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10시에 집에 들어와보니
충신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피아노치는 동영상을 메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엄마한테 컴퓨터를 하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며 옛날 동영상이라고, 카페 회원인 어떤 이가 달라해서 보내는 것이라고... 제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지난2월에 산 새 카메라가 연결된 것을 보아 최근 작품인 것을 제가 뻔히 알겠는데 옛날 찍어두었던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녀석이 한편 가엾고,
또 상상컨대 음악실 내려가서 피아노를 두둘겨대며 낭비했을 시간에 대하여 화가 많이 났지만 참았습니다.
아, 한마디 하긴 했지요. '너는 어떻게 카페회원인 사람이 해 달라는 것은 이렇게 착실하게 해 주면서 너를 위해 아비가 하라는 것은 참 어지간히도 하지 않는구나. 6개월정도만 꾹 참고 견딜 순 없느냐?"
다음날
최근 다시 시작한 새벽기도에서 열심히 충신이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가 약간 길어져
집에 돌아오자마자 녀석을 깨웠습니다. 30분안에 등교준비를 다 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세번이나 소리를 지르고 흔들어 겨우 일어난 녀석의 꾸물거리는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원경이가 아침밥을 먹으러 와서 녀석이 현관문을 열어주었는데
문을 열고는 그 자리에 3-5초간 멍하니 서있는 꼴에 제 버럭하는 성질이 툭 나왔습니다.
나:도대체 왜 거기 서서 꾸물거리는거얏!!
충:안 그랬는데요?
원:그랬거든
충:뭘 그런 것까지 가지고 시비를 거는거야(이건 일종의 ...들으라는 듯 소리를 낸 중얼거림)
나:뭐라고? 다시 말해봐. 아버지가 네게 시비를 건다고?
비실비실 웃으며 이번 여름에도 자기교회 수련회에 가겠다는 은근한 수작과
엠피3는 학교 가지고 가지말라는 명령을 들은체도 않고 가는 꼴도 기억나고
야자한다고 석식을 시켜주었더니 그것 먹고 겨우 한다는 짓이 음악실에 가서 피아노나 두둘겨 대고
수학을 포기하면 공부할 것이 없다고 하는 충고에 매번 피식 비웃음만 날리고
아저씨들하고 축구했다며 새벽 한시 가까이에 축구공들고 들어오는 뻔뻔함 등등으로 한껏 인내의 경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는데
그리고 고3인 녀석이 겨우 깨워야만 일어나는 주제에...
아버지의 잔소리에 '시비'라는 말을 쓰다니
한동안 잠금장치가 되어 있던 방아쇠가 탁...풀렸습니다.
이 X만도 못한 자식 ...퍽퍽퍽
...
기분이
아주 꿀떡같아서... 아침부터 한강에 나갔습니다.(보통은 밤늦게 나갑니다)
햇볕이 참 좋았습니다.
잠실대교 수중보 바로 아래에는 요즘 가마우지 떼가 장관입니다. 한 200여마리는 족히 되어보임직한 무리가 검고 큰 날개를 퍼득이며 무리지어 날거나 모가지만 내놓고 떠 있다가 자맥질을 하곤 합니다.
강가에서 박수를 힘껏 쳤더니, 가까이에 있던 놈들이 푸드득 잠시 날아 조금 더 잠실쪽에 있는 무리들에게로 갔습니다.
저 놈들도 박수칠 때 떠나는군...
그리고 문득
발 아래 물 속 돌 하나에 다슬기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녀석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작년엔 교신이와 샅샅이 뒤졌는데도 발견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강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물가에 또 다슬기가 있나 살피며 걷는데...윈드서핑장에 이르러 얕은 물 속 여기저기를 긴 줄을 만들며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는 놈들과, 그리고 바위에 낡고 지저분한 집을 꽉 고정시킨 제법 큰 녀석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 강 밑바닥 어디선가
겨울의 그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 따뜻한 봄볕을 즐기기 위해 온몸을 진흙과 이끼에 뒤덮힌 채, 제 눈 앞에 여보란듯 자신들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은 정말 몇 십년만에 한강이 얼음으로 꽝꽝 덮였었잖습니까?
갑자기 그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한강의 돌아온 다슬기들...
그리고 가마우지떼, 강변에 줄울 이어 활짝 핀 개나리, 온갖 이름모를 풀들의 작고 귀여운 꽃들, 반짝이는 버드나무의 이파리들...
한참을 쭈구리고 앉아
다슬기들의 조금씩 움직이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어리석은 인간, 나를 회개하였습니다.
...
오전 11시 가까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진실과 나실이 저를 맞으며
마치 하나님께서 제 회개에 응답이라도 하신 것처럼
린님이 저와 원경이에게 보내주신 책
'티엔 니 태미'를 내밀었습니다.
(린님, 좋은 책을 선물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제게 아들로 주신 충신이를 위한 저의 사역이 언제 끝날 지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다슬기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부쩍... 심해져 가는 건망증...을 놓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이 글을 써 놓고도, 잊어버리면 ... 또 비슷한 글을 쓰는 날이 오게 될 것이 뻔하니...말입니다.
아, 그리고 퍽퍽퍽...할 때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발로 했는데...그것도 너댓번 하니까...오십견 어깨가 울려서 더 할 수도 없었습니다.
-
글을 읽으면서 가끔은 가슴이 아픕니다.
답글
물론 더 많게는 충신이 편이 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구요.
오늘은 부모가 되어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꼭 세월이 지나야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를 하게 되는 부분에 대해 안타깝기도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늘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해주면 좋으련만...하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건만,
그래도 나중에 깨닫게 되면 더 큰 것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지,
어느 하나도 확실한 해답이나 대안은 없어 보입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마음과 행동의 일치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뿐이지요.
저도 늘 한빛이를 향해 듣는지마는지 모를 잔소리를 합니다.
제가 바빠서인지 아니면 효과가 덜하다는 생각 때문이지 큰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거나...그런 부분은 덜합니다만.
큰아이 이제 겨우 제노릇 하는가 싶어 대견하고 안심을 했건만, 다른 큰 숙제를 안겨 주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뜻데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충신이에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뭔가가 꼭 있으리라 믿습니다.
미물인 꽃 한 송이가 때에 따라서는 우리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을 우리에게 주신 게 최고의 축복이라고 했으니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주실 날이 꼭 오겠지요.
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믿으시는 분이시잖아요. -
새벽기도를 시작하셨군요.
답글
저도 새벽에 충신군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부모의 기도를 고마워할 때가 올겁니다.
요즘에 정민이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기도 부탁하더군요.
교수님이 추천해준 재택 온라인 알바로 월 50만원 정도 수입이 생기게 되면,
용돈 안줘도 된다고도 하고. 철이 들면 이렇게 변합니다.
충신이도
공부에 집중하고 스스로 알아서 챙기고..늘 기도하며,
부모에게 순종하고...나아가서 효도하고...그 때가 좀 더 빨리 오기를! -
-
다슬기를 보고도 회개하는 님...
답글
허허... 부럽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시집갈 나이가 되었고, 또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야단칠 일이 있습니다.
지나 놓고 생각하니 아이들 어린 시절
내가 왜 그렇게 했었지? 지금이라면 안 그럴 걸... 하는 일 투성입니다.
만약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아이들한테 공부 해라란 소리는 하지 않았을 거란 것...
지금이니까 속 편하게 하는 소리 아니냐는 자문을 하기도 하지만...
공부 잘 하는 인간...
공부 자체에 성실한 것이라면 참으로 바람직하겠지만...
경쟁에서 이겨서 성공하려는 목적으로 무섭게 열심인 인간...
저는 무섭습니다.
물론 충신이를 그런 식의 마음으로 대하실 리가 없는 님이겠지만...
그냥 제 과거를 떠올려보고 한 넋두리입니다. ^^-
주방보조2011.04.11 05:12
제가 충신이에게 바라는 것은
매우 소박한 것입니다.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 학교가기, 대입시험을 앞두고 게임방이나 음악실 가지 않기...^^
이것도 다 타고나는 것인지...교육이란 소용이 별로 없는 것인지...생각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충신이입니다.
중1때 잠간 이후로는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교육효과라고 할 수 있을지..아직은 미지수입니다.
음...
겨우내 강바닥의 진흙을 뒤집어 쓰고 있다가
그 모습 그대로 따뜻한 봄, 생명의 준동을 하고 있는 다슬기...제겐 감동이었습니다.^^
따님 결혼식엔 소식을 주십시오.^^
-
-
주방보조님... ㅋㅋㅋ... 감사,
답글
언제나 감사를 드려야 할 사람은 제가 되고마는 군요.
'티엔니(뉘)'는 '태미'의 중국이름입니다.
'들판의 시골 아가씨'라는 의미를 가진 중국어라 하네요...
태미가 아주 마음에 들어한 이름이래요.
원제와 상관없이 제가 뽑아낸 제목입니다.^^*
(제8장, 90쪽 첫째 줄~)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ㅋㅋㅋ
제임스 프레이저의 이야기,'산비'에 나오는 한 구절이죠.
충신이를 위한 사역의 끝이라~
어째 우리 주방보조님 '장수'하실 것 같다는!!!
^^*
굿 럭! 승리하십시오.
꿀떡같은 기분에 이른 아침부터 강변을 거니셔야 했던 주방보조님,
불난 속에 열심히 부채질 해대는 것 같긴 한데...
저는 충신이 얘기만 나오면,
충분히 '퍽퍽퍽'이 상상되어 아슬아슬 하니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꿀떡 개떡 상관없이 자꾸만 미소가 물리니...어쩐다나요?
*** 아, 이사야님... 따님 결혼식!
칠스트레일리아에 오면 기쁜 소식 만땅!
'복음'이 있는 땅인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_._)* -
흠.. 요즘 학교 가기 싫어서 아침마다 아프다고 죽는소리하고 학교에 가면 우는 새빛 때문에 저도 골머리 중입니다.
답글
아무리 일찍 재워도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고
아침밥으로 간단히 먹이는 빵이나 바나나 하나 먹는데도 15분,20분씩 걸리는 딸래미 때문에
좋은 말로 격려도 해보고 닥달도 해보고 애원도 해보고 무서운 눈으로 위협도 해보고
온갖 방법을 다 써보지만.. 변하지 않는 딸 때문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자꾸 떠오릅니다.
저도 고등학생이 된 새빛을 깨우다가
아침에 발이 올라갈지도 모르겠다는.. ^^;;;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매에 손을 가져가고 싶은것을 꾹 참는중이거든요.
좋은 말로는 아무리 타일러도 달라지지 않으니
자꾸 벌을 주겠느니 매를 치겠다느니 하며 위협만 하게 되고요.
에혀혀... 한숨만 나와요 ^^;;-
주방보조2011.04.14 17:58
ㅎㅎㅎㅎ...
딸들은 아무래도 아들들보다는 덜 힘들었습니다.
새빛이도 조금만 있으면 자기 페이스를 찾을 것입니다.
아직은 혹...남동생에 대한 시샘이 발목을 잡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들은 영 미련한데다가...큼...지금 키우고 계시니 알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딸이 아들보다 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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