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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장미혜님 글27

주방보조 2005. 3. 10. 07:42

Love of Life (39): 나의 왼 팔  

왼쪽 팔이 부러졌습니다.
화장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느라고 팔을 짚었는데 그만
와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꺽이면서 부러져버렸습니다.
거의 실신한 채 넘어진 저를 시부모님께서 침대로 옮겨 놓으셨지요.

정희씨는 닥터 숀 번(Dr. Shawn Byrne)의 장례식에 가느라고 집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숀은 먼저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지난 일요일 저녁의 일이었습니다. 베찌가 전화를 해 주어서 알았습니다.
수술하고 퇴원한지 불과 삼사일만이었습니다.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지만 수술은 성공적이었답니다.
그런데 퇴원한지 며칠만에 심장마비가 일어났답니다.
손쓸 틈도 없이 숀은 하나님에게로 가셨습니다.
숀에 대한 글을 쓴지가 불과 2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었는데....

장례식에 가기 위해서 정희씨는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허드슨 강변, 킹스턴 근처의 조그만 마을 레드후크(Red Hook)에서 장례식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정희씨는 장례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어머님께서 전화를 해서 '큰일났다'고 제 소식을 전하셨기 때문이지요.

정희씨는 12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돌아왔는데
제가 팔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더니 황급히 여기저기 전화를 했습니다.
결국 닥터 매스트리아니와 통화가 됐는데 빨리 응급실에 가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부러진 것이 확실하면 '캐스트'를 해야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요즘은 그렇잖아도 혼자 거동하는 것이 어려워졌는데
팔까지 하나 부러지고 나니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병원에 가기 위해서 우리 차를 탈 수 조차 없었습니다.
자동차 좌석에 어떻게든 앉을 수는 있다고 해도
차에서 내리기 위해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희씨가 앰블런스를 불렀습니다.
911으로 전화를 걸고나서 불과 15분만에 차와 사람들이 왔습니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난 응급 간호사와 구조대는
능숙한 솜씨로 저를 이동침대에 눕히고는 차에 실었습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이젠 내 한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병원에 가는 일에 조차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앰블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들어서니까
대기실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침상으로 옮겨졌습니다.
전에도 응급실에 와야 했던 적이 두어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두세 시간씩 기다려야 했었지요.
그러나 오늘은 병원 문을 들어서서 수속을 마치고 침상에 눕기까지 5분도 안걸렸습니다.
그만큼 제가 이젠 진짜 '중환자'라는 뜻이겠지요.

엑스레이 결과, 팔이 부러진 것으로 나왔습니다.
암세포의 침식으로 약해진 왼쪽 팔의 윗부분(상박) 중간쯤이 부러졌습니다.
두달 쯤 전에 어깨뼈와 빗장뼈가 부러졌었던 바로 그 왼쪽 팔이었습니다.
오른쪽 팔 꿈치와 어깨쪽에도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왼쪽 팔의 암세포 전이가 훨씬 많고 과격한 것 같습니다.

부러진 팔을 기브스로 바로 묶지는 않았습니다.
보통의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탄력 붕대로 다시 한번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팔걸이(슬링)로 고정시켰지요.
의사 한분과 두 건장한 남자 간호사들이 그 작업을 했습니다.
그분들이 작업을 하는 동안 저는 내내 비명을 질러야 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통증 때문이었습니다.
'뼈를 깍는 아픔'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이다지도 아픈 것인지 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작업 전에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다량의 몰핀을 주사로 맞았는데도
붕대를 감기 위해 부러진 팔 뼈를 움직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비명과 신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마침내 작업이 끝나고 침대에 누워서
붕대에 칭칭 감겨서 레슬링 선수처럼 잔뜩 부풀려진 왼쪽 팔을 바라 보았습니다.
비감했습니다.
이젠 왼쪽 팔이 꼭 제 팔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저 내게 엄청난 통증을 안겨 주는 원수덩어리처럼만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이상 기능을 못하는 그 팔이 안쓰럽게만 보였습니다.
끝까지 그 팔을 지켜주지 못한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다시 앰블런스를 불러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거의 여섯시간이 꼬박 걸렸습니다.
닥터 매스트리아니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사라토가 스프링스에 갔던 이후
집밖으로 나가 본 첫 번 외출이었습니다.
한달 반만에 가졌던 불과 여섯 시간의 외출이었지만
마치 아주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지붕을 뜯어내고서 들 것을 달아내려주던 극성스런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제 한 몸을 스스로 주체 할 수 없었더랬지요.
그런 그가 예수님한테서 "네 자리를 갖고 집에 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 침상을 주섬주섬 추스려가지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도 역시 들 것에 실려서 응급실에 갔었지만
다시 들 것에 실려서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일어나서 성큼성큼 걷지를 못합니다.
어쩌면 영영 그러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지금 어느때보다도 예수님의 치료하시는 힘이 필요합니다.
제게도 그런 말씀 좀 해 주시면 안될까요?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에 가거라. 그리고 네 할 일을 하거라."
당장 가족을 위해서 저녁밥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싶고
몇시간이고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찬송가도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제야 깨닫다니...

아침 일찍부터 장례식과 응급실을 전전해야 했던 정희씨도 피곤해 보였습니다.
구급차를 부른 이후 제게서 단 2미터 이상을 떨어지지 않고 '수행'하던 정희씨 얼굴에는
피곤함과 함께 연민과 슬픔 같은 빛이 어려있었습니다.
입술을 깨물고는 내 성한 팔을 잡아주면서 정희씨는 내내 별 말을 못했습니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무슨 잘못으로 내 이런 고통에 동참해야 하는 것일까?'
새삼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원래의 제 위치로 돌아갔습니다.
원래의 위치래 봤자 침대지만 말이지요.
그래도 친숙해 진 침대는 무언가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그것이 비록 '병상'이라 할지라도....

정희씨와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운 생각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겠지요.
다음번에는 그게 '다리'일지도 모릅니다.
다른쪽 어깨이거나 갈비뼈일지도 모르지요.
그럴 때마다 이런 소동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럴만한 가치는 있는 일일까?

자리에서 머리를 돌려 왼팔을 보았습니다.
붕대에 칭칭 감긴채 통나무처럼 제 몸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마치 나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낯선 물건처럼 느껴졌습니다.
몰핀 때문에 몽롱한 졸음에 시달리면서도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왼 팔이 먼저 부러진 게.... 감사한 일이구나.'

아직 한 손이 남았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오른손 잡이니까요.


장미혜 드림.
12/07/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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