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예수와 안티예수

예수는 없다...16

주방보조 2007. 1. 8. 01:01
 <제289호> 예수는 없다16...5.'지금.여기'에서의 mission 2002년 01월 08일
이 마지막 묶음의 글은
다원주의의 당위성과...다원주의의 입장으로 본 기독교의 희망을 적은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원래 다원주의라는 것이 비교종교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니만치...오강남님의 원로 비교종교학자라는 신분에 걸맞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의 근거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저자는 쉽게 예를 들었지만...너무 줄이기도 길어서^^...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는 신념입니다. 기독교가 기독교인에게 훌륭한 종교이듯이 불교는 불교인에게 좋은 종교라는 것이지요. 또 종교의 차이라는 것은 우연적이고 문화적이며 시대적인 것이라는 신념입니다. 즉 동일하다는 것이죠. 그 배후에는 공동의 본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부분에서 저는 비판을 멈춰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론부분은 ... 종교다원주의의 자기고백과 같은 부분이기 때문이며 더 이상 성경을 가지고 논하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역사상 유일회적인 성육신이요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인류의 죄와 죽음을 이기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지금은 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성과 인도주의적인 사상의 하나일 뿐입니다.
물론 외형적인 기독교인으로서 종교다원주의라는 사상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다는 ... 기독교의 핵심을 더 이상 믿지않는다면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는
성경에서도 자신들의 이성과 인도주의에 들어맞는 기술만을 뽑아 믿고 예수를 존경한다하며
교회에서도 자신들의 이성과 인도주의에 걸맞는 교회만을 뽑아 이상적이라고 추켜 올려대는 것입니다.

...

저는 다원주의적인 관점에서 작금의 우리나라 교회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일부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교회들의 현주소에 매우 비성경적인 것들이 있기 때문이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이상에 현저히 못미치기 때문이며 그들이 그것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정하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음에는 반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이미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책에서와 같이 성경에 대한 비정상적이고 ... 억지 주장을 무지하게 떠들어 대는 부분에 대하여는 치소를 금할 수 없다는 것이 제 분명한 입장입니다.

...

예수는 없다는 책의 저자인 오강남님은
이 책을 통해서 다원주의가 어떤 시각으로 성경과 교회를 바라보고 있나에 대해서 잘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심히 유감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저 시중에 나도는 반기독교도들의 속설들을 무작위로 인용하거나 성경에 대한 전혀 학자적이지 않은 연구자세로서 초지 일관했다는 점입니다.

제가 만나본 몇몇의 다원주의자군의 그 누구도 이 책의 저자만큼 성경을 모르고 떠들어 대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인용한 김진홍목사의 구호
예수를 안믿는 것보다 훨씬 문제인 것이 그릇믿는 것이라는 말이 여기서 얼마나 헛되게 쓰여졌는지
맨마지막에 한껏 추켜 올려진 김진홍목사님이 알고나 계실지...

지금은 그것이 알고플 뿐입니다.

...

다원주의자에게는...정말...예수는 없습니다!

 

01/08 Re:기독교절대주의, 다원주의,포괄주의...상식으로^^ 21
그래도 이상한 것은 카톨릭 교회 안에 들어가면 그들의 교리에는...

카톨릭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군요.
위대한 聖母의 교회로써.

마더 테레사 수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더군요.
'산을 오르는 것은 한 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위대한 사랑의 성녀께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씀하셨으니 골 아픈 일이지요.

밖에서의 세계가 인정하는 카톨릭의 성인들은 꼭 그리스도를 믿지 않더라도 자기들이 믿는 종교에 신실하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카톨릭 교회 교리로는 카롤릭 교회만이 구원이 있다고 가르치고...

구원은 예수에게만 있다고 가르치면서도 구원에 대해 심상히 가르치는 개신교 목회자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살고...

갑자기 신신애 아줌씨의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제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더욱 확고해지는군요.
하나님의 질서에 반대가 되는 것은 몽조리 사탄의 것이라는 관점.
소위 이분법.
제 단순함의 극치가 농도지수 100을 넘어가는 오후가 되는군요.
요리왕 칼럼...교회 애기 성경공부 가르치는데 너무 유용한 자료 입니다.
잠언 1:7-9절 설명하면서 진리는 고리타분하지만 영원하다는 것, 벌써 써먹었습니다. 나중 기회 닿으면 로얄티 지불하겠습니다.

이석규

: 저같은 입장이 기독교절대주의이구요
: 오강남님같은 입장이 다원주의입니다^^
:
: 포괄주의가 남는데요...
:
: 양심대로 산 사람의 구원
: 익명의 그리스도인
: 미지의 그리스도
: 그리스도와 예수의 분리...를 통하여
:
: 다원주의의 인도적인 측면을 받아들이고
: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해서든 잃지 않으려는 입장으로 보시면 되잖을까 생각합니다.
:
: 가톨릭의 경우...
: 트렌트공의회, 2차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분리주의를 버리고 타종교의 구원가능성을 선언했습니다.
:
: "만약 이교도들이 도덕적 양심에 따라 살고 있다면...구원의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 "자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있다"
: "다른 종교안에도 구원의 은혜가 있으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다"
: "그리스도는 기독교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 속한다"
: "예수는 그리스도지만 , 그리스도가 반드시 예수는 아니다"
:
: ...
:
: 성경을 떠나면...참 많이도 매력적인 말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
: 물론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원필

 

 

01/08 Re:"믿음 = 믿는 마음"에 관한 풀이/ 이번에도... (바쿠 스님께) 21


짧은 글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참 많이 하셨군요.
지금은 제가 시간이 많으니까, 하나하나 짚어 드리지요.


1. "믿음은 한자어로 신심(信心)이라 하지 않고...."

실례지만... "믿음"이 "믿는 마음(信心)"이라고 한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바쿠스님이시지요.
벌써 잊으셨어요? 바로 엊그제 일인데....
지난 글 두어 개만 건너서 읽어보세요. 금방 드러날 테니까요.
자기가 한말 정도는 기억하면서 논의를 합시다.

자기 말도 기억을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이나 제대로 기억을 할까.....
의아심이 드는 것도 제 잘못은 아니겠지요?


2. "앙(仰)의 뜻은 "믿다, 따르다"?"

어떤 자전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앙(仰)에는 원래 "믿다" 거나 "따르다"는 뜻이 없습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나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보더라도......
앙(仰)의 본래 뜻은 "우러르다"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앙(信仰)은 "믿고 우러르다"는 뜻이지요....

요즘은 그냥 "신앙=믿음"이라는 뜻으로 하도 많이 쓰다 보니까...
아예 앙(仰)이 "믿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푼 사전도 있는 모양이군요.
아니면...
이것도 그냥 바쿠스님이 "나름대로 풀어본".... "별 의미없는 이야기"일까요?


3. 동어반복(同語反覆)....

동어반복(同語反覆)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한다는 뜻으로....

문학적 표현으로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같거나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주로 강조를 하기 위한 표현이지요. 그런 거야 뭐... 문제될 게 있나요?

제가 여기서 쓴 동어반복이란 논리학 용어입니다.
아마 영어의 토톨로지(Tautology)의 번역어이지 싶습니다.
어떤 개념을 바로 그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아버지=부(父)" "어머니=모(母)"인 것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부모란 아버지와 어머니이다"고 설명하는 것이 바로 동어반복입니다.
논리학에서는 "A=A"라는 형식의 설명은 전부 동어반복으로 봅니다.

동어반복의 명제, 즉 토톨로지는 모두 참(true)입니다..... 만,
그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더해지는 뜻이 없기 때문에
타당한 설명방식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전들이 동어반복을 채택하면 좋은 사전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4. 신앙(信仰).....이 동어반복?

그래서...... 신앙(信仰)이라는 말은
이상의 어떤 이유로든 동어반복이 아니니까.... 안심하고 쓰셔도 됩니다.

다만... 신앙(信仰)을 "믿고 우러름"으로 풀면
"논리학적 의미"에서 동어반복이 되니까... 그 점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신앙(信仰)이라고 써놓고서
앙(仰)을 무시한 채 그냥 "믿음"이라고 푸는 것은 뭐라고 하냐고요?
글쎄요.... 거기에 해당하는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뜻을 무시할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덧붙이지 않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신(信)을 "믿음"이라고 번역합니다. 신앙(信仰)이 아니라....


5. 신안(信眼)은 무슨 뜻? (아주 결정적인 실수....)

우선 신안(信眼)이라는 낱말은 국어 사전에 없으니까....
바쿠스님이 "나름대로" 만들어 내신 말임에 틀림없겠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뜻은 "보는 것이 즉 목표가 믿는 것"이라고 하셨군요.

뭐든지 "나름대로" 만들어 보시는 것도 참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려면 (설명을 용이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지요?)
의미 규칙이나 문법에도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나름대로 라지만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을 만드시려면...
주어와 서술어의 순서(順序)정도는 생각을 하셔야지요.
서술어에 해당하는 신(信)을 먼저... 주어에 해당하는 안(眼)을 뒤에 놓으시면....
어떤 눈으로 보아도 믿을 수 없는.... 낱말 아닌 낱말이 되어 버리잖습니까?

무엇보다도.....
안(眼)자에는 "보는 것"이란 뜻이 없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견(見)자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안(眼)은 그냥 "눈"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안(眼)자가 "보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 용례도 없군요.

게다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구절을 만들려면...
그냥 견(見)자와 신(信)자를 붙여놓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요.
견즉신(見卽信)이라고 하거나 견내신(見乃信)이라고 하는 등...
뭔가 어조사(語助辭)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아예 견시신(見是信)이라고 완전한 중국어 문장을 만들던가......

물론 워낙 한문에도 조예가 깊으셔서...
"바쿠스님이 나름대로 지어내는 것이 곧 한문법"이라면.... 문제가 안되겠습니다만...
"나름대로 지어내"는 이유가.... "설명을 용이하기 위해서"라면....
몽매한 중생들을 고려하셔서 문법 정도는 따르셔야 할 것 같군요.
안 그러면 "설명이 용이하기"가 불가능하니까요.


6. 쓰지 않았으면 좋을 이야기....

그 일곱줄 밖에 안되는 짧은 글에서
자기 글을 스스로
"나름대로 푼" "별 의미가 없는" 글이라고 여러번씩 폄하하셨더군요.

너무... 그렇게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논리에 딱 들어맞고" "의미가 충만한" 글만 쓰는 사람이 어디 그리 많나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런 말씀을 좀 미리 해 주시면 읽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 읽고나서 생각도 많이 하고... 답글까지 달고 났는데....
그런 말씀을 들으면 참 맥이 빠지거든요....
지적할 게 그냥 한 두 가지에 불과하다면... 금방 끝날 일이겠습니다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의미 없이" 쓴 글인데도.... 그런 줄도 모르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독자들을 좀 배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제안이 한가지 있습니다.
앞으로는... 근거도 있고.... 의미도 있는 글을 시작하실 때.....
"이 글은 '나름대로 푼 별 의미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는
서론(序論)을 붙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꼼꼼히 읽고서... 생각도 해보고... 답글도 쓰고 하지요....

그런 서론(序論)이 없으면.... 저는 그냥...
"아, 이 글도 '나름대로 푼, 의미 없는 이야기'구나"하고서....
그냥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서로의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해 주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믿음(信)=신안(信眼)=믿는 마음(信心)이란 말씀이시군요.
>>믿음이.... 믿는 눈이자.... 믿는 마음이라는 말씀은...
>>다른 데서는 들어보지 못한...
>>아주 깊은 철학(哲學)적인 명제 같군요.
>
>제 나름 대로 풀어본 내용에 '眼'과 '心'을 대입하셨으니 별 의미 없는 일입니다. 역시
>별의미 없는 이야기기 되겠습니다만, 믿음은 한자어로 신심(信心)이라 하지 않고 신앙
>(信仰) 이라고 하죠.
>그런데 '仰'이란 한자어를 사용할 경우 "그거야 믿을 '신', 믿을(따를) '앙' 이니 역시
>동어반복적인 내용이 아니냐?" 라는 말을 우려해서 나름대로의 설명을 용이하기 위하여
>신안(信眼: 보는 것이 즉 목표가 믿는 것)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 한국어를 공부하시는 줄 미리 알았다면 그냥 '신앙'이라고 썼어도 될 뻔했군요. *


바쿠스

01/09 Re:형편없는 ... 책읽기/ 그런 말씀 마십시오 21


제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릅니다.

특히 결론 삼아 정리하신... 절대주의... 다원주의... 포괄주의라는 개념들을
좀더 체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요.

전... 그렇습니다.
포괄(包括)이란게... 전부 싸 안아서 묶는다는 뜻이 아닙니까?
참 좋은 뜻입니다.

절대주의와 다원주의는 포괄주의 안에 제 자리가 있다고 봅니다.
단 절대주의와 다원주의에는 각기 다른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종교적 다원주의....
저는 그거 반대하지 않습니다. 종교(宗敎)의 개념을 좀 달리 이해하고 싶으니까요.
종교(宗敎)라는 것은 결국 "중요한 가르침," 혹은
"으뜸되는 가르침" 정도로 이해하면 안될까요?

서양어, 특히 영어의 릴리전(religion)은 어원적으로 초자연적 현상와 관련이 있습니다.
라틴어 렐리기오(religio)가 어원인데... "초자연적인 제약조건, 제재" 정도의 뜻입니다.
또 렐리기오는 렐리가레(religare)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인데,
렐리가레는 "다시"라는 뜻의 레(re)와 "묶는다"는 뜻의 리가레(ligare)의 합성어라는군요.
다시말해 릴리전은 원래 그리스도교에 밀접하게 연관된 낱말입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을 "다시 하나님께로 되 묶는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나 한국말 종교(宗敎)에는 원래 그런 기독교적인 냄새가 배지 않은 말입니다.
그냥 "으뜸되는 가르침"이라는 다소 보편적인 개념이잖습니까? 그래서....
크리스채너티... 부디즘... 이슬람... 힌두... 등등은 모두 종교(宗敎)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사회나 개인들에게 "으뜸되는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뜻에서 말입니다.

그런 으뜸되는 가르침들은 서로 충돌하는 면보다는 합치되는 면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그 가르침의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윤리(倫理)의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불교도가 충실하게 불도를 실천하고... 기독교도가 충실하게 기독교 윤리를 실천한다면...
그 서로서로가 상충될 리도 없고...
이 세상에서 개인들은 행복해 지고... 사회는 정의로와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으뜸 가르침"들이 제대로 가르쳐지거나...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개인의 구원의 문제는 좀 다르지요.
기독교인인 한 복음의 핵심은 영혼의 구원이니까요.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불교인의 영혼을 안쓰러워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들에게 분노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도 어긋나는 것이겠구요.

그래서...
이 세상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종교적 다원(多元)주의도 문제될 것은 없지 않을까...
그 대신... 영혼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절대(絶對)주의는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경우라도 저는 절대(絶對)라는 말보다는 유일(唯一)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영혼 구원의 길은 오직(唯) 한길(一)....)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잘 치우치지 않게 보듬어 안는 것이 바로 포괄(包括)주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됐습니다.

아직 좀 엉성하지요?
극단적 근본주의로부터 비판받을 것이 겁도 나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국같이 종교(宗敎)가 다양한 사회에서는...
종교적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어설프게 극단적 근본주의에 매달리면서 열매맺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요.

(이런 생각은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개인적 깨달음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윤리적, 혹은 사회적 실천은 그것의 열매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하지요.
이 점은 나중에 또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기기는 하지만 이런 생각의 단초를 얻게 된 것은...
전적으로 님의 "예수는 없다" 감상문 덕분이라고 봅니다.
책도 안 읽고 감상문만 얻어 듣고서 이정도에 이르렀으면...
저는 크게 "남는 장사한 거"라고.... 봅니다.

깊이 감사 드리며...
야베스의 기도에도 비슷한 기대를 해 보겠습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 예수는 없다에 대하여 총 17번을 언급하고
: 16번을 그 책에 대하여 제멋대로(저의 특성인가봅니다^^)시비를 걸었지만
: 한번 주욱 읽어보니 역시...형편없는 비판이었습니다...쩝
:
: 각설하고...
: 야베스의 기도가 3위
: 예수는 없다가 4위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 야후 책 종교란에서요...
:
: 우리나라 기독교의 비뚤어진 두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
: 그래서^^
: 형편없지만...시비를 계속할까 합니다.
:
: 두번째도전...야베스의 기도...
:

원필

 

 

01/09 조정희님께 책 소개 부탁드리며, 답변 27
먼저 상세하고도 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중간과정을 생략한 설명함으로써 당신에게 많은 오해를 불려일으켰음을 사과드리며, 이글 이후

부터는 저역시 상세하고도 자세한 설명으로 임하겠습니다.


>1. "믿음은 한자어로 신심(信心)이라 하지 않고...."
>실례지만... "믿음"이 "믿는 마음(信心)"이라고 한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바쿠스님이시지요.

인정합니다. 바쿠스의 실수입니다.


>2. "앙(仰)의 뜻은 "믿다, 따르다"?"
>어떤 자전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앙(仰)에는 원래 "믿다" 거나 "따르다"는 뜻이 없습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나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보더라도......
>앙(仰)의 본래 뜻은 "우러르다"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앙(信仰)은 "믿고 우러르다"는 뜻이지요....
>요즘은 그냥 "신앙=믿음"이라는 뜻으로 하도 많이 쓰다 보니까...
>아예 앙(仰)이 "믿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푼 사전도 있는 모양이군요.

'仰'은 사람'인' + 높을 '앙'으로 이뤄진 문자로 많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우러르다', '믿다.', '따르다', '의뢰하다.' 란 의미를 지니며 간혹 '높다.'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좀 더 연구해 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3. 동어반복(同語反覆)....
>동어반복(同語反覆)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한다는 뜻으로....

제가 쓴 글을 다시한번 읽어보심이 타당할것으로 사료됩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의미로 썼습니다.


>4. 신앙(信仰).....이 동어반복?
>그래서...... 신앙(信仰)이라는 말은
>이상의 어떤 이유로든 동어반복이 아니니까.... 안심하고 쓰셔도 됩니다.

위에서 '앙'의 의미를 설명해 드렸으니 이것도 생략합니다.

이제 바쿠스의 이른바 결정적인 실수(!)가 등장하는 군요.

>5. 신안(信眼)은 무슨 뜻? (아주 결정적인 실수....)
>우선 신안(信眼)이라는 낱말은 국어 사전에 없으니까....
>바쿠스님이 "나름대로" 만들어 내신 말임에 틀림없겠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뜻은 "보는 것이 즉 목표가 믿는 것"이라고 하셨군요.
>뭐든지 "나름대로" 만들어 보시는 것도 참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려면 (설명을 용이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지요?)

먼저, '信'은 믿을 신으로 명사입니다. 굳이 세분화 하자면 추상명사입니다.

'眼'은 눈'목'에 어긋날 '간'으로 형성된 글자로 당신께서 생각하는 것 보다 쓰임새가 좀

많습니다. '눈', '보다', '요점'등으로 풀이되는 한자입니다. '신앙'과 '신안'은 같은

쓰임새로 특별히 다르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안의 "목표가 믿는 것" 이라는 중간 과정

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信 믿고(믿으며) 眼 본다'란 의미로 "믿는 것 자체가 목표"란

내용입니다.


>의미 규칙이나 문법에도 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나름대로 라지만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을 만드시려면...
>주어와 서술어의 순서(順序)정도는 생각을 하셔야지요.
>서술어에 해당하는 신(信)을 먼저... 주어에 해당하는 안(眼)을 뒤에 놓으시면....
>어떤 눈으로 보아도 믿을 수 없는.... 낱말 아닌 낱말이 되어 버리잖습니까?

낱말을 만들 때, 주어 서술어를 따지는 것은 2000년도에 새롭게 등장한 학문인가요?

혹시 교회 주일학교식 문법(!) 인가요?

문장을 만들때 주어 서술어를 따지는 경우는 보았습니다만, 제가 천학둔재라서 그런지 낱말을

만들 때, 주술을 따지는 경우는 이제 껏 본적이 없습니다. 잘모르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주어'

도 하나 이상의 낱말, 서술어도 하나 이상의 낱말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낱말을 만들때, 어떤 규칙이 있어서 주어 서술어등의 규칙을 이야기하는 기괴절묘한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안(眼)자에는 "보는 것"이란 뜻이 없습니다.

그냥 쉽게 혜안(慧眼)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안경도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만,


>그럴 경우에는 견(見)자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안(眼)은 그냥 "눈"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안(眼)자가 "보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 용례도 없군요.

시간도 남는다고 말씀하셨던데, 조예깊은 한문 실력으로 안경이란 낱말을 놓고 주어 술어을

논해 보시면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재미있겠군요.

* 나머지 대화에 별로 도움이 아니되는 글은 답을 생략합니다. *


P.S : 그나저나 본래의 주제에서 많이 벗어났군요. 아직도 애인의 말을 따져보지 않고

믿는 것이 '설득 당했다.'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바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