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조지아주 아를란타로 이사온지가 두달이 되었단다"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편지가 다섯아이 이름을 나란히 쓴 편지봉투에 실려 왔습니다.
새로 사시게 된 동네의 울창한 숲과 개똥벌레 그리고 설악산 오솔길 같은 산책로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고
다섯아이 하나 하나에게 염려와 소망과 권면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한다시며
도종환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이란 제목의 시를 적어...편지를 끝내셨습니다.
저는 그 제목만 보고도 눈시울이 뜨뜻해져서...혼이 났습니다.
철자가 혹 틀린 것이 있을지 모르며 연이 바뀌거나 빠진 것이 있나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적어주신 보고싶은 아이들에게 보낸 시...그대로 적어봅니다.
즐감하십시오^^
제목: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작자: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 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날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좋겠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좋겠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어느 한계절 화사하게 피었다가 시들면 자취없는 생이 아니라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가면 좋겠소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깍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 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 되었음 좋겠소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 되었음 좋겠소.
...
아내는 아이들에게 너희 할머니는 참 멋쟁이 할머니라고, 이 시 써 보내신 일을 감탄하고
자기는 노을이 별보다 더 좋은데...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아이들이요?
할머니께서 이 시를 보내신 그 마음 만분의 일이나 알겠습니까?
먼 훗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 후...혹 기억력이 뛰어나 이 시가 그 시임을 알아보고...고개를 끄덕이겠지요.
-
글 잘 읽었습니다.
답글
어머님께서 타향살이 하시면서 고국 식구들이 많이 그리우실 겁니다
멋진 할머니시네요
멋지게 나이 들어 간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 복이지요. -
저도 멋지신 어머님.. 할머님이란 꼬리글 올리려 했는데
답글
위엣 분들이 다 멋진이란 수식어를 써서...
아무리 다른 형용어를 생각해도 역시...
멋지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분이십니다. -
어머님이 계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답글
아이들에게도 친할머니가 살아계시니 또한 그렇고요.
귀하고 고마운 마음 후회없겠고롬 잘 누리세요. ^^ -
제 어머니는 '멋쟁이 할머니' 소리 듣는 재미로, 온갖 멋 있는 일은 혼자 다 하십니다.ㅎㅎㅎ
답글
그런데, 나이 들어 멋지기 정-말 힘든 일일 것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답니다.
못 그러시는 분도 너무 많거든요.
그러니, 멋지다~ 멋지다~ 하는 말 다 전해 드리세요.
그런 말이 할머니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
고향이, 아드님이, 손주들이 그리워서 써 보내신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답글
아이들이야 할머니 사랑을 가까이서 느끼지 못했으니 애틋함이 덜 하겠지만
손주들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야 오죽하시겠어요.
말보다는 글이 감명을 주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 모두 할머니를 더욱더 그리워하며 멋진 할머니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꼭 재회하실 수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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