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돌아갈 수 없는

약혼30주년...

주방보조 2018. 6. 15. 16:48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몇시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날은 좋았었다.

나는 푸른 빛이 나는 양복을 입었고 그녀는 옅은 분홍색 한복을 차려 입었었다.

큰처남이 제시했던 중국집 대신

둘이 함께 다니던 지하실 작은 개척교회 예배당을 택했다.

나의 어머니 매형 누나 조카들

그녀의 어머니 오빠들 언니들 조카들

그리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온 친구들 몇으로 가득찬 예배당에서

조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했고

작은 처남이 사랑에 관한 노래를 특송으로 불러주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체면도, 형식도, 치장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14K 금반지를 예물로 서로 손가락에 끼워주고

그냥 사랑하니까 그것으로 족했다.

곧 미국으로 떠나실 어머니를 위한 우리들의 약혼식이었다. 

기념 사진을 찍고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친구집에 가서 뒤풀이를 했었다. 수박을 먹었었던가...

 

그 예배당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거기엔 노래방이 들어섰다.

예배를 인도했던 목사님은 미국으로 가신지 오래 되었다.

내 어머니와 누나와 조카들은 모두 미국인이 되어버렸고, 매형은 몇해전에 돌아가셨다.

그녀의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특송을 불러줬던 처남은 여전히 신실하시다. 그녀의 작은 언니가 돌아가셨고 그녀의 큰형부도 돌아가셨다.

그때의 친구들 중 하나는 미국으로 갔고 또 하나는 천국으로 갔다. 나머지는 연락도 뜸하다.

그러나 

우리 둘은 그날이후 30년을 잘 살았다.

1년은 연애하며 살았고 29년은 결혼하여 살았다.

둘이 만났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두 사람이 일곱이나 되었고

집이 있고 거기 살림살이들이 들어찼고 집 밖에 자전거도 7대나 있다. 신발장이 꽉 차서 넘치고 냉장고마다 먹을 것이 가득하다.

게다가 아이들 학자금 대출 받은 것 말고는 빚도 없다.

얼마나 대단한가.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다.

 

사흘후면 아내와 약혼30주년이다.

약혼식을 했던 옛 예배당

지금은 노래방이 된 그곳을 찾아 오랜만에 가족 모두 함께 실컷 흘러간 노래나 불러볼까?

그것이면 약혼 30주년 기념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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