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학생회장 김교신...8

주방보조 2017. 6. 11. 13:34

8화.

찬조 오디션 첫 날이 밝았다. 오전부터 준비할 것이 산더미 같아서, 아침 9시에 모여 오디션 준비를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대선배 분들도 두명이나 오셔서, 31대 선배들과 잠깐 대화를 나누더니 마침내 나와의 첫만남을 가졌다.

"얘기는 잘들었어. 32대 회장님이니?"

"아,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첫인상은 모두 좋으셨다. 딱 봐도 나쁜 일은 절대 하지 않을것 같은 분들인데다가, 마침 아이스크림을 사오셔서 학생회 부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애들아 대선배 오셨다 하나 둘 셋 하면 잘먹겠다고 인사드려라!"

내가 마이크를 잡고 하나 둘 셋을 외치자 모두 동시에 잘먹겠습니다! 하고 각자 할 일을 시작했다. 그 방법이 이 분들을 덜 부담스럽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 애들아 잘먹으렴"

웃으며 대답하시는 모습을 보고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 분들은 소문과 같은 무서운 분들이 아니었다.

"회장 친구, 혹시 여기에 구경 온다는 대선배 또 계셨니?"

"저는 연락 받은게 아직 없습니다."

"아하...일단 알겠어. 혹시 뭔가 오디션 준비 도와줄거 있으면 도와줄게!"

"아아, 진짜 그러실 필요 없는데...그러면 저희 준비하는데 문제점이 보이면 저에게 피드백 주세요!"

"그래, 그럼 좀 돌아다녀볼게."

그렇게 대선배 분들이 우리의 준비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나에게 와서 여러가지 피드백을 주셨다. 필요한 물품이나 질서배열 등등. 그리고 자기 때의 경험담까지 들려주셔서 꽤 도움이 되었다.
대화가 슬슬 끝나갈 때, 31대 선배들이 다가오더니 매우 공손한 태도로 대선배 분들에게 말했다.

"32대 애들 집합시켜서 Fm 인사 시킬까요?"

나는 그냥 무표정을 유지했다. 매우 신경에 거슬렸지만, 지금은 그걸 표현할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시키면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할 때였다.

"에이, 시키지 마. 그런거 해서 뭐해."

그러자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떠오르는 나와 다르게, 31대 선배들은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한가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대선배 분들이 무섭다는건, 그냥 31대 선배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

오디션 시작 시간인 2시가 되기 30분 전부터 지원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려 20팀이 넘는 인원들이 정보관 복도에서 대기를 하는데, 아직 멀티실로 들여보낼 수가 없어서 문제였다. 7월 말이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더운데, 갑자기 멀티실 음향장비가 고장나서 대기자들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곧장 대기자들에게 냉장고에서 갓 꺼낸 음료수를 나눠주면서, 정말 죄송하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다행스럽게도 오히려 웃으면서 나에게 힘내라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음향장비의 문제는 31대 선배들이 31기 방송부였던 선배 한 분을 급하게 불러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결되자마자, 바로 대기자들을 입장시키기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오디션 진행을 맡은 손경식이라고 합니다. 먼저 음향장비의 차질로 오디션이 늦어진 점 참가자 여러분께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제 곧 순서가 정해지는대로 오디션을 시작할텐데요, 호응 잘해주실거죠?"

그러자 참가자들 중 몇명이 동문서답으로 외쳤다.

"사회자 잘생겼다!!"
"여자친구 있어요?"

손경식은 마치 익숙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가 사실 호응 잘해주시고 몇개 준비한 게임 참가해주시면 여기 있는 상품들 드릴건데, 여러분 호응 잘해주실거죠?"

"네에~"

"목소리가 너무 작네요. 호응 잘해주실거죠?!"

"네!!"

"예, 정말 감사합니다. 아, 지금 바로 첫번째 무대가 준비됐다고 하네요. 첫번째 팀 이름은..."

사회자가 처음이라고 하더니, 아주 익숙한듯 능숙하게 진행을 잘해나가는 그를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유의 입담이 이런 곳에서 빛나는건가, 역시 홍보부 부장으로 뽑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디션이 한창 진행중일때, 나를 비롯한 학생회, 특히 회장단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졌다.
무대를 보면서 평가서를 써야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남자 춤과 여자 춤이 똑같은 노래에 똑같은 컨셉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다 똑같은데 평가서를 다 어떻게 쓰지'

나의 표현력을 총동원해야 했다. 무대가 꽉 찬 느낌이라든지, 몇명이 빠진 상태의 춤 대형인데도 흐트러지지 않고 잘한다는 등의 모든 특징을 하나하나 다 잡아내어서 미친듯이 적어대었다.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오디션이 끝나갈때 쯤엔 이미 나의 필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오디션 자체는 정말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특히 mr실에 있는 천혜린과 서민지, 팀들 순서가 여러번 바뀌어도 순식간에 처리해내는 이민진과 신정화, 그리고 그때그때 적절하게 진행해나가는 손경식의 공이 컸다.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모두 나가자마자 여기저기서 탄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몇시간동안 계속 서서 롱핀조명을 비추었던 김건휘와 정석훈이 땀을 비오듯 흘리며 주저앉았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약간 성이 나있는 듯 한 이태민 선배와 김재형 선배의 집합! 이라는 소리였다.

"일단 평가서부터 나한테 내. 이거 우리가 다 검사할때까진 좀 앉아서 쉬고있어."

그 말을 듣고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쉴 수가 없었다. 약간 경직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어색하게 휴식을 취하는 부원들이 많았다.
나는 일단 약간 긴장을 풀기 위해 옆에 있는 정재근에게 말을 걸었다.

"야아, 재근아 조명 센스 짱이더라."

찬조팀 중 하나가 노래에 맞춰서 긴장감 있게 조명을 조절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무대 조명을 누가 봐도 예술적으로 조절해서 무대를 보는 오디션 참가자들도 '오오오!' 하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훗, 이런 것쯤은 별거아니지. 음."

엄지를 치켜올리며 씨익 미소를 짓는 그를 보고 약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솔직히 딱히 오디션 중에 흠잡을 곳은 없었으니, 선배들도 딱히 별 말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평가서를 쭉 훑어보는 선배들의 표정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 애들아 집중해봐.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수고했고, 처음치고는 꽤 잘한 편이야. 근데 내가 보기엔 전혀 완벽하지도 않고, 문제점이 많아. 일단 김교신. 넌 평가서를 이렇게 써놓고 무슨 분별력을 가지고 합격팀을 뽑을거야?"

그 말을 듣고 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똑같은 춤과 노래를 4시간동안 보면서 깨알같은 글씨로 한 팀당 3줄이나 평가서를 썼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것과 꼬우면 니가 한 번 써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또 따지고 들면 싸가지 없다면서 화를 낼 것이 뻔하니까.

"그리고 서민지, 넌 왜 심사위원이 mr실에 가있어? 평가서는 뭐 그럭저럭 잘쓰긴 했는데..."

"Mr실이 너무 일도 많고 힘들어 보여서 간거예요. 진짜 저 없었으면 혜린이 죽어나갔을걸요?"

"뭐 알겠고, 강다영이랑 구연모. 너네 평가서가 제일 성의없어. 김교신보다 못썼네."

"죄송합니다."

오디션이 끝나고 약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5분도 안되어서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그렇게 회장단이 고개를 밑으로 떨구고 있을 때였다.

"야, 체육부 부장. 넌 뭐냐?"

갑자기 뜬금없이 김태환이 호명되더니, 쓴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질서 유지는 초반 빼고 일 없잖아. 근데 평가서가 거의 다 한줄이거나 없어. 참 나 이게 평가서라고 당당하게 내놓네."

그 말을 듣고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썩은 표정을 짓는 김태환. 그러나 일단 분위기상 평소처럼 말하지 않고 그냥 귀찮은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다 마음에 안들어. 평가서 이따위로 쓰면 내일 오디션때 대선배님들이 뭐라고 하시겠어?"

또 대선배님 타령이었다. 막상 대선배분들은 평가서 검사는 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너네 표정관리 좀 해라. 지금 불만이 가득해 보이네. 지금 내가 존나 꼰대같냐? 특히 신정화. 뭐 화난거 있어?"

성격상 솔직한 신정화의 얼굴 표정엔, 짜증이 미간에 잔뜩 몰려있었다.

"아니요."

그녀가 역시 표정과 같은 어조로 대답하자, 선배들의 얼굴은 더욱더 굳어갔다.

"야, 강다영이랑 서민지. 너넨 우리가 되게 웃으면서 잘해주니까 좀 만만하지? 너네도 표정관리좀 해라."

"아,네"

"하아... 오늘 뒷정리 잘하고, 내일 오디션 때는 평가서 제대로 써라. 알겠냐?"

곧 선배들이 모두 나가자, 학생회 부원들은 하나같이 작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


힘든 하루입니다. 정말 피곤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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