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학생회장 김교신 15

주방보조 2017. 6. 11. 13:44

15화.

"야, 애들아 축구하자."

이태민 선배와 김재형 선배를 비롯한 31대 남자 선배들 5명이, 한창 학생회 여자 부원들이 정보관 6층 체육관에서 홍보영상을 찍기 위해 안무를 짜고 있을때 우리에게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1학년 대 2학년 대 3학년 삼파전으로 하자. 풋살 골대 가지고."

"그러죠 뭐."

그렇게 여자 부원들이 있는 체육관에서 시작된 축구. 각 학년마다 자존심이 걸려있으니, 목숨을 걸고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태민 선배를 비롯한 3학년 선배들은 우리에 비해서 축구를 잘하진 못했다. 왜냐면 우린 남자 9명 중에 7명이 축구부였으니까.
결국 3학년은 2연패를 하는 것이 뻔했고, 자존심이 상한 31대 선배들이 또 하자고 우겨대었다.

"야, 한 판 더해. 진짜로 제대로 할테니까."

"하...그러죠..."

이태민 선배의 구차할 정도의 우기기는 약간 당해내기 힘들었다. 일단 선배니까, 그래도 상대는 해줘야지 하며 축구를 시작할 때였다. 갑자기 체육관 거울 앞에 있던 여자 부원들이 나를 불렀다.

"야 김교신"

"어어, 왜?"

"축구 왜하는거야?"

"지금 뭐 잠깐 쉬는 시간인거지. 할 일도 없고."

축구 하느라 정신없었던 나는 그냥 어차피 이 판 끝나면 다시 일 시작할거니까,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대충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는지, 여자 부장들이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할 일 없으면 우리 그냥 간다."

그리고선 체육관을 다 나가버리는 부원들. 순간 축구를 하던 남자 부원들은 단체로 굳어버렸고, 나는 한숨을 푹쉬었다.
이 상황을 본 31대 선배들은 할 말이 없었는지 당황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자기들이 계속 축구하자고 우겨대었으니까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것 아닌가. 그러나 곧 이태민 선배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하나 없이 뻔뻔스럽게 말했다.

"김교신, 니가 회장이니까 지금 이 상황 책임지고 처리해."

그래 뭐, 내 책임은 맞다. 그냥 31대가 또하자고 우겨댈 때 힘들다고 거절했어야 했는데. 아니, 그러다가 또 이태민 선배가 나 싸가지 없다고 선동하면 더 안좋았을지도 모르는 것인가.
참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일단 지금 상황을 수습해야 하니, 나는 급하게 나가서 집에 간다고 하는 여자 부원들을 다시 학생회실로 들어오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여자 부원들의 질책을 듣게 되었다.

"아니, 우리는 지금 일하고 있는데 너네만 놀면 어쩌자는거야."
"할 일 없다고 하니까 당연히 가려고 했지."
"너네도 뭐 영상 하나 찍거나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죄송합니다 여러분. 다신 이런 상황 안벌어지게 하겠습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군요."

내가 사과를 하니, 어느 정도 여자 부원들의 표정이 풀리긴 했다. 그리고 나는 곧 남자 부원들을 불러 모아서 당장 영상 제작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축제 4일 남았으니까, 빨리 제작하긴 해야됩니다. 혹시 아이디어 있습니까?"

"......"

역시 아무런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부산행 패러디를 한 번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으나, 퀄리티가 너무 떨어질 것을 예상하여 기각하였다. 그러다 결국은 내가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다.

"아, 그냥 신세계 패러디 어떠냐."

내가 항상 명작으로 뽑는 영화 신세계. 특히 나는 그 영화속 이중구라는 사람을 동경했다. 멋있지 않는가, 최후까지 당당한 그 모습.

"찍기도 단순할테니까 그냥 내가 시키는대로 해. 촬영 장소로 한 번 가보자."

......

"거 일출보기 딱 좋은 날씨네."

기온 37도에 이르는 더위에, 나는 와이셔츠와 자켓까지 차려입은 채로 햇빛을 받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축제가 며칠 안남은 상태에서 급하게 홍보영상을 찍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왜 이걸 하자고 했을까.'

사실 신세계를 패러디해서 영상을 제작하자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나고, 내가 직접 연기를 하겠다고 한데다가, 모든 대사와 연출까지 30분만에 모두 구상한것도 나라서, 일단 급한대로 어쩔 수 없이 찍게되었다.

"어이, 거기 누구, 축제 팜플렛 있으면, 하나만 주라."

내가 생각해도 내 목소리는 남성다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그냥 특이한 목소리일 뿐이지, 분위기있게 발성을 할만한 목소리가 아닌것이다. 결론은 어떻게 말하든 오글거리고 이상하니까 그냥 빨리 끝내기나 하자는 것.

"갈땐 가더라도, 축제 하나 보는 것쯤은 괜찮잖아."

미친. 말하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지만, 마음을 추스리며 진짜 죽는 사람의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더워 뒤지겠네 진짜.'

온몸이 젖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은지 10분도 안됐지만, 마음 같아선 속옷만 입고 에어컨 앞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상을 찍는 내내 NG는 거의 나지 않았다. 정재근이 진지한 표정으로 줄넘기를 돌릴때 웃은것 빼고 말이다.
영상을 모두 다 찍고나서 촬영을 하던 서민지와 손경식이 이건 대박이라며 흥행을 예감했다. 뭐, 흥행은 하긴 하겠지. 내가 이미지를 다 망가뜨렸으니.

......

홍보 영상의 반응은 꽤나 대단했다. 밤 11시에 올려서 그런건진 몰라도, 한시간만에 조회수가 3000이 넘어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대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반응이었지만, 축제 재밌겠다며 기대감을 표시하는 반응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친구들이 영상을 캡쳐한 사진을 보내며 카톡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교신, 축제 보고 이제 뒤지겠네."
"그냥 담배하나 물지. 아니면 대마라도."
"영상보는데 똥싸다가 웃겨서 다들어감."
"오, 성지순례 왔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 암이 낫는다던데."

별 이상한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재미도 없는데. 그러나 그들은 재밌었는지, 미친듯이 카톡을 해대었다.

'아, 부질없다. 이런다고 여자친구 생기는 것도 아니고.'

홍보영상 반응이 좋으면 뭐하는가. 그저 웃음거리가 된 것인데. 학생회장으로서는 기뻐야 했지만, 개인적 감정으로는 서글펐다. 친구는 정말 많은데, 나를 지켜보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막상 내 주위엔 한 명도 없다. 회장이라는 자리가 그런 자리였다.

......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어느새 축제가 하루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최종 리허설 밖에 안남았는데,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축제의 총책임자 라는 직책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귀신의 집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나는 특히나 말이다.

그 날 아침부터 선생님들에게 오는 전화에 시달리고, 의자를 400개를 넘게 체육관에 깔고, 개막 공연을 준비하고, 귀신의 집과 체육관의 점검을 끝내고, 음향 조명 장비 업체와 연락하고, 찬조팀들 공연 리허설과 귀신의 집 리허설까지 모두 마쳤을 땐, 어느새 밤 10시가 되어있었다.

"애들아 모여봐."

그 와중에 계속 우리와 같이 있던 이태민 선배가 우리를 체육관에 집합시켰다.

"이제부터 게임을 하나 할거야. 한 명씩 차례대로 음료수 병을 하나 들고, 뭔가 섭섭한 일이 있는 사람 앞에 그 병을 둔 다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거야. 지금부터 동그랗게 앉아있어봐."

그렇게 선배들을 포함한 25명이 모두 원을 그리며 앉게되자, 맨 먼저 이태민 선배가 음료수 병을 들고 일어나더니,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


오늘 슈퍼스타 J를 보러갔습니다. 정말 재미있더군요 ^~^ 간만에 선배들 얼굴도 보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ㅎㅎㅎ 제 소설의 끝부분이 나오는 순간 엄청 재밌는 일이 벌어질텐데, 저도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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