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4:16-17)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간단한 설명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가진 성도의 죽음과 관련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한 내용으로 추측됩니다. 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머지 않았는데 살아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소망이 없다고 생각한듯 보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주님 안에서 죽은 자도 살아 있는 자와 마찬가지로 모두 함께 주님의 재림을 맞을 것을 가르치심으로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신 것입니다.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산 자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를 맞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죽는 이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죽으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들도 부활하여 살아있는 우리와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말로 서로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간단한 설명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린 "휴거"라는 용어사용입니다.
휴거란 용어는 이 말씀에 나오는 "끌어올려"로부터 나온 것인데 영어로 'rapture'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선 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 "들림"이라는 용어로 많은 부흥사들이 사용하였고
70년대 중반 이후 구원파로 알려진 권신찬 유병언의 집단이 종말 관련 외국서적을 번역해 출판하면서
'휴거'라는 용어가 '들림'을 대신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이 기억은 전혀 저 개인적인 경험치이므로 정확한 사료는 못됩니다)
바울이 가르치신 이 말씀은 그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4:18)입니다.
그런데 "들림" "휴거"를 강조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두려움'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들림받지 못하면? 휴거가 되지 않으면? 얼마나 겁나는 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하여 빈번하게 강조하여 세뇌시키고 그 두려움을 이용하여 착한 성도들로부터 이익을 갈취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저들의 현혹하는 가르침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들림받는 것, 즉 휴거 되는 것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입니다. 거기 죽은 자와 산 자가 구별이 없듯이 그 어떤 구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누가 휴거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한다면 그는 주님의 은혜를 잘못 배운 것이거나 악한 자들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연관시켜 7년 대환란이 어쩌고, 천년왕국이 어쩌고 하며 공포를 불어 넣는 자가 있다면, 그는 '서로 위로하라'는 말씀을 노골적으로 훼방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들의 말은 무시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휴거에서 배제되는 이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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