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학생회장 김교신 13

주방보조 2017. 6. 11. 13:41

13화.

8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얼마 안남은 축제 준비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밑바닥부터 기획한 귀신의 집 관리에, 예산관리, 방송장비 점검, 개막무대 준비, 가요제 준비, 자율부 일 배분을 모두 지휘하다보면, 가끔 자퇴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 혼자 총괄하기는 감당이 안되어, 부회장인 서민지와 강다영에게 귀신의 집 지휘를 맡기고, 보고서만 받는 형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이태민 선배가 내게 오더니,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건네었다.

"교신아, 나 그 귀신의 집에서 저승사자 하는거 어떠냐."

"저승사자는 더이상 필요없을걸요?"

"아 그러냐."

이미 저승사자는 김태현의 컨셉으로 잡아놓은 상태라서, 딱히 더 필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태민 선배는 포기를 몰랐다. 나에게 먹히질 않으니, 현장을 지휘하는 서민지에게 가서 아예 운영방식을 바꾸자고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저승사자를 2명으로 해서 한 명은 참가자들이랑 동행하고, 한 명은 코스 종점에만 있는거야."

그러자 서민지는 그 내용을 나에게 제안했고,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렇게 하면 참가자들이 심리적으로 안무서울거 아니야."

그제서야 이태민 선배는 저승사자를 포기하고, 자신은 질서를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계속 귀신의 집 일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이제 모든 지휘를 자신이 하기에 이르렀다.

"서민지, 너는 책임지고 귀신들 연기 어떻게 할건지 아이디어 다 짜오고, 강다영은 소품들 다 정렬하고 부족한거 없는지 점검해."

원래 서민지가 해야할 일을 어느새 이태민 선배가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에게 보고서가 제대로 들어올리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서 귀신의 집 준비 잘하고 있나 점검하러 갔을땐, 나도 황당했다. 이태민 선배가 모든 지휘를 다 하고 있었으니까.

"여기 상황 왜이래?"

내가 서민지를 따로 불러서 물어보자, 그녀는 뭔가 잔뜩 쌓인듯이 불만을 마구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니 뭐 아이디어 내라길래 기껏 짜놨더니 이거 다 별로라고 지 맘대로 다하잖아. 그냥 지금 이태민 선배가 다 하고있어."

상황을 보니, 준비가 되고있긴 한 모습이었다. 그의 간섭이 상당히 심해서 문제였지만, 지금 그것을 문제삼고 해결하기엔 내가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음, 일단 알겠어.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중에 다시 올게."

나는 그냥 이 일을 눈감아주기로 했다. 분명히 잘못된 일은 맞지만, 며칠 안남은 축제 준비 기간동안 해결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야, 귀신의 집 하자고 한 사람 나와. 그거 맨처음 아이디어 낸 사람 누구냐."

미친듯이 더운 날이었다. 최고기온 38도에 이르는 극악의 날씨. 우리는 그 날에, 심지어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매점 옆에 있는 거대한 나무게시판 17개를 정보관 6층까지 계단으로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니 천혜린이 누가 아이디어를 냈냐며 한탄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거 전데요..."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하필 천혜린의 직속 후배인 이민진이었다.

"에휴, 지금와서 뭘 후회하겠냐. 그냥 게시판이나 옮기자."

그녀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게시판을 옮기고 있었다. 물론 다른 모든 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기동이랑 태환이는 개꿀이겠다. 지금 인쇄소가서 가벼운 종이나 들고오고 있을거 아니야. 아, 심지어 선생님 차에 싣고 오네?"

정재근은 팔에 힘이 빠졌는지, 잠시 게시판을 내려놓고 나에게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글쎄, 특수 코팅지 100장이랑 전지 200장이 과연 가벼울까? 둘 다 A1 크기잖아."

나도 사실 게시판에 비하면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종이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어. 그렇다고 그렇게 가벼울 것 같지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게시판 17개를 모두 정보관 6층으로 올려놨을 때였다.

"게시판이 총 34갠데, 나머지 17개는 어디있지?"

나의 질문에, 손경식이 핸드폰을 보며 절망적인 대답을 했다.

"교신아, 방금 이태민 선배가 말해줬는데, 나머지 게시판은 다 학교 후관 5층에 있대."

"......"

"그리고 지금 도와주러 오겠다는데?"

"그럼 고맙지."

할 일이 없으니까 이렇게 자주 오는 거겠지. 나는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힘쓰는 일엔 아주 탁월했으니, 이럴때 와주면 상당한 힘이 되었다.

"그럼 한 20분만 쉬고, 후관 5층에서 정보관 6층까지 가지고 올라가죠! 20분 후에 후관에서 봅시다."

날씨도 날씨였지만, 노동의 강도도 상당했다. 남자 두명이 들어도 힘든 무거운 게시판이었으니, 다들 온 몸을 땀에 적신 채로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마침 쉬는 시간 중에, 인쇄소에 갔던 김태환과 박기동이 선생님의 차를 타고 돌아왔다.

-교신, 종이 들고 이제 올라갈게. 지금 이태민 선배랑 마주쳐서 선배가 나 도와주는 중이야.

-빨리 와서 게시판 옮기는 것도 도와줘. 20분 후에 후관으로 와.

-알겠어.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나는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 다 끝나고, 게시판을 옮기기 시작하러 후관에 도착했을때, 김태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빠, 김태환 오빠가 아까 나랑 우주랑 같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한테 '너네 여기서 뭐하냐' 라고 하는거야. 아니 우린 진짜 너무 힘들어서 쉬는건데, 자기는 게시판 하나도 안옮겼으면서 진짜 이건 뭔상황이야?"

김태환에 대해서 들리는 것은 오직 강다영의 불만 밖에는 없었다. 상당히 화가 난 그녀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단 알겠다고 하고 일을 분배한 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김태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어, 태환 지금 뭐해?"

-아직 종이 옮기고 있어.

"엥? 30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종이를 옮겨?"

-아니 미친 이거 진짜 개무겁다니까? 너가 들어봐야돼. 특수코팅지 특히 이거 3장만 들어도 무겁다고.

"뭐...그건 그렇고 혹시 다영이랑 우주한테 뭐라고 했어?"

-엥? 나 걔네한테 딱히 아무 말도 안했는데?

"니가 막 걔네한테 '너네 여기서 뭐하냐'라고 했다는데?"

-아니, 참 나. 허허허허허허

갑자기 김태환이 허탈한 듯 웃기 시작했다.

-아니, 난 진짜로 그냥 아무 감정없이 물어본거야. 말 그대로 여기서 무엇을 하냐고 물어본건데. 하. 내가 그렇게 무섭게 물어봤나? 아니 근데 이거 종이 개무겁다니까? 근데 애들이 다 안알아줘 미친 진짜 억울하네.

"알았어 알았어. 그럼 종이 다 옮기면 게시판 옮기러 와줘."

-하아...알겠다 교신.

그래도 오해였다니 다행이었다. 물론 김태환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 같았지만.

......

다음 날, 우리는 귀신의 집에 쓸 소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중 가장 끔찍한 작업은 A1 종이 6장 이어붙이기였다. 세로로 세워서 2×3을 만들었는데, 180장을 30장으로 만들려고 하니 엄청난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 노가다만 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6시 반이 되어, 몇몇 부원들이 학원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교신아, 나 진짜 친구들이랑 6시 반에 약속있는데 가면 안될까?"

봉사부 부장인 박기동이 특유의 착한 말투로 내게 물었지만, 나의 대답은 야박했다.

"아무래도 지금 인원이 부족해서, 너까지 가면 곤란해."

아마 평소같으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면 보내줬을테지만, 저번에 구연모와의 대화가 떠올라서 허락하기가 힘들었다.

"하...알겠어."

그래도 저렇게 내 말을 따라주니 너무 고마웠다. 나라면 욕이라도 좀 했을텐데 말이다. 그는 너무 착한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나 곧 박기동이 나에게 쓴웃음을 얼굴에 가득 띄우면서 한마디 던졌다.

"교신아,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일을 한다는건,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소리야. 하하하하!"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기분은 곧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차라리 내가 더 고생할 수 있으면 할텐데...지금 같이 남아서 일하고 있는 다른 부원들은 그걸 용납할리 없으니, 나의 입장은 어쩔 수 없었다.

'진짜 미안하다...'

8시가 되어서야 일은 겨우 끝이 났다. 학원에 갔던 부원들도 학생회 일이 혹시 남았을까봐 다시 돌아온 탓에, 학생회실에 20명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슬슬 정리하고 해산하려고 하는데, 31대 선배들이 갑자기 찾아와 서민지를 따로 불러서 데려가더니, 곧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야, 2학년들 빼고 다 나가. 우리끼리 할 얘기 있으니까."

뜬금없는 이태민 선배의 말에 1학년들이 어리둥절 하고 있던 중, 강다영이 질문을 던졌다.

"저는 부회장이니까 남을까요?"

그러자 서민지가 정색을 하고 강다영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넌 1학년 부회장이니까 2학년 부장들보다 아래야. 너도 나가야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1학년 차장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일단 나가봐 애들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고."

약간이나마 풀어주기 위해 내가 부드러운 말투로 그들을 내보냈지만, 학생회실을 나가는 1학년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다 나간것을 확인한 이태민 선배는, 화가 난 표정으로 2학년들에게 본론을 말했다.

"너네, 1학년들이 기어오른다고 생각 안하냐?"

......


멘트 딱히 없습니다. 손가락에 쥐날것 같아요.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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