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가를 얻어서
아이들 다 학교로 보내고 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 심심한데 제비뽑기나 하지요?
마눌님이 제안을 해 왔습니다.
1.광주(조카네 방문), 2.영어공부, 3.(온종일) 책읽기, 4.김치담기, 5.(앞으로 노년에 갈지 모르는) 충주 둘러보기 6.설악산 놀러가기
마눌님은 조그만 박스 안에 이 여섯개의 항목을 작은 포스트잇들에 적어 접어 넣고 제게 뽑으라 하였습니다.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불면증이 없지 않은지라 어푸러져 있다가 손을 내밀어 하나를 골랐습니다.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설악산이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약간 비현실적인 항목이라 여겼는지 두번째를 뽑으라 하였습니다. 책읽기...
재미를 붙인 마눌님 계속 뽑아주었는데 대략 충주, 김치, 영어, 광주 순으로 뽑히지 않았는가 기억합니다.
사실
자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서 ... 하나님의 계시와 방불한^^ 제비뽑기에 순종하기로 하고 벌떡 일어나 10분만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습니다. 9시10분.
...
다섯아이들이 9년 동안 태어나고 23년에서 12년까지 자라는중에
신혼여행 이후 단 둘만의 여행이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진실이 낳고 처남댁에겐가 잠시 맡겨놓고 '간디'라는 영화를 본 것, 그리고 3년전인가 광주 조카가 아기를 낳아서 둘이 보러 내려간 것 정도?
나머지는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
9시55분 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한 것이 12시20분(1만6천*2=3만2천원)
지난 8월 진실 나실 귀국 축하 여행을 속초로 와서 많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속초를 너무나 잘 알게 된 덕에(http://blog.daum.net/jncwk/13748145)
두말 않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아래로 걸어내려가 오른쪽으로 바닷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금강대교? 위에서 넓은 속초 바다를 일견하고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지난번 별가와 내 발가가 놀던 바로 그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맑은 물빛에 감탄하고, 모래빛을 닮은 작은 물고기들과 마눌님의 감탄사들이 조우하였습니다.
그리고
송헤교표 가을동화의 줄배도 타고^^
이요조님의 분노의 일갈이 아니더라도 맛없는, 속초 음식들은 사양하고(오는길 휴게소에서 감자와 우동을 먹었기도 했고)
시장 앞 길에서 설악산 가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7번 또는 7-1번.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가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떠들고 있는 줄 어찌 알고...7번 버스가 우리를 못 본 채 정류장에 서지 않고 그냥 휙~
할 수 없이 택시를 탔습니다.
...
얼마나 차가 길게 늘어서는지...설악파크호텔 앞에서 하차하여(9천500원) 약 2킬로 정도?를 걸었습니다.
바다와 산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그 맡는 내음이 다르고 느껴지는 시원함이 달랐습니다.
거의 10년쯤 되었나...다시 찾은 설악산은 변함이 없고
거기 사람들 하는 일도 여전하였습니다.
발걸음도 하지 않을 절구경값을 무는 일이 이 대명천지에 어찌 이리 뻔뻔스럽게 자행되는지 ... ㅉ ㅓㅂ (2500*2=5천원)
게다가 소공원 바닥은 여기저기 파이고 바람만 조금 불어도 먼지가 풀풀 날리는데 이르러서는, 그리고 그 넓은 공원에 '음수대'하나 마련하지 않은 인색함(찾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으나)에 이르러서는 ... 그들이 정말 왜 돈을 받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닥에 화강암 블럭이라도 촘촘히 채워 넣으면 이리 먼지가 풀풀 나는 꼬라지는 안 될터인데 말입니다.
이번 대통령 후보중에 ... 교회 세습하는 문제와 절들이 산 입장료받는 문제를 해결하겠다 나서는 분 있으면 그분에게 한표를 던질 마음이 있습니다.
...
그건 그렇고...
우리의 목표는 권금성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는 일이었습니다.
1시간 후 표를 샀습니다. 3시 40분표. (9천*2=1만8천원)
마지막으로 케이블카를 탄 것이 충신이가 돌이 지난 그해 9월이었으니까 18년만의 권금성 등정^^이라 할 수 있지요. 그 중간에 와서는 케이블카가 수리중?이라 못탔었고요.
(1994년 9월 권금성에서)
중간에 요기를 잠간 하고, 계곡?아래 물로 세수도 한번 하고...
3시40분 50명씩 타는 케이블카에 몸을 끼워 넣었습니다. 중국분들이 얼마나 많던지, 여기서도 중국어로 부르는 소리, 저기서도 중국어로 외치는 소리, 아...나중엔 어떤 우리나라 아주머니의 대화까지 중국어로 들리는 신비현상을 맛보기까지 하였습니다.^^
멋진 광경들, 예전엔 아이들 신경 쓰느라 혹은 너무 젊고 철부지여서? 느끼지 못했던 설악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움이 눈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마늘님은 계약기간이 만료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 케이블카 안에서도 그 조용한 부지런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계셨습니다. 올라갈 때고 내려갈 때고.
저는
아, 언제나 다시 한번 대학시절 가 보았던 대청봉에 올라보나...잠간 그 생각에 우울해졌습니다. 아주 잠간^^
...
돌아가는 길이 막힐까 걱정했는데 두시간이 지난 주차장의 차들은 벌써 거의 다 빠져 나가고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버리고 간 버스는 외면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1만2천원)
도착한 후 10분후 그러니까 5시 10분 동서울행 버스를 탔고(1만6천*2=3만2천원)
집에 도착한 것이 7시 40분이었습니다.
우리 손엔 감자떡 다섯개와 구운감자 10개가 달랑 들려져 있었고
큰 쥐바돼, 작은 쥐바돼는
우리를 반가이 맞자마자 짜장면이라도 시켜달라며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마눌님은 작은 쥐바돼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겨냄으로서 그들에게 찬밥을 덥혀 먹이는데 성공했으며
저는
이마트에 가서 파닭과 식혜를 사서 그들의 원통함을 잠재웠습니다.
...
시간은 11시간
돈은 약 12만원정도?
언제나 그렇듯이 가난한 저희에게 돈은 좀 부담이 됩니다만 ^^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아, 늙으니 케이블타 타고서부터 집에 오기까지 멀미가 좀 힘들었습니다.
음....젊어서 많이들 노십시오^^
-
제비뽑기~성경적입니다.ㅎㅎ
답글
알찬 하루, 행복한 하루였군요.
결혼 후 둘 만의 여행 그것도, 키우는 아이들이 있는 가운데...
부러워 할 사람 많겠습니다.^^
찍은 사진 있으면 올리시지요. -
진실이와 나실이가 참 귀엽다, 충신이는 여자아이같다. 그런 생각이 먼저 드네요.
답글
부럽네요.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는 것보다 불현듯 다녀오는 묘미가 더하지 않나 싶어요.
생각이 지나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두요.
산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더 북적거리고 그만큼 먼지도 더 많고...그런것 같아요.
한빛이가 어려서 울산바위까지 갔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철계단이 얼마나 아찔하던지 불안함이 가득했던...
단풍은 볼만하셨어요? -
-
알 수 없는 사용자2012.10.15 21:01 신고
칠스트레일리아의 퍼스트 레이디께서는 전혀 늙지 않으셨습니다!
답글
이분이 그분! 그분이 이분!
어제와 오늘이 너무나 동일하십니다.
또한 그 마음 쓰심에서 역시도 늙지않는 하이틴의 풍모를 지니셨네요.
사랑하시는 낭군께 제비뽑기를 제안하시는 귀여우심!
주방보조님, 너무 좋으시겠다!!!-
주방보조2012.10.15 22:24
ㅋㅋㅋ...
살이 많이 붙으셨지요, 저 당시엔 많이 말랐었구요, 지금은 많이 푸근해지셨죠.^^
...
블로그가 닫혀 있어 바쁘신가 하고 있습니다.
그곳 바다도 물이 맑고 좋지요?
친구인 배도 여전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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