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빗속을 달리며^^...

주방보조 2006. 7. 8. 00:59
오늘 중1 충신이의 학기말 꼬리표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펴 놓고 분석을 해봐도 ... 형편없는 점수에 가슴만 답답할 뿐 ...
자전거나 타고 한강 바람쐬고 나면 좀 나아질까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현관 앞에서 원경이를 기다리는 저를 
충신이 꼬리표때문에 화가나서 무서워진 마눌이 불러 세워 두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는
어딜 가면 꼭 자기한테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었는데(요즘 제가 이렇게 삽니다--;)
한강에 자전거 타러 간다하니
거기에 덧붙여
공부도 안하는 충신이도 데리고 가시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인용 자전거 파트너인 원경이 제 뒤로 따라 붙었고
마침 충신이 시켜 어제 브레이크와 패달을 손본 진실이의 자전거를 녀석에게 타라고 하였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모른다는 ... 으이구~
겨우 새집 앞에서 그 자전거를 찾아 뒤따르게 하면서 제 입에서 터져 나오는 호통을
저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정신없는 녀석~~

...

시험칠 때
제가
너 이렇게 공부를 안해서 어떻게 하느냐 걱정을 하였더니
왈...제 방식대로 공부하게 해 주세요 ...하길래
전혀 믿음이 가지 않지만 그래도 듣던중 기특한 말인지라, 오냐 한번 해봐라 하였었습니다.
BUT...
시험전날 저를 망가사이트 회원만들어 버린 것...
놀토와 주ㅡ일 내내 잠만 퍼져 자던 것...
틈만나면 축구공들고 교신이 데리고 사라져서 땀범벅이 되어 돌아온 것...
시험 시간표도 제대로 몰라 이리저리 전화질 하게 만들던 것...등등이
녀석의 방식이었던 것임에야
자전거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는 것 정도로 화를 내는 저 자신이 우스웠습니다.
결국 참아내었죠...

...

한강 자전거길을 나서니
과연 마음도 좀 가라앉고...
아들도 불쌍해 지고...
뒤에 엄마 자리 차지하고 떠들어 대는 원경이와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솔솔 붙고 좋았습니다.

살곶이 인라인 스케이트장까지  한번도 쉬지않고 내달았지요.

...

수돗가에서 목을 축이고 땀을 씼는 중에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충신이와 대화를 나누었지요. 뭐 거의 저의 일방적인 이야기였지만...

메국의 할머니나 나나 엄마는 네가 혹 뇌에 이상이 있지 않나 걱정을 하고 있다.
가능성은 두 가지이지.
하나는 정말 너의 뇌에 이상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의 생활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만약 뇌에 이상이 있다면 ...
너의 모든 것을 우리가 수용하고 너를 편하게 해주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고
다행히 그렇지 않다면 ...
좀 더 노력하고 애써 볼 일이고...

녀석은 절대로 자기 뇌가 비었거나 신경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솔직히 지금 누리고 있는 게기는 생활태도를 바꿀 의향도 별로 없어 고민하는 꼴이었습니다.

...

그러는 사이 비는 점점 더 굵어지고
날은 캄캄해졌습니다.

비를 맞으며 달렸습니다.
중간중간 다리 아래서 쉬며 물기를 딲아가며 신나게 달렸습니다.

원경이는
이인용자전거 뒤에 물받이가 없어서 머리부터 등 바지까지 온통 물천지가 되자 울음을 터뜨렸고 ...
충신이는
별로 즐거운 대화는 아니었지만 그저 대화를 통해 마음이 편해졌는지...목소리가 밝고 커졌고...

저는
그저 답답한 가슴...차갑게 온몸을 적시는 빗줄기에 털어버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원경이가 한마디 했습니다.

"행복해요"
"왜?"
"아깐 너무 추워서 불행했거든요"

하하...
그러고 보면
인생이 정말...그렇지 않습니까? 

 

 

 

  • 하얀파도2006.07.08 01:16 신고

    ㅋㅋㅋ.....
    자꾸만 웃음이 나오네요....
    파도는 아들녀석이 중학교때...
    아들이 학습장애가 있는 애인줄 알았거든요...
    욕심것 받지 못한 성적표때문에...
    죽기 살기로...
    아들과 운동장을 돌았던 추억이 생각이 나네요...
    비가 무지 내리던날...
    자전거를 타고...
    끝도 없이 페달을 굴려보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살아가는 과정중..
    행복했던 시간중에 하나였던것 같아요..
    아이들이 여러명이란것은 그만큼 행복한 추억들이 많아진다는 것이겠죠..

    답글
    • 주방보조2006.07.09 02:33

      제 마음을 아시겠군요^^
      우리 츙신이는 자폐증이 좀 있는 것같아요--;; 당근 학습장애도 있는 것같구요...

      행복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 김순옥2006.07.08 07:35 신고

    원경이랑 충신이의 모습이 하나가 되어 크로즈업되는군요.
    막내딸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귀여움을 타고 나는 것 같지요?
    충신이가 아빠의 마음을 온전하게는 아니겠지만 잘 알리라 믿습니다.
    아직은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갖지 못함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부모는 아닐까요?
    설령 공부에 대한 열정이 언제쯤 생기게 될지 아니면 그보다는 또다른 달란트의
    획기적인 모습으로 아빠를 깜짝 놀라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아이들이 기말고사를 거의 끝내는 중이더군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공부에 대한 관심은 모두 같아 보였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저는 두 아들들을 떼어놓고 오랜만에 남편과 둘이서 꽤 많은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될 것 같아 보입니다.
    지금은 좋은데 앞으로는 잘 모르겠네요 ㅎㅎㅎ

    행복과 불행의 차이...큰 것 같지만 또한 작은 것도 같고...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겠지요?
    원경이가 언제나처럼 참 예쁘네요.

    답글
    • 주방보조2006.07.09 02:48

      이제 메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신 거군요^^

      우리 충신이는 요즘 꾸부정한 자세로 썩소^^를 휘날리며
      하지마라하는 것은 하고 보지마라하면 보고 하라고하면 하는 첛만 하면서 세월을 게깁니다.
      공부뿐 아니라--;;;

      마눌과 녀석의 장래에 대해...남대문시장의 처남이 아는 분께 부탁해서 장사나 가르쳐야될까부다...이야기하면서 웃었습니다.
      목소리 크지, 좀 이상하게 생겼지,,,뻔뻔하지...^^

      ...

      무자식상팔자^^...잠시겠지만 즐겁게 누리세요^^

  • 쌍그아부이2006.07.08 13:37 신고

    교신이 아빠도 자식 얘기는 길게 쓰는구먼요.^^

    답글
    • 주방보조2006.07.09 02:55

      이게 뭐가 깁니깡?
      속마음 다 털어 놓은 것도 아닌데요
      제 속에 있는 거 다 털어 놓아봐야 쌍끄목사님 강해설교 절반도 안되겠지만...
      ...

      아니 근데
      이런 글을 읽고도 '길고 짧은 거" 타령만 하시믄...안되는 거 아녜요?

  • coolwise2006.07.08 23:23 신고

    하하하.. 고생 많으십니다. 아빠님.. ㅎㅎ
    '자기 방식'으로 시행착오를 겪어보지 않으면 뭔가 아쉬움이 남을 겁니다.
    어릴때 충분히 겪어볼 기회를 갖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지요. ㅎㅎ
    마침 하늘에서 비까지 내려주신 모양입니다.. 다 씻어내라구요.. ㅎ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6.07.09 03:03

      저도 마음 한켠에 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직 중1이니 자기생각에 따른 결과를 맛보고 깨닫게 해 주자...

      그런데
      잘못했다는 생각이 꼬리표와 함께 확실히 확인되었다고나 할꺄요^^

      비맞고 자전거 타는 것...비옷만 준비되어 있으면 무지 해피할 것같아요...물이 흘러 아랫도리를 적셔가는 기분이 오직 칩칩하니까^^

  • malmiama2006.07.10 07:39 신고

    행복이란..?
    원경이의 그 심정에서 나오는 한마디에 농축되어 있습니다..요.^^

    답글
    • 주방보조2006.07.10 16:48

      저도 앞으로 그럴 날이 오리라 소망하고
      충신이를 바라봅니다.

      녀석이 보여주는 절정의 귀차니즘..샤워하여 털어버리듯 할 날이 오겠지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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