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저희는 노예가 아닙니다."
졸업식 행사까지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곧장 바로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지금의 감정이 아니면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이 '노예' 라는 표현이 과격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한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고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어떤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학생회가 지금까지 한게 뭐가 있느냐. 무보수로 학교에 봉사하는 것이 원래 학생회인 것이다 라고...저희는 지금까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일해왔습니다."
이번에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은 상당히 좋은 분이셨다. 나와도 어깨동무를 한 이후부터 매우 격의없이 지내는 사이였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부담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는 학생회에 대한 인식은 그저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노동력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어쩔 수 없이 동원되어야하는 학생회의 입장은 지금까지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학교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이어서 나는 선생님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비판한 후에, 학생회에 대한 학교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할지 그 방안을 제시했다. A4 두페이지 분량으로 말이다.
"...다음부터는 학생회가 저희와 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를 바라며 이 문제 해결을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2시간만에 글을 모두 정리하고, 나는 학생회 부원들의 동의를 받은 후 바로 교장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돌아온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이번에 곧 열릴 부장회의에서 선생님들과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보마. 많이 힘들었겠구나. 내가 회의 결과를 나중에 알려주겠다. 그래도 이번 신입생 OT 진행은 해줬으면 좋겠구나."
"예 뭐,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죠. 또 문제 생기면 카톡할게요."
"언제든지 해도 좋다."
역시 교장선생님은 좋은 분이라는걸 또 새삼 느끼게 되었다. 모든 선생님이 이런 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
봄방학은 매우 평화로웠다. 아침 6시에 잠들어서 오후 4시에 일어나는 패턴이 계속되면서 살이 좀 빠지긴 했지만, 하루종일 집안에 있으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이태민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길게 통화 가능하냐?
"시간 많아요 저."
-아니 내가 웹툰 연재 준비 때문에 물어보는건데, 확실히 글 쓰는게 어렵긴 하더라.
"아, 네."
-세세한 대사나 복선 설정같은건 어떻게 하는거야?
"재능이에요."
-응?
"그냥 형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못했다는거죠."
-......
사실 글쓰기라는 것이, 쓰면 쓸 수록 실력이 늘어간다. 그것을 몸소 체험한 것이 나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재능이라고 짧게 대답한 이유는, 그저 귀찮아서 그런것 뿐이다. 그리고 언제 이렇게 이태민 선배에게 갑질을 해볼 수 있겠는가.
"지금 처음 쓰시는거니까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요. 처음부터 성공하려는건 완전 도둑놈 심보예요."
-아...뭐 그렇지...그런데 그래도 너한테 뭔가 조금이라도 배우는게 낫겠다 싶어서.
문득 내가 이태민 선배에게 인수인계를 받지 못해서 고생하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그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하아...일단 저같은 경우엔 대사 설정할 때 저 혼자 방에서 문닫고 1인 2역 하면서 연극을 해요. 그러다보면 대사가 저절로 나오거든요."
-아......다른 방법은 없고?
"이게 최곱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정말 하기 싫다는 어조가 묻어나왔다. 하긴, 내가 하면서도 스스로 정신병자 같다고 느끼는 것이니.
-그리고 내가 소설 쓸 때마다 연결 부분을 어떻게 해야할지 계속 고민이 엄청 생기는데 이건 어떡하면 좋아?
"그거는..."
나는 온 힘을 다해서 그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싶진 않아서 그런 것도 있고, 그냥 이제 볼 일 거의 없을테니까 마지막으로 예의를 갖추는 것이기도 했다.
-고맙다 교신아. 3월 중에 밥 한끼 먹자. 2학년 남자애들 전부 다 불러서.
"언젠간 만나죠 뭐."
물론 같이 밥까지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도 나에게 빈 말을 하는 것이려니 하면서 넘어가는게 상책이다.
이제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덕분에 꽤 많은걸 배워가기도 했는데 말이다. 사람을 어떻게 하면 가장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와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진정한 갑질은 무엇인지 등등. 그를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의 좌우명을 정할 수 있었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겐 약한 사람이 되자.'
......
개학을 하고 나서 이제 3학년이 된 나와 서민지, 그리고 부장 8명은 모두 학생회 실질적인 활동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지금까진 차장들이 너무 기가 눌려있기도 했고, 3학년은 다른 일들로 바쁠 시기니까.
그래서 나는 교육청에서 내려온 자치예산 200만원을 강다영에게 모두 맡겼다. 옆에서 내가 하는거 봤으니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빠, 예산 다 분배했는데, 이번에 체육대회 한 번 해보려고. 5월 15일에 하기로 했어."
4월쯤 됐을 때 강다영이 내게 보고했지만, 난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냥 알아서 잘하려니 하고 잘해보라며 넘길 뿐이었다.
"다영이 니가 잘하겠지 뭐. 3학년들은 이제 어차피 일 안하니까 열심히 해봐."
어차피 이번에 새로 학생회 담당을 맡으신 임재경 선생님도 3학년들이 일하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체육대회를 지휘하기엔 너무 이태민 선배같은 느낌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무관심이 내가 저지른 크나큰 실수인걸 깨닫게 되었다.
......
그래도 나름 형식적으론 내가 회장이니, 체육대회 5일 전에 강다영이 내게 와서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고 나는 큰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일시 : 5월 15일 오후 2시~3시
사용예산 : 45만원
종목 : 미션달리기, 몸으로 말해요, 계주, 축구, 줄다리기.
일단 앞내용부터가 말도 안됐다. 체육대회를 지금까지 한 적이 없다보니 아무런 소품도 없는데, 45만원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니. 아니, 심지어 상품구입까지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저 극악의 시간대는 무엇인가? 제일 더워서 푹푹 찌는 시간에 체육대회를 한다고?
"다영아, 체육대회 한다고 하면 하루를 다 쓰는거 아니었어?"
"선생님들이 절대 안된대. 임재경 쌤도 그건 용납할 수 없다고 하고. 단축수업해서 학교 일찍 끝내고 해야되는거래."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계속 보고서를 쭉 읽다가, 맨 마지막 내용을 보고 망치로 한 대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1, 2학년 각 반 담임 선생님들은 종례 후 학생들을 집으로 보낼 수 있음
"야 이건 뭔 개소리냐. 체육대회 참가가 의무가 아니야?"
"임재경 선생님이 그러는데, 이건 스승의 날 행사니까 학생들이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발적 참여를 하는거라고... 그래서 담임선생님들이 그냥 참가하지 말라고 하면서 애들 집에 보내면 그 반은 안오는거야."
"뭔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건."
"그런데 어떡해. 이미 그렇게 돼버렸는걸."
나는 보고서를 읽으면서 한 번에 직감이 왔다. 이 체육대회는 망했구나.
원래 체육대회라 하면 춤공연도 있고, 줄다리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응원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되는 것 아닌가?
"일단 그럼 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3학년들이 도와줄 수 밖에 없겠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임기가 얼마나 남았다고 이렇게 또 골치아픈 일이 생기는지. 보고서를 읽고 또 읽어봤지만 이건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대놓고 체육대회를 하기 싫어하는 눈치고, 학생들은 이런 퀄리티라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단축수업해서 일찍 끝나는데 굳이 더운 곳에서 안해도 되는 체육대회에 참가할 이유가 어디있는가.'
나는 결국 내가 다시 지휘를 맡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망해도 내 책임이 되는 것이니.
"일단, 내일 당장 선생님들을 만나서 결판을 내보자. 그리고, 이 보고서 내용도 다 고쳐야 될 것 같고."
5일 남은 상태라서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답지 않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보는 수 밖에.
......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러놓고 말했다.
"학생회에서 스승의 날 행사로 체육대횐가 뭔가 한다고 하던데, 그거 도대체 뭐야? 뭔 일을 그렇게 크게 만들어놨어?"
"왜요, 어차피 3학년은 안하니까 쌤이랑 상관없지 않아요?"
"아니, 그게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 불만이 엄청 많아. 그거 왜하는건지 모르겠다면서 너네 욕 엄청 먹고있어."
아침부터 짜증이 솟구쳐올랐다. 창의체험부 선생님들은 스승의 날 행사니까 선생님들과 함께 해야한다고 하고, 정작 그 당사자인 분들은 다들 하기 싫다고 하고. 나보고 대체 어쩌라는건지.
나는 당장 창의체험부로 달려가서 선생님들께 말했다.
"제가 사실 어제 체육대회에 대해서 다영이한테 보고서를 받았는데요, 그냥 자율적으로 참여한다는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온 의견입니까?"
"스승의 날인데 선생님들 체면이 있지. 스승의 날에 자기랑 같이 놀자고 학생들을 강제로 불러야해? 그냥 하고싶은 사람 하고, 안하고 싶은 사람 안하는거지. 그게 맞는거야."
"단축수업하고 종례 후에 체육대회를 하면 저라도 친구들이랑 놀러가지 체육대회에 참가하진 않을겁니다."
"그건 너같은 놈들이고."
"차라리 하루를 다 주시면, 훨씬 더 재밌게 할 수 있습니다. 질서 정리만해도 20분이 걸리는데 1시간동안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차라리 오전 시간이라도 주시면, 지금보다 훨씬..."
그러자 임재경 선생님은 나의 말을 끊고 책상을 세게 치며 내게 호통쳤다.
"시끄러워! 이미 대의원회의랑 선생님들끼리도 다 협의가 된 내용이니까 더이상 토달지 마. 그리고 이 체육대회는 너네 2학년 학생회 애들이 하자고 한거지, 창의체험부에서 하자고 한게 아니야!"
"체육대회를 학생회가 추진하겠다고 하면 좀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게 선생님들의 역할 아닙니까?"
"누가 우리한테 그런 역할을 줬어? 우린 그럴 의무가 없어 회장아."
정말로 말이 안통했다. 아무것도, 그들은 나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학생회 담당이라는 임재경 선생님이 가장.
"이대로 가다간 정말 망해버려요. 이럴 바엔 안하는게 낫습니다."
"그건 니가 멋대로 말할 자격이 없어. 니가 추진한것도 아니고 2학년 애들이 추진한건데 그걸 니가 무슨 권한으로 안하는게 낫다고 말해? 지금 와서 찡찡거릴거면 당장나가!"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반티 맞추는 것도 금지시키고, 체육대회 시간은 1시간을 주고, 예산은 45만원에, 시간은 제일 더울 시간. 그리고 선생님들은 다 하기 싫어한다. 그리고 아무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다.
나는 그냥 말없이 교무실을 나와버렸다. 가슴 속이 엄청나게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
피곤합니다. 소설 재밌게 보고 계신가요. 그럼 표시라도 좀 해줘요. 전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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