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아버지의 마음과 딸의 알바...

주방보조 2008. 7. 4. 10:12

대학에 들어간 진실이는

맨 처음 하고 싶은 것이 알바였습니다.

친구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얼마씩 번다...는 이야기를 제 귀에 흘려 넣으면서

자기도 알바를 하고 싶다는 분위기를 전달하고...제 표정이나 반응을 그 영리해 보이는 눈으로 살피곤 하였더랬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알바도 해보고 세상을 조금이나마 미리 경험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알바가 공부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믿음이 확고부동하였기 때문에

알바를 해서 돈을 조금 버는 것보다는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타는 것이  낫다고

힘써 공부하라고...장학금 타면 용돈도 올려주겠다고^^

녀석의 알바 의지를 통제해 왔습니다.

 

제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 70년대 말 한달에 5만원을 받고 1년여를 과외선생이 되어 일주일에 세번 2시간씩 알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과외금지조치가 떨어지고 나선 무교동에서 그림과 액자를 파는 누님의 가게를 오전수업으로만 때우고는 곧 달려가 1시부터 밤11시까지 지키고 앉아 반년여를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10.26부터...서울의 봄을 지나 ...518까지...12월 반짝 크리스마스 카드로 약간의 이익을 본 것 빼고는 ...완전히 불황...결국 그해 8월에 결국 백합인테리어?라는 이름의 가게문을 닫았지요. 저도 가끔 그 데모대의 한 사람이었으면서도 ... 가게를 열 수조차 없었던 그 상황들에 대한 아픈 추억 때문에 어쩌면 지금의 촛불집회에 대하여도 은근히 반감을 가지고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요...그때 알바를 하던 대학시절은 사실 그리 바람직 한 것은 아니었다 저는 마음속으로 정리를 하였었습니다. 당시 버스를 타고 알바하는 집까지 가서 두시간...집에 돌아오면 거의 4시간이 소요되었고 결국은 일주일중 사흘은 자기 공부를 할 수 없었으며...누님의 가게를 돌보며 보낸 그 인고의^^시간들...그것은 대학생활에서 가장 큰 독소였다는 ...

그래서 자식들이 대학에 가면 알바를 하지 않아도 충분할만큼 학비를 대주고 ...열심히 공부만 하게 해서 대학생활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내게 하겠다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진실이도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알바는 포기하고...한학기 동안의 대학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먼거리의 통학을 견뎌내며 ...8시까지의 통금도 잘 지키고 착하게^^...

물론 수업일에 엠티를 간다든가, 남자친구를 사귄다든가, 학점관리에 대한 충고를 무시한다든가...하는 식으로 아버지의 명령이나 권고를 좀 무시도 해가면서 6월 23일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무사히 말이지요.

 

...

 

시험이 끝나고 다음날인가 다음 다음 날인가

녀석이 제게 툭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아빠~ 조 앞 24시간 편의점 알바자리가 나왔는데...밤을 새우는 것이라던데... 

 

저는 직감적으로 이 녀석이 방학이 되니까...알바를 하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것이구나 파악을 하고 대답해 주었지요.

 

너~아무리 얼굴이 무기고 다리엔 저주를 받은 몸이라곤 하지만...그런 시간에 알바를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마라. 물론 방학중엔 더욱 영어공부와 일어 공부에 전념...전심전력...해야 한다. 알겠지? 편입시험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1시간30분이나 걸리는 학교 다니는 것 얼마나 힘든 일이냐...운운 해가면서요.

 

그리곤 잠잠 해졌습니다.

 

게다가 녀석이 은근히 기회로 생각했던 성적도 제게 들이밀어 이정도면 소원하나쯤 들어주세요 할만큼 잘 나오지도 못했구요.  

 

저는 녀석이 알바를 포기하고...공부에 전념할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그러나...

 

...

 

화요일 저녁 9시가 넘어서

중고생 아이들 시험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여 특별히 저녁 장을 보기 위해

교신이에게 손수레를 끌게 하고 아파트 후문을 나서는데...우리 앞에 진실이가 새집이 있는 아파트 정문(우리 아파트와 입구를 마주하고 있음)을 핸드백을 든 채 나오다 막 얼어붙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순진한 넘...^^

 

제 머리는 어쩌면 이럴 때 그리도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는지요...

 

너! 알바를 하러 가는 것이구나 그렇지?

 

제가 저녁 9시 뉴스를 시청하고 드라마를 보고 야자를 마친 나실이를 데리러 나가는 시간이 11시...집에 돌아오면 12시

그러니까

녀석은 9시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아빠의 감시 안테나에 절대 걸리지 않을 시간을 정해

일주일에 세번 6시간을 파출소 앞에 있는 책과 비디오란 가게에서 알바를 하기로 하고 ...첫 출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째려보고 또 째려보고...한숨을 푹 쉬고...저는 녀석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저럴까 가엾기도 하고 ...스스로의 문제이니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도 들고...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이든 본인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 알기 때문에...

 

...

 

다음날 가족 모두를 앉혀 놓고 공식적으로 진실이의  알바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일단 7월 한달만 하도록...

 

네 알바를 반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네가 대학시절 동안 학문에 전념하여 실력을 쌓고 좀 더 나은 자리에서 세상을 맞이하길 바라는 것뿐임을 기억하라고 호소하고...

그리고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당부하였습니다.

 

어두웠던 녀석의 얼굴에 환한 꽃이 피었습니다.

몰래가 아니라 당당하게... 

그토록 보고 싶은 만화 실컷 보면서 돈도 버는 알바를 할 생각에 너무 기뻐서이리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

 

반면...충신이와 원경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슬퍼했답니다.

그날 저녁 장을 보고 나서 나실이 데리러 가기 전에 새집에 먼저 들어 가서 진실이 어디 있느냐 짐짓 모르는 채 물었더니

누나 금방 뭐 사먹으러 나갔는데요 이구동성 입을 맞춰 제게 거짓말을 해대었었거든요.

형제의 잘못을 아비에게 속이려 한 죄 용서할 수 없다...실컷 혼이 난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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