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어머니께서 다섯아이에게 보낸 시...

주방보조 2005. 7. 27. 07:48

"할머니가 조지아주 아를란타로 이사온지가 두달이 되었단다"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편지가 다섯아이 이름을 나란히 쓴 편지봉투에 실려 왔습니다.

 

새로 사시게 된 동네의 울창한 숲과 개똥벌레 그리고 설악산 오솔길 같은 산책로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고

다섯아이 하나 하나에게 염려와 소망과 권면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한다시며

도종환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이란 제목의 시를 적어...편지를 끝내셨습니다.

 

저는 그 제목만 보고도 눈시울이 뜨뜻해져서...혼이 났습니다.

 

철자가 혹 틀린 것이 있을지 모르며 연이 바뀌거나 빠진 것이 있나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적어주신 보고싶은 아이들에게 보낸 시...그대로 적어봅니다.   

 

즐감하십시오^^

 

제목: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작자: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 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날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좋겠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좋겠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어느 한계절 화사하게 피었다가 시들면 자취없는 생이 아니라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가면 좋겠소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깍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 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 되었음 좋겠소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 되었음 좋겠소.

 

...

 

아내는 아이들에게 너희 할머니는 참 멋쟁이 할머니라고, 이 시 써 보내신 일을 감탄하고

 

자기는 노을이 별보다 더 좋은데...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아이들이요?

 

할머니께서 이 시를 보내신 그 마음 만분의 일이나 알겠습니까?

 

먼 훗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 후...혹 기억력이 뛰어나 이 시가 그 시임을 알아보고...고개를 끄덕이겠지요. 

 

 

 

 

 

 

  • Pia2005.07.27 08:09 신고

    멋쟁이 할머니...원필님과 어부인께서 그 멋을 고이 잘 간직하실터...
    그런데, 참으로 멋집니다.
    아틀란타는 지금 많이 더울텐데요....
    예전에 그 곳에 한 번 갔다가 아스팔트가 녹아 흐물거리는 것을 보고
    계란을 삶아 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문득 기억이 나네요.^^
    할머님...건강하시라 인사 여쭙고 싶습니다.

    답글
  • 들풀2005.07.27 09:28 신고

    진짜 멋진 할머니.
    나도 멋진 할머니가 되어야지......

    아이들.
    아마도 기억할 겁니다.
    언젠가는 그 마음 읽을날이 오겠지요..기다려요.우리모두.

    답글
  • 주방보조2005.07.27 15:46

    그리 멋진 할머니가 아니었는데^^
    메국생활이 20년 다되가시니...멋져지신 것같아요^^ 도종환의 시도 다 써 보내시고...

    음...손자손녀에게 멋진 할머니로 남고 싶으신 듯...합니다.

    어머니는 항상 좋다 건강하다...그러시기만 하시죠. 저도 어머니께 항상 좋다 건강하다...하구요^^
    아틀란타가 뭐 그리 좋겠어요. 그래봐야 타향인데...

    답글
  • 昆巖2005.07.27 16:03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님께서 타향살이 하시면서 고국 식구들이 많이 그리우실 겁니다
    멋진 할머니시네요
    멋지게 나이 들어 간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큰 복이지요.

    답글
    • 주방보조2005.07.27 16:14

      예 막내는 한번도 만져보시지 못해 더 보고싶어하시지요.
      한번 가뵙는 것이 도리인데...치사랑이 있을리 없으니...오시라고만 하고 버티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한번 막내보러 오시겠다는데 ..벌써 몇년째 공수표였으니 기대안하고 있습니다.^^

      ...

      반갑고 먼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사야2005.07.27 17:02 신고

    저도 멋지신 어머님.. 할머님이란 꼬리글 올리려 했는데
    위엣 분들이 다 멋진이란 수식어를 써서...
    아무리 다른 형용어를 생각해도 역시...
    멋지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분이십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5.07.27 17:39

      모두 멋지시다하는 말을 어머니께 전해드리면

      자칫 우리 다섯아이들 시의 홍수속에 살게 되지 않을가 염려스럽습니다.^^

  • malmiama2005.07.27 18:38 신고

    어머님이 계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이들에게도 친할머니가 살아계시니 또한 그렇고요.
    귀하고 고마운 마음 후회없겠고롬 잘 누리세요. ^^

    답글
    • 주방보조2005.07.27 22:41

      살아계신 것...예 감사하지요. 가끔 사진도 보고 음성도 듣고 편지도 주고받고...
      그리고 죄송하지요. 제가 참 못난 아들이거든요.

      ㅎ...

  • 원이2005.07.27 19:51 신고

    제 어머니는 '멋쟁이 할머니' 소리 듣는 재미로, 온갖 멋 있는 일은 혼자 다 하십니다.ㅎㅎㅎ

    그런데, 나이 들어 멋지기 정-말 힘든 일일 것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답니다.
    못 그러시는 분도 너무 많거든요.
    그러니, 멋지다~ 멋지다~ 하는 말 다 전해 드리세요.
    그런 말이 할머니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답글
    • 주방보조2005.07.27 22:46

      꼭 전해드릴께요^^

      기운이 많이 필요하신 분이거든요. ^^
      님들 덕분에 전 효도하는 게 되겠네요...ㅋㅋㅋ

  • 김순옥2005.07.27 22:03 신고

    고향이, 아드님이, 손주들이 그리워서 써 보내신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야 할머니 사랑을 가까이서 느끼지 못했으니 애틋함이 덜 하겠지만
    손주들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야 오죽하시겠어요.
    말보다는 글이 감명을 주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 모두 할머니를 더욱더 그리워하며 멋진 할머니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꼭 재회하실 수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5.07.27 22:59

      협심증에 당뇨에 고혈압까지...거의 매일 병원을 출퇴근하고 계십니다.
      우리끼리는 메국이니까 아직 살아계신거라고...비교적 건강하게...

      제가 메국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어머니때문에 고맙다 생각한답니다.

      ...

      그래도 거기 열아들 못지않은 딸하고 외손주들이 있으니까...^^덜 죄송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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