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지난주 중 서울대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온 후
30년전 기억하던 캠퍼스와는 너무나 달라졌다며, 아이들에게 토요일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 권하였습니다.
나무들이 크게 자라서 단풍이 멋지게 들었고, 연못조차도 참 이뻐보였다는 둥...
대학생들은 셋 다 이유가 있어서 갈 수 없다고 하여
우리 부부와 아랫것 둘 모두 넷이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토요일...아침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아내는...우울증으로 하루종일 돌아누워 책만 읽었습니다.
주일
맑게 하늘이 개고 아내의 마음도 맑아졌으므로
오후4시 다시 마음을 합친 우리는 서울대를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
7호선을 타고 이수역에서 4호선으로 그리고 사당에서 2호선으로 갈아 타고 낙성대입구역에서 하차하였습니다.
봉천6동은 제가 2년정도를 살았던 곳이었는데
35년이나 지난 그곳은 정말 그 어느곳 하나 제 기억에 남아있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먼저 낙성대 구경을 하고 서울대 후문으로 들어가서 정문으로 나오는 코스를 택하였습니다.
낙성대쪽으로 꺽어지는 길 앞에 커다란 새 건물이 위용을 자랑하는 가운데 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김대중대통령 표창, 미국대통령의 감사장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외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입니다' '어머니 하나님을 들어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안상홍증인회, 즉 안상홍이 죽고 나서 그의 아내 장길자가 하나님이 된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교세가 커진다고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한, 그 감탄할만큼 큰 건물을 지나가며 ...원경이가 작은 소리로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향해 '이단이예요, 가지마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들은 사람은 저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만^^
...
정말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계속 올라가니 왼쪽에 낙성대 공원이 나타났고
조금더 올라가니 서울대 교수회관과 교수아파트가 좌우로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후문이 나오고 가장 높은 곳에 기숙사가 보였습니다.
사실 제 기억에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 실제로는 상당한 거리였으며 게다가 은근히 오르막으로 계속되는 길이었습니다.
이 코스를 제안한 저는 상당히 미안해 했지만
낙성대를 처음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교수아파트에서는 너희 둘 중 하나가 여기 살게 되면 좋겠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웃기고
기숙사를 보면서는 저기가 고지이니 저기까지만 올라가면 내리막이라 힘이 안 들 것이라며 등을 떠밀고 하여 ... 기분 좋게 통과^^
그 다음 길은 제가 전혀 가 본 적이 없는 길이라서 아내가 안내를 맡았습니다.
신입생 때 정장에 구두만 신고 다녀서 높은데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시작했지만
내려가면서 여기저기 추억의 장소들을 골라내고
단풍이 곱게든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주일이라서인지 길로 다니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지만 칙칙한 도서관은^^ 불이 층층마다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입학식을 했던 대운동장을 보며, 7센티높이 구두를 신고 까치발을 하고 자기 과를 찾는데, 남학생들이 우와 꺽다리다~했다며 추억을 더듬는 얼음공주마눌님의 표정에 그때의 기분때문인지 발그레 홍조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신입남학생들은 참 작고 찌질하게 보였었다나...ㅎㅎ
...
서울대학교 강철빔 심벌이 멋없게 서있는 정문을 벗어나서, 우리는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했어야 했습니다.
아...그랬어야 멋진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봉천사거리까지 걸어가자 제안을 했고(만보계수자를 채워야 한다며) 고생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고개가 적잖이 길었으며 봉천4거리 즉 서울대입구역에 도착했을 때 6시가 조금 넘었는데 우리 모두는 기진맥진, 게다가 원경이가 사달라고 한 이탈리안 요리집은 커녕 변변한 음식점들이 없었습니다. 이골목 저골목 다녀봤지만 70년대 대학가 술집분위기만 나고...
장고끝에 악수...
그냥 바로 눈앞에 있는 맥도널드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한식을 별로 탐탁치 않아 했으므로...
맛...없었습니다. 최악의 맛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ㅠㅠ ㅎㅎ
...
돌아올 때는 두번이나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피해
그냥 2호선을 타고, 그것도 노약자석에 앉아서 주욱 ...왔습니다.
머리에 흰머리가 장난이 아니니 거기 앉아도 된다는 마눌님의 격려에 힘입어...
...
원경이 교신이에게 좋은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좋은 자극제가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아니할 것이고...
-
넘버1님께서는 역시 넘버1 학교를 다니셨네요. ㅎㅎ
답글
원경이와 교신이가 부모님 학교를 선택하면 성공하겠네요.
멀지 않은 원경이가 기대 됩니다.
날씨가 다시 추워지네요.
온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
원경이와 교신이 중 한 명은 엄마의 후배가 될 것이고,
답글
다른 한 명은 한동대에 합격할진저~~~!!!
제가 1차에 합격했으면 두 분 다 만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앗~~그랬다면...달팽이를 못 만났겠군요^^ -
알 수 없는 사용자2012.10.30 15:25 신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이 가족이 왜이리 친숙하게 느껴질까요?
답글
사진 속에 웃고 계신 분들이 마치 잘 아는 분들인양 좋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학교 빼고
남아있는 이대, 고대 하나씩 섭렵해 버리도 될 성 싶네요!
칠스트레일리아의 치우침없는 다양한 학문적, 문화적 학풍을 위하여??? ^^*
글고... 서울대 교수아파트,
제게 가까운 지인들이 몰려 사시던 곳이기도 해서 한 때 죽때리던 곳이랍니다.^^*
지금은 거주기간 제한이 있어서 다들 나와계신데,
명칭은 폼나지만, 실상 낡고 허름해서 조금 큰 사이즈의 열립주택 같더라구요.
당시도 종종 수리인지, 재건축인지 들어간다는 말이 들리곤 했었는데...
주방보조님께서 잡으신 코스, 제가 자주 애용한 코습니다.
공부하러가 아니라 놀러요.^^*
근데 저는 걸은 게 아니라...
낙성대역에 내려서 좀 돌아가 빵집 앞에서
학교 들어가는 셔틀이라기보다 마을버스급의 버스를 탔었습니다. -
-
알 수 없는 사용자2012.10.30 22:00 신고
예, 저 사무실도 한 동안 '서울대' 말고 '낙성대'에 있었습니다.
답글
그리고... 맞아요. 집은 후졌는데, 산을 둘러싸고 있어 진짜 좋았어요.
가물가물 하긴 한데, 주변 어딘가에 등산길로 접어드는 샛길도 있었구요.^^*
4월이면 도시락 싸들고 학교로 벗꽃놀이 가기도 했었네요.ㅋㅋㅋ
남들 공부하는 전당을 놀이터로 삼았었군요.ㅎㅎㅎ
솔직히 저도 의외였어요.
명색이 서울대 교수아파트라 하는데,
어쩜 그렇게 평범하고 허술하던지, 서민 임대아파트라고까지 하면 좀 그런가? ^^*
제 지인들이 그렇게 사시는 분들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사람냄새 물씬나는 아파트였습니다.
그래도 대기자가 줄서 있다는 말씀에 '교수분들이 그렇게 부자는 아니구나' 생각했었더랍니다.
90년대 후반에서 2천년대 들어서서까지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교회'는 당시도 제법 크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세가 줄어들지 않는군요.
대로 옆에 '하나님의 교회'라 붙여진 커다란 글씨가 꽤나 거슬렸었는데...
글고 그 동네, 관악구 신림동 순대집 말고도 점집도 꽤 알려져 있는 걸로 아는데... 관악산의 기운 탓일까요? ^^* -
늘 느꼈지만 원필님 부부... 참 잘 어울리고 화목해보이십니다. ^^
답글
아이들과 모교를 찾아 산책하신 두 분...
솔로몬의 영화가 부럽지 않으시겠습니다.-
주방보조2012.10.31 13:05
제가 부족하고 못나서...마눌님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영화는 제가 평소 별로 부러워 하지를 않았습니다. ㅎㅎㅎ
저와 원경이 교신이는 서울대를 처음 관통해 본 셈인데
제 소감은...
서울대 출신들은 국가에 상당히 고마워해야 한다...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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