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시인이 되려다가...^^

주방보조 2009. 6. 12. 18:12

지난주 화요일

낮에 갑자기 폭풍이 대작하더니 빗소리 우레소리 요란하였습니다.

교신이는 무사히 그 전에 집에 도착했고

원경이의 귀가를 도우려고 중학교까지 우산을 들고 두번 왔다갔다 했습니다.

바람 비 번개 천둥과

무리지어 아파트 담을 온통 결혼식장처럼 만든  흰 줄장미들이 영 어울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에 잔뜩 젖어 늘어진 꽃송이마다 무슨 슬픈 사연을 담은 듯 보였구요.  

번득...

포롱포롱포롱...여섯글자짜리 시를 짓던 중학생이 되어

비에 젖은 흰장미들이 하나의 시가 되어 제 머리 속을 포롱거리며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아무래도 시인이 되어야...쓰것다 

 

그러던 중 다음날 친구의 죽음을 맞고

포롱거리던 시는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편 학이 되어

흰 장미와 녀석의 죽음을 이어서 ..정말 감성적인 시를 만들어 낼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머리속을 뱅뱅 도는 단어들은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허덕거렸으나

우리말로 반백년을 넘게 살아온 내공으로

자판을 쳐 5분도 되지 않아 한편의 시를 뚝딱 지어내었습니다.

 

소재는 비에젖은 흰장미와 절친한 친구의 죽음이고

주제는 슬픔의 극복...뭐 그런정도

장르는 자유시, 서정시, 에 또...너무 길지 않게...

제목은 미정...

 

처음 써 놓은 시를 읽으며...첫번째는 스스로 감동도 적지않게 하였습니다.

조잡한 단어들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거기 담겨있는 제 마음을  저는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감동에 고무되어 블로그에도 잠시 올려놓았더랬습니다.

그러나 2%부족한 그 무엇인가가 제 뒷덜미를 잡아채고...지혜롭게도^^ 블로그에서 내려버렸습니다.

혹 그 와중에 읽은 분이 계시다면...눈을 어지럽혀드렸던 죄를 용서하시길...

 

...

 

추고라고 하나요? 수정작업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치면 고칠수록...감동은 사라지고...2%부족했던 것이 98%부족한 것으로 점점 역전되어갔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지적이 필요했고...그래서 가족들의 도움을 구하기로하였습니다.

 

마눌과 아이들을 모아놓고 제 시를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내가 시인이 되려고 하는데, 불만있는 사람 있나?" 로 시작하여 시를 짓는다는 것이 돈은 못벌어도 참 좋은 일이며 혹 로또복권보다 더 확률은 떨어지겠지만 "대시인이라도 되면 돈도 많이 벌지 모른다"는 헛소리까지 농으로 섞어가며 시 품평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남자아이들과 남자같은 나실이는 ... 노코멘트로 아빠의  말을 같잖게 여겨...제 부담을 덜어주었고

마눌과 진실이 그리고 원경이가 제 시를 품평해 주었습니다.

 

마눌:뭐...그런대로 좋은 시네요. 그런데 유명한 시인들의 시도 몇개 빼고는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찮아요?  마무리 부분이 뭔가 좀 아쉽구요

       당신도 열심히 작품을 많이 쓰다보면 더 좋아지지 않겠어요? 근데 진짜 시

인이 되고 싶으세요? 노력하면 안될 것도 없겠지만요. ㅋㅋㅋ

 

진실:별루예요. 대단히 고리타분해요.  단어들도 좀 뻔하고 식상한 것들이구요. 너무 흔해빠진 시예요.

 

원경:마지막 문장은 감동이 약간 오는 것같아요.

 

마눌은 제가 시인이 되려하는 뜻이 무모함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완곡하게 위로를 곁들여가며 지적한 것이고진실은 제가 평소 녀석의 만화 스토리에 무자비한 비판을 가한 것에 대한 잠재적 반감이 컷던 탓도 있었겠지만 ... 녀석답지 않게 직설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빠가 당할 창피를 면하게 해 주려는 사랑에서 비롯된 비판이리라 힘들게^^받아들였으며원경은 배려의 여왕답게...마지막 문장 약간 빼고는 별로 와 닿질 않는다는 이야기를한 것이라...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우이씨...^^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였습니다.시인 한번 되는 일이 어찌 이리 어려운지...아니, 시 하나 짓는 일이 어찌 이리 어려운지...새삼 시인되시는 분들께 존경의 마음이 ...ㅎㅎ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 해도... 써지는 시를 위하여...

저는 아무래도

내년 흰장미들이 폭우에 고개를 떨굴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같습니다.^^

 

...

 

공식적으로는...

그래도

시를 쓰고 시인이 되고자하는 이 잠시간의 노력이 ... 시를 쓰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간 듯...유익이 있었다 하겠습니다.

 

...

 

음...그런데...생각할수록

그런 엄청난 비판을 그렇게 쉽게 쏟아 내다니...

 

다음에 시를 쓴다면 이 진실이란 맏딸년의 비리들을 서사시로 읊어야 쓰것습니다.^^

 

 

 

 

  • 원이2009.06.12 21:09 신고

    원필님 글은 항상 한편의 '시' 같았습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고, 읽고나면 단백하고도 적당한 온도로 따스한 한 '장면'이 그려져
    한 동안 머릿속에 머물게 되지요.
    그 자체에 강력한 설득력 있는 주장이 들어가 있지 않으나,
    어느새 원필님 마음의 풍경에 설득당해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되곤 한답니다.
    그래.. 이런 게 우리 사는 일이야... 맞어.. 그렇지... 으음...
    이렇게 말입니다.

    그 비에 젖은 흰색 장미꽃 이파리에 관한 시가 어떤 시였는지는 몰라도,
    오늘도 저는 빙그레 입가에 번지는 미소와 함께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지는 한 편의 시를 읽고 갑니다.

    답글
    • malmiama2009.06.13 13:21 신고

      공감..동감합니다.
      그래서 드나든지 내년이면 10년이지 싶은데요.ㅎㅎ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고, 읽고나면 단백하고도 적당한 온도로 따스한 한 '장면'이 그려져....>

      근데...원이님은 왜 자신의 블로그에 글 안올리세요?

    • 주방보조2009.06.14 00:12

      시같은 답글이군요^^
      뭐 좋습니다.
      위로받는다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습니다.^^

      말집사님 말씀처럼...'자신의 블로그에 글 안 올리는 죄'를 빨리 청산하시길!...

      말 집사님과는 정말 내년이면 10년째가 되는군요.

  • 김순옥2009.06.12 21:28 신고

    문제의 그 시가 갈수록 궁금해질 것 같은데요.
    시는 논리가 아니라 영감으로 쓰는 것, 아니 짓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은 되도록 감성적이고 영혼이 맑아야 될 것만 같구요.
    제 친구 중의 하나가 시인으로 등단하고 작년에는 작지만 혼자만의 시집도 냈더군요.
    그 친구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는 것, 아직도 맞춤법에 있어서는 한없이 미약하다는 게
    자꾸만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건 이를테면 그렇지 못하는 입장에서 자존심이었을 거예요.
    시어를 공부한대로 억지로 맞추려는 노력이 깃들여진 것도 마땅치 않았구요.
    다만 그녀가 착하고 아름다운 심성과 감성을 겸비했다는 게 그녀를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아름다운 언어로 적어 가는...그런 거라면 좋은 시가 아닐까요?
    그나저나 그 시 다시 한 번 올려 주시면 안 될까요? ㅎ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9.06.14 00:20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과
      시를 쓰는 것과
      시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모두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인듯 합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시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단계에 이르른 것일텐데...ㅎㅎ전 아직 아닙니다.
      그러니...그 시는 비밀입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겸비하고...나서...다시 시도해 볼 날이 있겠지요^^
      그러려면 제가 좀 더 자존심이 많이 죽어야 할 듯 합니다.

  • coolwise2009.06.13 01:12 신고

    으음.. 이 글 전체가 詩的 서정을 담은 산문이라고 생각되는걸요..
    장군님 답지 않게 두어시간만에 후퇴했다는 그 시도 궁금합니다.
    예전 제가 한참 시 배운다고 깝죽거리던 학창시절에..
    중년의 아버님께서 갑자기 몇마디 감상을 적어. 詩를 써봤는데 어떠냐고 자문을 구하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참새가 전깃줄에 어쩌구 하는 내용이었는데.. 차마 동시 같다는 말씀은 못드리고..
    암튼 서정이라곤 느낄 수 없던 분이 갑자기 시를 시도했다는게 놀라워서리.. 어떻게든 격려해드리려고 애썼다고 기억되는군요. ㅎㅎ
    반세기..라는 연륜이 절로 서정을 일으킬 무렵인가 싶기도 하네요.

    싸모님의 격려(?)가 그래도 제일 위안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그 시 한번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ㅋㅋ

    그리구.. 여섯자짜리 短詩
    이거 굉장히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걸요.

    "
    번득...
    포롱포롱포롱...
    "
    그 순간에 나뭇잎에 고인 빗물이 뚝뚝 떨어졌던 것일까..
    번갯불에 놀란 참새들이 날아오른 것일까..




    답글
    • 주방보조2009.06.14 00:27

      마눌의 격려도 전혀 격려같지 않고...그 "격려하려고 애썼다"는 느낌만 강해져 옵니다^^

      그런건가 봅니다.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도 슬쩍 입에 넣어보고
      가보지 못했던 길도 훌쩍 지나쳐보고
      그리고
      되지 못했던 시인도 한번 되어보고 싶어지는 것...이것이 남자의 갱년기 바람...^^

  • 한재웅2009.06.13 09:51 신고

    시인이 별건가요. 자신의 감정을 짧게 표현하면 시지요^^
    퇴고를 할 수록 처음의 시감정은 변색되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9.06.14 00:30

      그렇군요.
      정말 이제는 그 시를 꺼내놓기도 싫답니다.^^
      한 네번정도 고쳤는데
      점점 더 아닌거예요.

      그리고 그 표현이요. 저 자신은 느낌이 와도...남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없다는 ...그래서 참 어렵구나 생각했습니다.

  • malmiama2009.06.13 13:18 신고

    시는 모르겠으나,
    오늘 글... 매우 재밌고 우수한 수필이지 싶은데요.^^

    유민이가 어제 시를 썼다는군요.
    제목은 '목욕탕'이었는데 선생님이 정해주고..반 아이들 모두에게 지으라 했나 봅니다.

    무슨 내용이었니?..몰라요.....그냥 대충이라도 어떻게 지었는지 몰라?....기억이 안나요.
    ..엄마 나오니?....아니여.....아빠는?....안나와여!......
    (기억에 없다는 녀석이 어찌 엄마 아빠 안나오는 건 기억할꼬..ㅋㅋ)

    답글
    • 주방보조2009.06.14 00:34

      ㅎㅎㅎ...
      참 어려운 시제네요. 목욕탕...이라니...그것도 엄마 아빠도 안 나오는 시라...
      요즘은 유민이가 혼자 목욕을 하나보군요.^^

      흠...
      그럼
      시인말고 수필가 하면 될까요?
      이번엔 마눌하고 아이들 불러서 안 물어보고...ㅎㅎ

  • shlee2009.06.13 17:54 신고

    시를 쓰는 아빠
    별로 일것 같아요.
    너무 말랑 말랑...
    야들 야들...
    시를 쓰는 남편..?
    그것도 어울리지 않아요.
    돈을 벌 수 없을것 같은 느낌이...
    너무 세상적인가....?

    답글
    • 청랑2009.06.13 23:44 신고

      하하
      그렇지요?
      시시, 하다보면, 시시해지죠....
      그것이 한 시하는 시시한 인간들의 시시비비죠...
      폭우에 비루먹은 흰 장미꽃의 축처짐 같은...

    • 주방보조2009.06.14 00:39

      쉬리님...
      아무래도
      시인이 되려면
      마눌과 아이들을 모두 다 떨쳐 버리고 어느 한적한 바닷가로 나가야 하는가 봅니다.
      아빠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
      그러면 너무 외롭고 힘들것네요^^
      뭐 세상적이라기보다...현실적인 시각이세요. 말랑말랑...야들야들...근데 그렇게 된지가 언제적인데요.

    • 주방보조2009.06.14 00:47

      블로그친구분들 중엔 시인이 많지요.
      청랑목사님도, 쿨님도 시인이시잖아요?
      이요조님도 시조와 시 모두 잘 쓰시고...소미산 목사님이나 무루목사님도 시인이시고
      유영희작가님도 시를 간간히 쓰시는데 정말 잘 쓰시고...이사야님이나 원이님이나 쉬리님이나 피아님도 잘 쓰실 분들이시고...
      왕언니님은 글들이 거의 시나 진배없으시고...

      전 시시해진다는 말씀에 동의 못하겠어요.
      시쓰는 분들 대단한 분들이라는 것을 이번에 좀 더 잘 깨달았다니까요.

'칠스트레일리아 > 다섯아이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박 2일...동해바다 만나기?  (0) 2009.06.27
역전의 용사...^^  (0) 2009.06.26
원경이의 밝은 세상...  (0) 2009.05.28
20년...  (0) 2009.05.11
자전거로 왕복100Km...쯤^^  (0) 2009.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