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의 사진 한장...

주방보조 2018. 10. 19. 03:06

어머니는 숙대를 다니셨다.

식품영양학과라 하셨다.

공강시간이면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다니셨고

전차를 타고 내릴 때면 연애편지가 수북히 쌓였었다는 농담도 하실만큼 즐거웠던 추억이 많으셨다.

교수들은 당시 소속학교에 별 구애를 받지 않고 강의를 다니셨었나 보다.

서을대교수가 와서 강의한 문화사는 오픈북으로 시험을 쳤는데 방심하시다 낭패를 보았었다고.

어떤 친구는 노트를 빌려가 놓고 시험이 끝나고서야 돌려주는 못된 경쟁력을 갖췄었고, 나중엔 그 친구가 교수가 되었더라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 있다.

 

아들들과 딸들의 집을 바꾸면서 이삿짐을 정리하는 가운데

직경 3센티도 안되는 정도의 작은 흑백사진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이다.

전쟁의 참화를 겪어내던 시절이었으니 그 속사정은 모른다.

어려움과 아픔들은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한 후 너무나 막강하게 작동되어

결혼전

어머니의 대학시절은 오로지 아름다움으로만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에 주현이와 원경이의 작은 스맛폰 화면을 통하여 겨우 웃으시고 겨우 손을 흔들어 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하고

이 사진을 만난 나는 스맛폰을 새로 업그레이드한 교신이에게 찍어 나에게 보내달라 하였다. 고맙게도 자동으로 사진이 확대가 되었다

사진 속의 두 분이 고개를 숙이고 계셔서 누가 어머니인지 사실 정확하겐 모르겠다.

어머니는 일제시대 전국체전?에서 중학교 여자 경북대표로 출전하시기도 하셨다 자랑하셨는데  

튼실해 보이는 다리와 앉은 자세로 비추어보아 느낌상 아마 오른쪽 분인듯 싶다. 

언덕 위의 짚차가 당시시대를 말하여 주고 있는 듯. 

누가 찍어 준 사진일까 그것도 궁금하다. 어머니 친구분의 애인이 저 짚차의 주인이었고, 사진을 찍어준 장본인일지도 모르겠다. 

 

90이 넘으신 어머니

나의 출생과 더불어 고난이 닥쳐왔으니 장장 61년을 고난 중에 버티며 사신 어머니

내게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그래서 한없이 나를 죄인이 되게 하시는 어머니

그녀에게도

따뜻한 봄이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 그날은 나의 어머니에게 화려하게 추억되어야만 하는 그 봄날 중 하루였으리라. 

실제로 저 날이 가을이면 어떻고 혹 겨울이었으면 어떠랴.

젊고 맑은, 나의 어머니가 되시기 전 그녀의 젊은 시절 

나는 그저 가슴이 따뜻해질 뿐이다. 

어머니 인생의 봄날을 이 작은 사진 한 장으로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으므로...  

 

 

 

 

  • 김순옥2018.10.19 08:34 신고

    지성과 미모를 갖춘 신여성이셨던 거네요.
    그랬기에 지금처럼 품위를 그대를 간직하고 계시는 게 아닐까요?

    요즘 친정엄마 가까이에서 18살 결혼해서 광풍이 시집살이를 겪었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답니다.
    큰언니를 낳고 전쟁을 겪었던 이야기까지두요.
    소설로 기록해도 몇 권쯤은 거뜬히 쓸 수 있는 소재가 충분할 것 같아요.

    그런 부모님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저희들이 있고, 우리의 자녀들이 있겠지요?

    답글
    • 주방보조2018.10.19 08:56

      네...우리 어머니들의 살아오신 시대는 참으로 극강의 고난이 오히려 평범한 것이었다 보아야겠지요.
      일제, 625, 독재자들...이어지는 가난, 가부장제도의 마지막 발악 등...
      우리들에겐 ...십자가를 참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예수가 따로 없지요. 어머니들이 바로 예수와 같은 길을 가신 분들입니다.
      저는 천하의 불효자라 사실 이런 말 할 자격도 없는 자입니다만...

  • 한재웅2018.10.19 09:04 신고

    찦차를 보니 별이 그려져 있으니 군용같군요.
    시진의 배경은 교정일 것이고
    6.25전쟁전인까요?

    답글
    • 주방보조2018.10.19 09:16

      625때 서울에서 고향인 안동까지 걸어서 피난을 하셨다 들었으니 재학중에 625를 맞으신 것이라
      전인지 후인지 잘 모르겟습니다만, 세련된 복장으로 미루어 전쟁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이라면 1953년...정도?

  • 이요조2018.10.24 23:35 신고

    대단하셨군요. 사진이 트리밍 된 거 보니 누가 더 있은 듯....

    전후에 윗지방 분들 고생 안하신 분이 더 이상하지요.

    답글
    • 주방보조2018.10.25 06:47

      어머니 고향은 안동이시고 태어나 어린시절은 영덕에서 보내셨습니다. 제일 좋아하시는 음식이 게...입니다. 어릴적 입맛이란 영원한 것인듯^^
      어머니의 고생은 사람때문에 오는 것이었습니다. 시작은 아버지...마지막은 불효자인 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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