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30:2)
배움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절대적 지식과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감히 아는 것이 있다고 할 처지가 아닌 것은 분명하며
그보다 낮은 차원의 하나님의 피조세계, 그 가시적 대상들에 대하여도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미미하고
나아가 우리 스스로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도 아는 것이라고는 겨우 오감으로 경험한 것뿐, 거의 대부분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존재가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는 일이 결코 억지스럽거나 위선적일 수 없습니다.
인간 스승에게 배우려 해도 자기 주장을 접고 겸손히 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스승의 지식에 도달하기까지 인내하여야 하거늘
하나님 앞에 자기 주장을 내밀고 이치를 따지고 시비를 가리려 함은 결코 지혜로운 배움의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욥이 고난가운데 찬구들의 모함에 분연히 반발하며 자기의 생각을 피력한 것까지는 나무랄 수 없으나 더 나아가 하나님께 따지려 한다는 외침이 잘못된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말은 틀렸으며 욥의 반박은 타당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지적과 그에 이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지적은 "욥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음"이었습니다. 그가 무지를 인정하지 않았을 때 그는 자신에게 떨어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에서 아무것도 배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입을 가리고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 순간 그는 그의 고난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혹 풀어 설명할 수는 없었을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배움을 얻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만하고 교만한 인간지식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듯 인간의 짓기은 날로 높아져만 가서 하나님의 창조를 논리적으로 부정하고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쪼개고 쪼개어 분석하고 우주로 인간이 만든 것들을 날려보내고 생명의 본질을 곧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댑니다. 과학과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무엇이든 다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오히려 불행한 시대이며 종말이 멀지 않은 시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배우는 것을 그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지혜와 지식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처럼 이 시대엔 더욱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눅12"53)하고 사람들 사이에 사기와 거짓과 불신과 다툼이 가득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우리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하고 엎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을 수 없고 그분의 은총을 힘입어 살 기회도 다시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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