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조정희칼럼

'어리석다'에 대하여 (6): 원숭이 마음

주방보조 2004. 2. 8. 03:45
<제115호> '어리석다'에 대하여 (6): 원숭이 마음 2003년 08월 19일


'어리석다'의 뜻을 여럿으로 나누어서 바보, 어림, 미련함, 그리고 우(愚)까지 살펴봤습니다.  

'바보'는 나면서부터 마음 작용이 모자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림'은 아직 일정한 기준에 도
달하도록 성장하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 작용의 모자람을  가리킵니다.  '미련함'은 어리석은
데다가 고집까지 덧붙여진 것을 가리키고, '우(愚)'는 여러  고사성어에서 긍정적인 뜻으로 쓰
이는 용례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을 우(愚)자가 참 재밌습니다.  원숭이 우( )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쳐진 글자
가 바로 우(愚)자입니다.  우( )는 원숭이 중에서도 '긴꼬리원숭이'를 가리키는데, 우( )자의
아랫부분 안쪽에 그어진 획들은 꼬리를 가리키는 형상이라는군요.  그러니까 '긴 꼬리 원숭이
의 마음'을 '어리석다'고 한 셈입니다.

오늘날 분류학에 보면  원숭이는 원원류(原猿類-Prosimii)와  진원류(眞猿類-Anthropoidea)의
두 가지로 나뉩니다.   원원류는 다시 여우원숭이류(Lemuriformes),  로리스류(Lorisiformes),
안경원숭이류(Tarsiformes)의 세 종류로 나뉘고 진원류도 꼬리감는원숭이상과(Cebidae)•긴꼬
리원숭이상과(Cercopithecidae)•사람상과(Hominidae)의 3무리로 나뉜다는군요.  

생소한 용어가 나오면 귀찮으시죠?  그냥 건너  뛰세요.  다만 원숭이는 크게 두 가지(원원/
진원류)인데 그중에서 진원류가 원원류 보다 똑똑하다는 정도는  알아두시면 써먹을 데가 있
지 않을까 싶군요.

진원류 중에서도 꼬리감는 원숭이류는 광비원류(廣鼻猿類-코가 넓적한 원숭이류)라고도 한다
는데, 활동적이고 지능이 좋으며, 나무를 잘 기어오른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로 사
는 데가 멕시코 남부에서 아르헨티나 북부의 아메리카  지역이니까,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특
히 2천년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한자 우( )가 꼬리감는 원숭이였
을 리는 없겠습니다.

따라서 우( )는 '긴꼬리 원숭이'거나 '사람상과'에 속하는 원숭이가 되어야 할겁니다.  사람상
과에는 사람을 제외하면  성성이•침팬지•고릴라•긴팔원숭이가 속합니다.   특히 침팬지와
고릴라는 사람과 생물학적으로 매우 가까운데,  꼬리가 없는 게 특징입니다.  사람도  꼬리가
없지요?  이 원숭이들은 한자로 성(猩)이라고 표현되고 영어로는 에이프(ape)라고 부릅니다.

끝으로 '긴꼬리원숭이류'는 협비원류(狹鼻猿類-코가 쪼삣한 원숭이 종류)라고도  하는데, 얼굴
이 작고 턱의 돌출 정도가 작으며, '뇌의 크기도 작다'는군요.  다시 말해 그다지 똑똑한 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한자의 우( )인데, 영어로는 흔히 멍키(monkey)라고  부릅니
다.

그래서 똑똑한 순위를 매기자면 긴꼬리 원숭이( -monkey)는  진원류 중에서는 제일 멍청하
지만 원원류들에 비하면 똑똑한 편인 셈입니다.  원류 중에서 가장 똑똑한 것은 꼬리가 없거
나 짤막한 성성이(猩-ape) 종류인데, 그중에서, 자랑스럽게도, 꼬리가 전혀 없는  사람이 가장
똑똑합니다.

그렇다면 우(愚)자가 '어리석다'는 뜻이 된 것은 '에이프(猩)에 비해서 멍키( )가 어리석다'는
뜻이었을까요?  글쎄요.  우(愚)자는 갑골문이나 금석문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적어도 설문
해자(說文解字)에는 해설돼 있습니다.  적어도 2천년 정도는  된 글자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2천년 전에 멍키와 에이프를 구별하고 그 둘의 지능이 측정되고 비교됐다고 보기는
좀 어렵겠습니다.

사실 긴꼬리 원숭이( )의 마음(心)을 '어리석다'고 한 것은 좀 의외입니다.   아무리 우( )가
성(猩)보다 좀 덜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똑똑한 편이기 때문
입니다.  멍키와 소, 혹은 멍키와 말을 비교해서 멍키가 더 어리석다고 보았을 리는 없겠습니
다.

그렇다면 우( )의 마음을 어리석다고 푼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조삼모사(朝三
暮四)라는 고사(故事)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자(老子), 장자(莊子)와 함께 도교 3대 경전
의 하나인 열자(列子) "황제편(皇帝篇)"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宋나라 때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원숭이를 사랑하여 여러 마리를 길렀는데, 저공은 원
숭이 뜻을 알 수 있었고 원숭이도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가면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 줬는데, 그러다가 먹을 게 떨어졌다.   앞으로 먹이를 줄여야
되겠는데 원숭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을 게  두려웠다.  (宋有狙公者愛狙 養之成群. 能解狙之
意 狙亦得公之心. 損其家口 充狙之欲 俄而?焉. 將限其食 恐衆狙之不馴於己也.)

"그래서 속여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겠는데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  
좋으냐?' 했다.  원숭이들이 들고 일어나서 화를 냈다.  그래서 곧바로 말했다.  '그럼, 먹이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  좋으냐?'  그러자 원숭이들이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
했다."  (先詭之曰 '與若 朝三而暮四 足乎.'  衆狙皆起而怒 俄而曰 '與若 朝四而暮三 足乎.'  衆
狙 皆伏而喜.)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야기의 주제는 간교한 속임수를 썼던 저
공을 비난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원숭이들의 멍청함
도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이든 조사모삼(朝四暮三)이든 하루 배급량에 차
이가 없는데, 화를 냈다가 기뻐했다 하는 원숭이가 '어리석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나마 그렇게 간단하게 끝낼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공은  '교활하고' 원숭이는 '어리
석다'는 말이 사실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저공(狙公)의 저(狙)가 바로 원숭이를  가리키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이 조삼모사 우화는 "한편으로는 교활하지만 그게 결국 어리석음"이라는 뜻을
가리키는 지도 모릅니다.  원숭이의 두 가지 특성을 이 우화에서는 저공(狙公)과 저(狙)로 나
누어 제시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말장난 같이 들리는 역설을 즐
겨 사용했던  노자, 장자, 열자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게 그냥 웃어넘길 인물(원물) 설정이 아
닌 것 같다는 말입니다.

중국에는 '교활하지만 어리석은' 원숭이, 그래서 결국 '남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했던'  원숭
이 이야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돌 원숭이, 제천대성 손
오공(孫悟空)입니다.

석가여래를 만나기 전까지 손오공은 완전히 망나니였습니다.  화과산에서 미후왕 할 때나, 용
왕한테서 여의봉을 빼앗아 올 때나, 천상에  가서 천도복숭아를 훔쳐먹을 때만해도 손오공은
개망나니로 그려집니다.  그 변모 전의 손오공의 모습이  바로 우(愚)라고 봅니다.  똑똑하고
민첩하고 용맹스럽지만 하고 다니는 짓들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손오공의 우(愚)는 석가여래를 만나면서 조금씩 고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깐에는  날고 긴
다고 까불었지만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부린 얄팍한  재주에 불과함을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현장을 만나기까지 무려 5백년을 돌산에 갇혀서 뜨거운 쇳물이나 먹고살아야 했지요.  

현장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면서 좀 제대로되는가 싶었지만  옛날 성격이 수시로 나옵니다.  
그걸 통제하는 게 바로 손오공 머리에 씌워진  금테입니다.  이제 손오공은 완전히 삼장법사
의 감독 아래에 들어갔고,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손오공은 14년간 81난을 이겨내 가며 대승
경전을 구하는 공을 세웁니다.

그래서 "열자"와 "서유기"의 원숭이는 천방지축이거나  교활하면서도 결국은 제 꾀에 넘어가
는 어리석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愚)는 '바보' 같은 천부적인 어리석음도 아니고, '어림'
같이 미성숙한 어리석음도 아니고, '미련함' 같은 고집스런 어리석음도 아닙니다.  그것은 '똑
똑은 하되 다듬어지거나 통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어리석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 '통제되지 않은 똑똑함'이 방치되면 그  자체가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은
고쳐질 수 있습니다.  제대로 통제되고 조율되기만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어리석음이 아닙니
다.  

앞글에서 본 것처럼 우공(愚公)의 어리석음이 결국은  산을 옮기는 위력을 발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방지축의 똑똑한  어리석음이 제대로 조율만
되고 통제만 되면 그것은 '슬기'로 변모된다는 말입니다.

맥락에서 조금 벗어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중국에는 원숭이가 등장하는  고사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건 채염(蔡琰)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편(黜免篇)"에 나오는 단장(斷腸)
의 고사입니다.

"환공(晉(東晉)나라의 환온(桓溫), 317∼373)이 촉(蜀) 땅을 정벌하러 들어가  삼협(三峽)을 지
날 때였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았다.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
나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기만 했다.  (桓公入蜀 至三峽中 部伍有得猿子者 其母緣岸哀號)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1백여리나 배를 따라 쫓아왔다. 배는 강기슭에 닿자 어미 원숭
이는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토막토
막 끊어져 있었다. 이 사실을 들은 환온은 노하여 원숭이 새끼를 붙잡은 사람을 매질해서 쫓
아 버렸다." (行百餘里不去 遂跳上船 至便卽絶 破視其腹中 腹皆寸寸斷  公聞之怒 命黜其人).

이런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고사의 주제는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모성애(母性愛)라고 해
야겠지요.  원숭이도 그렇게 제 자식을  사랑하는데, 하물며.... 하면서 인간의  추태를 비웃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고사입니다.  요즘은 창자를 토막토막  잘라내는 듯한 고통 그 자체를 가
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됩니다.  

어쨌든 어리석을 우(愚)자가 원숭이 우( )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원숭이가 원래부터 어리석은
동물이 아닙니다.  원숭이는 원래 똑똑한 편입니다.  다만 그 똑똑함이 통제되지 않았을 때에
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는 것이지요.  그런 어리석음이 바로 우(愚)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愚)가  잘 계획되고 통제되고  조율되면 '슬기로움'으로 변모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愚)가 '바보'나 '어림'이나 '미련함'과는 다른 점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다른
어리석음과는 달리, 우(愚)는 본래 부정적인 뜻이지만 때로 긍정적인 뜻으로도 쓰이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