쩜쩜쩜/독자 참여글

삶 사랑...마지막: 조정희님의 회고

주방보조 2005. 3. 13. 00:17
<제118호> 마이 하트 윌 고우 언 2004년 01월 01일

1월 첫날부터 12월 마지막날까지
미혜씨가 전혀 함께 하지 않았던 첫 한 해를 보냈습니다.
여러해에 걸친 처절한 싸움을 패배로 마무리 한 것이 2002년이었다면
2003년은 그 패배가 긴 여운을 남긴 좌절의 시간이었습니다.

추억 이외에는 미혜씨로부터 아무런 인풋을 받지 못하던 그 시간은
참 지랄같은 시간이더군요.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달리 적합한 표현이 없군요.)

있던 사람이 없는데도 아무일 없던듯이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그리고 가끔씩 어두워지는 오치의 얼굴을 통해서나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시는 어머님의 표정을 통해서
저 역시 가장 후회할 만한 시간을 살고 있음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어쩌지 못했던 한 해였습니다.

이제 오늘 밤이면 해가 바뀔 것이고 그러면 거짓말같이
그늘없는 새하얀 백지같은 시간이 시작될 것이라고는…
물론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내년도 올해 같을 거라면 정말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자의적인 금긋기라도 시도하고 싶은 것이 지금 심정입니다.

거의 아무것도 치우지 않았던 미혜씨의 소지품과
함께 나눈 추억거리를 담은 물건들을 비로서 좀 건드려 볼 생각이 났습니다.

구석에 얇은 먼지가 살짝 깔린 피아노 건반도 좀 쓸어 보고
산더미같이 모아놓은 사진들도 이리저리 넘겨 보았습니다.
한번에 한가지씩 기억의 편린들이 떠올라 조합되곤 했는데
그런 조합에도 노력이 필요한 걸 보면 시간이 흐르기는 좀 흘렀나 봅니다.

피아노 의자의 뚜껑을 열고 오래 손이 닿지 않았던 물건들을 꺼내보다가
악보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표지 한 가운데에는 시커멓고 커다란 배의 앞모습이 배치되어 있고
그 윗쪽으로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이 눈을 내리깔고 있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 “마이 하트 윌 고우 언”의 악보였습니다.

그 영화를 함께 본 것은 개봉이 한참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영화관 가는게 드물었던 우리는
보통 두어 해가 지나서야 블럭버스터나 할리우드 신세를 지곤 했었으니까요.

그 영화를 보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웨스턴 애비뉴에 있는 조그만 음악서점에 악보를 사러 갔었습니다.
이미 워낙 유명해진 곡이라서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피아노곡으로 편곡된 것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그게 영화에 나오는 곡에 가장 가깝더군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그 악보를 피아노 도면대에 올려놓고
미혜씨는 피아노를 쳤고 저는 노래를 불렀댔습니다.

미혜씨가 클라이더만이나 윈스턴처럼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은 아니었을테고
제가 덴버나 디온처럼 노래를 잘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미혜씨가 윈슬렛이 아닌 것도 사실이고
제가 디카프리오와는 여러면에서 거리가 먼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 그 자리에서 우리는
죽음이 사람들을 갈라놓으려고 할때에라도
그걸 사랑으로 다리놓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가 그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들이었다고 느꼈습니다.

미혜씨는 집에서는 좀처럼 피아노를 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냥 어떤 프로페셔널리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그냥 몸에 밴 습관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하는 저의 오랜 꿈(?)은
좀처럼 이뤄지지 못했었습니다…. 만…
‘마이 하트 윌 고우 온’은 그 최초의 예외가 됐었습니다.
무엇이 미혜씨에게 그 예외를 인정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밤 꿈속에서 당신을 봅니다.
매일밤 꿈속에서 당신을 느낍니다.
당신이 여전한 것을 난 그렇게 압니다.

우리를 가로지른 그 큰 공간,
그 먼 거리를 건너서 당신은 내게 왔군요.
변함없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가깝거나 혹은 멀거나, 당신이 어디 있든지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다시 한번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도 여전할 겁니다.”

물론 제가 매일 밤 미혜씨를 꿈에서 보는 것은 아니고
또 우리 사이에 그런 커다란 공간이 있었다고 느낀 것도 아닙니다.
메난즈 묘지의 한켠을 찾아가면 언제든지 마주 대할 수 있는
미혜씨와의 추억이 그다지 멀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런 차이는 바로
그 영화와 우리 삶 사이의 차이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구체와 세부에서 차이가 있어도
미혜씨와 제가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삶과 사랑”에 대한 어떤 이해와 실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걸 조그마한 음악 씨디에 담으려고 노력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한번 우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래도 일생 동안 계속되겠지요.
다시 하나가 될때까지 사라지지 않겠지요.

당신을 사랑했을 때 그건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품에 안았던 한번의 진정한 사랑…
내 일생을 통해 그 사랑은 지속될 것입니다.”


사랑을 가슴에 묻는다는 표현이 간혹 쓰이기는 하지만
‘묻는다’는 말은 항상 슬픈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의 표현과도 같이
89년 오월의 그 어느날 아침,
삶을 두고 조금 회의하던 마음 문을 열고 제게 들어왔던 미혜씨는
조금 더 심각한 좌절을 지나고 있는 지금의 제 마음에
다시 한번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천진하고 다소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띄우면서 늘상 날리던
“이거 조정희가 왜 그러셔?” 하는 멘트가 생생합니다.


”가깝거나 혹은 멀거나, 당신이 어디 있든지
우리 마음은 계속되겠지요.
당신은 또다시 문을 열고
그렇게 내 마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도 여전할 겁니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가 봅니다.

당신이 이렇게 여기 머무는한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여전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영원히 머물러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내 마음 속에서 안전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겁니다.”


굉장히 오랜 침묵을 깨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그것도 새해를 몇시간 앞두고 이렇게 이 난을 어지럽히는 것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는지를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앞두고 보내드린 카드에서도 “저”는
“저희가 어디에 있던지”
그동안 받은 사랑과 관심을 잊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만,
그건 미혜씨의 마음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제 믿음과 신뢰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겉으로야 어쨌을망정 저로서는
짧지 않던 생애에서 하나님과 가장 소원해 졌었던 한해를  
오늘 밤의 송구영신 예배와 함께 보내버릴 것입니다.

지켜 보아 주시면서 함께 안타까워해 주셨던 분들께
다시 한번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조정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