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4:1)
4장 앞 부분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르치고 본을 보인 '그리스도인의 행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거룩한 사람이 되라
-음행을 피하고 아내의 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이교도적 욕정에 빠지지 말고 형제의 권리를 침범하지 말라. 이런 일에 죄를 지으면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된다.
2.교우를 사랑하라.
-이 일은 하나님께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으로 받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데살로니가 교회가 본이 되어 잘하고 있으므로 칭찬합니다.)
3.조용히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자기 손으로 일하며 살아가라.
-교회밖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남에게 신세를 지지않게 된다. <<
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것을 강조하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교회가 사도에게 칭찬받을만큼 잘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가운데 혹 지나치게 과도하여 생기는 폐단이 있었을 가능성입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는 일'이 주님의 계명의 정도를 벗어나 남녀간의 사랑으로 그것도 문란한 지경에까지 이른 경우가 있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혹간은 사랑의 계명을 빙자하여 불륜을 합리화하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 거룩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버린 사랑의 부패현상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은 차고 넘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서로 사랑하는 일'을 빌미로 삼아 타인의 사랑을 나의 필요를 채우는 자들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당연히 일하지 않고 교회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먹으며 게으르고 뻔뻔하게 살아가는 자들이었을 것이고 아마 그 중 더러는 문란한 사랑으로 교회를 더럽히는 자였을 가능성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 가지가 강조하여 언급된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준 새 계명이며 당연히 모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가장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 지침이며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을 이 거룩한 사랑을, 죄악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과 그것을 틈타고 달려드는 마귀의 교횔함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되
거룩함으로 무장하여 사랑할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되
그가 게을러지고 타락하게 만들게 만드는 과잉된 사랑은 절제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거룩함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절제의 미덕으로 다스려지지 않으면 세상에서 가장 악취가 나는 더러운 것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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