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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샌회장 김교신...6

주방보조 2017. 6. 11. 13:31

6화.

그렇게 부회장이 뛰쳐나가자, 회장으로서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어디가냐?"

정보관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 그를 나는 약간의 협박성이 다분한 말투로 불렀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단지 정말 어디로 가야하는지 생각하는 듯 멈춰섰을 뿐이다.
나는 아무말 없이 다가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책상에 앉아 여전히 가만히 서있는 그에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뭐가 불만이야, 내가 뭘 잘못한거지?"

구연모의 눈빛은 아까와 달리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말해봐. 그게 부회장이 할 일이야."

"형 일단 아까 예의없이 말한건 죄송하구요, 제가 불만이 있는건 일단...하."

구연모가 특유의 한숨을 쉬며 뜸들이기를 시작하자, 그냥 난 말없이 그가 입을 열때까지 기다려줬다.

"형, 아까 회의할 때 좀 분위기가 산만해서 몰랐는데, 중간에 회의 다영이한테 맡기고나서 대놓고 잤다며요. 그래서 지금 선배들이 다 형한테 화나서 또 저희 따로 불러서 얘기했어요."

"그러고보니 방금 점심때 무슨 얘기를 한거야?"

"이태민 선배가 이제부터 형을 회장으로 인정하지 말고 경식이형을 중심으로 학생회 회의하고 운영하라고..."

그 말을 들으니, 방금 서민지가 나에게 내용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랬구나. 난 머리가 아파도 회의중에 잠깐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없구나.
어이가 없었다. 트집도 이런 말도 안되는 트집이 없지않는가?

"야, 연모야 너는 나랑 무슨 생각으로 회장선거 나온거야? 내가 방금 대놓고 잤다고? 머리 아파서 다영이한테 잠깐 진행 맡기고 눈감고 쉬고 있었던걸 지금 그렇게 말하는거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절로 부회장에게 화를 내버렸다. 아무리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하지만, 이건 그저 나만 싫어하는 사회에 가까웠다.

"지금 이태민 선배 말만 듣고 멋대로 계속 판단할거면 그렇게 해. 너도 나랑 같이 회장선거 나온걸 후회할거고, 나도 그럼 똑같이 후회하겠지."

"......"

뭔가 할 말을 잃었는지, 그는 계속 우물쭈물 하는 모습이었다.

"또 무슨 불만있냐. 말해봐. 오해는 풀어야할거 아니야?"

"제가 좀 불만이었던게요, 형이 방금 기동이형 빠지는걸 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잖아요, 다른 부원들도 시간 많아서 하는거 아닌데 기동이형만 저렇게 봐주면 안돼죠. 회장인데, 이태민 선배처럼 강제성을 부여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지금 그는 이태민 선배의 카리스마에 세뇌된 것이 분명했다. 누가봐도 비정상인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연모야, 일단 회장의 힘을 제일 뺏어간게 너네야. 그래놓고 나한테 힘없다고 뭐라하면 안되는거지. 그리고 너는 기동이가 학생회에 더이상 못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해봤어? 1년 남은 임기 중에 하루를 못빠져서 부모님이 찾아오시게 만들고, 기동이랑 영영 같이 일을 못하게 된다는 그런 생각은 안해봤어?"

이태민 선배가 도대체 어떤 분위기로 구연모를 휘어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내 말을 듣는 그도 상당히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일단 들어가자. 오디션 연습이나 좀 더 해야지."

더이상 나도 그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그냥 데리고 멀티미디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묵으로 나를 반기는 학생회 부원들에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오디션 연습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

여러차례 연습이 끝난 후 저녁 7시가 되자, 집에 가기 전에 이태민 선배가 우리를 모두 불러모았다.

"애들아 정말 수고 많았고, 1학년 차장들은 먼저 집에 가. 그리고 회장단도 일단 같이 운동장에 나가있어. 너네끼리 뭐 할 얘기 있어보이던데, 나도 2학년 부장 애들한테 할 얘기 있으니까."

그렇게 멀티미디어실에서 나와, 부회장들을 데리고 운동장 한가운데에 앉았다.

"할 말이 많네. 너네 뭐, 나를 회장에서 몰아내려고 한다며?"

앉자마자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하자, 부회장들은 약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그게 손경식만 회장으로 내세우자는게 아니라, 너랑 손경식을 같이 리더로 내세우자는거야. 일을 분배한다 이거지."

수습을 하는 듯 서민지가 돌려서 둘러대었고, 강다영이 옆에서 그녀를 거들어주었다.

"이태민 선배가 그러는데, 오빠가 학생회 부원들 전체한테 신뢰를 잃었다고 하길래..."

"누가? 누가 그렇게 말해? 내가 모두에게 신뢰를 잃었다고?"

"인수인계 제대로 못받은것도 그렇고, 솔직히 선배들이랑 너는 사이가 안좋으니까 손경식이 진행하는게 편하지. 그리고 너 회의시간에 잔거 때문에 선배들이 엄청 화났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미 지금 이런 얘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내가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랬구나...뭐, 내가 회장 자격이 없다는 거겠지 지금 이 상황만으로도. 그래 너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네. 알겠어."

"아니 회장 자격이 없다는게 아니라..."

또 서민지가 나를 달래려 둘러대기 시작했지만, 어차피 내용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이태민 선배가 손경식을 회장으로 내세울테니 힘이 없는 김교신은 그냥 일만 하는 노예가 되어라. 이름만 회장인 사람이 되어라.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미안해요 형. 너무 큰 짐을 지워드린 것 같아요."

구연모가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지만, 그냥 이젠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노을이 정말로 아름다웠다. 슬플 정도로 말이다.

......

집으로 향하던 중, 문득 집에 들어가기 전에 손경식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파트 입구에 있는 벤치에 홀로 앉았다.
전화기를 손에 쥐고 고민이 되긴 했지만, 망설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는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나를 믿어주는 학생회 부원이니까.

-여보세요?

"어, 경식 지금 집가는 길이야?"

-어어, 버스기다리고 있어. 왜?

"아까 이태민 선배가 너네 2학년 불러놓고 무슨 얘기했어?"

-아...그러니까...교신아 진짜 얘기 듣다가 화내지 말고 차분하게 들어봐.

"말해봐."

-이태민 선배가 애들한테 너 회의시간에 잔거랑 인수인계 제대로 못받은거 얘기 하면서 너 회장자격 없으니까 나를 내세워서 학생회 운영하라고 말했거든?

"응,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어."

-근데 내가 입장이 좀 곤란해. 솔직히 말해서 나도 괜히 회장 일 같은거 하기 싫은데, 지금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잖아.

"뭐?"

심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친구에게까지 배신을 당하는 것인가? 정말로 믿기 힘들었다.

"니가 내 친구냐?"

진심으로 화가났다. 내가 왜 회장이 되었을까 후회도 동시에 밀려왔다. 친구가 동료가 되는 순간 더이상 친구가 아닌거구나.

-교신아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오지 말고, 나도 진짜 하고싶어서 하는게 아니야. 선배님들이 다 너한테 화가 났고 학생회 애들도 다 너를 싫어한다는데 지금 이 상태에서 수습할 수 있는게 나라면 사적감정보다는 공적인게 우선시 되야지.

"말 똑바로 해 너 진짜 미쳤어? 너까지 선배들 말에 넘어가서 나한테 그러면 어쩌자는거야?"

-나도 선배들한테 진짜 교신이한테 기회 한번만 더 달라고 부탁까지 했어. 근데 안된다고 하는데 어떡해... 정말 미안하다 교신아. 일이 이렇게 돼버렸네.

"됐어. 그냥 내가 회장 그만둘게. 너네끼리 알아서 잘해봐. 어차피 나 없어도 잘 돌아가겠지만."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너무나 이상할 정도로 돌변해버린 친구의 태도에 난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말없이 핸드폰만 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학생회장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결정했다. 당장 내일 그만두는 것이 상책인것 같았다.
그러나 또 마음이 엄청나게 무거워졌다. 내가 뽑은 학생회 부원들을 내가 버리는 꼴이 아닌가? 아니, 그들은 나를 싫어한다는데 왜 나는 그들을 저버릴 수가 없는걸까.
갑자기 자율부 부장인 신정화가 떠올랐다. 그녀라면 뭔가 내가 기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학생회 애들이 다 나 싫어해?

그러자 그녀가 답장을 바로 보내줬다.

-뭔소리야 누가그래? 난 너 안싫어하는데? 아니 그리고 너 싫어한다는 애들도 없어.

-다들 나 싫어하니까 이제부터 경식이를 회장으로 내세울거라고 들었어.

-아니 니가 뭘 잘못한거야? 난 니 잘못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되는거지. 솔직히 여기에 순응하고 있는 모두가 이해가 안 돼. 야, 진짜 너 힘 좀 내. 회장인데 지금 뭐하는거야?

갑자기 그녀의 말을 들으니 힘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회장 자격이 없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힘 좀 내볼게. 난 이만 집들어간다.

짧은 마지막 답장을 남기고 또다시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과연 내가 회장을 그만둬야 하는 것일까?
아니, 신정화라도 나를 믿어주고 있으니, 그 한 명을 위해서라도 나는 회장을 버릴 수 없었다. 힘들겠지만, 그것이 나의 길이리라.

......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더 커지는 그림자는 정작 아무도 봐주지 않고, 위에 있는 나를 계속 지켜보며 모두들 손가락질한다.
아, 그 순간에도 나는 홀로 그림자 속에서 계속 움직인다.
언제나 더 하지 못함에 스스로를 원망하며, 완벽하지 못한 나를 책망하며.
가시방석 위에 앉아, 무거운 짐에게 내리눌러지며 일어나려 안간힘을 써본다.
어깨가 무너질 것만 같고, 목이 부러질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서 내 자신을 놓아버리면, 내 짐은 누가 지고 간단 말인가.
아니지, 길은 내가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 의해 택해지는 것이기에, 나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럴 자격조차.
나는 힘들어 할 위치가 아니다.
내 등을 밀어주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미안하지 않도록, 더 발전해서 자랑거리가 되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야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자 속이라지만, 사람들이 나를 보러 그림자 속에 들어올 것이라고 나는 믿기에.
그래서 그 때를 바라보며, 나는 더 많은 사람을 품기 위해 그림자를 넓혀나간다.

......


맨날 새벽에 올려서 죄송합니다... 이제부터 소설 공개범위를 전체공개로 설정하겠습니다. 더 많이 봐주시기를!
참고로 맨마지막 글은 실제로 작년 7월 27일자로 제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있는 글이랍니다. 오디션 3일 전 집 앞 벤치에 홀로 앉아서 끄적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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