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성경에 대하여

법화경을 가지고 거는 시비...에 대한 생각.

주방보조 2003. 10. 7. 21:35
"대승의 교리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종파(宗派)의 총칭. 삼론종(三論宗)·법상종(法相宗)·화엄종(華嚴宗)·천태종(天台宗)·진언종(眞言宗)·율종(律宗)·선종(禪宗) 등이 이에 속한다. 석가 입멸(入滅) 후 500년경(BC 100년?) 인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까지 여러 파로 갈라져 자파(自派)의 주장만이 최상의 것이라고 고집하여 온 불교의 자세를 맹렬히 비판하고, 재래불교를 소승(小乘:Hinayana)이라 폄하(貶下)하는 한편, 대승이라고 칭하면서 이타적(利他的)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발하고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대승’의 어원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까지 석가에게만 한정하던 보살(菩薩)이라는 개념을 넓혀 일체중생의 성불(成佛)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일체중생을 모두 보살로 보고, 자기만의 구제보다는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보살의 역할을 그 이상(理想)으로 삼고 광범위한 종교활동을 펴 나갔다. 이 불교운동의 전거(典據)로는 대승불교의 경전이 속속 이루어진 데 있었다. 먼저 《반야경(般若經)》이 나왔다. ‘공(空)’의 사상을 강조하는 《반야경》은 종래의 고정관념을 타파함과 동시에, 일체의 집착(執着)으로부터의 해탈(解脫)을 실천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어 일체를 포함하여 ‘일승(一乘)’을 교설(敎說)하고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을 세우는 《법화경(法華經)》, 광대한 불타[毘盧遮那佛]의 세계를 교설하는 《화엄경(華嚴經)》, 재가거사(在家居士)인 유마(維摩)가 오히려 출가자(出家者)를 교설하는 《유마경(維摩經)》, 서방정토(西方淨土)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세계를 찬탄하며 일체중생의 구제를 약속하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등이 이루어져 종래의 불교를 일신하는 이 새로운 불교운동을 뒷받침하였다. 이 경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대승이 불교의 중심세력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거니와, 2∼3세기에는 용수(龍樹)가 출현하여 이 대승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이어 일체중생에 불성(佛性)을 인정하는 여래장(如來藏)을 교설한 《승만경(勝經)》 등의 경전이 이루어졌고, 또한 일체를 마음의 흐름에 응집(凝集)시키는 유식(唯識)사상의 대두에 이어 5∼6세기에는 불교논리학인 《인명(因明)》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대승불교 초기부터 일반민중의 교화를 위해 만들어진 《다라니(陀羅尼)》를 외우고 주법(呪法)을 교설하는 밀교(密敎)가 성하여 7세기 이후 불교활동의 중심이 되었는데, 밀교는 ‘대승’보다는 ‘금강승(金剛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대승불교는 한(漢)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가 몽골·티베트·한국·일본 등 이른바 ‘북방불교(北方佛敎)’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에는 고구려 문자왕(文咨王:재위 491∼518) 때 용수(龍樹)의 《중관론(中觀論)》 등 삼론(三論)을 비롯한 천태(天台), 열반(涅槃) 등의 교법이 들어와 대승불교에 대한 연구 및 교화가 활발하였다. 또한 길장(吉藏)은 삼론을 바탕으로 삼론종(三論宗)을 개종(開宗)하는 등 한국에서의 대승불교는 마침내 독자적인 노력에 힘입어 발전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윗글이 인터넷에서 1시간쯤 뒤져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복사한 법화경관련 글입니다.

석가의 출생과 사망년도도 불확실한 것이 틀림없는데 모든 글들이 대승불교는 석가 사후 500년정도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윗 글에서도 BC100?이라는 년도표시에 확신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석가 사후500년이 그리되려면 남방 불교계의 일부가 주장하는 기원전 7세기 출생론을 적용하는 것이 됩니다만...그래도 제일 낫다 싶은 글입니다.

왜 이런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느냐면...
어떤 진리를 찾기 위한 지적탐구가 아니라
몇몇 불교계 안티분들이...
법화경을 보면 복음에 나오는 내용과 똑같은 기록들이 있다면서...복음서는 표절한 책이며 예수도 표절된 인물이라고...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썼다는 법화경과 기독교?인가하는 책이름까지 들먹거리면서...^^

그래서 법화경에 대한 공부를 하였고^^...법화경이 대승불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었음을 알고서...대승불교를 검색하여 윗글을 가장 적절한 설명으로 택하였습니다.

>>"이 경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대승이 불교의 중심세력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거니와, 2∼3세기에는 용수(龍樹)가 출현하여 이 대승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이 경전들은 오랜세월에 걸쳐...과정속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에 비추어보면
법화경이 완성된것은 2-3세기경으로 보입니다. 저의 번개학습에 의하면^^

그리고 어떤 불교계안티분(신비인님)의 주장에 따르면 4세기 종교회의보다는 앞섰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저의 생각을 어느정도 지지해줍니다.

만약 제 생각이 옳다면

법화경이 완성되어 가는 기간이
인도로 사도 도마가 복음을 가지고 간 ...1세기 중반과 오버랩됩니다.

만약...법화경에 복음서의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종교...의 성격상 공통적인 사상의 우연한 일치...라는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화경이 완성되는 과정에서..복음서의 내용을 수용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그 복음을 수호함에 있어 매우 배타적이고

불교는 그 가르침이 매우 포괄적이고 수용적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불교의 교훈을 그대로 가져 올 가능성은 거의 없고

불교의 경전이...기독교의 사상을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큰 것입니다.

석가가 예수보다 500년쯤 앞서 사셨으므로...막연하게
법화경이 복음서보다 그만큼 앞섰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기독교를 비방하는 하나의 주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기독교 복음이 불교를 한단계 끌어올려준 근원인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

제 번개학습이 너무,,,얕았습니까?^^...

좀 더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시면...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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