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0호> 이이제이가 옳은 방식인가?...이단관련 잡지들의... 2002년 01월 09일 우리 다음종교칼럼에서 어떤 칼럼에 들려보면 뉴스엔조이나 교회와 신앙같은 사이트를 링크해 놓은 경우를 보게 됩니다.
저처럼..호기심이 적지않은 사람들은 그거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딸깍하고 누르게 되지요...
며칠전 그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눈에 띈 기사는 어느 중학교에 있는 성락교회 김기동목사의 박사복을 입은 부조물 사진과...그의 학력에 대한 꽤 세밀한 조사보고였습니다.
그의 학력은 귀신도 모른다는 것이었죠^^
...
그런데 그런 사실이 밝혀진 것이 오랫동안 성락교회에서 목사등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이들이라는 설명이 있고...그들의 활약상을 매우 고무적인 일처럼 적어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단이라는 판정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군하는 생각과 수만의 교인들이 참 가엾다는 생각들이 겹쳤습니다.
그리고는 곧... 머리를 때리는 것이 도대체 이 김기동목사에 대하여 비난하고 공격하는 이들은 어떤 이유때문에 그리하는 것일까하는 의아함이 들었습니다.
혹 베뢰아아카데미라는 것을 공부하고(80년대 중반까지는 이단판정이 나지 않았었으므로)그 가르침이 이상하다 생각하여 관계를 단절해 버린 사람이라면 모를까 20년 혹은 30년가까이 한솥밥을 먹던 이들이라면 ... 이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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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록의 뒤통수를 때린 가장 큰 세력이 ... 이재록에게 대언의 기도를 해주던 여전도사였는데...어떤 이단잡지에서 그녀를 통한 이재록에 대한 증언들을 마치 신실한 목회자의 말처럼 떠받들어 발간해 낸적이 있을 때...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마찬가지죠...
그 여전도사가 교회를 새로 개척해서 ... 그 대언의 기도인가하는 사이비 짓을 그만두었을리 만무하고...
성락교회 바로세우기인가 뭔가하는 안티김기동세력이 성락교회 김기동목사의 그 온갖 무식하고 조잡한 체험주의 신학을 모두 배제하고 김기동목사를 비난하는 게 아닐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일부는 부정하여 공격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
이단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단의 아류에 불과할 세력을 의존하고 ...그런 기사를 싣고 의기 양양해 하는 것..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증언들을 확인하고 그 증언하는 이들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진리를 수호하려는 환골탈퇴의 회개를 통하여 그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형교회의 일종의 파워게임에서 밀린 불만의 표출인지
것도 아니면 진리도 관심없고 정치게임도 아니고 그저 순수한 이단교회로 만족하려는 불만인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
그저 이단에 대한 반대는 무조건 ... 정당하고 올바르고 제대로 된 것이라는 식의 자세...
참 위험하고 잘못된 시각이라고 봅니다.
적의 적은 내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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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있어서 이렇게 위험한 생각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진리란
내편 네편 나뉘어 편가르고 싸움박질 하여 이기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찾음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단비판잡지들의 한계속에 우리나라의 편가르기 교회행태가 깃들어 있어...한심했습니다.
01/09 Re:[감상]이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편견...^^ 20 이단은 무조건 지옥에 간다... 이것은 정치적 교회가 만들어 낸 오류입니다.
그것을 굳세게 믿고 계신 것을 보면 아직 매우 순수?하다 하겠습니다^^
...
이단은 지옥에 떨어질 이단이 있고
구원은 받되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이단이 있고
일시적으로 오해받고 있는 이단도 있고
그런 것이랍니다.
...
구원은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이며...
진리수호는 ... 우리 자신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
^^; 원필
: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모양이군요. : : 그동안 기독교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벌여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 : 사기꾼들의 수법중에 다음과 같은게 있습니다. 십원내면 금반지 한돈을 준다고 살살 꼬셔서, : :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금품을 뜯어내죠, 물론 금반지도 또 뭔가를 사야만 : : 된다는 식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해서 금반지 마저 주질 않습니다. : : 율법은 지켜야 하나 다 못지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식의 해괴망측한 내용과 일맥상통 : : 합니다만..... :
바쿠스
01/09 Re:[질문] 김원필 성도님에게 질문 드립니다./빈정거리면...^^ 24 소화가 잘 되십니까? 그냥 건조하게 물어 오시면 안됩니까?
성경을 기준으로 어느정도 판단할 수 있답니다.
지옥에 떨어질 이단:전혀 성경과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것:문선명따위
부끄러운 구원받을 이단:비성경적인 주장들을 추가하는 등의 집단:김기동류에 속한 이들
일시적인 오해가운데 있는 이단:성경적인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논쟁이 있는 경우:김교신류 원필 : >이단은 지옥에 떨어질 이단이 있고 : >구원은 받되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이단이 있고 : >일시적으로 오해받고 있는 이단도 있고 그런 것이랍니다. : : 김 원필형제님께서 분류하신 3가지를 명확하게 가려낼 방법은 있습니까? : : 있다면 설명부탁드립니다. 꽤 궁금하군요. : : *** 역시 야훼만 알겠지요? ^^;
바쿠스
01/09 바쿠스님의 성의있는 경청을 기대하며.... 30
1. "시간도 남는다고 말씀하셨던데, ..."
제 글을 여전히 잘 안 읽으시는군요. 저는 시간이 "남는다"고 한 적이 없지요. "지금은 제가 시간이 많으니까,..."라고 했을 뿐입니다. 어제는 논문을 하나 마무리한 뒤라 시간이 많다고 했던 것뿐입니다. 저도 항상 시간이 많거나... 특히 "남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도 이런 답글 하나 쓰려면 족히 30분 이상 걸립니다. 하루에 1시간으로 "다음" 글쓰기를 제한하고 있는 저로서는 그것도 큰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답글을 드리는 이유는 저도 하나라도 배우고... 또 가르쳐 드리는 즐거움을 맛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이 없는 대화나 논쟁이라면 저도 별로 하고 싶지 않군요.
바쿠스님과의 대화는 대체로 제게 유익하다기 보다는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흐르거나 불쾌해 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상대방의 글을 꼼꼼히 읽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점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군요. 그래야 서로 필요없는 오해를 하거나 쓸데없이 중언부언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2. >>"앙(仰)의 뜻은 "믿다, 따르다"?" >>어떤 자전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앙(仰)에는 원래 "믿다" 거나 "따르다"는 뜻이 없습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나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보더라도...... >>앙(仰)의 본래 뜻은 "우러르다"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앙(信仰)은 "믿고 우러르다"는 뜻이지요.... >>요즘은 그냥 "신앙=믿음"이라는 뜻으로 하도 많이 쓰다 보니까... >>아예 앙(仰)이 "믿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푼 사전도 있는 모양이군요.
>'仰'은 사람'인' + 높을 '앙'으로 이뤄진 문자로 많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우러르다', '믿다.', '따르다', '의뢰하다.' 란 의미를 지니며 간혹 '높다.'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좀 더 연구해 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제 말을 좀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설문해자(說文解字)와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문헌 증거까지 댔잖습니까? 그 문헌의 앙(仰)의 어원적 뜻풀이에는 "믿다," "따르다," "의뢰하다"가 없을 뿐 아니라, "높다"는 뜻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앙(仰)의 파자해(破字解)를 시도하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실 바에는 정확하고 철저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중문자보(中文字普)라는 책이 제시하는 파자해(破字解)에 따르면 앙(仰)자는 사람 인(人)자가 세 개나 나오는 글자입니다. 그 세 사람이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첫 사람(人)은 똑바로 서고... 두 번째 사람(匕)은 거꾸러져 있고, 세 번째 사람( )은 무릎을 꿇은 모습을 나타내는 상형(象形)자들입니다.
앙(仰)자의 뜻은 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람의 모습에서 도출됩니다. 스스로 거꾸러지거나 무릎을 꿇고서 상대방을 올려다본다는 상형(象形) 합체자입니다. 그래서 앙(仰)자나 앙( )자의 뜻은 "우러르다"는 뜻입니다.
파생적인 어의(語義)에라도 그런 게 있는지 찾아보시려면... 우선 제대로 된 자전을 먼저 살펴보시면 좋겠군요. 이렇게 아무런 논거(論據)도 없이 "이러저러한 뜻으로 풀이되기도 합니다"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믿을 수," 즉 "설득 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3. >>동어반복(同語反覆)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한다는 뜻으로....
>제가 쓴 글을 다시한번 읽어보심이 타당할것으로 사료됩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의미로 썼습니다.
정말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 들으셨군요... 설마 했는데.... 제가 동어반복(同語反覆)이라는 말을 설명 드렸던 맥락을 한번 다시 보시지요. 거기서는 분명히 토톨로지(Tautology)라는 논리학 용어로 썼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또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한다는 표현의 더 일상적인 표현은 "중언부언"입니다.... "동어반복"이 아니라.... 그래도 자구해석을 곧이곧대로 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해 드리려고 했던 의도조차 파악을 못하시다니... 섭섭하기까지 하군요.
4. >>4. 신앙(信仰).....이 동어반복? >>그래서...... 신앙(信仰)이라는 말은 >>이상의 어떤 이유로든 동어반복이 아니니까.... 안심하고 쓰셔도 됩니다. >위에서 '앙'의 의미를 설명해 드렸으니 이것도 생략합니다.
앞에서 보여드린 바대로.... 앙(仰)자의 뜻을 여전히 오해(誤解)하고 계신 것이 확실하니... 뭐라고 더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5. >>5. 신안(信眼)은 무슨 뜻? (아주 결정적인 실수....) >>우선 신안(信眼)이라는 낱말은 국어 사전에 없으니까.... >>바쿠스님이 "나름대로" 만들어 내신 말임에 틀림없겠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뜻은 "보는 것이 즉 목표가 믿는 것"이라고 하셨군요. >>뭐든지 "나름대로" 만들어 보시는 것도 참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려면 (설명을 용이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지요?)
>먼저, '信'은 믿을 신으로 명사입니다. 굳이 세분화 하자면 추상명사입니다. >'眼'은 눈'목'에 어긋날 '간'으로 형성된 글자로 당신께서 생각하는 것 보다 쓰임새가 좀 >많습니다. '눈', '보다', '요점'등으로 풀이되는 한자입니다. '신앙'과 '신안'은 같은 >쓰임새로 특별히 다르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신안의 "목표가 믿는 것" 이라는 중간과정 >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信 믿고(믿음으로) 眼 본다'란 의미로 "믿는 것 자체가 목표"란 >내용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안(信眼)이라는 낱말은 국어 사전에는 물론 중국어 사전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건 전적으로 님의 "독창적"인 조어(造語)가 되겠군요. 그렇다면 그 뜻을 뭐라고 푸시든, 그건 전적으로 님에게 달린 문제이겠습니다. 남들이 그걸 받아들일는지의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이겠지만요.
하지만 적어도 뜻풀이에 일관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보는 것이 즉 목표가 믿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오늘은 "믿는 것 자체가 목표"라고 하시는군요. 지난 글과 오늘 글에서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뒤바뀌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것이든 마음에 결정이 되시면 알려 주십시오. 그때 가서 논평을 드려도 늦지 않을 듯 하군요.
사족(蛇足)처럼 덧붙이자면... 신(信)은 명사(名詞)이기도 하지만, 동사(動詞)이기도 하고 때로는 관형사(冠形詞)이기도 하고, 부사(副詞)이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한자의 특성이지요. 또 신(信)이 명사일 경우에도 추상(抽象) 명사일 뿐만 아니라, "편지"라는 뜻으로 쓰이면 구체(具體) 명사가 되기도 합니다. 한자나 한자어를 너무 단편적으로 보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6. >>의미 규칙이나 문법에도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나름대로 라지만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을 만드시려면... >>주어와 서술어의 순서(順序)정도는 생각을 하셔야지요. >>서술어에 해당하는 신(信)을 먼저... 주어에 해당하는 안(眼)을 뒤에 놓으시면.... >>어떤 눈으로 보아도 믿을 수 없는.... 낱말 아닌 낱말이 되어 버리잖습니까?
>낱말을 만들 때, 주어 서술어를 따지는 것은 2000년도에 새롭게 등장한 학문인가요? >혹시 교회 주일학교식 문법(!) 인가요? >문장을만들때 주어서술어를 따지는 경우는 보았습니다만, 제가 천학둔재라서 그런지낱말을 >만들 때, 주술을 따지는경우는 이제껏 본적이 없습니다. 잘모르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주어' >도 하나 이상의 낱말, 서술어도 하나 이상의 낱말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낱말을 만들때, 어떤규칙이 있어서 주어서술어등의 규칙을이야기하는 기괴절묘한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님께서는... 정말로... 한자어 구성의 문법을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아시면서도 한번 어긋대 보시는 겁니까? 저는 정말로 분간이 안되는군요.
정말로 미친 척 하고 물으신 듯하니... 저도 미친 척하고 대답해 드리지요. 한자어를 만들 때에도 문법이 적용됩니다. (중학교 1학년 한문 첫 시간의 주제입니다.) 같은 한자라도 "문장"은 물론 "낱말" 안에서도 문장성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얼른 떠오르는 예를 한두 가지 드리지요. 남부여대(男負女戴)라는 말을 아시지요?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이다"는 뜻이지요. 이 한자어에서 남(男)과 여(女)는 주어, 부(負)와 대(戴)는 서술어입니다.
한자어에서는 주어와 서술어만 사용되는 게 아닙니다. "함께 간다"는 뜻의 동행(同行)이라는 낱말에서는 동(同)이 부사어, 행(行)은 동사로서의 서술어입니다. 또 극단(極端)이라는 말에서는 극(極)이 관형어, 단(端)이 명사로서 체언이 됩니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님께서 만드신 신안(信眼)이라는 신조어를 "보는 것이 즉 목표가 믿는 것"이라고 직접 해석하셨잖습니까? 그 해석에는 "이"와 "가"라는 주격 조사가 나옵니다. "믿는 것" 다음에는 서술격 조사 "이다"가 생략된 형태이겠구요.
그러면 당연히 그 해석은 완전한 "문장"일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위 "보는 것" 혹은 "목표"에 해당한다는 안(眼)자가 주어로 설정되어서 서술어 앞에 와야 하는 것 아니냔 말입니다. 한문법에서도 주어는 서술어 앞에 나온다는 규칙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요즘은 교회 주일학교에서도 한문법까지 가르치는 모양이지요? 교회에서.... 쓸데없는 것까지 가르치는군요.... 학교 교육에 대한 월권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주일학교에서 배우시거나 가르치셨을 지도 모르는 님께서는 거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고 계시니... 주일학교 교육도 제대로 되고 있진 않나 봅니다.
한자어 낱말을 만들 때에 "주어 서술어 등의 규칙"을 공부하시기 위해서는 "기괴절묘"한 책까지 찾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중학교 다니는 조카가 있으시면 한문 교과서를 좀 보여 달라고 하시거나, 그것도 귀찮으시면... 컴퓨터 앞에 앉으신 김에 야후나 구글에 들어가셔서 "한문법"이라는 키워드를 집어넣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수백 개 이상의 한문 공부 페이지가 나올 테니까... 아무거나 보시면 됩니다.
7. >>무엇보다도..... >>안(眼)자에는 "보는 것"이란 뜻이 없습니다.
>그냥 쉽게 혜안(慧眼)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안경도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만,
혜안(慧眼)은 "슬기로운 눈"이라는 뜻입니다. 안경(眼鏡)은 "눈거울"이라는 뜻이지요. 반론의 예로 드신 두 낱말의 안(眼)자는 모두 "눈"이라는 명사(名辭)입니다.
한가지 예를 더 들어 드릴까요?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도다"는 문장의 안광(眼光)도 "눈빛"이라는 뜻입니다. 안(眼)자에는 "보다"는 동사의 뜻이나 "보는 것"이라는 동명사의 뜻이 없습니다.
안(眼)자와 목(目)자는 둘다 "눈"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양자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목(目)이 주로 구체적인 눈을 가리키는 반면에 안(眼)은 주로 추상적인 눈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혜안(慧眼)이라고 하되, 혜목(慧目)이라고 하지 않고, 이목구비(耳目口鼻)라고 하되, 이안구비(耳眼口鼻)라고 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러나 저러나.... 님께서 제 주장을 반박하시고 싶으시다면, 안(眼)자가 동사 혹은 동명사로 쓰인 예를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증거 선택을 영 엉뚱하게 하시는군요. 오히려 제 주장을 자꾸 강화시키는 예를 드시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8. >P.S : 그나저나 본래의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군요. 아직도 애인의 말을 따져보지 않고 > 믿는 것이 '설득 당했다.'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상대방의 글을 잘 안 읽으신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겠군요. 저는 애인이 "팥으로 메주 쑨다"고 해도 설득 당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설득(說得)당하다"란 "말을 받아들인다"는 뜻일 뿐이라는 게 이미 제 논거(論據)로 제시됐었지요.
그런데.... 그건 믿음이 아니라 "맹신(盲信)"이라고 하셨지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반박이 아닙니다. "본래의 주제"는 "믿음"의 뜻이 무엇인지 밝혀 보자는 것이었는데... 맹신(盲信)은 "사리를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것"이라는 뜻이니까... 그 설명 속에다가 다시 "믿는 것"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게 되어, 다시 한번 동어반복(Tautology)일 뿐입니다.
맹신(盲信)... "사리를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말을 받아들이는 것".... 이렇게까지 일일이 풀어드려야 납득이 가시겠습니까?
게다가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지난 글에서....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무언가에 열정(熱情)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서 정(情)이란 "따뜻한 마음 씀씀이"라는 뜻풀이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엉뚱한 이야기니까요."라고.... 비유적인 설명을 이미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항상 직설법으로 말씀을 드려야 하는군요.... 님께는.... 비유(比喩)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시는 것을 보니....
9. 그래도 사과할 것은 사과하실 줄도 알고.... 감사하다는 말씀도 하실 줄 아시는 걸 보고... 오늘 답글 드릴 마음이 생겼더랬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너무 민감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다음 같은 글들은 아마도 읽는 이를 얕잡아 보기 위해 쓰신 말인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말을 만들 때, 주어 서술어를 따지는 것은 2000년도에 새롭게 등장한 학문인가요? >혹시 교회 주일학교식 문법(!) 인가요?
>혹시 낱말을 만들때, 어떤 규칙이 있어서 주어 서술어등의 규칙을 이야기하는 기괴절묘한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시간도 남는다고 말씀하셨던데, 조예깊은 한문 실력으로 안경이란 낱말을 놓고 주어 술어을 >논해 보시면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재미있겠군요.
게다가 상대를 부르는 호칭도 인터넷 표준으로 알려진 "님" 대신 "당신"으로 바꾸시기 시작하셨더군요.
물론 저도 똑같은 정도로 비아냥거릴 능력이 없어서 이렇게 차분히 대꾸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한가지만 예를 들어볼까요?
앞의 든 마지막 문단에서 "주어 술어을 논해 보시면"이라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거기서 목적격 조사는 "을"이 아니라 "를"이 맞습니다. 앞 명사에 받침이 없으면 "을" 대신 "를"을 써야 하는 것이지요. 국민학교 1학년 수준의 "실수"입니다. 제가 그런 걸 꼬투리 잡아서... 마구 비아냥거리면 기분이 좋으시겠습니까?
물론 저도 님의 그런 정도의 비아냥이나 냉소가지고는 흥분하거나 화내지는 않습니다. 짧은 칼럼 경력으로도 그런 분들을 여러 번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맨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여기에 글을 쓰고 읽고 하는 이유는 배우는 즐거움과 가르쳐 드리는 뿌듯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난 며칠동안 님과의 글대화를 중간 결산해 보면 제가 배운 것은 별로 없어서 "배우는 즐거움"은 없던 편입니다. 그 대신 가르쳐 드린 것이 훨씬 더 많은데도 "가르쳐 드리는 뿌듯함"도 없습니다. 그것은 님께서 배우려는 생각이 없거나... 혹은 "전혀 남다르기" 때문인 듯 합니다.
뭐, 그렇다고... 저 때문에 기본적인 생각이나 글쓰기 태도를 바꾸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서로 지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요청드리고 싶은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답글을 할 때에는 상대방의 글을 최대한 꼼꼼히 읽읍시다. 그리고.... 다른 이의 주장을 반박할 때에는 가급적 논리를 확실히 하거나... 아니면 정확한 증거를 제시합시다. 그런 게 없이 본인의 느낌을 말할 때에는 그냥 그렇다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쓸데없는 논쟁이 되지는 않잖습니까? 감상을 교환하는 것에 머물 뿐이지요.
끝으로.... 상대를 자극하려는 표현은 좀 삼갑시다. 필자와 상대, 그리고 제3의 독자들에게도 전혀 유익이 안되니까요. 아무 유익이 안 되는 일을 시간들이고 에너지 낭비해 가면서까지 해야 하겠습니까?
그럼, 님의 성의있는 경청을 기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01/09 조정희님께.. 다시 답변드립니다. 24 답변이 비교적 빨리 올라온 것을 보니 시간이 좀 많으셨던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답글을 드리는 이유는 >저도 하나라도 배우고... 또 가르쳐 드리는 즐거움을 맛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이 없는 대화나 논쟁이라면 저도 별로 하고 싶지 않군요. >바쿠스님과의 대화는 대체로 제게 유익하다기 보다는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흐르거나 불쾌해 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상대방의 글을 꼼꼼히 읽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점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군요. >그래야 서로 필요없는 오해를 하거나 쓸데없이 중언부언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저 역시 동일하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바쿠스도 좀 군더덕이 많은 편인데 '님'의 글에
있는 군더더기를 따라잡을려면 바쿠스는 아직도 먼듯 합니다.
---- 참고로, 한글을 공부하신다는 분이라고 하셔서, 편하게 '당신'이란 예사존칭을 썼는데,
우리말을 잘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흔히 '당신'이란 예사 존칭을 그다지 반기질 않듯이 님께서
도 동일하군요. 차후 호칭을 '님'으로 통일시키겠습니다. -----
>제 말을 좀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설문해자(說文解字)와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문헌 증거까지 댔잖습니까? >그 문헌의 앙(仰)의 어원적 뜻풀이에는 "믿다," "따르다," "의뢰하다"가 없을 뿐 아니라, >"높다"는 뜻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중략) >파생적인 어의(語義)에라도 그런 게 있는지 찾아보시려면... >우선 제대로 된 자전을 먼저 살펴보시면 좋겠군요. >이렇게 아무런 논거(論據)도 없이 "이러저러한 뜻으로 풀이되기도 합니다"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믿을 수," 즉 "설득 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믿는 것'과 '설득 당하는 것'은 다르다고 이미 말씀드린줄 알고 있었습니다만, 각설하고
전 오래 된 설문해자나 훈몽자회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판 두산동아옥편을
참고로 하고 있습니다. '仰'자의 쓰임새를 예를 들어 설명드리면 좋겠군요.
1. '바라다.', '의뢰하다'의 의미
어떤 것에 관한 결재등을 공손하게 '의뢰'할 때, 명사앞에 '仰'을 붙여 사용합니다.
예, 앙결재(仰決裁), 앙고평(仰高評)
*뜻풀이는 생략하며, 지니고 계신 국어사전이나 옥편을 참조하십시요. *
2. '높다.'의 의미
예) * 물리적으로 높은 것을 뜻 할 때* 앙토(仰土) * 신분적으로 높은 것을 뜻할때 * 앙혼(仰婚)
3. '바라보다.'의 의미
예)앙천대소(仰天大笑) 하늘을 바라보고..크게 웃는다.
4. 방향으로 '위 쪽' (상방 )이나, 시각적으로 '올려보는 것'을 의미할 때,
예) 앙화(仰花), 앙각(仰角)
이정도면 충분하지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혹시 불충분하다면...
그때, 더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정말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 들으셨군요... 설마 했는데.... >제가 동어반복(同語反覆)이라는 말을 설명 드렸던 맥락을 한번 다시 보시지요. >거기서는 분명히 토톨로지(Tautology)라는 논리학 용어로 썼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또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한다는 표현의 더 일상적인 표현은 >"중언부언"입니다.... "동어반복"이 아니라.... >그래도 자구해석을 곧이곧대로 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해 드리려고 했던 의도조차 >파악을 못하시다니... 섭섭하기까지 하군요.
이 정도면 중언부언이지요?
>4. >앞에서 보여드린 바대로.... >앙(仰)자의 뜻을 여전히 오해(誤解)하고 계신 것이 확실하니... >뭐라고 더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바쿠스가 오해했다고 믿어야만 체면이 서실 겝니다.
>5.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안(信眼)이라는 낱말은 국어 사전에는 물론 중국어 사전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건 전적으로 님의 "독창적"인 조어(造語)가 되겠군요. >그렇다면 그 뜻을 뭐라고 푸시든, 그건 전적으로 님에게 달린 문제이겠습니다. >남들이 그걸 받아들일는지의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이겠지만요. >하지만 적어도 뜻풀이에 일관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보는 것이 즉 목표가 믿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오늘은 "믿는 것 자체가 목표"라고 하시는군요. >지난 글과 오늘 글에서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뒤바뀌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것이든 마음에 결정이 되시면 알려 주십시오. >그때 가서 논평을 드려도 늦지 않을 듯 하군요.
'신앙'으로 주어와 서술어를 따져보면 재밌을 것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신앙이 풀리면, 신안도 풀릴 것 입니다. 신앙으로 풀이해보면 논평도 어찌 되실지
쉽게 짐작될 것 같습니다. 신앙이 풀리면 아래에 길게 적은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스스로 깨닫게 될것이니 아래 많은 설명에 관한 답글은 생략합니다.
>사족(蛇足)처럼 덧붙이자면... >신(信)은 명사(名詞)이기도 하지만, >동사(動詞)이기도 하고 때로는 관형사(冠形詞)이기도 하고, 부사(副詞)이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한자의 특성이지요. >또 신(信)이 명사일 경우에도 추상(抽象) 명사일 뿐만 아니라, >"편지"라는 뜻으로 쓰이면 구체(具體) 명사가 되기도 합니다. >한자나 한자어를 너무 단편적으로 보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자나 한자어를 단편적으로 보지 말라는 충고에 가슴이 찡~ 해 옵니다.
역지사지를 한번쯤 해보면 어떨까요?
>7. >혜안(慧眼)은 "슬기로운 눈"이라는 뜻입니다. >안경(眼鏡)은 "눈거울"이라는 뜻이지요. >반론의 예로 드신 두 낱말의 안(眼)자는 모두 "눈"이라는 명사(名辭)입니다.
혜안의 슬기로운 '눈'에서 눈에는 살펴본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 쯤은 스스로도 잘 아실텐데
어째서 억지를 부리는지 어이 없습니다만, 제가 그냥 다른 예로 더 올리지요.
안목(眼目)이란 '눈눈'인가요? 안목을 다른 말로 면안(面眼)이라고도 하는데, 얼굴 눈 이란
의미였던가요?
주안점(主眼點)은 주로 눈의 점을 이야기 하는거 였던가요?
>안(眼)자와 목(目)자는 둘다 "눈"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양자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목(目)이 주로 구체적인 눈을 가리키는 반면에 >안(眼)은 주로 추상적인 눈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혜안(慧眼)이라고 하되, 혜목(慧目)이라고 하지 않고, >이목구비(耳目口鼻)라고 하되, 이안구비(耳眼口鼻)라고 하지 않는 것이지요.
제게 한자나 한자어를 너무 단편적으로 보지 말라는 충고를 하셨던가요?
>이러나 저러나.... 님께서 제 주장을 반박하시고 싶으시다면, >안(眼)자가 동사 혹은 동명사로 쓰인 예를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증거 선택을 영 엉뚱하게 하시는군요. >오히려 제 주장을 자꾸 강화시키는 예를 드시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매우 흐뭇하시겠습니다. 간혹 그런 '신앙'으로 사는 것도 속편하고 좋은 일입니다.
>8. >>P.S : 그나저나 본래의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군요. 아직도 애인의 말을 따져보지 않고 >> 믿는 것이 '설득 당했다.'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상대방의 글을 잘 안 읽으신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겠군요. >저는 애인이 "팥으로 메주 쑨다"고 해도 설득 당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설득(說得)당하다"란 "말을 받아들인다"는 뜻일 뿐이라는 게 >이미 제 논거(論據)로 제시됐었지요.
님께서 쓰신 원문을 다시 올려드리겠습니다.
조정희님 wrote ---------------------------------------------------------------------- - 우선 "믿는다"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 두어야 하겠습니다.
- 저는 제 글의 일부에서 "믿는다"는 "설득 당한다"로 풀었습니다. ^^^^^^^^^^^^^^^^^^^^^^^^^^^^^^^^^^^^^^^^^^^^^^^^^ - 의지(意志)가 설득의 근거가 된다는 점은 애인(愛人) 사이를 보면 되겠습니다. ^^^^^^^^^^^^^^^^^^^^^^^^^ - 애인의 말은 "팥으로 메주 쑨다"고 해도 설득이 잘 됩니다. -------------------------------------------------------------------------------------
의지가 설득의 근거가 됨을 두고 맹신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바쿠스의 글을 오독하는 거야 그렇다고 치고 스스로 쓴 글이나 제대로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런데.... 그건 믿음이 아니라 "맹신(盲信)"이라고 하셨지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반박이 아닙니다. >"본래의 주제"는 "믿음"의 뜻이 무엇인지 밝혀 보자는 것이었는데... >맹신(盲信)은 "사리를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것"이라는 뜻이니까... >그 설명 속에다가 다시 "믿는 것"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게 되어, >다시 한번 동어반복(Tautology)일 뿐입니다.
전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는 글이기에 위에 재인용한 글(의지는 설득의 근거가 된다)을 보고
그것에 '설득'이란 낱말은 좀 우습다는 의미에서 써 드린 것일 뿐입니다.
차라리, 동어반복이더라도 '맹신'이라도 했다면 효과가 극대화 되었지 싶습니다.
* 외람됩니다만, 나머지 같은 말을 다시 반복하는 글에 대하여 답변을 하지 않겠습니다. *
바쿠스
01/09 Re:원필형제님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옳습니다.^^ 18 제우스를 "믿"거나 문선명을 "믿"거나 이재록을 "믿"거나 또옹개를 "믿"거나 몰몬경을 "믿"거나 대원군을 "믿"거나...해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허허... 원필 : 그러니까.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확실하군요. : : 이게 궁금했었어요. :) : : 앞으로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식의 얼토당토한 사기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 : 원필형제님의 적극적인 활동이 기대 됩니다. ^^
바쿠스
01/10 Re:Re:기독교절대주의, 다원주의,포괄주의...상식으로^^/그렇죠? 17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 경계부분은 ... 논쟁꺼리로 항시 존재하는 것이겠죠. 문선명과 김기동사이...김기동과 김교신 사이...김교신과 보수교단의 사이...모두 논쟁꺼리죠. 그래도 어느정도 전문가들에 의해서 검증된 부류가 있다는 것은 ... 논쟁하는 입장에 선 이들에겐 다행인 셈일 때가 많죠^^ 원필 : 며칠 못들어와 뒤치기 해봅니다. ㅎㅎ : : 서평(?)을 마무리 지신거죠? : 제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해오던 다원주의의 맹점에 대해 적절히 잘 지적해주신 것 같습니다. : : 저는 이 세가지 입장 중에 포괄주의인가요...? : : 포괄주의가 가톨릭적 입장이라면 그렇게보기도 뭐하고... : 저는 양심에 근거한 구원에 대하여 대단히 회의적이라서... : : 아마 저는~~~ 찰스 피니가 가장 혐오했던자들- 유니테리안-으로 불렸던 만인구원론에 가깝겠군요~~~~ 후움... : : 초 강경 기독교 절대주의자가 어이하여 여기에 이르렀을꼬~~~~~ : : : 그리고 요 밑에 문선명, 김기동, 김교신 등을 분류한 글이 있는데, : 일견 그럴 듯하지만... 글쎄요. 이런 식의 분류는 좀 아슬아슬하게 느껴집니다. :
유샛다운앳더라이네스
01/10 Re:김원필형제님을 위해서 눈높이를 조정한 보충 설명../^^ 15 오강남님과 참 많이 닮아 있군요^^ 억지부리시는 모습이 ... 유유상종인것 같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답니다.제가 아는 한...(모르는 것은 빼주세요)
제 글의 어디에서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받으셨나요?
대상이 올바르지 않은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는 하셨나요?
저는 그것을 이야기한 것이거든요...
...
그리고 초등학생 자꾸 들먹이지 마세요^^ 별루예요...^^ 원필
: >제우스를 "믿"거나 문선명을 "믿"거나 : >이재록을 "믿"거나 또옹개를 "믿"거나 : >몰몬경을 "믿"거나 대원군을 "믿"거나...해서는 :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 : 죄송합니다. 저는 '믿는다.'란 말을 기독교인에게 사용할 때에는 주어를 생략하는 습관이 : : 있어서 생략했더니 원필형제님께서 착각한 모양이군요. : : 대체로 초등학생정도만 되더라도 생략된 주어가 뭔지 잘 알텐데.... : : 제가 초등학생하고 대화하는게 아나리 원필형제님과 대화한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습니다. : : 제 글에서 생략된 주어는 '예수'입니다. : : ----------------------------------------------------------------------------------------- : : 잠시. 원필형제님 눈높이를 위해서 보론을 하자면.. : : 이제록교인이든, 김원필교인이든 흉직한 십자가가 붙어있는 건물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 : 자신이 예수를 신실하게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 원필님의 진술대로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다고 해서 모두 영생을 얻지는 않겠지만요.
바쿠스
01/10 조정희님께... 26 본 칼럼보다...고급스런 글이 독자의 한마디를 장식한다는 것은
칼럼지기로써...감사한 일일 뿐입니다.
...
바쿠스님과의 토론...에서 유의하실 점은
이분이 너무나 오랬동안 피씨통신에서 ... 빈정거리는 자세로서 세월을 보내셨기 때문에 쉽게 그 버릇이 고쳐지지않을 것이란 점을 이해해주는 일입니다. 그래야 올바른 정보가 전해질 수 있는 기회가 혹 주어질 수도 있을테니까요...
...
이것은 제가 바쿠스님을 비하하기 위해서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입니다.
...
처음에는 억지를 부리다가 안되면 ... 빈정거렸었는데 요즘은 처음부터 빈정거림으로 시작하는 것같아...보기 안됐습니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고...바르게 인도할^^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제 마음입니다. 원필
01/10 바쿠스님의 앙(仰)... 이제야 비로소.... 29
논의가 궤도에 오른 느낌이군요. 드디어 바쿠스님께서도 논거(論據)를 대기 시작하셨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것 보세요. 그저 자기 주장만 하는 것보다는 논의가 한결 쉽잖습니까?
하지만 논거를 대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논거를 제시하기 전에 내 논거를 먼저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정확한 논거"를 대지 않으면 오히려 초점이 흐려지고 토론이 길을 잃기 쉽거든요.
참고로 하셨다는 "현대판 두산동아옥편"에 나온 '仰'자 풀이의 논거비평부터 해드리지요. (그 자전은 제가 갖고 있지 않으므로... 님께서 있는 그대로 옮기셨다는 전제아래 논의를 해 보겠습니다. 재배열이나 재해석이 개입됐다면 제 논의는 쓸모가 적겠습니다만...)
(참고로... 저는 옥편(玉篇)이라는 말보다 자전(字典)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요즘은 중국 사람들도 옥편(玉篇)이란 말 잘 안쓰거든요. 그런데... 유독... 한국 사람들은 한자를 구슬(玉)같은 보배로 여기는 듯한 이름을 계속 쓰는 것 같습니다. 한국 낱말도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서.... 군더더기지만... 중요한 것 같아 끼워 넣습니다.)
우선 명백한 논거 오류부터....
>4. 방향으로 '위 쪽' (상방 )이나, 시각적으로 '올려보는 것'을 의미할 때, >예) 앙화(仰花), 앙각(仰角)
4번의 "올려보다"는 뜻이 바로 "우러르다"는 본래의 뜻, 즉 "어의(語義)"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제 주장에 대한 논거이지 님의 논거가 되지는 않는 예가 되겠군요.
>3. '바라보다.'의 의미 >예)앙천대소(仰天大笑) 하늘을 바라보고..크게 웃는다.
3번의 "바라보다"는 자전의 풀이가 잘못된 경우입니다. 한국말에서 "바라보다"는 "나와 대등한 높이에 있는 것을 보다"는 뜻입니다.
"올리다 + 보다 = 올려보다" "우러르다 + 보다 = 우러러 보다" "바르다 + 보다 = 바로 보다, 혹은 바라보다" "내리다 + 보다 = 내려보다" .... 바로 그 계열이지요.
그러니 앙천(仰天)이라는 말을 "하늘을 '바라'보다"로 푸는 것은 정확한 뜻풀이가 아니지요. 앙천(仰天)은 "하늘을 우러러 보다" 혹은 "하늘을 올려다 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역시 제 주장에 대한 논거이지 바쿠스님의 논거는 아닙니다.
>2. '높다.'의 의미 >예) * 물리적으로 높은 것을 뜻 할 때* 앙토(仰土) > * 신분적으로 높은 것을 뜻할때 * 앙혼(仰婚)
앙(仰)이 "우러르다, 올려 보다"는 뜻이 있다고 해서 그 자체가 "높다"는 뜻은 아닙니다. "높은 것"은, 우러르는 "주체"나 우러르는 "동작"이 아니라 우러르는 "대상"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앙(仰)이라는 동작의 주체는 항상 "높은" 사람이 아니라 "낮은" 사람입니다.
앙토(仰土)란 "높은 땅"이란 뜻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 자전에서 그렇게 풀었다면.... 사용을 재고하셔야 할 책이군요.) 앙토(仰土)는 옛날 집 천장 산자에 흙을 바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산자에 흙을 바르려면 "올려 보아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지요. 앙토(仰土)의 "대상"인 산자는 위치가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앙토(仰土)의 "주체"인 사람은 위치가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앙(仰)자 자체에는 "높다"는 뜻도 "낮다"는 뜻도 아닙니다. 낮은 데서 높은 데를 "올려다 보는 것"만 가리키는 말입니다.
앙혼(仰婚)의 앙(仰)자도 그 자체가 "신분적인 높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신분이 높은 "상대방(相對方)"과 혼인하는 것을 앙혼(仰婚)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굳이 앙(仰)자를 "신분이 높다"고 해석하신다면 "신분 높은 결혼"이라는 뜻이 되어 버립니다. "혼인 당사자가 모두 신분이 높다"는 뜻과 혼동될 우려가 짙은 해석입니다. 그와는 달리 앙혼(仰婚)이란 신분이 낮은 사람이(주체)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대상)을 "우러러보며 혼인하는 것"(동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앙혼(仰婚)의 반대말이 강혼(降婚)의 강(降)자도 "내리다, 내려가다"는 뜻이지, 그 동작 자체가 "낮다"는 뜻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강혼(降婚)의 주체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거든요.
여기까지는 명백한 논거 오류에 해당합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오류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남은 한가지는 조금 복잡한 변천을 겪은 것이어서 혼동하신 것을 이해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바쿠스님께서 앙(仰)자의 뜻으로 "바라다"를 주장하셨던가요? 제 기억에는 없는데....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에 주장하신 적이 없는 것에 대한 논거를 대시는 것은 불필요한 일인데요.... 어쨌거나...)
>1. '바라다.', '의뢰하다'의 의미 >어떤 것에 관한 결재등을 공손하게 '의뢰'할 때, 명사앞에 '仰'을 붙여 사용합니다. >예, 앙결재(仰決裁), 앙고평(仰高評) > *뜻풀이는 생략하며, 지니고 계신 국어사전이나 옥편을 참조하십시요. *
앙결재(仰決栽)와 앙고평(仰高評)이라는 말을 저는 처음 대합니다. 결재를 바랍니다... 혹은 고평을 바랍니다.... 는 표현은 더러 들어봤습니다만...
그렇게 보면 앙(仰)에 "바라다"는 뜻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바랍니다....의 예스런 겸양의 표현으로 앙망하나이다... 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앙망(仰望)이라는 한자어가 시대를 따라서 "바라다"는 고유어로 바뀐 것 뿐입니다. (앙망(仰望)은 그냥 "바라다"가 아니라 "삼가 혹은 우러러 바라다"로 옮겨야 맞지요.)
그렇습니다. 앞에 드신 두 예에 나오는 앙(仰)은 앙망(仰望)의 준말입니다. 앙망(仰望)이라는 말 자체가 겸양어이기 때문에... (겸양어와 존칭어의 차이는 아시지요?) 준말을 만들 때에 앙(仰)을 떼어낼 수가 없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망(望)자를 떼어낸 것이지요. 그런 관행이 반복되다 보니.... 마치... "우러르다"는 겸양의 뜻을 가진 앙(仰)자를 "바라다"는 뜻으로 오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낱말 축약 관행이 있었다고 해서 앙(仰)자의 뜻이 변한 것은 아니지요.
앙결재니 앙고평이라는 말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앙(仰)과 결재... 앙(仰)과 고평 사이에 생략된 있는 망(望)자를 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다"는 뜻은 바로 그 망(望)자에서 나오는 것이지 앙(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혹시 불충분하다면... >그때, 더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보신 것처럼... 애써 찾아내신 논거가 바쿠스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군요. 그러니까 다른 예가.... 있으시다면... 더 제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아주 이상한 일은..... 그동안 바쿠스님께서.... 줄기차게 우겨오신 "믿다," "따르다," "의뢰하다"는 뜻으로 쓰인 앙(仰)자의 예가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현대판 두산동아옥편"에서는 찾으실 수가 없으셨나 보지요? 있으시다면... 지면 걱정하지 마시고... 얼마든지 올려 주십시오. 시간이 없으시다면.... 차근차근 여유있게 하셔도 좋습니다. 뭐 서두를 이유가 없으니까요.
다른 자전을 사용하시려면 "신자해(민중서관)"는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는 그런 뜻들이 없더군요. 제가 겨우 "체면치레" 정도를 위해서 논의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게 되겠군요.
사실 전적으로 바쿠스님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한국의 사전들이 부실한 점이 많으니까요. 제가 가진 국어 사전 중에는 "사람"이라는 낱말이 실리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한국의 양대 국어학자에 꼽히신다는 분이 감수를 하시고, 내노라하는 출판사에서 펴낸 1천 페이지가 넘는 사전인데도 그렇습니다. 낱말 풀이도 성의없이 동어반복(同語反覆, tautology)에 머문 것이 많지요. 그러니 각 낱말의 어원이나 변천사까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자꾸 훈몽자회(訓蒙字會)니 유합(類合)이니 신증유합(新增類合)같은 옛날 책으로 소급해 올라가 어원을 따지려는 이유를 이제 좀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군요.
한국어 연구가 생업이 아니신 분들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나와 있는 사전이라도 두루 참고하시는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나마도 안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잖습니까? 예컨대... 인터넷에서 간단하게 찾을 수 있는 "야후 국어 사전"에서만 해도... "당신(當身)"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풀어놓았지요.
당신 (當身) (인칭) ①부부 사이에서 서로를 지칭하는 말. 2인칭임. ②다정한 사이(특히, 남녀)에서 서로를 지칭하는 말. ③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에서 상대를 지칭하는 말. ④상대와 좋은 관계에 있지 못한 상황에서, 퉁명스런 말투로 상대를 지칭하는 말. ⑤글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여 지칭하는 말. ⑥윗사람을 높여 ‘그분 자신’의 뜻으로 지칭하는 말. 3인칭 재귀 대명사임.
바쿠스님은 "당신"을 "예사존칭"이라고 하셨습니다만... 바쿠스님과 제가 부부나 애인같은 친밀한 사이도 아니고 (①과 ② 제외) 제가 불특정 다수거나 윗사람도 아닌 점을 생각하면.... (⑤와 ⑥ 제외) 그 용례의 뜻으로는 ③번과 ④번만 남게 되잖습니까? ③번은 평칭(平稱)이고 ④번은 비칭(卑稱)이지요. 그러니 제가 기분을 상하게 된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처음부터 그랬다면 또 몰라도...
그러니까 논거를 확신하지 못하시면 부족하나마 사전이라도 한번 찾아보시라는 말씀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써 놓고서 나중에 수습이 안되어... 어불성설(語不成說)로 버티시거나.... "아님 말고..."로 일관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거나 다시 "님"으로 돌아가시겠다니... 다행이기는 합니다. 제가 "님" 소리를 꼭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게 네티즌의 기본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직 한문법 공부를 안 하신 모양입니다. 아직도 신앙(信仰)이란 낱말을 주어 서술어로 나눠보라고 강변하시는 걸 보면... 배워서 남주는 것 아니잖습니까? 속는 셈치고 한번 공부해 보세요... 한자어 많은 한국어로 글쓰는 분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답니다. 제가 다른 분 칼럼 난에 와서 한문법까지 강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믿다"가 "설득 당하다"라는 개념화에 대해서도 아직 설득이 안되신 것 같군요. 제안드렸던 제 칼럼의 5-7호도 읽어보실 시간이 없으셨던 것 같고.... 도움이 크게 될텐데.... 제가 한번 더 친절을 베풀기로 하겠습니다. 다른 데서 발표한 요약본이 있는데... 이 글에 이어 올려 놓겠습니다.
아직 한두 가지가 더 남은 것 같기는 한데... 오늘은 제 칼럼도 업데이트를 하고 싶기 때문에 다음에 계속하지요.
그러나 저러나.... 김원필 님..... 님의 칼럼난에서 님의 일일 칼럼과 별 상관없이 너무 설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예 시작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려는 성미 때문에.... 양해를 좀 부탁드립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01/10 *왜 "믿다"는 "설득 당하다"인가? 22
한국말 "믿음"의 영어 번역어는 페이스(faith), 트러스트(trust), 빌리프(belief) 등입니다. "페이스"는 "종교적인 믿음 혹은 신앙(信仰)"을, 트러스트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 혹은 신뢰(信賴)"를, 빌리프는 "생각이나 주의에 대한 믿음, 혹은 신념(信念)"을 가리키는 말로 각각 구별하기도 합니다... 만,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페이스"는 라틴어 피데스(fides)에서 나온 말인데, 그 동사 피데레(fidere)는 "신뢰하다"(to trust)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라틴 어원까지는 페이스와 트러스트 사이에 뜻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라틴어 피데스가 유래된 고대 그리스어 피스티스(pistis)의 뜻은 "진실에 대한 확신, 즉 신념"(conviction of the truth of anything, belief)이랍니다.
그래서 영어와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다 합쳐서 말한다면, 페이스와 트러스트와 빌리프는 모두 같은 말입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용법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지 그 어원적 의미는 모두 같습니다.
그러면 믿음과 관련된 이 세 낱말의 근원적인 뜻이 무엇일까요? 연원이 가장 오래된 피스티스(pistis)는 동사 피스튜오(pisteuo)의 명사형인데, 피스튜오는 다시 페이쏘(peitho)의 파생어입니다. 이 페이쏘의 뜻은 영어로 다음과 같이 풀리어 있습니다.
1. persuade (i.e. to induce one by words to believe) 2. be persuaded (to suffer one's self to be persuaded; to be induced to believe) 3. to trust, have confidence, be confident ( http://bible.crosswalk.com/ )
그래서 헬라-라틴-유럽으로 이어지는 언어 전통에서 "믿다"는 "설득 당하다"입니다.
다음으로 한자문화권의 "믿다(信)"의 뜻을 보겠습니다. 신기하게도 한자 문화권의 "믿다"도 "페이쏘"와 비슷한 뜻을 가졌습니다. "믿다" 혹은 "믿음"은 한자로 신(信)입니다. 이 글자의 파자(破字)는 유명하니까 이미 잘 아시겠지요. "사람(人)의 말(言)"입니다. 여기서도 "말"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信)의 새김에는 "미쁘다" 즉 "믿음직하다"가 있습니다. 자기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은 미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 말을 받아들이게 하기도 쉽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헬라-라틴-유럽 제언어의 "믿다"의 궁극적인 어원이 "페이쏘" 하나인 것처럼... 한자 문화권에도 "믿다"는 뜻을 가진 글자는 신(信)자 하나 뿐입니다. 동의어가 없습니다. 그것은 한자 문화권의 "믿다"는 오로지 "사람의 말"과만 관련되는 개념이라는 뜻이지요.
인류 역사상 연원이 길고 규모가 컸던 두 문명권의 "믿다"가 "말을 받아들이다" 즉 "설득 당하다"라는 뜻을 갖게된 것이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교에 중요한 히브리 문화에서도 "믿다"는 "설득 당하다"과 관련됩니다. 믿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에무나(emuwnah)"는 그 자체로는 "흔들림이 없고 튼튼하여 오래 지속됨"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동사원형인 "아만(awman)"의 뜻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입니다.
1. to support 2. to make firm 3. to accept as confirmed (http://bible.crosswalk.com/)
"아만"의 세 번째 뜻인 "확인된 것으로 받아들이다"는 "설득 당하다"와 뜻이 같습니다. 설득 당하는 것은 결국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내친 김에 한국어 "믿다"의 어원분석도 해보고 싶었습니다....만... 자료가 너무 없어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됐습니다. 한글의 기록은 기껏해야 15세기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는데... "믿다"와 "미쁘다"가 어근 "믿"을 공유함을 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미쁘다 = 믿 + 브다). 자기 글을 남겨 놓지 못하면 자기 말의 뿌리도 제대로 찾지 못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유럽 문명권과 한자 문명권이 공히 동의할 수 있는 "믿다"의 어원적 개념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로 설득하는 것을 받아들이다," 즉 "설득 당하다"입니다.
"설득 당하다"로서의 "믿다"는 보편적인 개념입니다. 이 보편적 개념은 개별 영역에 얼마든지 응용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혹은 무엇에 관한 말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뿐이지요.
예컨대,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즉 "하나님께 설득 당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믿음"인 것입니다. (Q.E.D.)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01/10 항상 촛점을 왜곡하시는 군요. 조정희님께 다시. '앙'설명 23 불필요한 군더더기는 생략하고 답글 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옥편(玉篇)이라는 말보다 자전(字典)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요즘은 중국 사람들도 옥편(玉篇)이란 말 잘 안쓰거든요. 그런데... 유독... >한국 사람들은 한자를 구슬(玉)같은 보배로 여기는 듯한 이름을 계속 쓰는 것 같습니다. >한국 낱말도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서.... 군더더기지만... 중요한 것 같아 끼워 넣습니다.)
제가 바이블이라고 일컷는 것과 비슷한 이유군요. '자전'도 괜찮겠습니다.
먼저, 대화란 의사소통을 위해 있는 것이며, 또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옳겠지요?
바쿠스가 '당신'이란 예사존칭 사용을 철회한 것은 '당신'이라는 아름다운 존칭어가 점점의미를
변해서 이젠 그다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그러한 것 입
니다. 참고로, 우리가 여기에서 '의미' 혹은 '뜻'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단어가 지니는 절대적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바쿠스가 말하는 '의미'란 "말이나 글의 가지고 있는 뜻" 또는 '말이나 글의 속내' 입니다.
혹시 조정희님께서 바쿠스가 정의한 것 동의하지 않는다면, 조정희 님이 사용하는 의미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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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에 관한 설명에 앞서 한가지 비유와 예문으로 님에게 설명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사용된 용어의 뜻에 따른 '적합성'을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1, 가방끈이 길어서 들고 다니기에 불편하다. ^^^^^^^^^ 예2, 그래요 당신은 가방끈이 길어서 좋겠습니다. ^^^^^^^^^^
'예1'의 '가방끈'은 말그대로 '가방에 붙어있는 끈'을 뜻 합니다.
'예2'의 '가방끈'은 '학력'을 뜻합니다.
그럼 가방끈을 염두해 두시기 바라며 쓰임의 의미의 '접합'성에 촛점을 두시기 바라며
예제에서 앙의 의미에 촛점을 맞추어 해설하겠습니다.
>우선 명백한 논거 오류부터.... >>4. 방향으로 '위 쪽' (상방 )이나, 시각적으로 '올려보는 것'을 의미할 때, >>예) 앙화(仰花), 앙각(仰角) >4번의 "올려보다"는 뜻이 바로 "우러르다"는 본래의 뜻, 즉 "어의(語義)"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제 주장에 대한 논거이지 님의 논거가 되지는 않는 예가 되겠군요.
앙화(仰花) 본래의 의미대로 '우러른 꽃'이라고 조정희님께서 생각하셔도 말리지 않겠
습니다만, 저라면 '(위로 향하여)활짝 핀 꽃'
앙각(仰角) '우러른 각'이라고 하셔도 말리지 않습니다만, 바쿠스라면 '올려본 각'이라고
풀겠습니다.
>>3. '바라보다.'의 의미 >>예)앙천대소(仰天大笑) 하늘을 바라보고..크게 웃는다. >3번의 "바라보다"는 자전의 풀이가 잘못된 경우입니다. >한국말에서 "바라보다"는 "나와 대등한 높이에 있는 것을 보다"는 뜻입니다.
조정희님은 어떤 식으로 풀이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한자 그대로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는다.'
로 할 수도 있겠지요. "하늘을 바라보고 크게 웃는다." 라는 해설이 자연스럽답니다.
>>2. '높다.'의 의미 >>예) * 물리적으로 높은 것을 뜻 할 때* 앙토(仰土) >> * 신분적으로 높은 것을 뜻할때 * 앙혼(仰婚) >앙(仰)이 "우러르다, 올려 보다"는 뜻이 있다고 해서 그 자체가 "높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방끈' 자체를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우리는 가방끈의 '의미'를 이야기 하는 것이니 이하
군더더기 생략합니다.
>>1. '바라다.', '의뢰하다'의 의미 >>어떤 것에 관한 결재등을 공손하게 '의뢰'할 때, 명사앞에 '仰'을 붙여 사용합니다. >>예, 앙결재(仰決裁), 앙고평(仰高評) >> *뜻풀이는 생략하며, 지니고 계신 국어사전이나 옥편을 참조하십시요. * >앙결재(仰決栽)와 앙고평(仰高評)이라는 말을 저는 처음 대합니다. >결재를 바랍니다... 혹은 고평을 바랍니다.... 는 표현은 더러 들어봤습니다만...
님이 이미 진술했듯이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지요.'
>제가 자꾸 훈몽자회(訓蒙字會)니 유합(類合)이니 신증유합(新增類合)같은 >옛날 책으로 소급해 올라가 어원을 따지려는 이유를 이제 좀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군요.
'당신'이란 용어에 불쾌감을 나타낸 분치곤 좀 의아합니다만, 소개하신 책은 초학시에 그럭
저럭 괜찮은 책이라고 하더군요.
>한국어 연구가 생업이 아니신 분들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나와 있는 사전이라도 두루 참고하시는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봅니다.
한국어 연구가 생업이셨던가요? 좀 놀랍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아직 한문법 공부를 안 하신 모양입니다. >아직도 신앙(信仰)이란 낱말을 주어 서술어로 나눠보라고 강변하시는 걸 보면... >배워서 남주는 것 아니잖습니까? 속는 셈치고 한번 공부해 보세요... >한자어 많은 한국어로 글쓰는 분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답니다. >제가 다른 분 칼럼 난에 와서 한문법까지 강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일단 '신앙'에 관하여 님의 한문법 강의를 경청하도록 하지요. 이곳에다 하시기 곤란하시면
님의 칼럼에다 써 주십시요. :)
P.S : '眼'에 보다란 의미가 있다는 것에 동의는 하시는 건가요?
바쿠스
01/10 [오류 수정] *왜 "믿다"는 "설득 당하다"인가? 37 영어로 어원에 관한 설명으로 '믿음 = 설득'을 이끌어 내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설명이 약간 부족한 듯하여 덧붙입니다. 역시 '쓰임새'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사실 영어의 쓰임새는 그렇게 간단하지 아니합니다.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1.belief --> 별다른 증거 없이, 그냥 진실이라고 신뢰. (종교적 믿음.)
2. trust --> 혈연관계나 애인 또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의 '본능적인' 신뢰를 뜻합니다.
3. faith --> 일방적인 신뢰. (종교적인 믿음이며 '맹신'이란 의미가 포함됩니다.)
4. reliance --> 구체적인 결정이나 행동과 결부된 신뢰.
5. confidence --> 이유에 바탕을 둔 신뢰.
따라서 '믿음 = 설득' 영어 어워을 들어 설명하시고자 한다면.. 1-3번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4,5번을 근거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아래의 진술
>"설득 당하다"로서의 "믿다"는 보편적인 개념입니다. >이 보편적 개념은 개별 영역에 얼마든지 응용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혹은 무엇에 관한 말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뿐이지요. >예컨대,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즉 >"하나님께 설득 당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믿음"인 것입니다. (Q.E.D.)
요컨대, 야훼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믿음"인 것입니다. ^^^^^^^^^^^^^^^^^^^^^^^^^^^^^^^^^^^^^^^^^^^^^^^^^^^^^^^^^^^^^^^^^^ 바쿠스
01/10 [오류 수정 ?] 바쿠스님의 맹신(盲信).... 아니, 이런... 26
이젠 논거(論據)를 활용하시기 시작하셨는지 알았는데...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시나 봅니다... 믿음의 다섯가지 영어 번역어와 그 설명에 대한 출처가 없군요.
내 생각이 아닌데... 출처를 밝힘없이 가져다 쓰는 것을 표절(剽竊)이라고 하지요. 일종의 도둑질입니다.
바쿠스님은 억지를 좀 부리기도 하시고 빈정거림에 능하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도둑질까지 하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그 분류와 설명은 바쿠스님의 것이라고 "일단" 간주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쿠스님의 분류와 설명에 따르면 "belief, trust, faith는 믿음이 아니라 맹신(盲信)"이며, "reliance와 confidence만 참된 믿음이라는 말"이군요.
허... 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니... 이런 말에까지 논평을 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기는 하지만.... 어쨌든 일단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 봐야지요?
"바쿠스님의 맹신(盲信)"은 그냥 두고 "바쿠스님의 믿음"만 먼저 보기로 하지요.
reliance는 rely의 명사형이고 rely는 라틴어 렐리가레(religare)에서 나온 말이지요. rely와 religion은 어원이 같습니다. 렐리가레는 "다시"라는 뜻의 re와 "묶다"는 뜻의 ligare의 합성어지요. 그래서 그 뜻은 "다시 묶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그 본래의 뜻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사람을 하나님에게 다시 잡아 맨다"는 것입니다.
confidence는 더 간단합니다. 라틴어 콘피데레(confidere)에서 유래했고... 그 뜻은 "함께"(com) "믿다"(fidere)입니다. 결국 faith와 같은 어원 fidere에서 나온 말입니다.
결국 "바쿠스님의 참된 믿음"도 "바쿠스님의 맹신"과 별반 다름이 없군요. 그러니 결국... 유럽 언어권의 "믿음"은 깡그리 "맹신(盲信)"이라는 주장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더 나가기 전에 바쿠스님의 의중을 여쭈어 보아야겠군요. 믿음의 다섯 가지 분류와 설명.... 정말로 바쿠스님의 것인가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렇습니다. 바쿠스님의 것이 아니라면.... 지금부터의 비판은 그리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바쿠스님의 것이라면... 혹시 지금이라도 철회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주장 자체도 황당하지만... 그런 주장의 논리적 근거나 증거가 너무도 약하기 때문입니다.
철회하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이제 곧 각론과 결론까지 밀어 부쳐 보겠습니다. 글쓰기 연습이라도 되겠지요. 어디 써먹을 데야 없겠지만....
철회하실 생각이라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냥 어거지였노라고... 그러면 이 문제는 접고.... 얼른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럼 답변을 기다리며....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