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부터 아내는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쇠고기 버섯 피망 당근등으로는 쇠고기 야채 볶음을 만들고
찹쌀과 잣으로 잣죽을 쑤어 내고
온갖 잡곡을 섞어 잡곡밥을 하고
근대국을 끓이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나실이가 해달라고 한 계란말이를 하고
도시락을 준비하여 씼고 말리고...
평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
6시가 되어 나실이를 깨우러 녀석들의 집으로 갔습니다.
머리맡의 자명종은 울리고 있는데 녀석은 얇은 이불을 둘러 쓴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물론 평소 모습이긴 한데...그래도 수능 날이니 다르리라 생각하고 혹시나 잠을 설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한편^^ 다행이었습니다.
가엾어서...30분을 더 자게 버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먹고 그래도 30분쯤 일찍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6시30분 경에는 깨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금방 옷입고 가방을 챙겨 준비를 마치고 나서길래 불러다 앉혀 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실력껏 시험을 잘치를 수 있도록"
집에 가서 밤새 엄마가 해 놓은 음식들을 섭렵하였지요.
거기 저의 잔소리가 빠질 수 없었구요.
조금만 먹어라...배부르면 잠온다...머리도 안 돌아가고...약간 배고픈 것이 좋다...난 아예 굶었었다...
잔소리 덕인지, 아님 녀석도 식욕이 막 땡길정도로 평안하진 못한 탓인지...조금 먹고 한마디 하였습니다.
'난 죽은 싫은데...' 엄마의 수고도 모르고...
아내는 도시락 내용물을 꺼내며 하나하나 설명을 하였습니다.
도시락을 넣는 순서, 각각의 통에 들어 있는 것...보온병의 뜨거운 물의 상태까지...
그리고
아내도 나실이 두 손을 쥐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7시 10분 ...체육복에 잠바 두개를 겹쳐 입고 양말 신고^^ 슬리퍼를 끌며 나실이는 집을 나섰고
저는 예의 그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녀석의 도시락을 들고 뒤를 따랐습니다.
나실이의 시험장은 무학여고...
건대입구역에서 전철을 타고 왕십리 역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가서 쭉 걸어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나온다고 어제 예비소집일의 추억을 되살리며 제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한때 이 아버지가 왕십리 그 동네에 살며 밤을 주름잡고^^다녔다는 것을 녀석이 알 리가 없지요.
잠간...근데 너 입에서 냄새가 나...혹시 ...
괜찮아요, 시험만 치는 건데 뭐...
허걱!!!
건대입구역 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치약치솔 세트를 사고
전철역 화장실로 녀석을 밀어넣고 이빨을 딲게 했습니다. 잔소리 추가 됩니다.
입이 텁텁하면 신경이 집중이 안 돼! 점심 먹고 나서도 꼭 딲아라...알겠니? 참 기가 막힌다...
그리고 절대로 말 많이 하지 마라, 시험 친 것은 깨끗하게 머리에서 지우고, 점심 먹으면서도 친구들과 수다 떨면 안돼, 알겠지?
...
성수역 뚝섬역 한양대역 왕십리역...
그리고 9번 출구로 나가 한참을 걸어 횡단보도를 건너 무학여고에 녀석을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학교 앞은 고등학교 후배들이 진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수능대박! 합격'을 외쳐대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수험생들이 엄마와 마지막? 포옹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나실이를 가볍게 안아 주고 '잘하라'고 한 뒤 녀석의 등을 밀었습니다.
그리고 녀석이 양편으로 사람들이 갈라선 그 길을 걸어 수험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울컥...하였습니다.
미안하고...미안하고...미안했고요.
아빠의 고집때문에...과외나 학원은 커녕 학습지 한장 해 본적이 없이 ...오직 학교 야자실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락거리며 공부한 착실한 딸...
그래서 중간을 조금 상회하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녀석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던...그런 딸이었습니다.
특별히 좋은 성적이 나오기를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실수없이...자기 실력만큼 시험을 잘 치루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집에 돌아오니 겨우 8시 30분...
...
지금쯤...1교시가 끝나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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