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학생회장 김교신 24

주방보조 2017. 6. 21. 11:47

24화.

길을 가다가 오랜만에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라서,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두팔을 벌리며 말했다.

"야아, 무헌아 오랜만이다."

이무헌이라는 친구. 그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같이 어울렸었는데, 항상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에 접어들면서, 나는 그에게 많은 상처를 줬으니까.

"진짜 오랜만이다 교신아."

그도 내게 두팔을 벌리고 다가와서 포옹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의 얼굴엔 가식이 없었다. 물론 나의 얼굴에도 없었다. 비록 서로 좋지 않은 추억들도 많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꽤나 오랜시간을 같이해온 친구니까.
그래, 그땐 정말 중학생스러웠지. 어렸을 때니까, 그가 나에게 한 잘못도, 내가 그에게 한 잘못도 이해가 되었다. 아마 그도 같은 마음이리라.

"잘지냈냐. 너무 오랜만이라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야 뭐...한대부고 야자실에서 맨날 이렇게 썩다가 오는거지 뭐."

"공부는 잘하고?"

"흠. 나름 꽤 잘하는 편이야. 너는 어떻게 지냈어 교신아. 요즘 내가 페이스북을 잘 안해서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는 공부를 아예 안하고 지내서, 그냥 미래가 없어. 학생회 때문에 고생 좀 하다가, 조금 쉬니까 벌써 2학년이 다 끝나가네."

"야...그래도 진짜 공부 조금이라도 열심히 더 해서 좋은 곳 가야지. 내가 다 걱정이된다. 너무 아까워 너는."

"하...그러게..."

사실 그와는 화해를 한 적도 없고, 딱히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 그는 나를 마치 다 용서했다는듯, 오히려 걱정까지 해주고 있었다. 그것이 가식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말해주었다.
나는 그를 그의 집까지 데려다주며 많은 것을 느꼈다. 집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나보고 아까운 사람이라며 걱정해주는 그 모습을 보며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따뜻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무헌은 내가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해주는데, 과연 나는 그동안 어떤 모습이었을까.'

중 3때 나를 뒤에서 까던 친구들에 대한 원한이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었고, 31대 학생회의 몇몇 선배들을 향한 극도의 혐오감은 흘러넘치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무헌이라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그 원한들을 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철이 들지 않아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지, 이제 곧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 스스로 원한을 잊어버리고 그들을 용서하기로 하니, 나에게도 좋고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닌가.

......

겨울방학이 찾아오고, 나는 여유롭게 집에 틀어박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태민 선배에게 전화가 왔는데, 다짜고짜 글쓰는 법을 가르쳐달란다.

"갑자기 글쓰는 법은 왜요?"

-이번에 친구랑 같이 네이버 웹툰 도전해보려고 하는데, 내가 스토리를 짜고 친구가 그릴거거든.

"무슨 내용인데요?"

-진짜 듣고 놀랄 수도 있어. 정말 역대급 스케일의 스토리거든.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백두산이 폭발해서...

나는 그렇게 30분동안 그가 말하는 기나긴 스토리를 들어주었다. 뭐, 내용만 들으면 무슨 반지의 제왕급의 스케일이었다.

"그런데요, 글 써보신 적은 있어요?"

-아니. 이번이 처음인데?

"......"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이 스케일이 큰, 그것도 세계관이 다른 내용으로 소설을 쓰겠다니.

-스토리는 대강 짰으니까, 한 달 만에 글로 다 쓰고 2개월 내로 바로 연재시작할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하루 24시간을 모두 글쓰는 것에만 몰두해도 절대 소설을 한 달만에 쓰지 못한다.

"에이, 말도 안돼요. 그거 적어도 1년은 걸릴걸요?"

-아니야. 진짜 내가 한 달만에 다 할 수 있어.

"아...네 그러시구나..."

-그런데 시작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듣는 내가 다 답답할 지경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고 전화를 끊었을텐데, 그래도 나는 그를 용서했으니까 친절하게 대해주리라 하며 이를 악물고 차근차근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소설의 시작부분을 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나는 정말 친절하게 그에게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까지 다 짚어가며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절대 2개월 내로 쓰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8개월은 걸려요. 형이 2개월만에 연재를 시작하잖아요? 제가 장담하는데 연재 하다가 반드시 그만둘겁니다."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어.

이건 거의 답정너에 가까워서, 결국 나는 포기하고 전화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이제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건 딱히 없어요. 저 이제 밥먹으러 가야해서..."

-어 그래. 고맙고, 형이 나중에 웹툰 올리면 등장인물 이름으로 김교신 하나 넣어줄게.

"하하,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나서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친절 베푸는게 이렇게 힘들다니. 그건 그렇고, 이쯤되면 불쌍하네. 저거 내용 설정부터 이상해서 아무도 안볼 것 같은데.'

갑자기 이태민 선배가 불쌍해졌다. 그가 이렇게 초라하게 변할 때도 있구나.

......

짧았던 겨울방학이 끝나고, 나는 개학식 날부터 교무실에 불려가게 되었다.

"각 학급 대표들 뽑아놨으니까 학생회랑 같이 내일부터 당장 퍼실리테이터 교육 받아."

동아리 담당인 임재경 선생님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네? 갑자기 무슨 교육이요?"

"이번에 원탁회의 하기로 했으니까, 그거 각 테이블의 회의 진행자들로 너희를 키우는거지."

"애초에 예고도 없이 지금 확 통보를 하면 어쩌자는거죠?"

"학생회가 원래 이러려고 만들어진거야. 그리고 너네 스펙도 쌓이고 하는거니까 잔말 말고 해."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학생회가 이러려고 만들어진 것이라니. 선생님들 인식 속에는 그저 노동력 부족할 때 쓰이는 인력에 불과한 것인가?
내게 보고 하나 없었지만 교장선생님 결재까지 받았다고 하니, 일단 다음날부터 교육을 받긴 했다. 수업을 거의 다 빠지고, 아침부터 학교 끝날때까지 퍼실리테이터 (원탁회의 진행자) 교육을 3일동안 받게 되었는데, 학생회 내에서도 약간 불만이 터져나왔다.

"갑자기 이게 뭔 상황이야."
"교실에서 반 애들이랑 만나지도 못하고..."
"학원숙제 엄청 밀렸는데 어떡하냐."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아니면 할 사람들이 없으니까.
사실 교육 내용은 나에겐 상당히 재미가 없었다. 그냥 회의 진행하고 의견받고 끝내면 되는걸 굳이 포스트잇을 붙이고, 투표를 하고... 내가 보기엔 그저 시간낭비 공간낭비 종이 낭비 돈낭비였다.

'이 원탁회의 한 번 하는데 학교예산 600만원을 쏟아부었다니.'

우리 부모님이 내시는 세금이 지금 쓸데없는 곳에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아, 학급 대표 하고싶은 사람 나오라길래 했는데 이런거나 할 줄이야. 그냥 교실에서 꿀잠이나 자고싶다."

나와 같은 조였던 이과 최상위권 학생인 배형준이 한 말이다. 정말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이 교육은 최악이었다.

그렇게 3일간 교육을 받고나서, 다음 주 월요일이 원탁회의 당일인데, 벌써 주말이 찾아오고 말았다.
토요일엔 강다영과 신정화와 함께 밤을 새며 원탁회의 준비를 했고, 일요일이 되자 우리는 모두 모여서 원탁 회의에 쓸 원탁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원탁이 24개니까 그냥 8×4로 정렬해놓자."

내가 계획을 세우고 부원들에게 지시를 해서 겨우 원탁을 모두 정렬하고, 의자 264개까지 모두 끼워넣었는데, 갑자기 교감선생님이 찾아오시더니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

"교신아, 이거 테이블끼리 간격이 너무 좁은것 같지 않니? 애들 답답하겠어."

"전혀 아닙니다. 모두가 지나가기에 충분한 공간을 남겨뒀습니다."

"아니야. 내가 보기엔 너무 답답해. 애들 시켜서 옮겨."

"하...선생님 진짜 안옮겨도 된다니까요?"

나는 순간 욱해서 교감 선생님에게 쏘아붙였다. 
업체로부터 100만원에 대여한 원탁들은 하나당 의자가 11개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는데, 옮기기가 상당히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지금 그걸 다 세팅해놨는데 처음부터 다시 다 옮기라는 소리 아닌가? 심지어 공간이 좁은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지나다니기엔 아주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말이 안통할 것을 알았는지 갑자기 부원들을 향해서 명령을 내렸다.

"학생회 친구들, 이 테이블 좀 옮겨봐요. 너무 자리가 좁아보여서 답답해서 그래."

그래도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니, 학생회 부원들이 할 수 없이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나는 큰소리로 부원들에게 소리쳤다.

"야, 도와주러 가지마. 다 내쪽으로 와서 앉아."

그러자 부원들은 모두 내 쪽으로 왔고, 난 그들을 의자에 앉혔다.

"너, 너 김교신! 지금 뭐하자는거야?"

"옮기려면 선생님이 혼자 옮기십쇼."

나의 대답에 그녀는 상당히 황당하다는 듯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원탁 쪽으로 가면서 비장하게 말했다.

"오냐. 내가 혼자 옮기마."

교감선생님은 특유의 강남엄마같은 말투로 내게 역정을 내며, 혼자서 테이블을 끙끙대며 옮기기 시작했다. 난 결국 그 모습이 민망하여, 부원들에게 교감선생님을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부원들도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왜 고생을 사서하는지, 왜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리라.

"저 놈 저거 상당히 반항적이네."

그래요. 저 좀 반항적입니다. 학생회 부원들을 위해서, 회장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되니까요. 마음에 안드시겠지만.

......


오늘은 별 내용이 없어요 사실. 이후에 일어날 일들의 떡밥 설정이라서,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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