수의 덧셈도 곱셈도 모른 채...이미 중학생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숙제는 답을 베껴가면 되고, 시험이 없으니 아빠에게 실력을 들킬 염려는 없고, 가끔 착한 어린이 상이나 받아서 드리면 좋고...

 

지나놓고 보면 그땐 정말 공교육의 폐해가 만만치 않았던 때였습니다. '절대 학교시험 금지'였으니...

 

...

 

구몬을 할 뻔한 ...교신이는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경헙도 못 해봤으면서 ... 학습지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교신이 노는 꼴이 밉살스러워 불렀습니다.

 

야!! 역전의 용사!!

이젠 영어 공부도 좀 해야지~

 

 

 

 

  • 한재웅2009.06.27 11:12 신고

    자식의 체력이 아버지를 능가하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생각하면 씁씁하기도 할 거예요.

    답글
    • 주방보조2009.06.27 12:02

      ㅎㅎ...그렇습니다.
      어제는 나실이와 살곶이다리가지 자전거를 탔는데
      녀석의 뒤를 따라 붙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살곶이공원에 도착해서 한동안 벌렁거리는 심장을 안돈시켜야만 했습니다.
      3년동안...부쩍 체력이 저하되는 듯합니다.

  • malmiama2009.06.27 12:15 신고

    정확히 일주일 전부터 '슬기를 이렇게 키웠습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작가로부터 선물 받았는데...148쪽짜리 인데 이제야^^ 거의 다 읽었습니다.
    오랜세월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 온 역전의 용사...로, 예빛교회 교인입니다.
    찬양대에서 테너를 맡고 있는 분입니다.
    알아갈수록 좋은~맛잇는 분입니다.(어제 만났을 때 그 분께 그렇게 말했지요..ㅎㅎ)

    (어제 알았는데 고 이석규 전도사님과는 오랜 친구지 뭡니까. 25년쯤...?)

    '슬기를 이렇게 키웠습니다'를 블로그에 연재할까 ...합니다.
    아이들을 즐겁게...행복하게 잘키운 얘기지요.

    답글
    • 주방보조2009.06.27 13:08

      슬기엄마는 슬기를 이렇게 키웠습니다 (김용배)...인터넷을 검색하여 책소개 몇개를 읽었습니다.
      저는 저런 분들보면...좀 무지막지한 아버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좀 단말마 한마디를 뱉자면...ㅎㅎ...아이들 타고난 천성이라는 것도 있더라는...

      이석규님과 친구사이라니...참 반갑고도 슬픕니다.

  • malmiama2009.06.27 12:17 신고

    교신이가 어느새 아빠를 능가하는 체력의 싸나이가 되었군요.^^

    저는 며칠 전
    윺민이와 공원 가면서 달리기 하면서
    내년 쯤이면 유민이와 달리기 하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TT

    답글
    • 주방보조2009.06.27 13:11

      교신이는 가볍고 금방 피로가 회복되니까요.
      예전에 꿈 하나가 아이들이 자라면 함께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리라...였는데
      '제가 문제'가 되더군요.
      아이들은 달릴 수 잇는데...저는 이젠 안되는 한계같은 것 말이지요.
      전 마음은 있는데 몸이 안 되고...아이들은 몸은 되는 데 마음이 없고...

      이 놈들도 자식 낳으면 똑같은 전철을 밟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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