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인하여 네가 미치리라"(28:34)
신명기 28장은
복과 저주에 대한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인 항목들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총 68절 중
1-14절까지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를 때 오는 복에 대하여
15-68절까지는 하나님을 떠나고 배반했을 때 오는 저주에 대하여 소상히 열거하고 있습니다.
복의 항목이 많고 저주의 항목이 적어야 우리들의 구미에 맞을터인데
유감스럽게도 복에 대한 서술은 짧고 저주에 대한 서술은 절 수로 따져도 3배가 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얼마나 죄를 사랑하는 지 그 성향을 아시고
이미 이스라엘이 마침내는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할 것도 아셨으므로
경계하고 경계하고 또 경계하심일 것입니다.
인간은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고
높아지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탐욕에 미치면 언제라도 하나님을 배반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엔 이스라엘의 택하심 가운데 왕이 되었던 사울도 다윗도 솔로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일반백성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주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라도 이스라엘을 붙잡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이 복과 저주에 대한 불균형한 목록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겐
이미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이 복과 저주는 하등 우리와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니 우리의 행위는 영적인 의미를 전혀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제 이 확신의 근거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은 사람 같으리니"로 시작하는 마태복음 7장24 이하의 말씀이 이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주제와 그 의미가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의인이 된 죄인이며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복을 받고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복을 받고 그 말씀을 거역하면 저주를 받은 것과 그 근본이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는 주의 말씀을 대하면서 우리가 그 말씀을 준향하는 지 스스로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