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호> [개념] "느끼다"에 대하여 (1) | 2001년 11월 25일 |
靑山은 내 뜻이요 綠水는 님의 情이 綠水ㅣ 흘러간들 靑山이야 變할손가 綠水도 靑山을 못 니저 우러 녜여 가는고. 조선 중종 때의 송도 명기 황진이의 시조입니다. 더 많이 알려진 그녀의 작품으로는 "청산리 벽계수야 ..."가 있지만, 이 시조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제 이름(명월)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좀 덜 노골적이라고 할까요? 마음에 둔 님이 떠나가는 것이 상당히 안타까운 모양입니다. 특히 물과 같아서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못할 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앉아 있는, 움직일 수 없는, 따라 갈 수 없는 청산의 마음이라면 더욱 그렇겠습니다. 황진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시조의 첫줄 때문입니다. 청산은 "내 뜻"이고 녹수는 "님의 정"이랍니다. "나"와 "님"이 댓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와 "님"이 댓구를 이룬다면 "뜻"과 "정"도 댓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댓구가 되려면 유사어거나 반대어가 되어야겠습니다. "뜻"과 "정"이 반대어일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두 낱말은 비슷한 말, 아니, 같은 말입니다. "뜻"이 곧 "정(情)"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자전에서는 정(情)을 "정 정"이라고 다소 우습게 풀고 있습니다. 아마 정(情)이 무엇인지 모두들 알고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하지만 정작 정(情)이 무엇인지 다 아는 것 같은데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그게 마음같이 잘 안됩니다. 또 그럴 필요가 없으면 좋겠지만, 때로는 이미 다 아는 것도 한번씩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을 때도 있는 법입니다. 제가 가진 좀 오래된 자전에는 정(情)이 "뜻 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이 뜻이랍니다. 좀 생소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16세기에 편찬된 한자 학습서들을 보면 정(情)이 모두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훈몽자회(訓蒙字會)와 천자문(千字文-광주본), 그리고 유합(類合-칠정사판), 그리고 신증유합(新增類合)에서는 정(情)을 모두 " "이라고 풀었습니다. 주해천자문(중간본)과 영장사판 유합에서는 이를 " 졍"이라고 풀어서 받침 표기상의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시기가 달라서 어형이 변했기 때문일 뿐,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모두 그저 "뜻"입니다. 그런데 한국말로 "뜻"으로 새겨지는 한자가 두 개 더 있습니다. 의(意)와 지(志)가 바로 그것입니다. 앞에서 본 모든 문헌들에서 이 두 한자는 "뜻 의"와 "뜻 지"로 풀리어 있습니다. 정의지(情意志)가 모두 "뜻"이랍니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오게도 됐습니다. "정의지(情意志)가 모두 '뜻'이라는데, 그럼 뜻이 뭐냐?"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정(情)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정(情)과 감(感) 불교와 유교에서는 칠정(七情)을 말합니다. 예기(禮記)에 보면 희노애구애오욕 (喜怒哀懼愛惡慾)의 일곱가지를 칠정(七情)이라고 했습니다. 또 문헌에 따라서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혹은 희노우사비경공(喜怒憂思悲驚恐)이라고도 합니다. 불교에서도 칠정(七情)을 말하는데, 거기서는 희노우구애증욕(喜怒憂懼愛憎慾)이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정(情)을 일곱 가지로만 제한하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칠정을 한데 뭉뚱그리면 희노애비락 애사오증우 경공구욕 (喜怒哀悲樂 愛思惡憎憂 驚控懼慾)으로 모두 14가지가 되는군요. 어쨌든 이것들이 바로 사람의 정(情)이랍니다. "기뻐함(喜), 화냄(怒), 슬퍼함(哀悲), 즐거워함(樂), 사랑함(愛思), 미워함(惡憎), 걱정함(憂), 두려워함(驚控懼), 탐냄(慾)" 등이 모두 정(情)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흔히 감정(感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정(感情)이라는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자면 간단히 "느낀 뜻"이라고 직역될 수 있겠습니다. 감(感)이 "느끼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느끼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너무도 기본적이고 익숙한 낱말이어서 그런지 선뜻 그 뜻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언어의 자의성에서 훨씬 덜 자유스러운 고유어 "느끼다"에서는 그 뜻을 유추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17세기 낱말에서는 "느끼다"가 "늗기다"로 표기되었다는 점까지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정의(定意)해 놓은 문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느낄 감(感)자를 파자해 보았습니다. 감(感)을 파자해 보면 함(咸)과 마음 심(心)의 합자입니다. 함(咸)자는 다시 술(戌)과 구(口)의 합자입니다. 그리고 술(戌)은 무(戊)와 일(一)의 합자이지요. 여러 단계를 거친 복합자인 만큼 파자와 그 해석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선 무(戊)는 창으로 해석되는데, 일(一)은 그 창으로 맞아서 난 상처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戌)은 "상처"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입 구(口)자와 합자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함(咸)은 입으로 생긴 상처, 즉 "물린 상처"로 풀리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 물린 상처(咸)가 난 곳이 바로 마음(心)입니다. 그게 바로 감(感)자입니다. 그래서 감(感)의 어원적인 뜻은 동사로는 "마음에 상처가 나다, 마음에 상처를 입다"이고 명사로는 "마음에 난 상처"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감(感)을 "느끼다, 느낌"으로 새깁니다만, 그것은 반드시 마음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마음이 상처를 입었다는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살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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