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6:13)
학생이 선생님에게 배울 때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이때 반응은 대략 두가지로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것이 왜 그런지 여쭙는 것과 그것은 틀렸다고 단정 짓는 것 말입니다.
졸기 좋아하는 불성실한 학생은 빼고 말이지요.^^
마음을 열고 겸손한 자세로 묻는 학생에게는 그 가르침이 제대로 된 효력을 발할 수 있겠지만
마음을 닫고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 하는 이는 아마 선생을 멸시하고 결국 그를 떠나 버릴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은 특히 열광적 은사주의의 오만과 여러가지 탐욕의 충돌들로 비벼진 교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저들의 그런 행태를 바로 잡으려는 고뇌어린 도전과 설득으로 가득합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그 유명한 은사에 대한, 사랑에 대한, 부활에 대한 기준으로 굵은 획을 그어주는 가르침도, 그런 이유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를 막고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쓰기 전에 한번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통째로 전해지지는 않지만 바울의 말에 의하면 엄중한 문책이고 강력한 책망의 글이었던 것입니다. 배우지 않으려는 학생에게 선생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징계를 편지로써 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후회 하면서 이 고린도 후서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이제는...아비, 아비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마음을 열라고, 옹졸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마음을 좁히지 말고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같이 자신의 가르침을 받으라고...말입니다.
...
사실 우리는 어느정도 고린도교인들과 같습니다.
예수의 뜻은 다락방 속에 가둬 놓고, 앞마당에 펼쳐지는 현실의 이익과 쾌락을 주어먹기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쉽게 예수의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틀렸다고, 그것은 뜬구름 잡는 것이라고 비웃곤 하는 자들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은사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부귀나 권세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가르쳤으며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우리를 향해 지금...
마음을 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듣는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속주의적 모든 가치관의 빗장을 풀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 되신 하나님 그의 발 앞에 업드려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가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신 것을... 그만이 그러실 수 있다는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비로소 우리는 좋은 학생이 되는 것이며, 발전을 시작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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