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분노는 ...나의 힘^^

주방보조 2012. 4. 28. 22:42

부서진 똑같은 두개의 우산을 조합하여 멀쩡한 하나의 우산으로 만들기 위해

버리지 않은 채 우산꽂이에 둘을 상당히 오랫동안  꼽아놓고 있었습니다.

가득 찬 우산꽂이를 볼 때마다 그 두개의 망가진 우산들은 제게 스트레스였는데, 뾰족히 방법도 떠오르지 않고(간단해 보이지만 상당히 복잡한^^과정을 내포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버릴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교신이의 생일입니다.

새벽에 쇠고기를 썰고 미역을 볶고 맛있는^^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밥도 새로 하고, 뭔가 부족한 듯 하여 도토리묵과 청포묵 그리고 골뱅이를 넣고 특식도 하나 준비했습니다.

9시가 거의 다 되어 일어난 교신이는 미역국을 조금 먹고 학교에 축구교실로 간다고 나가고

원경이는 9시반쯤 전화해서 입맛이 없어서 그냥 도서관에 간다고 가버리고

새벽2시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고 10시가 더 지나 일어난 충신이는 피아노를 둥당거리더니 또 컴퓨터 게임을 하시고

이건 뭐...가족이라 할 것도 없는 그런 황량함만이 ...  ㅜㅜ

 

오후1시에 집으로 돌아온 교신이는 또 나가겠다고 하여 4시까지 들어오도록 시간 제한을 주고 엄마의 허락을 받고 나갔고

충신이는 여전히 허리를 구부정이 하고 게임삼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울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야 너 언제까지 그렇게 게임만 하고 있을 거냐?

그래 너 카톡에 '자취한다'고 했다며? 좀 빨리 하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녀석은 대답했습니다.

1학기는 마치구요.

 

뭐라고? 1학기 마치고? 그때는 난 보증금이고 뭐고 한푼도 못 준다. 당장 학교 그만 두고 독립한다면 준다는 이야기지...   부글부글...

 

4시가 지나도 교신이는 돌아오지 않고

그래도

아내는 생일이니 아이들 옷이라도 사주겠다고 백화점으로 갔습니다.

저는 같이 나갔다가 ... 이 세상 거의 모든 남자들처럼 아내의 쇼핑을 참고 기다릴 수 없어 하는 약점^^...때문에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5시인데

교신이는 아직 안 들어왔고

충신이는 그때도 여전히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여 게임중...

 

그 구부정한 허리를 몽둥이로 패서 펴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눈이 뒤집히기 직전...

본능적으로 눈을 현관앞 우산꽂이로 돌렸습니다.

 

공구함에서 뺀치 하나 뽑아들고 두 개의 우산을 잡아 뜯고 빼고 돌리고 치고...뚝딱 뚝딱...

와...

그동안 어떻게 하지 고민만 하던것이 제 손에 든 뺀치 하나의 움직임을 따라 척척 해결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분노가 녹슨 머리를 잘 회전시켰나 봅니다.

 

마침내 망가진 두개의 우산들이 온전히 튼실한 하나의 우산이 되어 촥 펴지는 순간...

 

뭐랄까... 기쁨^^같은 것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진흙물 위에 한송이 연꽃이 피듯이...

 

 

 

 

  • 한재웅2012.04.29 13:39 신고

    남자는 공구를 가지고 뭣인가 뚝닥거리고 조물럭대며 만지기를 좋아하는 것은 선천적이지 싶습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2.04.29 18:29

      맞습니다.
      제 시골집에 대한 환상 중 하나가...헛간 하나를 작업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지만 말입니다.
      자전거도 조립해 보고 싶고...책상 의자도 만들고 싶고...ㅎㅎ

  • malmiama2012.04.30 09:47 신고

    회사의 극기훈련이 부정적으로 쓰이면 강성노조가 되고,
    긍정적으로 활용되면 생산적 활동이 되는데...

    우산이 필요한 시기에 생산적인 일을 하셨군요.^^

    그래서...저녁에 다 모였나요? 교신이 선물도 전달하고..

    답글
    • 주방보조2012.04.30 16:10

      그 이후 이야기가 있답니다.

      우산고치느라 힘을 너무 썼는지 몸살기운에 못썼네요^^ 쎈척하는 놈의 슬픈 생일이었습니다.

  • 이사야2012.05.01 16:40 신고

    ㅋㅋ... 이 이야기가 왜 저는 어떤 소설보다
    더 공감이 가고 재미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답글
    • 주방보조2012.05.02 00:38

      ^^...비슷한 경험이 혹 있으셨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