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14:10-11)
"가룟유다의 배반은 세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다.
그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그의 목적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 과정 속에 친구의 배신이 안배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단이다.
그는 가룟유다의 속으로 들어가서 그를 충동하고 예수를 배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가룟유다 자신이다.
모든 일의 최종적인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또한 모든 것의 종결이다. 그는 당신의 절대 의지로서 하실 일을 하신 것이다.
또한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의지로서 자기의 일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원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당연히 책임과도 무관하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위의 글은 왜 가룟유다가 정죄받는가에 대한 저의 불완전한 개인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읽고 잊어버리시기를...^^
...
각설하고
가룟유다가 왜 예수를 배반했는지에 대하여는 많은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수많은 예수의 교훈과 기적을 직접 경험한 특별히 선발된 12제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바꾼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보여준 권력의지처럼 가롯유다에게도 어떤 목적의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그의 돈에 대한 탐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그것이 전부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아쉽습니다.
교훈이 제 아무리 훌륭하고
기적이 제 아무리 대단해도
듣는 사람에게 올바른 믿음이 없으면
다 영양가 없는 것들에 불과한 것으로 들리고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탐욕을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치있게 보이고 바로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도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자기 이익을 위해 써 먹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의 결과 예수를 배반하여 팔아서라도 자신의 원하는 목적을 달성코자 하는데까지 이르렀던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마귀는 격동하였을 것입니다. 가룟유다의 양심과는 동 떨어진 결정을 내리도록...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만약 그 믿음이 자기 목적에 따른 것이라면, 그 누구도 가룟유다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수 많은 열정적인 신앙인들이 오히려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면서도
자신이 하는 짓이 옳다 우기고 사는 것은
바로 이런 가룟유다적 함정에 빠진 탓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주를 사랑함으로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함으로서, 결국은 주님의 대적자의 편에 서버리는 일입니다.
"나의 예수 믿기"는 과연 어떤 것인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가룟유다를 거울 삼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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