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호> 학교공부와 관련된 몇가지 기억... 2002년 07월 11일
초등학교시절(60년대말)
중학교 진학하는 방식이
시험에서 뺑뺑이?로 바뀌는 바람에...완벽한 놂^^...으로 학교생활을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숙제를 하지 않아도 진학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며 시험성적이 엉망이어도 물론 상관없었거든요...
중학교에 진학하고나서는 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매로 다스리던 시절이었고
우수반과 열등반을 확연하게 구분해 놓았거든요.
1,2학년때까지는 정말 선생님께 매맞지 않으려고 공부를 했습니다.
중3이 되었는데...이때부터는 매주 시험을 보고 갈 수 있는 학교를 대략 결정짓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경기,서울,경복,사대부고,용산....을 5대공립이라고 하고 ...모든 학교들을 순서대로 서열을 따지던 시절입니다.
저는 한계에 도달했죠...5대공립은 차치하고...그다음 서열에 드는 보성,동성,배제,성동등을 넘어서...^^
그런데 말이죠...어머니께서는 그즈음 항상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넌 최소한 용산은 가야지? 갈 수 있지?
제 마음은 복잡하게 얽히고 말았었죠
타임머신을 타고 대학졸업식에 가 있던지...어머니께서 내가 시시한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 보시기 전에 돌아가시던지...크억!!!...
물론 어머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습니다.
중학교때도 그랬지만 고등학교때는 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남들 다하는 과외는 커녕 학원문턱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고1때 학교성적이 600 여명중에 500 여등이었는데 야구,유도,검도,육상 특기생들을 빼면 단연 톱이었죠...꼴지에서^^
그 성적이 기록된 통지표를 집으로 가져가면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잃어버렸다고 할까...아님 숫자를 고칠까...가출해 버릴까...죽어버릴까...--;;;
엄마...도장찍어 주세요
뭔데
통지표예요
어디 보자
...
그래 애썼다.
ㅋㅎ!!!!
이때의 상황은 지금도 그 표정하나 동작하나 안잊혀지고 동영상으로 재생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죄송함...섭섭함...자유함...커다란 마음의 짐을 덜어버린.듯한 홀가분함...
...
그래서 성적이 좋아졌냐구요?
아니요...
그렇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책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죠
...
어머니께서 제게 기대하시던 것을 버리셨을 때
저는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
저는 아이들에게 저의 경험을 적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인간이 되도록...만드는 것말이죠
그런데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얼마나 높은 초월의 경지인지...매번 확인하며 삽니다.
변변찮은 넘!!! 그렇게 안하니 그 꼴이짓!!!...
이런 소리지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