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모든 식구가 노는 '놀토'라 불리는 토요일이 한달에 두번씩 찾아옵니다.
다섯놈 모두 학교가는 토요일에야
마눌과 저 둘만 오붓한 시간을 갖습니다만^^
디섯놈 모두 쉬는 토요일이 되면 뭔가 가장으로서 이 놀토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슬며시 압력이 되어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남들이 다 하는 '등산'을 목표로 세워 놓고 이번 놀토를 지낼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느 산이 좋을까?
자전거 타고 갈 수 있는 아차산에나 갈까,
아니면 기차타고 소요산이라도 다녀올까 하다가,
더 적절한 곳을 찾아볼 요량으로 '등산지도 200산'을 펴 놓고 뒤적거리기까지 하였더랬습니다.
...
그러나
일단 마눌이 저의 가장으로서 갖는 놀토에 대한 중압감을 툭 깨뜨렸습니다.
'난 산에는 안가요. 바람도 불고 설문지도 더 살피고 다듬을 일도 있고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산은 안갈래요. 저랑 그냥 산보나 잠간해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실이가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나실이는 정색을 하면 마눌 화났을 때만큼 무섭습니다^^
'1시반에 우리 조원들하고 기술 숙제 같이 하기로 했어요.'
학교 수업과 관련된 약속이라니 별 수 없이...나실이는 안 되게 되었지요.
진실이는
이번 모의고사 결과에 눈물까지 아주 조금 ^^ 보인 고2답게
'저는 공부나 할래요'라고 함으로써 ... 까짓 놀토의 참여를 넘어서는 기쁨을 제게 안겨주었구요.
...
나머지 잔챙이 셋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는 일은 식은죽 먹기가 된 것같았습니다.
야~ 우리 기차타고 소요산에 한번 가볼래?
싫어요
그런 아차산에나 갈까?
우~
음...그럼 자전거 타고 국립박물관에 가는 것은 어떨까?하고 물으려 하는데
충신이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고^^, 원경이는 그냥 알아서 놀께요 라고 하고, 교신이는 티비를 틀어 투니버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ㅎㅎ...이렇게 소중한 놀토를 뭔가 낭비하는 것같아 안타까웠지만^^ 일단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은 툴툴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맙다든지...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고...뭔가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손상을 입은 것같은 께름직함이 밀려왔습니다.
...
일단 큰 여자 셋은 공부를 하고...중간에 나실이는 학교에 갔다가 한참 후 돌아왔습니다만...
꼬맹이 셋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나타났습니다.
5시 즈음에 모두 모인 가운데 손상받은 가장의 권위를 드높이 세우기 위하여...외쳤습니다.
"모두 한강으로! 자전거 타고! "
그리고는 나실이에게 돌아오는 길에 냉면이라도 먹자...고 귓속말로 미끼까지 던졌습니다.
...
그러나
자전거 타고 한강 가는 일은 ...마눌의 반대와 오래 방치 해 놓은 자전거들의 상태 불량으로 취소되고
바로 옆 자양 중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하는 것으로 낙찰되었습니다.
껍질 벗겨진 배구 공은 가지고 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천막 위로 올라가 버렸고
캐취볼은 교신이 얼굴에 충신이의 살살 던졌다는 공이 부딪친 후에 눈물과 함께 끝이났습니다.
마눌과 저 그리고 교신이가 한팀이 되고 ...진실 나실 충신 원경이 한 팀이 되어 벌인 줄넘기 시합에서는 제 바지가 자꾸 흘러 내리는 바람에 중도에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우리 팀이 졌고
마지막으로
마눌은 심판을 보고 저와 진실 교신이 한팀이 되고 상대로 충신 나실 원경이 한 팀이 되어 벌인 릴레이에서도 마눌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저를 응원한 것이 아니라 교신이를 응원한 것이지만^^) 우리 팀이 지고 말았습니다.
식구가 많으니...^^
뭘해도 재미있다는 것을 만끽하고...
더불어 ... 즐거운 웃음들 틈에 제 권위도 회복되었지요. 믿거나 말거나^^
...
봄...그리고 놀토...
저녁에 식사로 시켜 먹은 싸구려 피자 맛 같았습니다.
맛있었냐구요?
배고픈데 그럼 맛 없었겠습니까?^^
-
놀토...
답글
식구가 많으시니 장점이 많군요..
운동회도 열수 있고.....ㅎㅎㅎㅎ
파도는 놀토에 엄마가 오셨었어요..
전철도 겨우 부축을 해야만 타실수 있는 몸으로요..
엄마의 친정 조카가 결혼을 했거든요.
팔십을 바라보시는 엄마가 정말 어렵고 나들이를 하셨는데..
예식장과 3분거리에 사시는 이모와 외삼촌들..
누구 하나 자기 집에 가서 쉬었다 가라고 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파도에게 엄마 맛있는거 해드리라고...
모시고 가서 쉬게 해드리라고 말을 할뿐....ㅋㅋㅋ
팔십을 바라보시는 엄마는 시골에서 오시느라 새벽부터 오셨고...
예식장에서 파도 집까지는 두시간 가까히 걸리더군요.
엄마를 모시고 오면서...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치더군요...
외삼촌과 이모 ..
어릴적부터 나와는 아주 먼 사람들로 생각하고 살았지만...
파도가 아이를 낳고 살때...
이모랑 외삼촌께서 이젠 옛날일 다 잊고..
(옛날일이란 이모와 외삼촌은 부자고 엄마는 가난했던거죠)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씀에 감동을 받아서..
찾아 뵙기 시작했는데....
최악이었답니다..
히히...갠시리 서울에세 뺨맞고 이방에서 화풀이 하네요..
아무튼 행복해 보이십니다.. [비밀댓글]-
주방보조2006.03.30 17:14
음...저의 어머니도 똑같은 형편이셨습니다. 외삼촌 둘은 물려받은 재산 가지고 버티고 잘 사셨는데, 저의 어머니는 시집 잘못오셔서^^지독히 가난하게 사셨거든요. 외할머니(올해 백수시죠)만이 오며 가며 안타까워 하셨지...참 쌀쌀멎게 외면하셨더랬어요. 제가 고등학교 합격하고 입학금 6천원(공립이라 싼 편이었죠)빌리러 갔다가 자기말대로 공고보내지 않았다고 알아서 하라는 말 듣고 빈손으로 오셔서 문지방에서 무너지듯 쓰러져 통곡하시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결국 시잡간지 얼마 안되는 가난한 누나 결혼 예물 금반지 금팔찌 팔아서 제 입학금 대고... 또 우셨구요.
그들은 지금도 잘 살지요. 자식들도 잘되고...
저의 외할아버지가 항상 ...형제는 남되는 시초다...하시며 저의 어머니에게 네가 아들이 되고 저 놈들이 딸이 되어야 했는데 하셨다더군요.
그 외할아버지는 저 낳고 고생하는 딸 약지으러 나가셨다 길에서 돌아가셔서 저의 어머니를 더욱 죄인 만드셨지요...
...
그까잇것...무시하세요^^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갚아주시면 되지요 뭐... ^^
더 잘해 드리시구요...^^ [비밀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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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토에 한빛이랑 제일 친한 수현이랑 수영장에 갔답니다.
답글
수현이 엄마는 이 달부터 수영을 시작했는데 저는 못했습니다.
수현이랑 한빛이는 2년 전쯤 1년 정도 했었고 방학 특강을 했던 적이 있구요.
저는 아직도 저 자신을 위한 투자에는 서툰 간이 작은 엄마라서...
두 넘들 수영장에 넣어 놓으면 수영을 하기보다는 노닥거리는 것에 더 열중이거든요.
밖에서 아무리 속이 터져도 이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라...
아침에 한빛이에게 독수리5형제의 놀토 얘기를 하면서 부끄러웠습니다.
저희 부부는 정말 아이들에게 해주는 게 없거든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개인적인 시간이 더 많게 되지요?
하지만 함께 어울리고 그 가운데서 웃음소리가 울려퍼지고...
가족의 힘을 키워가는 아름다운 모습이네요.-
주방보조2006.03.30 17:23
아니 수영장에 데리고 가셨다면서
해주는 게 없다고 하시면...안되지요^^
사실 큰 놈들은 공부가 점점 큰 중압감으로 다가오고
그러다 보니 마음껏 뛰어 놀아야 될 아래 동생들조차...그 분위기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큰 놈들이 한얼이처럼 스스로 알아서 하면 좋을텐데...그러지 못하니 저나 마눌의 발목을 잡는 편이구요.
게다가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몸이 삐끄거리는 데가 많아져서 점점 굼떠지구요^^
진실나실 대학들어가고 나면...이런 시간도 갖기 어려워지겠지요^^ ㅎㅎ 산다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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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운동회'가 가능한 가족이 요즘에 몇이나 될까.. 싶네요.
답글
가끔 티비에서 아이들 많은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여기 원필집사님네 가족 생각이 납니다.
나도 저렇게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을 아는데.. 하면서 말이죠. ^^
사실 티비에 나올 정도면..
다섯 아이는 쨉도 안되게.. ㅋㅋㅋㅋ
많은 가족들도 꽤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티비에 나왔겠지만...
자녀들의 어린 시절에 무한한 추억거리를 선사하시는 좋은 아버지를 둔 다섯 남매가 부럽습니다.
우리 아부지도.. 어린시절의 우리들과 잘 놀아주셨더랬는데..
^^ -
기숙학원에서 2박3일 휴가를 나온 정민이와 어제 오후에 통화를 했습니다.
답글
"오늘 저녁에 교회 다녀와서 가족모두 식사할까?"
"...그냥 집에서 치킨시켜 먹는 게 저는 더 좋아요"
아이들이 클수록 함께 어울리기가 쉽지 않지만 뭐..어쩝니까. 좋다했지요.
옆에 유민이가 있었나 봅니다.
전화를 바꿔든 녀석이 "...아빠,나 교회 안가고 큰오빠랑 있을래요!"
"유민아..아빠는 교회에서 유민이를 보구 싶은데 어쩌지? 엄마랑 교회에 와서
만나면 안될까? 왜 아빠는 보고프지 않아?"
"...알았어요. 교회에서 봐요~" ㅎㅎ
퇴근 후 곧장 교회에 갔더니 반주하는 엄마 무릎에 머릴대고 자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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