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이민진은 체육관으로 오라 그러고, 귀신의 집은 미어터질것 같아서 내가 정리를 안하면 안될 것 같고, 나는 정보관 앞에 멈춰서서 비를 맞으며 무전기로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다영아, 귀신의 집 준비는 아직 안끝났어?"
-네, 아직 안끝났어요. 분장이 좀 늦어져서...
"일단 귀신의 집 문 앞까지만 대기자 10팀만 들여보내. 거기서 좀 기다리게 하고. 그리고 민진아, 찬조팀들은 그냥 관객들이랑 같은 입구로 들여보내고, 음악실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안내하는 식으로."
-네, 그렇게 할게요.
학생회 일에서 회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위기상황 때 순식간에 판단을 내려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판단이 아니어도 좋다. 일단 신속한 것이 최우선이다.
결국 어떻게든 한시름 덜었다. 질서가 조금씩 잡히기 시작한데다가, 비가 그친 덕분에 활동 범위가 넓어졌으니 말이다.
내가 바깥에서 계속 일처리를 하고있는 동안, 어느새 체육관에선 가요제가 시작되었나보다. 가끔 남자들의 환호소리가 들리고,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약간 여유를 찾고 체육관으로 가니, 이미 공연 순서가 중반에 이르렀을 때였다.
나는 또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경식, 우리 치킨 쿠폰이랑 밥버거 쿠폰은 많이 뿌렸어?"
-아니, 그거 뿌릴 시간이 없어. 이 무대 다음에 좀 호응유도 하면서 뿌려볼까?
"좋아, 그렇게 해."
회장의 시점에서 가장 좋은 부원은, '어떻게 할까요?'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라고 물어보는 부원이다. 물론 항상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긴 하다. 정말 대책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체육관을 둘러보니 가요제를 보러온 관객 수만 해도 600명은 되어보였다. 의자가 총 430개이고, 음악실 맞은 편에 있는 관람용 좌석엔 150명은 들어가고, 자리가 없어서 서있는 사람도 꽤 많았으니 말이다.
'이번이 정말 자양고 축제 중에서 역대급이군.'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듯, 손경식이 무대가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들고 애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네, 여러분 중간에 호응도 점검하러 제가 다시 나왔습니다. 제가 '소리질러~!'를 외치면 소리를 가장 크게 지르며 호응해주시는 분들께 제가 한장당 치킨 1마리 살 수 있는 쿠폰들과, 봉구스 밥버거 쿠폰들을 쏘겠습니다. 자, 한 번 저기 왼쪽분들부터 시작하죠. 쏴리질러~!"
"와아아아아!"
"에이, 좀 작은걸요? 한 번 가운데 분들 소리질러 봅시다. 소리질러~!"
역시 사회자로는 꽤나 타고난 재능이 있어보였다. 덕분에 관객들이 중간에 나가지 않고, 상품도 많이 받아가면서 상당히 만족스러워 했으니. 그러나 일은 자꾸 터져나왔다.
-교신오빠, 망했어요. 지금 이거 다음 공연 해야할 팀이 아직 안왔다는데, 그냥 일단 뒤로 미룰까요?
이민진의 머리도 아마 터질지경이리라. 찬조팀들을 혼자서 다 관리해야 했으니 말이다.
"응, 일단 맨 뒤로 미뤄. 사회자들한테도 이거 전달하고."
-아, 그리고 맨 마지막에서 두번째 팀한테 연락와서 좀 늦을것 같다고, 맨 마지막으로 바꿔달래요.
"하...그러면 지금 안온 팀을 뒤에서 두번째로 정하고..."
-아아, 다음 팀 왔어요 왔어요.
"그래, 그럼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무대는 평화롭게 이어지고, 관객들은 환호하고 있는 도중에 기획자들은 뒤에서 고생을 한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는게 사실이었다.
"네, 벌써 마지막 무대인데요! 이 분들 정말 인기가 대단하신 분들이죠. 다같이 한 번 불러볼까요? 히트다~"
"히트!"
오 마이 갓.
저 히트다 히트는 아마 평생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 뻔했다. 그러나 어떡하는가, 아이디어가 저것 밖에 안나왔는데.
유명한 남자 댄스 팀이 마지막 무대로 나오자, 여자 관객들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고, 남자 관객들은 거의 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참 민망했다. 끝까지는 봐주지...그래도 뭐 여자들의 호응이 너무 뜨거워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긴 했다.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손경식과 신정화의 마무리 멘트까지 끝나자, 관객들을 질서정연하게 내보내고 우리는 모두 의자에 주저앉았다. 6시부터 시작한 공연이 8시에 끝났으니, 피로가 머리 끝까지 쌓인 기분이랄까. 그러나 귀신의 집은 더 가관이었다. 우리가 체육관 청소를 끝내고 귀신의 집으로 갔을때가 8시 반이었지만, 아직도 그곳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귀신들 어떡하냐, 지금 5시 반부터 3시간째 똑같은거 반복하면서 엄청 힘들겠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예약손님이 300명이었으니, 대충 1시간 정도는 더해야 끝이 날 것 같았다.
"저 정말 지금 죽을것 같아요."
내 예상대로 9시 반이 돼서야 귀신의 집이 마무리가 됐을 때, 질서를 보던 한은서라는 후배가 온 몸이 땀에 젖은 채로 내게 와서 말했다. 아, 너무 미안했다. 원래 7시 반에 끝내는 것으로 돼있었는데, 2시간이나 더 하게 만들다니.
귀신의 집 정리는 간단하게만 하고, 우리는 모두 체육관으로 모여서 도우미들에게 피자를 시켜주었다. 10시가 넘어서까지 고생을 했는데, 도우미들에게 피자밖에 시켜주지 못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이 정도 뿐이라니. 학생회는 건대에 있는 고깃집을 미리 예약해놨기 때문에 피자는 먹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따로 모여서 기념사진을 잔뜩 찍기 시작했다.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심으로 고맙고 죄송합니다."
도우미들이 거의 다 피자를 먹었을 무렵 내가 모두에게 말했고, 그들은 박수를 치며 축제의 성공을 자축했다. 대략 800명 정도가 온 축제. 다른 고등학교들에 비해선 규모가 작을지도 모르지만, 자양고등학교 치고는 상당한 발전이었다.
11시가 넘어서야 도우미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깃집으로 가야했다. 이제 마무리 정리밖에 남지 않았으니, 정리만 하고 고깃집으로 가려고 했을 때였다. 이태민 선배가 다른 31대 남자 선배들과 같이 우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그냥 가. 나머지는 우리가 정리할게."
"엥, 아녜요. 저희가 정리하고 갈게요."
"아니야, 어차피 우리끼리 따로 놀거라서 먼저 먹으러 가. 어차피 정리할 것도 별로 없잖아."
"너무 죄송한데..."
"아니야, 그냥 빨리 가."
"그러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굳이 마무리 정리 해주겠다는데 내가 나쁠 것은 없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밥을 다 먹고 나왔을 땐 벌써 새벽 1시가 넘어가있었다.
"너무 피곤하니까, 다들 집가서 빨리 자."
고깃집에서 밥을 먹다가 잠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나는 서둘러 부원들을 집으로 보냈다.
그렇게 나도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태민 선배가 방금 전 글을 하나 올린 것이 나의 뉴스피드에 떠있었다.
'진짜 개싸가지 없네 ㅋㅋㅋㅋ'
처음엔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나한테 한 말은 아니겠지. 그러나 밑에 달린 31대 체육부 부장인 강현석 선배의 댓글을 보고나서 깨달았다.
-지들끼리 신나서 먹으러 가던데 ㅋ
다른 댓글들은 더 가관이었다.
-야, 그새끼들 안때렸냐?
-참교육 시전해야겠네 태민아.
-뭔 일이야. 썰 좀 풀어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교신아. 원래 믿을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거잖아. 그래도 이렇게 미친 사람들을 본 적이 없기에, 익숙하지 않았다. 세상엔 참 머리에 똥만 찬 사람들이 많구나.
......
피곤하네요. 짧아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길게 쓸게요...
'칠스트레일리아 > 다섯아이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생회장 김교신 19 (0) | 2017.06.15 |
---|---|
학생회장 김교신 18 (0) | 2017.06.14 |
학생회장 김교신 16 (0) | 2017.06.12 |
학생회장 김교신 15 (0) | 2017.06.11 |
학생회장 김교신 14 (0) | 2017.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