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학생회장 김교신 18

주방보조 2017. 6. 14. 06:58

18화.

축제가 끝난 다음 날인 토요일, 학생회 단톡방에선 강다영이 보낸 사진들 때문에 난리가 났다.

"31대 선배들이 저희 귀신의 집 뒷정리 아직 다 못한거랑, 쓰레기들 나온거 사진 찍어서 보낸 다음에 막 '이거 안보이냐? 이거 보고 아무 생각이 안들어?'라고 뭐라 했어요."

어차피 치울 생각이었다. 다만 토요일은 일단 쉬고 일요일에 가서 치우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마땅치가 않았나보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가오를 잡으면서 말하면 무슨 쾌감이라도 밀려오는 것일까. 왜 굳이 살벌하게 말을 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것도 나한테 안하고 강다영한테 말이다.

"일요일에 치울거라고 전해."

나는 딱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저러는게 하루이틀인가. 그리고 우리 학생회 부원들의 감정이 격해질까봐, 이태민 선배의 저격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진짜 할 일이 없는건지, 나를 너무 증오해서 저러는건지 모르겠네.'

축제 전 날에 나에게 사과를 했던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것은 과연 진심이었을까.

......

일요일 3시가 되자 우리는 모두 학생회실에 모여서 청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귀신의 집부터 청소하고, 우리가 안내판 붙인 것들도 다 떼어내고, 쓰레기 쌓인거 정리해서 다 분리수거 하고 버리자."

내가 여느 때와 같이 앞에 서서 일을 분배하고 있는데, 양우주가 칠판을 보더니 내게 질문을 던졌다.

"어, 근데 저거 우리 32대 이름 밑에 O,X 표시된거 뭐예요?"

학생회실 칠판엔 30대 학생회부터 31대, 32대 학생회 전체의 이름이 다 적혀있었는데, 32대 이름 아래에 O,X가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거 X 표시 되어있는 사람들은 이태민한테 다 뒤지는거 아니냐?"

신정화가 상당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전체 20명 중에서 X가 적혀있는 사람은 7명. 분명히 저것은 어제 학생회실에 들렸던 31대 선배들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우리들은 잠시 모두 굳은 상태로 계속 칠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31대 남자 선배 중 한 명이 들어오더니, 우리가 있든 말든 상관 안하는 듯 조용히 그 표시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아무 말도 없이 급히 뛰쳐나가는 것을 보니, 이건 그들끼리의 비밀이었나보다.

"야, 확실하다. 저건 블랙리스트다."

선배가 나간 후, 손경식이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정화의 추측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자 자기 이름 아래에 X표시가 되어있던 부원들의 얼굴이 초조해 보였다.

"제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요?"

그 중 하나인 양우주가 억울한 듯이 내게 말했지만, 솔직히 나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겠으니까.

"여러분 제가 말을 안하려고 했는데, 사실 우리 축제 끝난 날 새벽에 이태민 선배가 글을 하나 올렸어요. 우리보고 싸가지 없다면서. 거기에 다른 31대 선배들도 댓글로 저희 욕을 하더군요. 아무래도 문제는 축제 끝나고 뭔가가 있는것 같은데,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했을까요?"

하다하다 이런 회의는 처음 진행해본다.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걸까.

"사실 제가 어제 이태민 선배 친구들한테 들었는데요, 우리가 축제 끝난 날 밤에 자기들이랑 안놀아주고 고기 먹고 그냥 집가서 삐쳤대요."

손경식의 말에 모든 부원들의 입이 벌어졌다. 아니 이렇게 유치할 수가. 지금 그들이 화난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들이랑 안놀아줘서 그런 것인가?

"아니 피곤해 뒤지겠는데 놀 정신이 어딨어."
"맞아, 민진이는 고기먹다가 잠들었을 정도였다고."
"그 인간들 미친거 아니야?"
"무슨 이유가 그렇게 쪼잔해요? 초딩도 아니고."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방향은 같았다.

"그럼 과연 저 O,X 표시는 뭘까요? 저기 X표 되어있는 사람들은 뭔가 찔리는게 없어요?"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슨 잘못을 하긴 했을텐데, 도저히 알 길이 없었으니.

"일단 청소나 합시다. 아무래도 지금 학교에 31대 선배들 와있는 것 같으니."

........

다음 날, 학교에 가자마자 이태민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너네 32대 점심시간에 다 집합시켜 학생회실로. 점심먹지 말고 바로 오라그래.

이 미친놈이 또 뭐라고 말할까. 요즘은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냥 궁금할 뿐이었다. 오늘은 무슨 가오를 부릴런지.
내가 점심에 모이라는 공지를 모두에게 전하자, 그들은 다 아는 듯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 부원들도 다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점심시간이 되고 모두 학생회실로 모이자, 한 5분 후에 이태민 선배와 김재형 선배, 강현석 선배가 들어왔다.

"아, 존나 빡치네 씨발."

우리가 전부 자리에 앉아있으니, 이태민 선배가 칠판 앞에 서서 머리를 쓸어올리며 살벌하게 말했다.

"김교신 너 일어나봐."

"네."

"지금 인사도 똑바로 안하냐?"

"......"

"아니 뭐 지금은 그렇다 쳐. 너네도 봤겠지만, 우리가 왜 너네 이름 밑에다가 O,X 표시 해놨는지 알고있냐?"

"......"

"왜 대답을 안해? 진짜 몰라서 그래?"

"네. 모르겠습니다."

"와, 나 씨발. 진짜 어이가 없네? 하......"

한숨을 쉬어야 할 사람은 난데 왜 자기가 답답한 사람 행세를 할까.

"너네 축제 끝나고 나서 감사문자 제대로 안보냈지. 특히 양우주, 너는 왜 31대 선배 전체한테 감사문자 안보냈냐?"

"......"

"와, 또 대답 못하네. 장난하는 걸로 보이냐 지금 너네는?"

"......"

대답을 구걸하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우리의 침묵 뿐이었다.

"김태환이랑 박기동은 3줄 이상 안보냈고, 다른 애들도 양우주나 얘네 같은 케이스야. 너넨 진짜 우리한테 감사하긴 한거냐? 진심이 담겨있어야 우리도 받아들일거 아니야!"

이젠 목소리가 엄청 높아지며 윽박을 지른다. 내가 니한테 감사하겠냐. 보내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겨야지 이 꼰대새끼들아.

"그리고, 멀티실에 있는 롱핀관리 똑바로 안해? 오늘 내가 가서 롱핀 다 가져왔잖아. 게다가 지금 그거 롱핀 하나 삼각대 고무발 하나 사라졌는데 어떡할거야. 야, 회장, 어떡할거냐고."

고무발 하나 사라졌다고 사용하는 데 지장은 거의 없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는건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건 분명 대답하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답은 정해져있지 않은가? 새로 사지는 못하니 그냥 사용하면 된다고.

"대답 못하는거 봐라. 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너네 체육관 뒷정리 똑바로 안해서 우리 반 체육시간에 그거 뒷정리 한거 알긴 하냐."

분명 이태민 선배가, 축제 끝나고 나서 우리가 고기먹으러 갈 때 뒷정리는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놓고 지금 저러는게 말이 된다고 판단해서 입을 놀리는 것일까?

'뇌도 근육으로 되어있나?'

나는 이태민 선배의 성화를 정면으로 맞이하며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뇌에 주름이 있다면, 저런 사고방식은 결코 나오지 않으리라.
회장인 내가 그렇게 혼자만의 고찰에 빠져있으니, 다들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저기에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저건 공자님 부처님이 들어도 대답하지 못할 질문이었다.

"이 새끼들 대답 안하니까 씨발 내가 장난하는 줄 아나보네. 애들아, 그냥 나가자."

칠판을 주먹으로 쾅 한 번 치고, 31대 선배들과 함께 나가는 이태민 선배.
그들이 나가고 나서 박기동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한마디 했다.

"괜찮아 애들아. 배고파서 저런거야."

그러자 부원들의 얼굴에 서려있던 공포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여러분 일단 저희도 배고프니까, 점심이나 먹으러 가죠."

"네!"

저 꼰대짓에도 단련이 되어있는지, 우리 부원들은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수다를 떨며 급식실로 향했다.

......

학교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축제의 최종 마무리를 하기 위해 학생회실로 모였다.

"오늘의 회의 주제는, 올 해 축제의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들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는 겁니다. 먼저 좋았던 점부터 말해볼까요?"

"귀신의 집 반응이 좋았어요."
"저녁에 해서 어둡고 분위기 있었어요."
"가요제 때 섹시컨셉 춤 나오니까 반응이 좋았어요."

귀신의 집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이태민 선배의 간섭 덕분에 번호표를 발급하지 않게 된 탓에 초반에 엉망이 되었지만, 그 귀신의 집 자체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인상적이었던건, 내가 중학교 축구부 시절 나에게 칭찬은 거의 하지 않던 박준석 선배가 귀신의 집 엄청 잘만든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과, 내가 귀신의 집 출구에 있을 때 막 귀신의 집을 나온 여학생 한 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던 것이었다.

"명휘찬 개무서웠다고..."

예전에 보여줬던 이상한 좀비 연기가 확실하게 먹혔었나보다.

"그럼, 아쉬웠던 점들 한 번 말해볼까요?"

"귀신들이 너무 힘들어했어요."
"음료수가 부족해서 다 말라 죽는 줄 알았대요."
"가요제 때 누가 선밟아서 노래 끊겼던거, 선 지키는 사람 한 명 있어야 했어요."
"귀신의 집 질서 체계를 다시..."

한창 아쉬웠던 점들을 쏟아내고 있을 때였다. 이태민 선배를 비롯한 31대 남자 선배들이 학생회실로 갑자기 들어왔다.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또 무슨 지랄을 할까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자, 이태민 선배가 내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니 자리에 앉아봐."

......


이제야 내용이 중반부에 이르렀군요. 화이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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