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16기 대선배인 박동주의 소집령이 떨어졌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31대 선배들에 의해 나를 제외한 학생회 단톡방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32대 학생회 홍보부 부장으로 뽑힌 손경식이 31대와의 화해를 이끌어 보겠다며 노력을 해 본 끝에 이루어진 결과가, 철저히 회장을 단절시키는 것이었다.
"일단 너무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지마. 나중엔 다시 처음처럼 복구가 될거야."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를 위로하는 손경식의 말에, 나는 그저 운동장에 있는 잔디만 말없이 손으로 뜯을 뿐이었다.
나 스스로가 한없이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나의 손으로 뽑은 학생회에서 내가 소외되는 꼴이라니. 하지만 이 상황에선 이게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괜찮아. 일단 일부터 상황 보고 다시 복귀해도 되는거니까."
"아 그런데 이태민 선배가 너한테 꼭 사과는 받아야겠대."
"야,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아마 받아줄 생각도 없을걸?"
"그냥 눈 딱 한 번만 감고 해줘. 어쩔 수 없잖아. 지금 너 혼자 이러면 부회장들은 영영 너에게 돌아오지 않을거야."
맞는 말이었다. 이미 나에게서 떠난 부회장들을 더 힘들게 하지 않으려면, 31대 선배들에게 사과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난 회장이 된 순간부터 자유의지를 잃고 비정상적인 사회에 순응해야 했던 것이다.
"알겠어. 그냥 만나서 사과해야겠다."
...
다음 날 교실에 들어가자, 나와 같은 반인 체육부 부장 김태환이 나에게 와서 격앙된 어조로 전날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박동주라는 대선배가 와가지고 계속 '학교엔 학생들이 있고, 그 위에 선생들이 있고, 그 위에 학생회가 있다.' 이 말만 앵무새처럼 계속 떠들었다니까? 무슨 한시간 반동안 그 얘기만 해 개빡치게 진짜 학원가야되는데."
"내 욕은 안하고?"
"당연히 했지. 뭐 대선배들을 부정했다나 뭐라나 하면서 그냥 독단적인 행동으로 모두의 신뢰를 잃었다 어쩌고 하는데 무슨. 참 나, 아니 같이 한 번도 모인적이 없는데 신뢰를 어떻게 잃어."
그 말에 나는 한참 동안을 웃을 수 있었다. 모두가 이런 마음이라면, 지금 이런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걸 잘 알고있었다. 이미 나는 학생회 내에서 31대 선배들의 선동에 의해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렸으리라.
"뭐, 일단은 사과했으니까. 잘 풀어나갈 수 있겠지."
어제 내가 직접 찾아가서 이태민 선배에게 머리를 숙였다. 치욕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불리한 상황이므로 일단 숙여야 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 만들어진 단톡방에도, 손경식의 초대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학생회 20명이 처음으로 모두 학생회실에 모인 날이었다. 31대 선배들이 우리를 모두 앉히더니 앞에 나와서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너네한테 Fm인삿법을 가르쳐 줄거야. 선배님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잘 보고 배우도록 해. 김교신 나와서 시범 보여봐."
나는 저번에 배운대로, 십자선에 맞춰서서 왼손을 위로 두고 배꼽에 두 손을 올린 채 허리를 천천히 90도로 숙였다가 천천히 올리고서 미친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자양고등학교 직선 32대 학생회장!! 김!!교!!신!! 입니다!!"
"들어가봐."
나는 말을 잘 듣는 개같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들어갔다. 비참했다. 지금 나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학생회 부원들의 얼굴이 굳어있는 것을 보았다. 황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가 깡패조직은 아니지 않는가?
곧이어 31대 선배들이 인사 받는 자리에 앉아서, 학생회 부원들에게 그 인사를 한 명 한 명 시키기 시작했다.
회장이 일단 그들에게 굴복했으니, 마치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들도 나를 따라 그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머리 묶어. 그리고 머리 움직이지마. 머리 헝클어지든 말든 그냥 움직이지 말고 목소리 더 크게해."
"아, 목소리 그것 밖에 안나와? 더 크게 해봐."
"인사를 하려면 똑바로 외워서 해야지."
저번의 나처럼, 그들도 선배들에게 혼이 나며 그 인삿법을 배우고 있었다. 미안했다. 내가 이미 나의 입지를 잃어버렸는걸...
나 스스로가 회장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저런 인삿법 하나 없앨 힘조차 없다니.
체육부부터 서기까지 모두 인사 연습이 끝나자, 이태민 선배가 나를 불러서 앞에 세웠다.
"자, 지금부터 회의진행 해봐. 축제 찬조공연 오디션 준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갑작스럽게 앞에 서게 되니,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31대에게 인수인계를 못받았는데 내가 뭘 알아서 회의진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그래도 모두가 지금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보드마카를 들고 회의 진행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장 김교신 입니다. 음... 일단 이렇게 모이는건 처음이네요. 저희가 축제 준비로 가장 먼저 해야하는게 찬조팀 오디션 홍보지를 제작하고 오디션을 실제로 봐야하는거예요. 그런데 홍보지 제작엔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학예부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요. 홍보지 디자인에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분 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봐도 좋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 패러디한것도 좋구요, 게임 패러디도 괜찮습니다."
그러자 학생회 부원들이 핸드폰으로 다들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태민 선배에게 학생회실 밖으로 불려나갔다.
"너 왜 존댓말쓰냐? 그렇게 하면 애들이 말을 안들어. 회장이 권위가 있어야지. 너 너무 기가 죽어있는거 아니냐?"
"의견이 충돌하거나 피드백을 줄 때 반말과 존댓말은 느낌이 확연하게 다릅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전부 전교회장 하면서 반말을 쓴 적이 없습니다."
"중학교랑 고등학교랑 지금 같아? 생각이 아직도 중학교 수준인가? 진짜 마음에 안드네"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말하다가, 갑자기 학생회실에서 부회장들을 데리고 나오는 이태민 선배.
방금과는 180도 다른 말투로 사근사근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애들아, 너네가 일단 내새운 회장이잖아? 그러니까 잘 보좌해줘야해.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라고. 알겠지? 자, 다들 들어가서 회의 마저 진행해."
그 말을 끝으로 그 선배는 다른 31대 선배들과 함께 떠났다. 인수인계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채로
...
번외편으로 학생회 면접 에피소드를 올릴까 하다가 그냥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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