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또 아론 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18:20)
인간은 결국 돈에 가장 약한 면모를 보입니다.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가 거기 달렸있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권력도 돈을 벌고 유지하는데 탁월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며
돈이 있으면 또한 없던 권력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권력뿐 아니라
소위 행복의 형이하학적 조건들은 모두 다 차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내분도 권력과 돈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모세의 절재적 권력이 부러운 자들
또 제사장으로서 누리는 아론의 혜택이 부러운 자들이 당을 만들고 불평과 원망을 반역으로 키워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백성들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할 것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성막과 제사에 모든 재화가 집중되고 있어 백성들의 탐심이 제사장을 향하여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저들에겐 땅의 기업도 분깃도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땅과 그 소유는 너희들의 것이고 저들에겐 하나님만 남는다. 그래도 부러우냐?'
레위지파는 거룩하게 구별되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자들, 아무런 땅의 소유없이 백성들이 드리는 십일조로만 사는
하나님의 종들이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결코 부러워 하지 않을 직업이 바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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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 목사들의 세습을 문제 삼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에겐 하나님만이 분깃이고 기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습은 그들이 하나님과 땅 곧 권력과 돈을 다 가지려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형 감리교 목사는 세습을 반대하는 읻르을 향해 노골적으로 "질투"가 나서 그러는 것이라고 정죄하고 다닙니다.
부분적으로는 맞습니다. 탐욕으로 세습목사를 보는 자들은 질투가 나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대자들은
그들이 보여주는 욕심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며 교회를 무너뜨리는 죄가 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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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스라엘 레위인들의 삶, 제사장들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영광은 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은 때가 많았고, 어떤 때에는 굶어죽지 않기 위하여 성전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말라기의 십일조에 대한 꾸짖음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현대의 대형 세습목사들같은 부류가 성경에 나오는 정성적인 제사장의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제사장으로는 존재합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같이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선 그 악한 자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