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신이의 졸업식 전후하여
결정적으로 입을 다물기 시작하였으니
녀석과 대화를 끊어버린지 대략 50일이 넘어갑니다.
그렇다고 묵언수행하는 것처럼 비명소리조차 금해 버린 것은 아니지만
하루종일 각기 다른 방에서 필요불가결한 단어 한 두개 말고는 피차 말하지 않는 것이 익숙해져가고 있음을 이제는 신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늙은 나이에 그런 치졸함이 다시 꿈틀거리다니 하는 저 자신도 그렇지만 거기에 부응하여 말없이 지내는 녀석도 대단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서인지...^^
온갖 기행을 일삼던 녀석의 6학년2학기였구요, 마지막 졸업을 앞두고 학급 회장으로서 담임선생님에게 남자 아이들의 작별인사를 커다란 카드에 적어내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차일피일 하며, 저의 조언도 무시하고 딴짓을 하더니 졸업식날 선생님 책상위에 올려놓겠다던 호언도 결국은 무산시키고 말았지요, 실상은 그 카드를 버렸다는 것, 다시 사주었지만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 고의적인 훼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졸업식날 저를 이상한 눈초리로 살펴보던 처음 뵙는 담임선생님의 시선과, 녀석의 책상만 커다란 붉은 무늬의 그림과 랩가사로 빽빽하게 낙서 가득하여 봐 줄수없었다는...이 두가지 결정적 증거들 외에도 가수 운운하는 일의 어리석은 짓에 대한 경고나 제안들을 완전 무시하는 녀석의 태도에 저의 인내에 한계점이 찍혔습니다. 가수가 되기 위해 '공부는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라는 나무람까지 슬쩍 피해 다니는 것으로 마무리지어버렸으니까요.
몇년전에 농담반진담반, 네가 만일 쌩까면 나는 시골로 내려가겠다 하던 말이 실현되어야할 상황에 도달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시골에 내려갈 수는 없고(마눌님이 허락을 해 주시지 않음으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침묵은 금이다...라는 정책이었습니다.
녀석이 무슨 짓을 하던지, 상관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도록 버려두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늦잠을 자면 늦잠을 자는대로, 놀고오겠다면 알아서 하라는 끄덕임으로, 돈을 달라면 돈을 주고, 밥을 달라면 밥을 주고 말이지요.
어제는
8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길래 발길질을 세번 해 주었습니다.
우리집은 뭐든지 세번은 해주어야 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한번 주면 정이 없고, 두번 주면 싸우고, 세번 줘야 사랑한다는 둥 하면서 말입니다.
50일간의 침묵... 아버지와 막내아들이 집안에 금을 잔뜩 샇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금쌓기가 평생을 갈 수도 있겠습니다만...그러다보면 지나치게 부자가 될까봐, 그것도 걱정입니다.^^
...
며칠전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저의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시고, 어릴 때부터 제가 가면 언제나 환영하시고 그 가난한 가운데서도 뭔가 해 주시려고 부산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지난번 요양병원에 병문안을 갔을 때에도 '김치라도 담아서 줘야하는데'하셨으니까요.
유골함을 가족납골당에 안치함으로 장례절차를 모두 마치고
작은 식당에 가족들과 저를 포함한 세 친구가 들어가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먹고 살만해진 형제들은 어머니의 삶을 "열심히 사셨다" 한 마디로 정의내렸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며 그녀의 삶의 에피소드들을 꺼내며 ...열심히 웃어대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19년만에 내린다는 4월의 눈을 뚫고 달리는 차 안에서
인생이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자녀들의 말처럼,
그토록 열심히 한 때는 작은 구멍가게의 천정에 공간을 만들어 거기 거하시면서, 노름하는 낚시꾼들의 온갖 요구를 다 들어주며 밤과 새벽이 따로 없을 정도로 부산하셨던...그렇게 3남1녀의 자녀들을 다 출가시키고 자리잡도록 힘이 되어 주셨던 삶도
한줌의 재와 한바탕 웃음으로 마무리되어버리는 것이 인생이구나, 그런 생각...
그리고
저와 더불어 열심히 침묵의 금을 쌓고 있는 우리 막내녀석은 저의 죽음 뒤에 어떤 소감을 남길까 궁금해졌습니다.
풋...
'아버지는 또라이'...아닐까요?^^
...
4월 중간고사가 끝나고 성적이 나오는 날, 다른 녀석들에겐 한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할까 합니다.
몽둥이를 들고 죽지 않을 정도로 패서라도, '공부 안한 결과'에 대한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말입니다...
말 안들으면 패고
패서 안 되면 포기하라는
충신이의 오래전 명언처럼...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닐 것이므로...
-
-
맞아서 변화되기엔 교신이 나이가 많지 않나요?
답글
내리 사랑에 포기란 없는 것이고요.
집에 돌반지가 많은 줄 알았는데.. -
아이들을 힘으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이기려고 하는 건 아니다 싶어요.
답글
포기라고 하면 너무 슬픈 일이지만 이해하고 부드럽게 그 상태를 벗어나기를 기다려야지요.
저도 기대할 수 없는 잔소리를 한빛이에게 합니다.
대학에 대해서는 학년마다 기대치가 낮아진다는 말을 스스로도 한답니다.
대학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 생각하면 한편 수긍이 갑니다.
아직도 정확하게 진로설정이 되지 않았는데 이왕이면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합니다.
어젯밤에도 한빛이 생일케잌을 놓고 모처럼 가족이 앉아서 이야기를 했답니다.
고정관념이 가장 심한 사람은 역시 남편이고,
적성검사가 쓸데없는 것이라고 한얼이는 말하더군요.
저는 빨리 한얼이,한빛이 상황이 전환되길 바랄뿐입니다.
교신이가 중1이니까 공부로 밀어부치지 마시고 대화가 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심이 어떠실지요.
한걸음 뒤로 가는 건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보다 더 손해다.그게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험한 일입니다.
교신이랑 예전으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
알 수 없는 사용자2012.04.10 11:47 신고
제가 느끼는 칠스트레일리아의 막내 아드님은... 아버님의 뜻을 모를 것 같지 않아요...(_._)*
답글
교신이가 이 땅에 태어나서 13,4년의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최고의 믿음이 되어주신 아버님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 같아요.
명민하고 사려깊은 아이잖아요.
매로든, 말로든... 짚어주려고 하시는 그 뜻을 모를 교신이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한번도 그래본 적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는 사랑하는 아버님과의 대치상황...
아버님과 침묵을 쌓고 있는 드러나진 상황 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신만의 또다른 심리적 대치!
이러한 심정적 대치상황을 교신이가 감당하기엔 조금 버거운듯 보이네요.
그 표현이 아버님께 반항의 침묵으로 보여질 수 있겠고요.
결국 집안에 금을 보탤 수 밖에 없는 상태 같아요...
자신을 믿어주시는 아버님의 기대를 통째로 뒤엎는줄 알면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하여... 마음이 쓰이네요.
어쨋거나 아버님 앞에선 교신이가 약자입니다.
약자이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관철시키고자 하는 태도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입을 다무는 것 같아요.
그래서도 더욱 아버님 역시 취하실 수 밖에 없는 태도이실 것인데...
그 결국과 과정이 결코 아들을 위하는 것이 아님을 아시는 아버지의 염려와 근심이,
곧 사랑이
이전에 충신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시던 모습보다 더 깊이있는 아픔으로 패이는데...
***
어떠한 말도 위로나 힘이 되기보다는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제 좁은 소견에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하면서 적어보네요...
제가 금보다는 은을 좋아해서 그런지...^^
솔직히 금은 그저 그 역시 하나의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는 저기로...^^*
이제까지 쌓아두신 금만으로도 충분히 조성된 분위기가 있을터,
사랑하시는 막내 아드님 데리고 두분만의 분위기 만땅 저녁식사 어떠실지요?
가능하다면 십대 청소년기에 진입해 질풍노도의 시기를 돌진하고 있는 아들에게
근사한 칵테일 한 잔 맛보여 주시면 어떠실지요?
제 아득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메뉴는 유치하게도 '불타는 키스' 정도? ㅎㅎㅎ
교신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들을 들어봐 주셨으면...
교신이가 그래줄지 모르지만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이제까지 교신이가 아는 아버지로서는 상상이 안될 모습이겠지요?
우리 아버지가 이런데 와서 이런 걸 다 사주실 정도로 내게 마음을 주시는 구나 하는 느낌을 위한 책략???)
그리고 침묵을 쌓으시는 동안 고통스러웠던 아버님의 마음도 아들에게 들려주시구요,
그리고 왜 그처럼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아버지가 허락하실 수 없는지,
또 아들은 왜 그처럼 아버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고 싶은지,
마음을 나눠보시고...
그 다음에...
그러고나서...
'이건 매를 들지않고는 도저히 안 될 상황이다' 판단 되시면 그 다음에 실행하시더라도
이 침묵의 단계 위에서 실행하시는 건 뜻하신 바와는 역으로 갈까 조금은 염려 되서요...
더욱이 그것이 성적결과를 두고 행해지는 일이라면
결정적으로 아버님의 진의가 왜곡되고 아들에게 억지의 빌미를 줄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밀댓글]-
알 수 없는 사용자2012.04.10 12:05 신고
글고... 대화 중에...
"가수는 안된다"라는 전제이기보다는 그렇게 네가 원하는 것이라고 할 때,
"좋은 가수가 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차원에서...
학습의 중요성과 바른 인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인지시켜 주시면서
음악적 전문성에도 힘을 보태라는 등의 격려 등으로 독려해 주셨으면...
처음에 몇발자욱 양보하시어 길만 잡아주시면서 시간을 버시고
아들이 감각적이고 감정적 욕구에서 점차로 벗어나 사고가 성숙하면서
스스로의 진로를 선택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으면, 도와 주셨으면...
좀 돌더라도... 더디 가더라도... 바로 가는 것이 중요하니...
아버지의 매가 무서워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자신을 억누르며 아버님을 원망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아이를 제한하기엔 이제까지 너무 잘키우셨거든요.
자기 소신과 뜻이 분명하고 주체성이 강한 아이로~ ^^* [비밀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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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용자2012.04.10 12:19 신고
지금까지 부자 간에 쌓아둔 침묵으로 교신이는 상당히 견고하게 무장되어 있을 것 같아요.
답글
신뢰보다는 경계로 점철되어 있을 것 같고요.
'아버지의 뜻이 뭔지 알겠지만 난 그 어떠한 말도 듣지 않겠다'는 각오로 무장되어 있을 것 같아요.
주방보조님께서 마음을 다지고 계신 만큼!
거기엔 '아버지는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도,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요.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라는 요청입니다.
먼저 '우리 아버지의 사랑은 유효하고 강하며 지혜로운 것이다'라는 가치를 부여해 주십시오.
'무조건 아버지가 싫어서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코 내 뜻을 무시하는 아버지가 아니시라'는 신뢰의 토대 위에서 다시금 아버지의 거절을 생각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비밀댓글]-
주방보조2012.04.10 22:38
믿어준 것에 대한 배반감이 절대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지요.
기대가 클수록 아이를 망친다는 격언을 항상 금과옥조로 삼았었는데...어느새 그런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변성기가 끝나면 가수의 길을 모색하더라도 늦지않으니, 중학교생활 성실하게 하라고 얼마나 강변했었는지... 어느날 보니 담벼락에 대고 혼자 떠들고 있더군요.
너무 교신이를 꿰뚫고 계셔고 계셔요^^
비슷한 경험이 잇으셨나요? 저는 그런 경험이 전무하답니다.
오로지 제게 주어진 것이 극한의 가난 속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진 자유와 책임감 뿐이었거든요.
기다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가끔은 ... 아버지가 살아있음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싶거든요. ㅎㅎ
몽둥이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 모르지만...강도는 매우 조심스럽게 처방할 참이랍니다.
[비밀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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