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예수와 안티예수

예수는 없다...13

주방보조 2007. 1. 3. 00:40
 <제284호> 예수는 없다13...4.예수는 없다(2) 2002년 01월 03일
예수님의 성생활...이것이 두번째 글 제목입니다.

먼저 저자는 예수님의 결혼유무나 성적 취향에 별관심이 없고 다만 그의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은 신으로만 취급함의 문제에 대한 도전으로 좋은 주장들이라고 결론 지으면서...앞에 다음과 같은 것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먼저 신으로만 취급하는 예수라는 말은 저자가 기독교의 기본 교리조차 무시하고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교회학교의 초등학생도 (제대로 선생님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전제하에) 다 아는 것이 예수는 인간으로 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교회에서...예수를 하나님으로만 인정하는 것을 이단시하여 배척하였거니와
성경 자체에서 이미 사도요한은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4장)

그러니 실제로 이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신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가 아니라...신이 아니라 오직 인간이기만한 예수라고 보아야 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인간이신 예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저자가 맨 앞에 내놓은 빌핍스(앞의 핍스와는 다른 인물입니다^^)의 [예수는 결혼했던가]라는 책의 내용을 다뤄봅니다.

첫째로 유대사회의 정황으로는 멀쩡한 젊은 이가 결혼 안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었다
둘째로 결혼과 이혼에 대한 말씀에 비추어 결혼한 것 같다.
세째로 막달라마리아와 관계가 보통이상이었고 부인인것같다. 예수의 가출로 기지촌인 막달라로 그녀가 갔고예수가 부인겸 제자로 받아들였다

세번째이야기는 소설로써는 나무랄데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도 얼마든지 빌 핍스라는인물에 대해서 당장이라도 짧은 소설을 그냥 쓸 수 있을테니까요
두번째이야기는 지식이라는 것, 통찰력이라는 것이 꼭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완성된다라고 할 수 없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첫번째이야기는...예수 당시 3대종파중 하나인 에세네파와 같이 금욕을 실시한 부류가 있었고 그들의 영향이 적잖았을 것으로 생각하면...유대인들이 모두 결혼하였으므로 예수도 결혼했다라는 인과관계가 불성립함을 알 수 있습니다.

...

다음으로 이 저자는 예수는 동성연애자였다라는 것을 장황하게 증거하는 글을 실어 놓고...좀 미안했는지 결혼하지 않았다는 가장책임막중불결혼설^^을 들이밀어 놓습니다.

...

성경은 어디에도 예수의 결혼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도 처나 자식에 대한이야기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러므로 당연해 보인다 하겠습니다.

성경이 예수의 결혼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가 결혼했다라는 것이 언급될 필요가 없어서라기 보다...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할 것이 없었다로 보는 게 옳습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예수의 족보가 ... 예수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갔어야...하지 않겠느냐 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의 아들...얼마나 고귀한 위치가 되겠습니까? 예수를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으로 아는 이들에게 말입니다.

...

저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12살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고 있던 예수를 비록 그의 30세까지의 삶이 범인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할지라도 ... 그의 자기 인식이나 지혜나 사명감따위조차 동등했다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초기 사역과 관련해서 살펴볼 때...마귀의 세가지 유혹이나 세례요한의 증거나 등에서 보여주는 것같이...이미 공생애 이전에 예수는 진리에 대한 입장이 공고했고...자신이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했고...그 결과가 어떨지 이미 알고 계셨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무슨 결혼이 거기 개입될 여지가 있었겠습니까?

동성애따위에 대한 허접 쓰레기같은 글에는 일일이 대꾸할 가치도 없다 보여지구요...

...

성경이 말하는 예수는

예수는없다의 저자가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신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를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하겠습니다.

...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성경을 진실하다 보지 못하면서
인간예수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저자의 의식구조가 매우 신기하다는 점입니다.
예수는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01/03 인간은 성생활이 원활해야만 잘 사는가? 26
바울은 성욕을 참지 못하겠거든 혼인하라고 권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온통 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한가지 요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결혼한 부부가...만약 성생활을 불 성실하게한다면...이혼사유가 됩니다.
그만큼 삶에서 비중이 적지않게 높습니다.

그러나
성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연스럽고 귀한 선물이라할지라도

그것없이는 안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히...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성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필

 

 

01/05 Re:Re:"객관적" 증거.../아!/ "트루스"와 "리(理)" 10


"진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은
서구인들이 우여곡절 끝에 3백여년 만에 간신히 도달한 결론이지요.

요즘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 역시
진리에 대한 '접근성'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서양 철학이나 과학에는 미흡한 지식을 가진 제가 보기에도,
그들은 어째서 "진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
그 이유를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건 진리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객관"과 "합리"와 "과학"보다 훨씬 오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들도 어떻게든 나름대로의 대답을 찾아내겠지요.
참...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저로서는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는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있습니다. 굳이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문화적 유전 인자같은 것이지요.

거기에 따르면... "진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객관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이야기는 벌써 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기본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진리(眞理)"라는 말 자체가 19세기말의 신조어(新造語)이지 싶습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 왕성한 활동을 보인 일본의 신지식인들이 만든 말이기가 쉽습니다.
그냥 만든 말도 아니고.... 서양의 대문자 티, 트루스(Truth)를 번역한 말이지요.

트루스를 번역할 때에 리(理)를 동원한 것까지는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만...
거기에 진(眞)을 붙인 의도를.....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퍽 힘듭니다.

한자문화권의 궁극적 존재 혹은 힘으로서의 리(理)는 아무 수식어도 필요 없거든요.
그나마... 리(理)는 정주(程朱)가 유학을 새롭게 해석할 때에 강조하기 시작한 개념이고,
그 이전에는 대개 "하늘" 혹은 "티엔(天)"이면 필요하고도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하늘(天) 개념과 리(理) 개념의 연속성을 표시하기 위해
천리(天理)라는 말도 자주 쓰이기는 했습니다만.....
진리(眞理)라는 말은 좀처럼 사용되지 않던 말입니다.
진(眞)자가 불필요한 군더더기거든요.... 리(理) 개념에게는....

하늘(天)이든 리(理)든 그것은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궁극적인 실체(實體)입니다.
굳이 노자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그것은 참도 거짓도 아니고....
그냥 하늘(天)이요... 리(理)일 뿐이지요.
때로는 태극(太極)이니 태허(太虛)니 도(道) 같은 개념으로 소개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런 한자 문화권의 리(理) 개념은
서양의 트루스(Truth) 개념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 차이에 대해서는, 저 자신도, 좀 더 생각을 해야할 주제이기는 합니다...
얼른 보더라도 두 가지 정도의 차이점이 눈에 띕니다.

한가지는 트루스는 사람의 인식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그것을 깨달으려면 "객관적으로 정확한 앎"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소크라테스에서 아퀴나스에 이르는 프리모더니스트의 "객관적인 하나님(神)"의 설명에나
데카르트에서 마르크스에 이르는 모더니스트의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에나
푸꼬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객관적 진리에 수렴할 수 있다"는 주장에나 공통됩니다.
그들의 문화적 유전인자가 그들의 사고방식을 그렇게 방향짓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자문화권의 하늘(天)과 리(理)는
사람의 외부에 있지도 않고.... 더구나 객관적(물적)이지도 않습니다.
리(理)는 이미 만물과 사람 속에 실현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만물이 각기 제 모양과 성질을 갖는 것,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특성을 보이는 것은....
그 속에 리(理)가 실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람 속에 실현된 리(理)는 특별히 성(性)이라는 개념으로 불리기도 했고요.

그 성(性)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공자니, 장자니, 맹자니, 순자니, 정씨 형제니, 주희니...에 따라서 설명이 다르기는 했지만....
하늘이 사람 속에 실현되어 있다는 생각에는 모두 공통됩니다.

심지어 그 전통을 이은 천도교에서조차도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이전에 퍼졌던 천내인(天乃人) 개념을 가볍게 뒤집었다는 점에서만 혁신적일뿐입니다.

서구의 트루스와 한자문화권의 리(理) 개념의 또 한가지 차이점은....
그것을 왜, 어떻게 추구하느냐의 면에서도 크게 다릅니다.

서구의 트루스는 외부에 객관적(물적)으로 존재하므로...
거기에 객관적인 방법으로 도달하기를 추구하며....
그 목적은.... 그 트루스를 "이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더왕 이야기와 인디애나 존스 영화의 성배(聖杯)찾기나...
니벨룽겐의 반지를 찾는 이야기나...
영혼을 팔아가면서 트루스를 소유하려던 전설 속의 박사이야기나,
푸꼬의 추의 지기(地氣)찾아 헤메는 성당기사단이나,
그들의 공통점은 트루스를 찾아서 그것을 이용해 파워를 늘리는 데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트루스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힘을 얻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 것이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에 실용주의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지요.
과학은 힘을 낳고.... 그 힘은 실제적인 편리함을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서양 속담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을 역사적으로 장황하게 풀어놓은 설명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인 역사책을 읽는 것보다....
속담을 공부하는 것이 더 쉽고 편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아는 것(트루스) = 힘 (파워)"를 우습게 만들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사고방식과 거기에 기반을 둔 행동방식은
지난 2백여년 동안 커다란 발전(그것을 발전이라고 한다면)을 낳았습니다.
오늘날 모양지어진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는 바로 그 결과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트루스는 제쳐두고 리(理)를 찾아나서자....는게 제 주장일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트루스와 리(理)가 서로 상반되거나 배치되는 개념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만 서로 차원이 다른 이야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트루스를 찾아 힘을 추구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선조들이 그토록 목말라 했던 리(理)를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리(理)를 의식하고 잊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게 바로 우리의 본성(本城)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트루스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된 나머지
리(理)와 성(性)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걸 어디서 찾느냐고요?
물론 우리 속에서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0-21).

저는... 아무래도
트루스만 쫓아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서양식의 방법보다는
내 안을 뒤져서 리(理)와 성(性)을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우리 식의 방법이
기독교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에 더 유익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군요.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추신: "믿음을 이성으로 확인"한다는 멋진 표현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꼭 올바른 탐구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게 가능한지도 확신이 서지 않고요....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한 말씀 더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 '객관'이라는 말이 갖는 애매성을 잘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
: 하지만, 조정희님의 논의를 살펴보아도 여전히 저의 질문은 유효하다는 생각이
: 듭니다.
:
: 기독교인인 제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인 증거를 찾고자 할 때, 그것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믿음을 이성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됩니다.
:
: 인간의 이성, 합리성, 그리고 객관성의 신화는 포스트 모던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많이 깨어져 나갔습니다.
:
: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한 절대 불변하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졌습니다.
: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 역시 진리에 대한 '접근성'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 즉, 내가 진리로 생각하는 것과 네가 진리로 생각하는 것,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나마 더 옳은 진리인지를 밝혀나가는 것. 이것은 가능한 일이지요.
:
: 이런 점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인 증거를 찾는 일은 초보적인 일일지언정 여전히 유의미한 일이라고 봅니다.
:
: 왜냐하면 세상에는 스스로 하나님의 계시임을 자처하는 수많은 경전들이 있고,
: 또 하나님의 계시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책, 사람들이 또 있기 때문입니다.
:
: "그럼 왜 성경만이 하나님의 계시이며, 다른 것은 아닌가?"
:
: 즉, 성경이 말하는 바에 대해서, 너와 내가(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다같이) 그것이 좀 더 진리로운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될 만한 증거, 혹은 논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
: 이것에 대한 결론이 '결국 믿는 수 밖에 없다.'라고 나온다고 해도, 그리하여 비신자들은 믿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라고 나온다고 해도,
:
: 그것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경우가 다른 종교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샛다운앳더라이네스
:
: :
: :
: :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이래로...
: : 좀더 가깝게 말하면... 데카르트 이래의 합리주의 이래로....
: : "과학"과 "객관"이 진리의 규준으로 자리잡습니다.
: :
: : 그런 규준은 서양의 정신세계를 차례로 점령한 후에...
: : 마지막으로 기독교로 그 칼날을 향했지요.
: : 거기에는 독일인들의 공헌이 지대했습니다.
: : 19세기에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가 어느 정도 이룬 업적을 토대로 해서....
: : 역사비평이라는 깃발아래 20세기초의 독일 신학자들이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 :
: : 그러나 저는 독일사람들의 철저함을 좋아하면서도
: : 그들의 뒷북치기에는 혀를 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조는 꼭 독일에서 뒷북을 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 : 독일 신학자들이 과학과 객관과 합리로 기독교를 죽이려고 하고 있을 때,
: : 프랑스 철학자들은 거기서 물러나고 있었으니까요....
: :
: : 해체....가 바로 프랑스에서 시작된 새로운 화두였는데....
: : 그 해체의 대상은 독일 사람들처럼 "기독교"가 아니라...
: : 객관과 합리에 바탕을 둔.... 과학과 철학 자체였습니다.
: : 푸꼬와 데리다로부터 시작되는 이름들의 긴 목록은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 :
: : 푸꼬를 들어서 하버마스를 비판하는 것도 재미있기는 합니다.
: :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이니까요.
: :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은 유럽사람들은 그들 맘대로 놀게 내비두는 것입니다.
: : 우리는 우리끼리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 :
: : 객관(客觀)이라는 말에 그다지 휘둘리거나.... 혹은 휘두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 : 우선 번역이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 : 객관(客觀)은 흔히 서양어 "오브젝티브"(Objective)의 번역어입니다....만....
: : 오브젝트란 물(物)이라는 말입니다.
: : 오감으로 만지고 느끼고 보고 냄새맡고 맛볼 수 있는 그런 대상이 바로 물(物)입니다.
: : 그러니 "오브젝티브 에비던스"를 번역하려면 "물적 증거"가 더 정확하겠습니다.
: :
: : 그럼 객관(客觀)이란 말은?
: : 네, 그렇습니다. "손님의 눈," 즉 "손님의 시각"이라는 말입니다.
: : 이해관계가 없거나 약하고, 일의 추이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의 견해를 말하지요.
: : 객관이라는 말은 그래서 사물의 이치를 따지는 데에 별로 유익하지 않습니다.
: : 관심이 없고 이해가 걸리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뭐든지 심드렁하게 보이게 마련이니까요.
: :
: : 반면에 주관(主觀)은 "주인의 눈, 주인의 시각"이라는 말입니다.
: : 사물의 이해와 발전이 초미의 관심사인 사람들입니다.
: : 그런 사람들의 눈으로 보아야 사물이 제대로, 철저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 : 당장 "기독교를 위한 (소위) 객관적인 증거"를 요구하거나 제시하려는 사람들은
: : 거기에 지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 : 그런 주인(主人)들이 객관(客觀)을 요구하거나 제시하는 것 자체가
: : 좀 역설적입니다.
: :
: : 그럼 물적(物的) 증거를 찾으면 되겠습니까?
: : 저는 기독교와 같은 영적(靈的)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 : 물적(物的)인 수단을 이용한다는 것에 그다지 잘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 :
: : 물(物)과 심(心)과 영(靈)은 각기 다른 세계를 구성하는 주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 비록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세 가지가 한데로 합쳐져서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 : 각각은 서로 다른 원리와 발전 양상을 띤다고 보는 것이지요.
: :
: : 정몽주 어르신의 단심가(丹心歌)를 한번 보시지요.
: :
: :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 :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 :
: : 이 시에도 나타난 것처럼.... 한국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 : 사람을 "몸"과 "넋"과 "마음"으로 구성된 존재로 보았습니다.
: : 살았을 때에는 그 세 요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반면...
: : 죽게 되면... 따로 따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지요.
: : 서로 다른 원리와 존재 양상을 따라서....
: :
: : 사람에 대한 이런 이해는 기독교의 그것과 썩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 : 여기서는 자세한 서술을 삼가겠습니다만....
: : (관심이 있으시면... 히브리와 서양과 한국의 사람관을 비교한 제 글을 한번 읽어 주시지요.)
: :
: : 그러니 영(靈)적인 문제는 심지어 심(心)적인 증거로도 이해하거나 증명하기가 힘듭니다.
: : 그게 바로 데카르트 이래로 서양 사람들이 보여온 갈팡질팡 행보였잖습니까?
: : 그 기간이 상당히 길다보니까.... 안정적인 사조같아 보이기는 했겠습니다만....
: :
: : 하물며 영(靈)적인 문제를 물(物)적인 증거로 증명한다는 것이....
: :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가능해 보이십니까?
: : 적어도 제게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군요.
: :
: : 물과 심과 영의 원리에 어떤 위계가 있다면....
: : 그것은 물적 원리 보다는 심적 원리가....
: : 심적 원리보다는 영적 원리가....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
: : 그래서 영적 원리가 심과 물에도 관철될 수 있을지언정....
: : 물적인 원리가 심과 영에 관철 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 음양의 원리가 사(事)와 물(物)에도 관철되는 반면,
: : 상생과 상극이라는 오행(五行)의 원리는 음양이나 리(理)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던
: : 전통적 사고방식을 생각하면 제 이런 생각이 엉뚱하다고만은 볼 수가 없겠지요.
: :
: : 그러니 이런 한국사람의 사람관과 세계관을 이해한다면....
: : 그리고 그런 자원을 이용해서 사물을 탐구하고 구명해 나가고자 한다면....
: : 하나님이나 성경의 내용을 증명하는 데에
: : 물(物)적인 증거를 대달라고 요구하는 게 좀 지나친 것으로 보입니다.
: : 또 그런 요구를 받았다고 해서 초연하지를 못하고....
: : 화를 내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럽지는 않아 보입니다.
: :
: : 안 그렇습니까?
: :
: :
: : 조정희 드림.
: :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 :

 

01/03 Re: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때 14
하나님이 만물과 육축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실때 세상 끝까지 번성하라고 미션을 주셨습니다.

그 미션을 수행하려면 섹스 없이는 안 됩니다.

동성연애와, 수간을 최고의 범죄로 다스리신 것도 바로 생산을 위한 섹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 됩니다.

프랑스의 한 종교 비평가가 노아의 홍수는 여성 상위의 섹스가 범람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여 내린 벌이랍니다.
여성 상위란 수태할 확율을 저하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현대의학에서도 여성 상위는 수태율을 저하시킨다고도 합니다만....

그러나 지금 인구가 넘치는 지금 섹스는 한낱 쾌락에 불과하게 타락했습니다.

인간을 번성케 하기 위하여 겪어야하는 여자들의 그 수고함과 독립할 때 까지 십여년이상을 먹여 살려야 하는 남자들의 수고함을 하나님이 기특하게 여기시어 주신 보너스가 바로 섹스일진대 아이를 낳지도 않고 또 생육하지도 않는 인간이 오로지 섹스의 쾌락에만 몰두한다면 하나님의 벌을 받지 않을가 걱정이 됩니다.

짐승은 새끼를 낳아도 바로 일어서고 몇개월만 젖 먹이면 스스로 먹고 살고 하는데 유독 인간만은 낳아서 2년은 지나야지 일어서고 십수년을 먹여 살려야 하니
하나님도 보너스를 주시지 않고는 백여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이 바로 서서 걷기 시작하는 직립원인이 되면서부터 인간은 기어다니는 짐승에 비하여 골반이 약해지고 작아지고 또 수직으로 새끼를 담고 있으려니 작은 상태로 미성숙한 새끼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 젖먹는 유아 기간이 길어졌답니다.

그리고 기어다닐 때는 궁둥이와 뒤로 보이는 여성의 성기가 숫놈을 유혹하는 무기였는데 직립하면서 그런 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되자 대신 유방이 발달하여 앞에 달고 다니면서 숫놈을 유혹하는 무기로 발전했답니다.

말이 다른데로 빠졌네.... 용서

배규태

 

 

 

01/03 가까워 지려면 음식을 같이 먹어야한다. 14
사람이 사람과 가까워 지려면 음식으로 가까워 진다고한다.

세계를 여행하다보면 정말로 먹을 수 없는 이상한 음식을 대할 때가 많다.

상대는 자기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내 놓지만 도저히 먹기 힘든 음식인 경우가 많다.

음식 맛 보다도 더 한 것은 불결해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3년간 LG 소속으로 미국 벡텔사와 일을 할때 사막의 베두윈 족들의 텐트촌을 자주 놀러 갔었다.

그들은 큰 텐트를 2개 쳐 놓고 한 텐트에는 마누라들이 살고 다른 텐트는 주인과 손님 접대 응접실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손님이 오면 주인은 손님을 텐트안으로 안내하고는 텐트 중앙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놓인 주전자에서 까화(커피의 아라비아 말)를 잔에 따라준다.

주전자도 때가 새카맣게 묻어있지만 컵도 때가 고질 고질 묻어서 컵의 색갈이 원래 검은 회색인 것같다.

까화는 설탕도 타지않은 커피 원두를 그냥 삶은 물이다.
너무 떫어서 도저히 마시기가 힘든다.
그러나 그 더럽고 떫은 맛을 극복하고 마셔야한다.
까화를 마시면 주인은 그렇게 좋아한다.
억지로 다 마시면 즉시 다시 한잔을 따라준다
또 마셔야한다.
그러면 주인은 더 좋아한다.

그러나 날이 저물면 양고기 구운것과 요구르트라는 뻑뻑한 우유 같은것을 가지고 들어온다.

양고기는 생으로 구웠을때 역한 냄새가 심해서 먹기가 매우 힘든다.
그리고 그 요구르트라는 뻑뻑한 우유는 시큼한 것이 먹으려면 토할 것같아서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눈을 감고 먹어야한다.
억지로 먹으면 주인은 매우 기뻐하며 손님을 끌어안고 볼을 부비며 형제(샤딕)라고 하며 좋아한다.

음식을 자기들과 같이 공유했다는 것이 형제가 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시골에 농촌 봉사를 갔을 때도 그들이 내 놓는 조악하고 불결해 보이고 그런 음식을 같이 먹을때만이 그들도 같은 형제라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깔끔 떨고 음식 가리고 그래서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친구를 만들 수 없다.

그들을 사랑하는 눈으로 보면 음식이 다 맛있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는 키스도 하지 않는가 ?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입과 입을 그리고 혀와 혀를 서로 부벼댈 수 있겠는가 ?

성경에도 예수님이 가난한 농부들이 내 놓은 음식을 맛았게 드셨다는 기록이 많은 것으로 보아 사랑의 눈으로 정말 맛있게 드셨을 것이다.
(바쿠스님이 또 가난한 농부들 음식 빼앗아 먹었다고 트집 잡을라.... )
배규태

 

 

 01/04 농부의 음식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만.. 15
>성경에도 예수님이 가난한 농부들이 내 놓은 음식을 맛았게 드셨다는 기록이 많은
>것으로 보아 사랑의 눈으로 정말 맛있게 드셨을 것이다.
>(바쿠스님이 또 가난한 농부들 음식 빼앗아 먹었다고 트집 잡을라.... )

하하하~ (외람되었습니다만, 좀 웃고 싶었어요. ^^)

어째서 글 쓰며 바쿠스를 머리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집착하시는지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

습니다만, 이제 바쿠스에 대한 공연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셔도 좋습니다.

예수의 생활이란 게 일정한 직업도 없이 코 묻은 푼돈 동냥해서 먹고 사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예수가 가나안 농부들이 주는 보태주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전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만,

혹시, 배규태 형제님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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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주님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


바쿠스

 

 

01/04 Re:예수의 결혼 문제.../ 대단^^한 주장입니다. 12
"이용어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종교적 스승을 호칭할 때 사용했다.
처음에는 특별히 율법을 연구한 서기관에 대한 존경의 호칭이었다.
1세기경에는
본래의 특성을 상실하고
경칭과 대명사의 접미사로 사용되었다"
...요건 성서대백과사전의 설명이구요

가령나자렛예수처럼 서품을 받음으로써 종결되는 정규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사람들도 라삐라는 칭호로 불리어졌다는 것은 주후 1세기초에 이 칭호가 일반적인 명칭으로부터 오직 율법학자들에게만 붙는 칭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
...요건 요아힘 예레미아스의 설명입니다.

서품을 받는데는 40세라는 나이도 필요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서품을 받은 라삐였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원필


: 차후에 제 칼럼에서 한번쯤 다룰 이야기 이긴 합니다만...<p>
:
: 바이블에 보명 예수를 '랍비'라 불렀습니다. 랍비의 전통만 보면 예수의 결혼 여부를<p>
:
: 신빙성 있게 점칠 수 있답니다.<b>랍비는 결혼해야만 호칭되는 명예직 이거든요.</b><p>
:
: 물론, 1000년 전 어떤 사찰의 스님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없다고 해서 그건 결혼<p>
:
: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결혼하지 않은 이야긴 빠진거다. 라는 식의 기기절묘한 생각을<p>
:
: 하는 분도 틀림없이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물론 대처승도 있긴 있었습니다. 그런<p>
:
: 풍습은 훨씬 이후에 등장하게 됩니다. 게다가 스님이 결혼했다면, 특이한 일로 기록에<p>
:
: 남겨놓게 되지요. 상식적으로 봐도.<p>
:
: 대체로 스님이란 직분을 받는 사람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일반 '상식'이 듯이 <p>
:
: 랍비는 '결혼'했음이 상식이지요. 물론 <b>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당시 풍습상<p>
:
: 특이한 일로 기록으로 남겼을 것 이라는데 한표 던집니다.<b> <p>
:
: =================================================================================<p>
:
: ***** 당신은 주님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p>


바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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