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도둑? 딸과의 화해...

주방보조 2009. 12. 11. 23:24

어제 목요일 마눌님이 알려오기를

나실이가 학기말 고사를 치는 중 해괴한 짓을 하려 한다하여

나실이를 많이 혼냈습니다.

전공과목 하나가 중간고사 점수 때문에 A가 나오지 못할 것같아서, 차라리 기말고사를 엉터리로 시험을 치고 난 뒤 재수강을 하겠다는 둥...

전공을 A아닌 점수로 남겨 두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는 둥...학적과에 물어보았더니 불이익이 전혀 없다 했다는 둥...

그 말도 안 되는 발상에 저는 당연히 불같이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 것은 편법이며, 편법은 마침내 너의 인생관을 갉아먹게 될 것이고 그 댓가를 반드시 치루는 법이라고...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성적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게을렀다면 뼈저리게 후회하고 후일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마땅 하거늘...어린 것이 어디서 그런 잔머리를 부리고  있느냐고...

욕심은 많고 게으른 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 편법이라고...

게으름 피우다 잘 안 되면 나중에 고치면 되고...이런 안일한 자세로 그 값진 젊음을 녹슬게 하려 한다니...세월이 아깝고 돈이 아깝지 않느냐고...

저는 소리를 질러가며 나무랐습니다. 전화로도, 밥먹는 밥상에서도...

 

파파걸인^^나실이는 펑펑 울었고 

지켜보던 마눌님은 제가 너무 지나치게 말한다고,

그러니까 충신이도 무서워서 당신 곁엔 가려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당신은 다른 때에는 온화한데 자식들만 걸려있으면 지나치게 흥분을 한다고...저를 혼냈지요.

 

...

 

오늘 금요일 학기말 시험을 모두 마친 나실이가 집으로 돌아왔고

녀석의 풀 죽은 모습에 ... 미안한 마음이 몽싱몽싱 피어 올랐습니다.

송림식당에 가서 돼지고기 불백을 사주며 화해를 할까 하다가...거기 가면 항상 과식을 하게 되므로(공짜 해장국을 두그릇은 퍼 먹게 되니까) 요즘 상태론 좀 곤란하다 생각이 들어 간단하게 집에서 저녁으로 우동을 끓여 먹고 

새집으로 가는 나실과 원경을 억지로 끌고

제가 요즘 매일 식사 후 걷기를 하다가 들려 한 두시간 소일하는 건대 스타시티 지하에 있는 책방 반디앤루니스로 갔습니다.

전 돋보기를 끼고 불교에 대한 책들과 신화에 대한 책들 그리고 역사책들 몇권을 열독하였습니다.

원경이가 제 곁에 8시경에 나타났고

원경이와 함께 수필집 있는 구석에 서서 핸드폰으로 허접한 소설을 읽고 있는 나실이를 찾아내었습니다.

 

신화와 관련된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몇권의 책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 사이는 어느정도 풀려갔습니다.

반디를 나와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바이킹스'라는 일식부페 가격도 알아보고...셋이 함께 수다쟁이들이 되었습니다.

내년 가을쯤까지 돈 모아서 한 번 사먹자는 둥^^...점심을 굶고 3시쯤 먹어야 싸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둥^^...우리 식구 모두 먹으려면 저녁은 15만원은 족히 들지만 점심과 저녁 사이 시간은 9만원 밖에?? 안 든다는 둥^^...우리 식구들이 회를 별로 좋아 하지 않아서 손해일꺼라는 둥^^...

 

큰 맘 먹고^^  나실이는 소원대로 500원짜리 롯데리아 아이스크림을 원경이는 이마트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역시 500원짜리 코코아를 사주었습니다. 셋이서 그 자판기 앞 테이블에서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

갑자기...우리가 다시 예전의 허물없는 사이로 돌아가고 있는 그 틈을 비집고, 나실이가 "저 책 한권 사주실 수 있으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클립스'라는 책인데 트와일라이트 뉴문에 이어지는 시리즈라고...

평소같으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화해하는 마당이었으므로 흔쾌히 승락을 하고 ...다시 반디~로 갔습니다.

 

...

 

꽤 두툼한 책인데 그림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종이 질이 나빠서인지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므흣한 미소를 날리며 나실이는 제 팔짱을 끼고 즐거워 하였습니다. 

 

그리고... 

19600원?인가하는 그 책을 제 카드로 결제할 때 나실이는 자기의 반디~보너스카드를 동시에 내 놓았습니다.

계산하는 아가씨가 카드를 체크 하면서 물었지요.

1800원이 적립되어 있는데 어찌 하실 것인지요?

 

저는 당연히 '예, 적립금을 넣어서 계산해 주세요'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당당하게

나실이의 입에서..."아니요"라는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아니 이런...칠스트레일리아 국정원장다운 년^^...지 돈은 한 푼도 안 쓰겠다는 심뽀로구먼...

저 카드에 적립된 것도 내가 다 책사며 모아 준 것인데...

 

"야~ 딸년은 다 도둑년이라더니!!!"...소리쳤습니다.

계산하는 아가씨도 그 소리에 피~웃으시고, 나실이도 급 당황...그게 아니라요 ...운운...

 

두번째 충격이었다고

첫번째는 진실이가 냉장고에 넣어둔 자기 생수 한모금 마셨다고 ...제게 도끼눈을 떴던 일이고

이번이 두번째라고...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고...^^ 나실이를 놀려대었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 셋은 한바탕 웃고 떠들고 ...완전히 예전의 돈독했던 사이로 돌아갔습니다.

1800원과 도둑 딸, 화해의 완성...화룡점정이었습니다.^^

 

...

 

자식들을 바르게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은 첫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 환상임을 알았습니다.

이제는...각자 자기 생긴대로 자기 길들을 갈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ㅎㅎ...저는 늙으막한 세월을 녀석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평온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거기에...자식들에게 원망받지 않는 아비란 호칭도 덧붙여 받고 싶은데...너무 잔소리를 많이 해 대면 그것도 어려운 일이겠지요. 

아직은 화해를 비교적 쉽게 하고 있습니다만...^^

 

 

 

 

  • malmiama2009.12.12 14:10 신고

    지금도 앞으로도 사랑 받고..존경 받는 아버지일 것입니다.
    반항과..원망(그 정도면 정말 약간이지만^^)은 사랑 많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사람에겐 늘 있지 않나요.

    하나님께 반항...원망...도 하는데 하물며~~^^

    답글
    • 주방보조2009.12.12 22:35

      감사의 분량만큼에 반비례하는 것이 원망이지요.
      온전히 감사하면 원망이 깃들 리 없고...원망만 있으면 감사를 찾아 볼 수 없는 것...
      부모에 대하여도 그런 것 같아요.
      그저 낳아주고 길러주는 것만도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지 알았으므로...못살던 예전엔 자식들이 부모를 그리 원망할 줄 몰랐는데
      먹고 살만한 요즈음 오히려 아이들 마음에 감사하기보다는 원망이 많은 듯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딱 한 놈이지만 원망꺼리를 얼마나 잘 찾아내는지...ㅎㅎ...목에 걸린 가시처럼 힘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 놈에겐...일단 좋은 평가 받는 것 포기하고...잔소리를 퍼부어 대고 있습니다. ㅠㅠ

  • 한재웅2009.12.12 19:02 신고

    딸과의 긴장과 화해를 실감나게 펴셨군요^^
    소설가하셔도 되겠어요...

    답글
    • 주방보조2009.12.12 22:48

      나실이는 약간 뚱하는 편이지만...아버지를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우직하여 따지고 들면 만만치 않은 포스를 보입니다만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즉각 순복하지요.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였는데...ㅎㅎ 몸무게가 좀 오버하는 바람에, 공부 못하는 것은 별도로 하고라도^^, 사관학교 가는 것을 포기했지요. 그래서...화해도 쉽구요.

      ㅎㅎㅎ...소설가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만약 소설가가 되면 전...톨스토이가 쓴 동화 같은 글들을 쓰고 싶습니다. ㅎㅎㅎ,,,

  • 나우2009.12.13 00:44 신고

    저도 딸하고 싶어요. [비밀댓글]

    답글
  • 김순옥2009.12.13 21:29 신고

    오늘따라 나실이와 원경이 아버님이 더더욱 부럽습니다.
    그리고 좋은 아버지를 둔 나실이와 원경이도 부럽습니다.
    요즘 저는 한얼이보다도 한빛이가 자꾸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합니다.
    지난 금요일 아빠는 휴가를 얻어 시골에 가는데 3교시, 놀토 그러는 과정에도
    시골에 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게임하는데 지장을 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구요.

    한얼이는 시험공부 때문에 바빴으니 당연한 것이었구요.
    나실이는 올에이에 도전중이군요.
    한얼이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에이 받기가 힘들답니다.
    조금만 어긋나면 C가 나온다는군요.
    영어를 제외한 많은 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젱하는 게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화해...할 수 있다면 갈등은 오히려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스트레스가 없다면 발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군요.
    듬직한 딸?
    저도 딸이 있다면 저랑 호흡이 잘 맞았을까요?

    답글
    • 주방보조2009.12.14 02:35

      올에이는요...그냥 공부 안 한 것 변명하느라 해본 짓일 것입니다. 2학기들어 컴퓨터에 한번 달라붙으면^^ 잘 떨어질 줄 몰라했거든요. 뭘 하는지...

      아들들보다는 딸들이 ... 대하기 편합니다. 일단 저를 좋아들 하니까요^^
      엄마들은 다르지 않나요? 아들들이 ...대개 엄마를 좋아하고 아버지를 어려워 하지 않습니까?
      저도 예전에 그랬고 충신이나 교신이도 차이는 있지만 비슷합니다.
      엄마가 아무리 날카롭게 불러 깨워도 안 일어나는 것을 제가 교신아~하고 한번만 부르면 벌떡일어나거든요^^

      저는 한빛이가 보이는 행동을 이미 중학교 1학년 때 충신이에게서 경헙했었습니다.
      어딜 같이 가자 했더니...제게 '안녕히 가세요...'라며 쌩^^까더군요. 충신이와 저의 간극은 그때부터 눈에 띄게 벌어졌었습니다.
      제가 지혜가 모자라서...그랫다 싶은 생각이 요즘에서야 들고있지요.
      가족 모두 모아놓고 얼마전에 한가지 선포를 했었습니다. 교신이가 제게 쌩^^까는 날...나는 시골로 떠날 것이라고^^ㅎㅎㅎ

      한얼이가 고생이 많군요. 그래도 그런 치열한 경쟁속에서 더 발전하겠지요.

  • 청랑2009.12.13 22:20 신고

    나실이가 성적에 스트레스 받고 있군요... ㅎㅎ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제는 따님들이 신랑감이라고 데려올 때가 궁금해집니다. ^^

    답글
    • 주방보조2009.12.14 02:41

      딸들이 시집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살이 다 떨립니다.
      슬프구요^^ 웃기죠?

      나실이는 평생 결혼 안 하고 아빠랑 살겟다는데...귀걸이는 왜하며 어울리지도 않는 예쁜 구두는 왜 찾겠습니까?
      그래서...아주 대 놓고 거짓말하지 말라 하지요. 늙은 딸은 귀찮고 괴롭다 하구요.
      대학 졸업만 하면 집에서 쫓아낼 것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취직이 잘 되어야 할텐데...젊은이들에게 참 어려운 시절이라 걱정입니다.

  • 봄빛2009.12.14 23:01 신고

    딸만 도둑인거 아니에요.
    아들도 메누리도..
    그런데 이 도둑들이 전혀 밉지가 않으니 문제지요?
    화해 잘하셨어요.
    요리왕님 댁 아이들처럼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이들, 요즘엔 참 드문 아이들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9.12.15 10:52

      사랑이 많으셔서...밉지않은 것이겠지요.

      전 가끔 미워지기도 한답니다.^^
      부모맘을 몰라주기는 저도 우리 아이들과 마찬가지였는데
      섭섭하고 밉고 그럴 때가 나이 들수록 점점 많아지는 듯합니다. 포기를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다섯 ...순종하는 아이도 있고 말 안 듣는 놈도 있고 ...그렇습니다. 아직은 말 안 듣는 놈이 적다는 게 다행이랄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