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충신...쫓겨나다.

주방보조 2009. 12. 29. 09:56

지난 토요일 나실이를 공항까지 바래다 주고 12시가 되기 조금 전에 들어오자마자
충신이는 사라졌습니다.
어디를 간다 말 한마디 없이...
그리고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어슬렁 거리며...배고픈 인간의 표정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듯, 꾸부정한 자세로 참으로 추리하게도 들어섰습니다.
 
날이 몹시 추웠고 그 추위만큼 저의 목소리도 냉랭하게 튀어 나왔습니다.
너...나가라...그리고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
 
지난 여름 방학 내내 얼마나 바쁘게 놀았는지 주일이나 수요일 예배할 때 외에는 메국에서 오셔서 한달간 새집에 머무신 할머니께 인사한번을 제대로 하지 않았었습니다. 맏 손자라고 언제나 충신이를 옹호하시며 '괜찮다 네가 너무 민감한 것이다 정 걱정되면 나한테 보내라'하시던 어머니도 떠나실 때는 ...심각한 얼굴을 하시고 '네 아들 참 큰 일이다'...라고 하셨었다는 것 아닙니까? 
2학기 들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야자에 간다하고...과거 진실이처럼 야자가 야~자유다~의 준말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거기 더하여 축구 피아노 게임방 ... 12시가 넘어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말로도 안 되고 매로도 안 되고...기도는 진행중입니다만^^
결국 학기말 고사는 기가막힌 성적으로 장식하고  말았습니다. 대학 진학이 불가능할 정도의 그 성적표를 들이밀고 고개를 숙였던 것이 24일이었는데, 성탄절이라고 하루를 놀더니 어느새 다 까먹고 또 하루를 놀자판으로 장식하고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목소리에서 어떤 동물적 위기감을 느꼈는지 녀석은 군말 한마디 없이 슬그머니 집을 빠져 나갔습니다.
저는 속으로 벼라별 생각을 다 하였지요. 추운데 나가서 지지리 고생좀 해야되는데, 친구집으로 기어가서 민폐나 끼치면 그것도 참 곤란한 일인데, 서울역으로 갔을까? 아님 따뜻한 온풍기가 켜 있는 한강 공원 화장실로 가 있을까?
 
그러나...ㅍㅎㅎㅎ
제가 교신이와 이마트를 다녀오니
진실과 원경 뒤에 충신이가 비죽이 서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너 왜 들어왔어? 엉? 제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지르자
원경이가 나섰습니다.
아빠, 그래도 가족이잖아요. 우리 새집에 벌벌 떨며 왔길래 데리고 함께 온 거예요. 솔직히 별로 반성하는 것 같지 않지만 ... 용서해 주세요. 밖이 너무 추워요.  
한 나라을 통치하는 입장에서 전체 인민을 아우른다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저로서는
가장 훌륭한 신민인 원경이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물리칠 수는 없었습니다. 진실하고 성실한 원경이의 얼굴을 봐 주어야만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계속 유지하고 더 나은 충성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니까요.
원경이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픽 웃고^^...
충신이에겐
얼굴도 보기싫으니 네 방으로 당장 들어가라...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허리를 반쯤 구부리고 기어들어가는 꼴이 '아이고 살았다'는 녀석의 바디 랭귀지가 눈에 선히 보였습니다.
식구들이 모인 상태에서 다시 큰 목소리로 다짐을 두었습니다.
가족들 모두 들어라. 다시 한번 충신이가 이따위로 어딜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사라져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꼴이 보이면 나는 반드시 집에서 쫓아내고 말것이다. 부모의 말을 이렇게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산다면 그런 놈을 어찌 자식이라 할 수 있겠느냐.
 
...
 
그리고
주일엔 ...주일이라 실컷 놀고...퓨~
어젠 ... 부회장이라고 자기 반 아이들과 이번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는 선생님 송별 선물을 산다고 겨우? 4시간만 나갔다 와서... 한 두 시간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척 했답니다.^^
아무래도...이토록 추운 겨울엔...집에서 쫓겨나서는 안 되겠다 그런 잔머리 정도는 돌아가는 듯 보입니다.
 
참...충신이가 그날 가서 놀았던 곳이 당구장이었답니다.
오 마이 갓...
뻔뻔한 얼굴로 청소년도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나 읊어대는 것을  ... 죽일 수도 없고...휴

 

 

 

 

 

  • malmiama2009.12.29 10:41 신고

    멋대로 살아도 자식은 자식이니 우짭니까.
    그래도 장점이 많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 한심한? 정민이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듣고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그 나이 때 나보다 정민이가 낫소!
    (방에서 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진심이었지요. 불쌍한 느낌도 들었고..)

    진실이와 교신이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9.12.29 15:04

      완벽해보이는 정민이도...엄마에겐 약점이 많이 보이는 모양입니다.^^

      우리 충신이 장점이라곤...뻔뻔한 것 하나(이건 제가 정말 부러워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안 빠지는 것 하나, 키 큰 것 하나...그리곤 모르겠습니다.

      말집사님때문에...이번주는 정말 다섯 아이 이야기로 깔아야겠습니다. ^^

  • 한재웅2009.12.29 12:40 신고

    그래도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는 아들이고 보면 충신이는 착한 아들인 것 같군요.

    답글
    • 주방보조2009.12.29 15:11

      반항하면 어떻게 하죠?
      아직 제 주먹에 힘이 남아 있는 것이 큰 일이겠는데요...ㅠㅠ

      뉴스에 험한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덜컥한답니다. 충신이가 그 아이들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것같아서요.
      패거리로 행패를 부린다는 이야기들에도 그렇고
      이번에 디도스 공격 따라하던 중고생들 잡혔다는 이야기에도 가슴이 덜컥...했었답니다.

      착한가요? 착하려면 먼저 진실하고 성실한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냥 소심한 아들인 것이라 저는 생각한답니다.

  • 이사야2009.12.29 14:55 신고

    자식이란 평생 걸려도 풀지못할 숙제일 수도 있습니다. ^^
    그래도 충신이 잘 자라서 큰 인물 될 겁니다. ㅎ
    오랫만입니다. 건강하시죠?
    원필님께서 소개해준 뉴스앤조이 싸이트 언제나 즐겨 읽고 있습니다.
    혹시 그에 준하는 다른 신앙 싸이트가 또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거.. 늘 신세만 집니다. 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9.12.29 15:29

      우왕^^~~ 오랜만입니다.
      미리 새해인사부터 해 두어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복하시기를!
      사위보실 때는 아직 안되셨습니까?^^

      저는 이인규 권사님의 네이버 카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만 매일 들락거립니다. 스텝이거든요^^
      다음 카페인 불거토피아에 아주 조금^^ 관심이 있구요.
      아 그리고 피아님과는 facebook에서 가끔 안부를 주고 받습니다.

      이사야님이 예언을 하셨으니...맞겠지요? 충신이 잘 될 것...ㅎㅎ

  • 청랑2009.12.29 15:31 신고

    하하핫!
    다 제 몫이 있습니다.
    부모가 어찌 할 수 없는 제 삶의 몫...
    그걸 깨달아야 하겠지요. 충신이가....
    저 같아도 당장 주먹이 날아갔을 것 같군요.
    "저기서 엎드려 뻗쳐 하고 있어~"

    답글
    • 주방보조2009.12.30 03:24

      오늘도 카오스 준결승 보아야한다고 읍소하길래 허락해 주었더니...장장3시간30분을 꼼짝 않고 컴퓨터에 붙어 있었답니다.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뭘 못했겠습니까?^^
      그날이 오겠지요...스스로를 깨우치는 날...휴

  • 왕언니2009.12.29 16:34 신고

    나실이가 장학금을 받았다니 축하합니다. 해외나들이 시켜줄만 하구말구요. 그것도 고모와 할머니가 계시니 든든하고...
    충신이의 반항?은 그리 걱정 안해도 되실것같아요.
    엄마아빠의 기도가 어디 가겠습니까?
    이담에 멋진 회고록감이지요.^^

    연말선물로 밀감한상자 주문했습니다. 무농약유기농귤입니다. 진피차를 만들어 수시로 마시면 감기에도 좋고 여러가지로 좋답니다.
    제 블로그를 뒤져보세요.^^ [비밀댓글]

    답글
    • 주방보조2009.12.30 03:27

      이거 만날 감사하다고만 하고 넙죽 잘 받아먹기만 하니...면목이 안 섭니다.
      여하튼 감사하구요...

      기왕지사 신세지는 것...혹 생각나실 때 있으시면 충신이 위해서 기도도 부탁드립니다. [비밀댓글]

  • 김순옥2009.12.29 17:50 신고

    한얼이의 말은 늘 그렇습니다.
    모든 건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는 게 최고라구요.
    제가 한빛이를 걱정하고 조급해 할 때마다 곁에서 그렇습니다.
    좀 늦더라도 분명히 자기가 깨닫게 되는 때가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지요.
    아마 본인의 경험에 대한 철학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얼이의 경우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한얼이의 이론이 물론 맞다는 것도 일정 부분 인정하구요.

    충신이가 중학교 졸업을 하면서 선행상과 봉사상을 탔잖아요.
    지금 고등학교에서 학급 부회장을 하고 있구요.
    뻔뻔하다는 것은 장점이 더 크다고 믿습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키가 크다는 것도 훌륭한 장점이구요.
    다만 공부가 최고라는 생각만 버린다면 부모로서 좀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없이 아기처럼만, 귀엽게만 보이던 한빛이 녀석이 이제는 제가 제압 당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얼이와 역전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의 성장과정이 아닐까요?
    마마보이, 파파보이...별로 인기 없다는 것도 아시죠?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자기 철학이 확실하다는 건 장점일 수 있으니 너무 염려 마시길...
    다섯 아이 모두가 원경이처럼 천사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너무 불공평하지요 ㅎㅎㅎ
    저는 항상 충신이 화이팅입니다. 미래가 기대도 되고...

    답글
    • 주방보조2009.12.30 03:34

      한얼이의 말이 백번 옳습니다. 저도 그랬었으니까요.

      한얼이의 상황이 특수했던 것같이...
      저 어린시절 상황도 거의 암흑이었으니까...비슷한 점이 없지 않았다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 충신이는...너무 평안한 것이 탈인 듯 합니다.
      그렇다고 저 어릴 때처럼 극한 가난으로 형편을 바꿔 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충신이의 장점을 보면...장사를 하면 딱 좋을 듯한데...^^ 본인은 싫다는군요^^ 남대문시장에 아는 사람 소개해 준다했더니...ㅎㅎ

  • 봄빛2009.12.31 11:57 신고

    에구,,
    너무 엄격하신 것 같아요.
    저희집은 아이들 고등학교 다닐때
    아빠가 당구장을 데리고 갔었는데...
    설핏
    알아도 모르는 척 틈하나 만드어 주시면 어떨지 싶은 생각이...

    답글
    • 주방보조2009.12.31 20:53

      저도 아들에게 당구를 가르쳐 줄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1녀석이 친구들하고 내기당구를 치고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게다가...모르는 척 해주는 것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만큼 많답니다.^^
      마치 이 녀석은 일부러 온갖 미끼들을 다 물어보려는 붕어같아요. ㅎㅎ
      저요...진짜 부드러운 아빠인데요...우리 애들만 몰라주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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