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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장 김교신...5

주방보조 2017. 6. 11. 13:30

5화.

방학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축제 찬조공연 오디션을 준비할 때였다.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 인수인계를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름 대강 틀만 짜서 우리끼리 준비를 시작했다.
31대 선배들은 이곳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부회장들과 손경식을 통해 가끔 연락을 하며 대충 어떻게 하는지 조금씩은 알았지만, 절대 자세하게 가르쳐주진 않았다.
내가 아는거라곤 롱핀조명 두개를 무대에 비춰야 한다는 것, 오디션 장소는 멀티미디어실 이라는 것, 그리고 포지션은 대충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도.
그러나 뭘 자세히 준비해야할지, 뭘 물어봐야 할지조차 잘 모르는 마당에, 체계적으로 오디션을 준비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러다 오디션을 4일 앞둔 날, 이태민 선배가 손경식에게 전화를 했다.

"경식아, 오디션 준비는 잘하고 있고?"

그 속에 여러 의미가 있으리라. 자신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와 회장이 얼마나 무기력해졌는지 궁금하다는 의미.

"아니요, 솔직히 뭔가 많이 빠진것 같아서 불안해요."

"내가 인수인계 회장한테 다 해줬는데?"

"교신이는 거의 모르던데요?"

"아, 이거 한 번 찾아가야겠네"

의기양양한 목소리였다. 약간의 웃음이 섞인, 승리자의 말투.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1시간이 지나자, 이태민 선배와 김재형 선배가 한껏 어깨에 힘을 넣은 채 정색한 표정을 짓고 멀티미디어실로 들어왔다.
고3인데 할 일도 어지간히 없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 생각은 이태민 선배가 무대에 있는 마이크를 잡고 집합!이라고 말하자마자 끊겼다.

"너네 다 일단 앉아봐."

각자 할 일을 하며 흩어져있던 부원들이 모두 정렬해서 앉자, 이태민 선배가 한껏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하기 시작했다.

"너네 지금 뭐하는거야? 롱핀도 제대로 설치 안돼있고, 노래틀면서 너네끼리 가상 오디션하면 연습이 다 끝나는 것 같았어?"

마치 자신이 모든걸 알려줬는데 제대로 못해서 속상하다는 듯 말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당당하고 뻔뻔스럽고 당연해보여서, 모두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김교신. 내가 너한테 인수인계 다 해줬는데 지금 이 꼴이 뭐야?"
"......"
"모르는게 있으면 물어라도 봐야할거 아니야."
"......"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선배'님'들이 제대로 안해줬잖느냐고 따져봤자, 애꿎은 학생회 부원들만 잔소리를 더 오래들을 판이었으니.

"내가 왜 경식이한테 알려줬는지 알아? 경식이가 나한테 모르는걸 물어봐서야. 근데 니가 회장 아니냐?"

난 그저 내가 직접 물어보면 답장도 안해줄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에, 손경식을 통해서 정보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말만 듣게되는 학생회 부원들은, 내가 성실하지 않은 회장이고, 손경식이 회장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지금부터 내가 지휘할테니까 잘 따르고, 내가 진짜 시간 많아서 이러는게 아니라 너넬 위해서 해주는 거니까 항상 감사하는 마음 가지고."

입을 여는 사람은 우리들 중 아무도 없었다. 그냥, 회장이 무능해서 혼나는건데 딱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일단 시간이 좀 늦었으니까 다들 집에 가. 회장단은 여기 남아서 나랑 얘기좀 해."

...

"아니 내가 너네를 혼내려는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우리 없이 오디션 진행 어떻게 하려고 했어?"
"......"
"아니 왜 대답이 없어? 김교신, 지금 너한테 물어보는거 아니야. 어떻게 하려고 했냐고 지금 묻고있잖아."

텅 빈 멀티미디어실 안에, 이태민 선배의 말만 울려퍼졌다.
대답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이 질문은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나온 여자친구가 잘어울리냐고 물어보는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모르겠습니다."

대답은 했다. 다만 회피형 대답이었을 뿐.
그러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태민 선배의 미간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모르겠어? 야, 내 눈 똑바로 쳐다보고 말해봐. 모르겠다고? 지금 내가 장난치는걸로 보이는건가?"

부회장들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문득 마음이 무너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힘이 없어서 부회장들의 고개를 숙이게 한 것은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나 또한 고개를 떨궜다. 이것이 최선이라는 걸 알기에, 망설임없이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알면 됐고, 내일부터 매일 찾아와서 인수인계 해줄테니까 엉망으로 진행되면 진짜 각오해라 너네. 내가 화내는 모습 보고싶지 않으면 진짜 제대로 하는게 좋을거다."

"네 알겠습니다."

...

다음 날, 오전 10시부터 선배들의 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오디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무대 조명 설치, 롱핀 조명 설치, 포지션 연습 등등.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두 대충 감을 잡았을 때, 김재형 선배가 나를 불러서 말했다.

"너네 단체로 스태프티 맞춰야 하니까, 뭘로 할지 정하고 있어. 나랑 태민이는 오늘 어디 갈 곳 있어서 잠깐 갔다가 올테니까, 다 정하면 너네끼리 오디션 연습하고 있고."

그렇게 선배들이 떠나자, 드디어 내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서서 부원들을 앞에 앉혀놓고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 저희가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것은 바로 스태프티 구입인데요, 작년엔 강렬한 빨강색이었는데 이번엔 무슨 색으로 할까요?"

그러자 학생회 부원들이 각양각색의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작년엔 너무 색깔 이상했어요. 어두운 색으로 무난하게 해요."
"오디션 볼 때 불끄고 하는데 어두운 색으로 맞추면 눈에 잘 안띄지 않을까요? 저는 밝은 계열이 좋을 것 같은데."
"저는 민트색을 추천합니다. 왜냐면 제가 좋아하거든요."
"그냥 다같이 싫어할 분홍색으로 맞춥시다."

서로 의견을 내다가, 뭔가 흥이 났는지 왁자지껄 별의 별 색을 다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후보로 나온 색은 무려 7가지.
다수결로 추리고 추리다보니, 결국 강다영이 강력하게 주장한 민트색과 정재근이 추천한 검정색 두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민트색이 더 밝으니까 눈에 잘띄고 좋을거예요!!"

강다영이 신이 나서 큰소리로 주장했지만, 투표 결과는 한 표 차이로 검정색 승이었다.
어차피 어두운 상태라서 민트색도 똑같이 잘 안보일거라는 주장이 더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매우 간단한 회의같지만, 20명의 의견을 모두 통합하다보면 이런 간단한 회의도 20분이나 걸렸다. 그래서 회의를 하는 도중에 어느새 저 뒷자리에 선배들이 앉아서 회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야 다영아, 애들 사이즈 조사해서 정리하는건 니가 해라. 나 지금 머리가 좀 아파서 쉴게."

어제의 일 이후로 밥도 잘 안들어가고, 스트레스 때문에 잠도 오지 않아서 2시간도 채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학교로 오는 바람에 갑자기 두통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결국 강다영에게 회의진행을 맡기고, 혼자 의자에 앉아서 회의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진 몰랐다. 이 행동이 어떤 사건을 불러일으킬지.

...

각자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시간에, 나는 돈이 한 푼도 없어서 그냥 굶은 채로 의자에 앉아 계속 눈을 감고 있다가, 문득 방송부에게 마이크를 빌려야 하는 일이 떠올라서 서민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전화를 도통 받지를 않았다. 단지 무음으로 해놔서 못보고 있는 것일까?
그러려니 하다 문득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놓은 멀티미디어실이 춥게 느껴졌다. 햇빛도 쐬어볼 겸 나는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연스럽게도 운동장에 나가자, 마침 부회장 셋과 손경식, 그리고 이태민 선배가 같이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빼고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일까? 설마 내 욕은 아니겠지.
나는 태평하게 운동장에 드러누워 그들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내 욕이 아닌 이상, 내가 있든 말든 신경을 안쓰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서민지가 나를 발견한 듯 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모두 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정말 내가 들어선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가?

점심시간이 끝나고 모두 멀티미디어실로 들어왔을 때, 나는 서민지에게 방금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눈을 피하며, 그냥 몰라도 되는 일이라며 얼버무렸다. 그러나 내가 몰라도 되는 일이라고 치기엔, 1학년 부회장들의 눈빛이 너무나도 수상했다. 나를 뭔가 멸시하는 듯 한.
표정만은 편하게 짓고, 일단 연습을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학생회 부원들을 모두 자리에 앉혔다.

"일단 자기 포지션 일이 뭔지 잘 모르겠는 분 계신가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봉사부 부장인 박기동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제가 오디션 당일날에 제사가 있어서 늦거나 못올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제가 장손이라서 진짜 빠질 수가 없어요..."

난처했다. 학생회 일때문에 가정에서의 일에까지 피해를 끼쳐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당연하다는 듯 걱정말고 그냥 제사드리러 가세요 라고 말하기에는, 다른 부원들의 불만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아무래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곤란한것도 사실이었다.

"흠, 진짜 어쩔 수 없는거라면 빠지는게 맞겠죠. 그러면 어떻게 부족한 1명의 인력을 채울까요? 여러분 혹시 좋은 의견 있으신가요?"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쳐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건지, 말할 분위기가 아닌건지, 이 상황이 상당히 불만스러운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하아..."

정말로 난처했다. 오디션이 이틀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박기동은 첫날만 빠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 명의 결원이 생긴다는건 곤란한 일이니까.
그렇다고 사정 봐주지 않고 가지말라고 하면 당장 박기동의 부모님이 달려오셔서 학생회 때려치라고 말씀하실 것 같았다.

"일단 기동이는 그럼 어쩔 수 없이 빠지는걸로 하고, 다른 부원들도 좀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기동이 일을 누구에게 동시에 시킬지는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그때였다.
갑자기 부회장인 구연모가 손을 들더니, 나에게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형은, 지금 이 상황이 제대로 된 것 같아요? 뭐하시는 거예요? 아니 무슨 일처리가 저래."

나는 순간 당황하여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가, 곧 이어지는 서민지의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야 그래도 그렇게 말하지 마. 어찌 됐든간에 우리가 내세운 회장인데. 게다가 선배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말하는거 아니야. 아무리 못하고 있더라도 선배는 선배잖아."

그러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멀티미디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대체 아까 무슨 얘기를 했길래, 부회장들이 나를 이렇게 대한단 말인가?

...


본격 암걸리는 소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글이 좀 길어져서 허허허
부회장들 나쁘게 보지 말아주세요. 다음 내용 보면 아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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