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3:1)
예전에
어떤 친구가 기도를 시작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아, 별로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어서였는지 제겐 정말 귀에 부담되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편 존경스럽고, 다른 한편 의심스럽고 말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 극단을 보여줌으로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건방진 말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반하고 떠난 여자를 향하여 분노하고 살륙하여 보복하는 것이 당시대의 일반적 방식이었을 것이고
혹 너그럽다면 조용히 요셉처럼 관계를 끊어 서로 상관하지 않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서 음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마음으로만 멀리서 불쌍히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가서 사랑하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색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자라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버거운 것입니다.
겨우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으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따름이지요.
그래서
전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하고 시작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