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예수와 안티예수

예수는 없다...15

주방보조 2007. 1. 5. 00:11
 <제286호> 예수는 없다15...4.예수는 없다(4) 2002년 01월 05일
저자의 "성경을 떠난 기독론 이해"는 하나하나 토를 다는 것 자체가 심히 피곤한^^ 일입니다.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저자가 믿는 예수...이시대의 기독론이라고 제시한 것을 살피고 이 묶음의 글을 마누리하려 합니다.

"나는 믿는다. 예수님이야말로 이렇게 붕새처럼 변화와 초월의 체험을 통해 인간한계를 극복하신분운운..."
"나는 예수님도 좌선이든 ...수행을 통해 깊은 깨침에 이르셨고 ...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절대자와 친숙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믿는다"

이런 저자의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저자는 어설프게도 이것의 근거로써 성령을 들이내밀고 있습니다.

그럼 성령은 ... 수행을 통해 오는 것인가?

먼저 이말을 하고 이질문에 대한 뻔하고 너무나 쉬운 답을 해야겠습니다.

예수에 대한 성령역사의 기록만 사실로^^인정하고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역사에 대한 기록은 뻥^^이라고 한다면...그래 당신 맘대로 생각하시오...하고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는 않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하면

성령은 수행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베드로가 예수만큼 수행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가 잡히시던 그 밤중에도...기도하시는 예수와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골아 떨어졌던 인물이며
예수께서 수욕을 당할 때에도 계집종의 말에 맹세까지해가면서 예수를 부인했던 인물이며
예수의 부활을 본 이후에도 물고기잡으러 갈릴리로 갔던 인물입니다.

바울이 무슨 수행을 합니까?
예수를 만나기 직전까지 기세 등등하게 예수의 제자들을 잡아내기 위해 눈을 벌겋게하고 휘저어 다니던 인물인데요

...

결국은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선택하여 보는 것...

...

이런 현상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도 꽤 많이 저지르는 잘못입니다.

금식기도니새벽기도니 철야기도니 100일기도니 하는 것을 특별히 들어주시는 하나님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
가난은 저주라고 여기는 것 등등
...

자기가 믿고싶은 것만 보고 ... 믿기 싫은 것은 보지않는 것

교회초기에
영지주의자들과
말시온이란 사람의 오류였고

이후
교황청의 오류였고

작금의
세속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교회들의 오류인 것입니다.

...

그런 류의 오류가

오강남이라는 ... 자칭 그리스도인이며 다원주의자인 비교종교학자라는 분의 손을 통해서 ... 드러난 것입니다.
교회의 잘못된 행태를 빌미삼아...

...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점 일획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바울의 말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며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증언처럼
더하거나 빼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마음에 드는 것은 택하고 자기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뻥이라고 매도하는 것...
말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그것으로써 기독교의 본질을 따져 논하는 일이 우스울 뿐입니다.

더하여
그런 말이 ...일부이지만 먹혀들어가게 만든 우리 교회들의 작태들이 한심스럽구요...

 

01/05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이해... 27
이문제에 대해서도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요...

이교의 동정녀?에 대한 기원중 하나를 소개하여 비교해 드립니다

알렉산더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빌립...어머니는 올림피아스
뭐 이미 동정녀는 아니지요?^^
어쨋든 올림피아스가 뱀과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그 뱀이 제우스엿다는 것이고...
빌립은 그 후로 성욕이 사라지고...
올림피아스는 아들에게 그 탄생의 비밀을 말하고...

성경의 이야기와 비교가 안되지요?

...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동정녀탄생은 ...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기록하고 있는 것 뿐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게다가
이미 창세기와 이사야에 의해서 예언된 여자의 후손이며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이 임에야...
원필

 

 

01/05 Re:요즘 기도할때마다 떠오르는 것/ 캄사...^^ 13
함께 참여하며 공부합시다아~
감상만 하시지 말고오~요

격려 감사하구요
예수는 없다의 저자나...바쿠스님이나...좋은 공부 자료입니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봅니다.
원필


: 예수는 없다.. 에 관한 칼럼을 읽은 후부터..
: 기도시간에 진리에서 벗어난 자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생깁니다.
:
: 진리를 벗어난 곳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에
: 때론 안타깝고 때론 분노도 입니다.
: 그러나 결국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중보하게 됩니다.
:
: 그리고..
: 이 곳 칼럼지기님을 위하여 더욱 기도하게 됩니다.
: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와 지혜, 분별력이 더욱 깊어져서
: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전할 수 있도록 해주십사고 말이지요..
: 칼럼 읽으면서 유쾌,통쾌,상쾌 합니다.
:
: 화이팅!
:

잔느

 

 

 

01/07 Re:Re:요즘 기도할때마다 떠오르는 것 13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가슴아파해 주시다니.. ^__^
그러나, 그 가슴아픔의 밑바닥에 진정함이 깔려있느냐..
비아냥이 깔려있느냐..의 차이가 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전.. 바쿠스님을 향해 진정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냐구요?
100% 품었다고 하면 오만이자 기만입니다. 1%도 품지 못했을지 모르지요.
그 수치는 제가 판단할 성질의 것이 못됩니다. 주님이 아시지요..
눈꼽만치나 알았을까요..
가식적인 겸손이라구요?
네.. 저는 아직 겸손할려면 멀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려면 저는 멀었습니다.
그래서, 제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지요.
제가.. 이 곳 지기님의 지식을 칭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바리새파적인 사람들로 보고 계신 님의 시각..
일부는 틀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제 자신속에 생겨나는 바리새파적이고 율법적인 씨앗을 없애려 늘 기도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나 온전치 못하고 누구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한걸요.
주님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네..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요.
이 땅에서 얼마든지 주님없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없이도 도덕적이고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불교의 참선으로 수행을 하여도 될터이고
마음만 달리 먹어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없이는 이 땅 이후에서의 삶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너무도 이기적이고 되먹지 못한 섭리라구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아주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저는 바쿠스님과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쿠스님과 언변이나 글로 싸울만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의 미련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함을 믿는 맘으로
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미련하니 그저 님을 위해 기도할 밖에요..
잔느


: ... 이들은 확고한 바리사이주의를 가지고 그들의 견해만이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굳은 확
: 신 속에서 그들과는 다른 견해를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거짓된 가르침이라고 저주한다.
: 그들은 자신도 역시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의견에 귀
: 를 기울일 수 없게 되었으며 반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p>
:
: 그들은 그리스도교적 인식을 내면의 투쟁과 형제애적인 토의를 통해 얻어야 한다는 것,
: 그리고 인식이 단계적으로 진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p>
:
: ... 따라서 이들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는 데 대한 책임이 있다. 그들은
: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닫아버리는 서기관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다.<p>
:
: ...적지 않은 편지의 발신인들은 나를 저들 나름으로 훈계하려 드는데, 저들의 방식은
: 다만 오만할 뿐이다. 그들은 내게 성서 구절을 제시하는데, 내가 이 구절을 오래 전부터
: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며 내가 이미 직업상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심
: 사숙고해 보았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나의 성실성을 전혀 신뢰하지 않으며
: 나를 무책임하고 경솔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p>
:
: 나는 그러한 비난을 오만하고도 몰염치한 처사라고 본다. 그리고 적잖은 발신인들이 나의
: 회심을 위해 기도한다고 공언하는 것은 감동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배후에는 똑같은
: 오만이 도사리고 있음을 놓칠 수 없다.<p>
: <p align=right> -----------불트만의 독백중에서...--------------</p>
: <hr size=5, width=100%>
: <p>
:
: >진리를 벗어난 곳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에<br>
: >때론 안타깝고 때론 분노도 입니다.<br>
: >그러나 결국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중보하게 됩니다.<p>
:
: 잔느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중보하게 된다는 글을 접하니 마음만은 고맙<p>
:
: 지만, 저 역시 잔느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어 가슴이 아픕니다.<p>
:
: <p>
: <hr size=5, width=100%>
: <p align=right> ***** 당신은 주님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br></p>


바쿠스

 

 

01/06 Re:이론에 밝지 못해 설라므네.../ 따지기... 13


: 그렇다면 믿는 만큼 보인다고 하셨는데 그 시골분들이 보이는 것이 아주 많을 것이라는 뜻입니까 ?

네.
(하지만... '보인다' 부분은 제가 별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유홍준 교수님께 미뤘지요.
그대신 저는 주로 믿는 만큼 '안다'에 대해서만 밝히려고 했습니다.)

: 아니면 아는 만큼 믿는다라면 그 시골 분들은 믿음이 약하다는 뜻입니까 ?

아니오.
(저는 '믿는 만큼 안다'고 했습니다. '아는 만큼 믿는다'가 아니라....)


: 저 자신도 그 시골 분들의 믿음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
: 선택을 잘 했다고 일단 생각했기 때문에 무조건 믿는 주의입니다.
: 따져서 아니면 안믿을 것이 아니라면 그냥 따지지말고 믿는 것도 좋은 것 아닙니까 ?
:

그럼요.
하지만... 그래도 따지는 일은 좀 필요합니다. 믿음을 갖기 전에나... 그런 후에나....
믿음을 갖기 전의 따짐은 비판적인 성격이 강하겠습니다만....
믿음을 가진 이후의 따짐은 시너지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봅니다.

지금 배규태님께서도 "따지지 말고 믿는 것'도' 좋은 것"이라는 점을
훌륭하게 논증(따지기)해 주셨잖습니까? 저는 그게 아주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군요.

: 저는 전도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인간은 그냥 전도 대상에게 선포만 하는 것이지 상대를 설득하고 교인으로 영입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이루어 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설득에 넘어가기"라는 게 제 생각합니다.
그런 설득의 매개가 성경이든.... 전도자이든.... 자연이든.... 혹은 다음의 칼럼이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설득을 당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모든 전도 수단의 배후(背後)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설득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목사님이나 신학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들의 말씀은 잘 따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설득과 얼마나 가까운가.... 혹은 먼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말이지요.
그래야 건강한 그리스도인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 조정희 님의 글을 읽으면 논리 정연함과 합리적인 결론의 도출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
: 그러나
: 저의 어머님이나 할머님도 모두 기독교 신자이셨는데 참으로 옆에서 보아도 참 신앙인이셨습니다.
: 시골 교회라는게 그런 논리적인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도 계시지 않을 뿐 더러 또 교인들 끼리의 구역 예배나 성경 공부 시간에도 그런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
: 시골의 대부분의 교인들은 거의 가 다 그렇습니다.
:
: 그냥 성경을 있는 그대로 100% 믿고 다원론이나 근본주의니 하는 용어 조차도 모릅니다.
: 그리고 신학적인 비평서적이나 학술 서적을 볼 기회도 없습니다.
:
: 그러나 저의 어머님과 할머님(이미 돌아가셨지만)을 포함하여 시골의 교인들 참으로 굳건한 신앙을 가진분들이 많습니다.
:
: 그렇다면 믿는 만큼 보인다고 하셨는데 그 시골분들이 보이는 것이 아주 많을 것이라는 뜻입니까 ?
: 아니면 아는 만큼 믿는다라면 그 시골 분들은 믿음이 약하다는 뜻입니까 ?
:
: 저 자신도 그 시골 분들의 믿음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
: 선택을 잘 했다고 일단 생각했기 때문에 무조건 믿는 주의입니다.
: 따져서 아니면 안믿을 것이 아니라면 그냥 따지지말고 믿는 것도 좋은 것 아닙니까 ?
:
: 신앙이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닌이상 말입니다.
:
: 선행을 하고 이론적으로 많이 알고 하는 것과 참 신앙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테레사 수녀가 세계 최고의 신학자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 많이 알았기 때문에 테레사 수녀가 그런많은 일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
: 믿음이란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며 나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고 그를 따르고 그를 받아들이고 그의 말씀대로 행하면 천국에 이른다는 것을 믿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
:
: 저는 전도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인간은 그냥 전도 대상에게 선포만 하는 것이지 상대를 설득하고 교인으로 영입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이루어 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 기독교란 아무리 선행을 실천하며 살았어도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는 간단 명료한 것 아닙니까 ?
:
: 그러나 아직도 예수그리스도 태어나시기 전에 살다가 죽은 사람들과 도저히 예수그리스도를 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다가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의문은 남습니다.
배규태

 

 

 

01/06 "믿는 만큼 안다..." 22

여러 권의 문화유적 답사기를 쓰신 유홍준 교수님께서 유행시킨 말이 있더군요.
"아는 만큼 보인다."

오늘 김원필님의 새로운 설명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믿고 싶은 것만 본다."(예수와 안티예수 286호)
오강남 교수님 같은 분들과 보수 기독교인들을 다같이 지적하면서 하신 말씀인데...
유홍준 교수님의 유행어 못지 않게 정확한 관찰이시라고 봅니다.

유행어는 연예인들만 만들어 티비로 퍼뜨리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저는 유홍준 교수님과 김원필님의 관찰을 합쳐서 조금 더 확장해 보고 싶습니다.
"믿는 만큼 알고, 아는 만큼 본다."
뒷부분의 "아는 만큼 본다"는 유홍준 교수님이 더 잘 설명하셨으니까 건너뛰기로 하고,
여기서는 김원필님의 정식화가 "믿는 만큼 안다"는 표현으로 바뀔 수 있는 과정을
한번 서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믿는다"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 두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제 글의 일부에서 "믿는다"는 "설득 당한다"로 풀었습니다.
(이 칼럼에서도 몇 번 그걸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더 좋은 정의를 아시면 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설득 당할 수 있는 근거"에는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글 어디에선가도 설득의 근거에 대한 생각을 했었는데....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우선 감동(感動)과 의지(意志)가 그것이지 싶습니다.

의지(意志)가 설득의 근거가 된다는 점은 애인(愛人) 사이를 보면 되겠습니다.
애인의 말은 "팥으로 메주 쑨다"고 해도 설득이 잘 됩니다.
(저는 사랑을 '느낌'이 아니라 '의지'로 풀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사랑에 관한 제 글을 보시려면.... 제 칼럼 1-2호를 보시면 됩니다.)

감동(感動)의 경우는 제법 자명합니다.
내게 감동을 먹이는 사람... 에게는 쉽게 설득 당할 수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나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가진 집단 구성원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내가 재림한 예수"라고 하거나.... 혹은
"나는 민족 중흥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하하... 믿습니다.

그러나 의지나 감동으로 설득 당하는 경우는 그 설득이 다소 불안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의지가 마르거나 감동이 사그러 들면... 설득력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설득의 또 다른 근거로....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을 잘 해 보니까.... 맞는 것 같으면.... 설득 당하는 것이지요.

"생각하다"는 "사물을 차이에 따라 나누고 관계에 따라 연결시키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한자어로는 흔히 분석(分析)과 종합(綜合)의 과정이지요.
게다가 "맞는 것 같다..." 혹은 "그 말이 맞다"는 판단(判斷)까지 곁들여 집니다.
이런 분석과 종합과 판단을 거쳐서 성립되는 것이 바로 "앎"입니다.

"앎"을 통해서 설득을 당하게 되면...
그런 설득은 의지와 감동에 의한 설득보다 다소 지속성이 있습니다.
잘 생각해서 얻게 된 "앎"은 잘 흔들리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리 "잘 생각"을 했더라도... 상황이 변하고 자료가 더 나타나면
앎이 변함에 따라서 그런 설득, 즉 믿음도 변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앎"은 설득... 즉 "믿음"의 아주 훌륭한 근거임을 밝힐 수 있습니다.
앎이 믿음의 근거가 된다면....
"아는 만큼 믿는다"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앞에서 "아는 만큼 믿는다"가 아니라 "믿는 만큼 안다"고 했습니다.
왜 앞뒤를 바꿨느냐고요?

왜냐하면.... 일단 설득을 당하게 되면.... 즉, 믿음을 갖게되면....
그 순간부터 믿음은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너지(synergy)....라는 말을 스티브 코비 박사의 책에서 배웠습니다.
(Seven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 바로 그 책입니다.
한국판으로는 '성공적'인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으로 번역됐습니다만....
여기서 '성공적'이라는 말은 Effective의 정확한 번역어가 아님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또 한번 하겠습니다.)

코비 박사에 따르면....
일 더하기 일이 이가 되는 것은 시너지가 아니랍니다.
일 더하기 일이 일점오가 되는 것도 당연히 시너지가 아닙니다.
시너지는.... 원자핵 반응이나... 빅뱅과도 같이.....
일 더하기 일이 십만도 되고.... 억만도 되는.... 폭발적인 가능성의 확대라는군요.

그래서 어떤 말이나 주장에 설득당해서 "믿음"을 갖게 되면...
그런 일.... 시너지가 발생한다고 저는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애초에는 설득, 즉 믿음이
감정과 의지와 생각을 기반으로 해서 생겨나는 것이지만.... 일단 설득 당하고 나면....
그 믿음으로 이끌었던 감정과 의지와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지각(知覺)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런 차원이 다른 지각(知覺)을 가리키는 말은 한국말에 참 많습니다.... 만....
저는 그걸 "깨달음"이라는 말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다른 말로는 대오각성.... 해탈.... 거듭남... 등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되면....
앎과 느낌과 의지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만큼" 새로 알게되고, 새로 느끼게 되고, 새로 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요한복음 6:69)의 "알다"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요한1서 4:16)의 "알다"는,
서로 차원이 다른 개념일지도 모릅니다. (단, 서술의 순서가 중요성을 갖는다면).
하나는 믿음으로 이끄는 "앎"이었고, 다른 하나는 믿음에서 나오는 "앎"이니까요.

어쨌든..... 앎과 믿음...의 관계는 정태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믿음을 갖게되면 이전의 앎은 좀 사소해 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래식 폭탄을 터뜨리기 위한 도화선이나...
현대식 미사일을 폭발시키는 뇌관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분석과 종합과 판단이 뛰어나더라도.... 그것은 도화선입니다.
폭발이 일어나고 난 뒤에는 유용성이 떨어지는 활동들이지요.
그대신 새로운 차원의 분석과 종합과 판단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앎이 되는 것이고.... 그 새로운 앎은 이전의 앎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의 매개가 바로 "설득"이요 "믿음"이라고 생각하므로.... 저로서는
"믿는 만큼 안다"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일전에 유샛다운라이네스님께서 "믿음을 이성으로 확인"한다는 멋진 표현을 쓰셨습니다.
저는 그에 대한 답글에서 "그게 가능한지 확신이 서지 않고요...."하고 말씀드렸지요.

그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성은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기는 하지만... 믿음을 폭발시키지 못하면....
그냥 그대로 그 이성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폭발이 일어나면... 새로운 이성이 (새로운 감성과 의지와 함께) 생기며...
그 이성은 이전의 이성과는 사뭇 다른 것이지요.
그러니 "도화선에 불과했던 이성"을 가지고서
"시너지적인 폭발이 일어난 이후의 믿음"을 "확인"한다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01/05 펀글...바쿠스님의 글에 대한 저으 반박^^ 17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생일은 12월 24일에서 1월 6일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태양신의 축제기간과 비슷합니다. 공교롭다는 표현보다 태양신의 숭배했던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예수 생일날이 정해진 것이니 당연한 거지요. 사실 예수의

>생일이 언제인지 우리는 알 방법은 없습니다.

...
교회사를 조금 공부한 그리스도인이라면 12월 25일이나 1월6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니란 것 자세히^^압니다.
요즘 교회에서도...몇군데 설교를 섭렵해본 결관데요 어떤 목사님도 12월25일은 주님오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지 그날이 바로 탄생하신 그날이라고 말하시는 분 안계셨습니다.
요즘은 교회에 발을 끊으셨던가...오랫동안 허접한 교회에서 훈육을 받으신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생일이야 그렇다고 치고.. 출생년도는 어떨까요?

>올해가 서기 2002년 월드컵이 열리는 해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서기 2002년일까요?

>서기의 형성은 기원전 6세기경 데니스란 신학자가 예수가 생산 년도를 기준

으로 한 연대 체계를 도입하면서 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생산년도는 3~400년

전까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사용되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예수가 언제 태어났다고 이야기 할까요? 분명친 않지만 대략 BC 4년

이전으로 추정합니다. 르네상스이후 역사서의 보급과 종교비평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이것서기 1년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 진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의 생산년도를 둔갑시킨 대표적인 예가 헤롯왕의

치세 기간인데, 이 헤롯 대왕이 불행하게도 BC 4년까지만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이블에 보면 헤롯대왕을 피해 이집트로 갔다고 하거든요. 근본주의자들 입장

에서야 헤롯왕이 AD 1년 이후 까지 치세 했다. 라고 우기고 싶었겠지만, 헤롯왕의

경우 증거가 너무 명백했습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예수를 죽이려 들었다던 헤롯왕

덕분에 예수는 무려 4년 이상 나이를 더 먹게 됩니다. 그래야만 바이블이 문자적으로

모순이 없게 되며 모순이 없어야만 기독교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거든요.

>잠시 여담입니다만, 지금은 아무리 신실한 성도님일지라도 예수의 생산년도가 기원전,

4년이전 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만, 만약 바쿠스의

이런 글이 300년 전에 나왔다면 게거품물고 거짓말 한다고 길길이 날뛰는 목사님 들이

즐비했을 것 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

>헤롯왕 이야기는 누구나 동의하는 문제이니 접고 좀 미묘한 내용을 다뤄보겠습니다.

......
기원전 6세기에 데니스란신학자는 무슨 신학을 했을까 매우 궁금해 집니다.
제우스신학을 한 사람인가요?
매우 지협적^^인 지적이라 우습습니까?

그 신학자의오류를 왜 성경이나 근본주의에게 덤테기 씌우려고 하는 것이죠?
그 기원을 설정한 것이 잘못이지...성경이 잘못인 것은 아니죠?
코끼리 꼬리가 아니라 코끼리 똥을 만지면서 이게 코끼리다하는 것 같아 우습습니다.
...


>호구조사와 구레뇨 이야기 입니다.

>로마의 역사서 구레뇨가 예수 탄생당시 시리아 총독이란 문헌이 없다는데 첫번째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바이블만 적어놓았을 수도 있는 문제이니, 가볍게 넘어

갑시다.

--- 또, 사족으로 근본주의 목사들이 구레뇨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이

재미있는데, '최근에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고문서'에는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었던, 내용이 포함되었다.'라는 이야기를 간혹 합니다. 많은 바이블의 기록이 틀림

없다고 믿어야 마음이 편안한 기독교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조사조차 하지않고 그대로

수용합니다만,그 새로 발견되었다는 고문서란 다름아닌 사해와 이집트에서 발견된

바이블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말할때에는 바이블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고문서'

라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마치 신빙성 있는것처럼 위장합니다만...

...
바이블이란 말로 장난을치시는군요^^
그런 말장난하는 것 자중하세요...

구레뇨는 기원전12년부터 기원후16년까지 수리아에서 군대총독내지는 사령관의 임무수행을 했습니다.
이것과 관련된 비문은...윌리엄 램제이가 발굴한 것이구요
...

>이야기가 많이 샜군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

>다음 문제되는 것이 호구조사 문제인데. 이것은 생각해볼 내용이 좀 많습니다.

>우선 호구조사는 현재 공식적으로 인정 받는 것은 BC 28년이며 이외에 BC 14~16년을

지지하는 것이 더 있긴 합니다. 여전히 예수의 탄생시기에 있었다는 호구조사와는

거리가 멉니다. 객관적인 사실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
발굴된 보고서에는 기원후 34,62,90,104,118,132,146,174,188,202,216,230년에 인구조사가 실시되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이 보고서에는 기원후 20년과 48년에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가르쳐 줍니다.
기원후 6년은 요세푸스의 고대사에 언급되어 있는 인구조사년도입니다.(안토니우스 패배 37년째로 기록되어 있죠^^)
즉...이런 증거들에 의해서
로마시대에는 14년마다 인구조사하는 것이 정례화 되어 있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원전 8년이 인구조사가 시작된 해라는 것은 ... 산수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아이들도 다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이죠
...

>바이블의 진술을 토대로 예수의 탄생시기에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쳐주고 우리는 몇

가지 상식적인 선에서 살펴봐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첫번째, 통치지역 입니다. 요셉은 호구조사를 위해서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겨

갑니다. 그런데 나사렛은 헤롯왕의 자치 구역이고 베들레헴은 로마가 식민 통치하던

지역입니다.

>쉽게 말해서 만주에 가 있던 조선족이 일본이 인구조사를 한다니까, 조선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금 만주에서 살고 있어요.. 앞으로도 조선에 들어와서 세금 꼬박 꼬박 낼께요."

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아니합니다. 그랬을 까요? 판단은 독자님들에게 맡깁니다.

...
헤롯대왕은 유대와 사마리아 갈릴리 베레아 이두매등을 통치하던 왕이었습니다.
헤롯이 죽고나자 헤롯의 나라는 이렇게 나누어집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베레아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으로
헤롯 아켈라오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두매의 통치자가 되고
헤롯빌립은 이두래 드라고닛 가울라닛 아우라닛 밧다내의 분봉왕이 되어 다스립니다.

물론 로마의 지배아래에서의 일입니다.
여기서 바쿠스님은
헤롯 아켈라오가 통치권을 잃어버린 시기와 혼동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둘째, 호구조사의 목적은 인두세을 징수하는 데에 있습니다.

로>마가 오랫동안 식민지를 이끌어 갈수 있었던 이유는 식민지의 문화풍습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수시대 유대인에게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조차도 '여자는 교회에서 아가리 닥쳐라~!'라고 무시했을 정도였으

니까요. 즉 유대인 여자는 세금부과 대상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성인에게만 부과했던 세금인데, 마리아를 성인으로 봤는지도 의문입니다. ^^;

>셋째, 마리아가 베들레헴까지 갈만한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구조사는

가족의 대표 1명만 가서 신고해도 괜찮았습니다.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하자 마자

구유에 아이를 생산합니다. 쉽게 말해서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100km가 넘는 거리를

출산을 앞둔 사람이 그것도 통치지역이 다른 곳에 와서 세금 내겠다고 신고했다는 것

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고충을 무시했을 정도로 몰인정한 사람이었을까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고.. 다음 기회에 마태와 누가의 각기 다른 예수 탄생설화를 소개

하겠습니다.

...
두번째와 세번째 이야기는 아래에서도 잠시언급했습니다만
만삭의여인을 데리고 어찌여행하나...염려하는 바쿠스님의 따뜻한 마음을 엿보아 약간은 즐겁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데는 만 9개월이 걸립니다.
이미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를 요셉이 데려왔으므로...나사렛에서는 언제 첫아이가 태어나는지에 대하여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이것은 상상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6개월만에 아이가 태어났고 요셉은 거기 없다면...그 아기에 대한 시비가 있을 수 있고...명예로서나 생명과 관련해서 대단히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이 벌어지지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배려하여...베들레헴으로 동행하고...
하나님의 예언은 그렇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여자는 ... 임신중이거나 만삭이라고 해서 ... 조용히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있지 않습니다.
양수가 터질 때까지 열심히 환자를 돌보다가 거기서 출산하는 여의사들 많습니다. (바쿠스님은 히스테리님..안보이던데^^..찾아서 여쭤 보십시오)
...

음... 이 칼럼을 쓰시는 분이..정말 바쿠스님인지 의심이 갑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많이 실망입니다^^

분발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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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주님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

...
엉터리로 성경을 공부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


원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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