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그 학교에 그 학생...

주방보조 2008. 3. 7. 03:27

예전에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는

신입생들에겐 수강신청을 모두 학교에서 결정해 주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못내 서운했었지요. 이유는 잊었지만...

토요일까지 1,2교시는 전공필수, 3교시는 체플 한시간 빼면 교양필수...그리고 오후에 교련, 체육

그런 식으로 정해졌었습니다. 기억력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제가 그러고 보면...^^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한가지 있다면

가정과하고 억지로 짝을 맞춰...한시간 배려한 것이 있었는데...그것이 윤리시간이라서 그런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는...ㅎㅎ

 

음...본격적인 이야기는 제 추억담 늘어놓는 것이 아니니...이렇게 히히덕 거리면 안되겠지요?

 

...

 

진실이는 3.3일에 입학식을 하고

정해진 대로 그날 수강신청을 해야 했으며...수업도 듣고...신입생 환영회까지 참석해야 했습니다.  

 

선배들이 이미 벌어질 일을 예상한 듯

미리 피씨방을 잡아 놓고 수강신청을 하도록 배려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신입생 환영회에서 고기 두어점 줏어먹고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온 우리 진실이는

수강신청을 다 하지 못하였고 교양선택 5학점을 가지고 엄청난 고민을 하더란 말입니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자기와 비슷하다는 변명도 잊지 않았구요.

 

올해부터 주간과 야간 사이에 교차수강신청이 가능하게 한 탓으로

신입생들의 입학식날 시행된 수강신청 당일...웬만한 교양선택 과목들은 일찍부터 모두 마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주간의 과목들이 그렇고 야간과목들은 거의 남아 있는 그런 상태가 된 것이죠.

그러니 15학점만 할 것이냐 야간수업을 들어야 할 것이냐...

그때부터 거의 3시간 이상 저녁 시간 내내 저와 진실이는 컴퓨터를 두드리며 80여개나 되는 과목을 다 검색하고 등록거부를 당했습니다.

 

야간은 50개, 40개씩이나 좌석이 남아있는 강좌도 수두룩하게 있었지만

주간은 인원이 초과되어 -1로 표시된 것은 있어도 모두 다 꽉 차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론 도저히 해결 불능이란 결론이 나왔습니다.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는 것인지...

 

다음날 진실이는 느긋하게 학교로 가셨고

저는 오후1시쯤 학교로 전화를 넣었습니다. 그날 오후24시까지 수강신청 기간이므로 기회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수강신청을 담당하는 여자분이 받아서 말씀 하시길...어떤 과목을 원하는지 알려주시면 '가능한 과목이면 할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고 했고

저는 진실에게 찾아가서 그 담당자분에게 말하라고 전화를 해 주었으며

진실이는 찾아갔다가 준비한 다섯과목중 앞의 2개는 절대 안되고 나머지 3개는 교수를 찾아가서 직접 부탁해 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

어떤 신입생이 교수를 직접 찾아가 부탁할 수 있을꼬...

 

뚜껑이 열릴락 말락...

다시 학교로 전화했더니 그 담당자는 없고 다른 여자분이 받아 말씀하시길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 드릴 방법이 없다고  딴 소리를 하시길래

뚜껑이 조금 열려 김이 솔솔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총장님에게라도 전화를 하고 따져 보고 싶으니 높은 분 좀 바꿔 달라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드디어 남자분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화내지 말라. S대도 Y대도 K대도 E대도 우리와 똑같은 상황이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 한 것이다. 문제가 없다. 학생이 잘못한 것이다. 한 학생때문에 학교 시설을 늘려달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다. 나도 화난다. 왜 한 소리 또하고 또 하고 하시느냐.

음... 한소리 또하느냐는 것은 '입학식 끝나고 피씨방에 가서 수강신청을 하는데 주간 아이들의 교양선택은 거의 메말라 있었으며 이미 오후 5시부터는 야간 것만 남은 것이 정상적인 것이냐. 주간 아이들의 수 업을 보장하고 나서 야간 아이들을 주간으로 교차지원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냐'...따지는 제게 그 분이 하신 소리입니다.

끝까지 야간과의 교차지원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래도 책임있는 자리의 남자분인지라 그런지 타협적인 자세로 전환했고...그리고 저도 열린 뚜껑 더 열어보아야 제 건강이나 상할 것이라 판단했으므로

교육부나...공정거래 위원회^^제소하겠다는 말을 뱉어내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구했고...그 남자분은 최대한 그리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정말 힘들게 하는 학교...

 

...

 

어쨌거나

곧 진실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미 전철을 탄 상황이라 ...여하튼 빨리 오라 ...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고 네가 직접 통화를 해야 한다 설명을 하였습니다. 2시...

 

1시간쯤 지나 지금 뚝섬유원지 역인데...눈이 오지 않았느냐고 하두 눈이 많이 와서 우산을 샀는데 이곳은 눈이 오지 않은 것같다고...전화하였습니다.

'나는 너때문에 눈이 오는지 비가오는지 전화통만 붙들고 한참을 헤멨으니 모른다. 다 왔으니 빨리 서둘러 오라' 재촉하였습니다. 3시...

 

그리고 1시간이 지나도 딸은 집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두번이나 했지만 '소리샘'에 연결한다는 음성 서비스가 나올 때까지 받지를 않았습니다. 그때가 4시...

그리고 10여분 후 '아빠 전화했었어?'라는 뻔뻔스런  녀석의 전화를 받았을 때 

드디어 제 머리의 뚜껑이 열렸습니다.

이 정신나간 것아...도대체 무엇을 하길래 10분이면 와야할 것을 전화도 안 받고 1시간 10분이나 지나서 전화질을 하는 것이냐? 엉? 주글래~~~~~당장 오지 못해~~~~~

 

4시30분쯤 도착한 딸에게...그 남자분 퇴근하기 전에 전화하라 하여...일단 수강신청 문제를 해결하고...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후배들 만나서 차를 사주느라 늦었다"고 변명하는 딸에게...온갖 혈기를 다 내며 호통을 퍼부어 대었습니다.

 

...

 

휴...

 

그 호통 중 백미가 바로 다음과 같은 말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말~그 학교에 그 학생이야~

 

 

 

 

  • 청랑2008.03.07 05:12 신고

    아빠의 배려가 눈물겹습니다~ ^^
    진실이가 알라나 몰라....
    ㅎㅎ
    샬롬~

    답글
    • 주방보조2008.03.07 09:02

      눈물겹지요?
      진실이가 못 알아줘도...목사님이 알아주시니...좋습니다^^ㅎㅎ

  • 알 수 없는 사용자2008.03.07 09:27 신고

    아빠 전화했었어? 가 압권이었습니다. ^^

    답글
    • 주방보조2008.03.07 17:39

      자식이란...부모에게 '네가 얼마나 못된 자식이었나를 생각나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빤한 거짓말을 늘어놓을 땐...뚜껑이 열리고^^ 동시에 잘못 가르친 아비로서, 비슷한 짓을 했던 자식으로서 부끄러움도 느낍니다.

  • 바쿠스2008.03.07 10:40 신고

    진실이가 못 알아주는 것도 이해하시는 요리왕님을 보니 요리왕께선 적어도 하나님보다 더 인자하신 분 이란 것을 잘 알 수 있겠네요.

    하나님은 피조물이 배려도 못알아 준다도 똥행패를 계획하고 계신다죠?
    지금 똥행패를 하지 않는 것이 피조물을 사랑해서 천년을 하루같이 진노하기를 더디한다고 추접스런 자화자찬이나 잔뜩 늘어 놓으면서요..
    좋은 날 입니다. 샬롬~
    :-)

    답글
    • 주방보조2008.03.07 17:42

      음...평소 바쿠스님같은 어투가 아닌데요^^
      뭔가 좀 ... 달라요.

      철이 아주 조금 더 드셨거나...아니면 뇌세포가 약간 퇴화 하셨거나...여성호르몬이 좀 과다하게 분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예...오늘 날이 무척 좋았습니다.

  • Pia2008.03.07 11:18 신고

    온제 오셨써여? ㅎㅎㅎ

    진실이가 대학생이 되었군요. ^^ 이젠 따님의 개김에 눈 찔끔 감아 주셔야 할 때가 도래했습니다. 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8.03.07 17:48

      조인스에 어떤 분이...저를 보고 헬리콥터 부모라고 꾸 짖어 놓으셨더군요. 반성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가끔은 참견할 것같습니다. 이 아이가 늙어 꼬부라 진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헬리콥터인듯...큰 일이죠?

  • 김순옥2008.03.07 19:11 신고

    주야간 시스템이 통일 되어 헷갈리게 하고
    진실이도 처음하는 수강신청이라서 그렇고
    아빠는 예전과 너무 달라진 상황이라서 그렇고...
    그래도 아버지의 관심과 정성이 눈물 겹습니다.
    다음부터는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해결하도록 하심이 어떠실지요?
    그런 과정들을 거쳐가는 게 바로 사회를 배워가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저는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앞으로도 진실이에게 화이팅을 보냅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8.03.07 19:25

      먼저 든 생각은 참 준비 안 된 대학이라는...대학 자체나 학생에게나...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공무원이든 아니든 행정 관리라는 것이 얼마나 꽉 막힌 존재들인지 실감했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저 자신이 수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앞으로는...믿고 맡겨야겠지만...그럴러면 참 많이 제가 '성질'을 견뎌야 하겠지요.

  • coolwise2008.03.07 21:48 신고

    주야간 교차신청을 무제한 허용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주야간으로 구분된 정원이 무의미해지겠네요. 선착순 주간반.. 이후 야간반 수업..을
    들어야 할테니... 승인된 정원기준을 사실항 학교 마음대로 변용하는 거 아닌가 싶군요.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8.03.08 08:31

      무제한은 아니고 일부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한계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야간대생들을 배려함으로 그들의 이탈을 막아보자는 의도일 것이라 추측을 합니다만...신입생들에겐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솔직히 마음만 쓰려 했는데^^...학교의 처사가 너무 부당하다 여겨졌습니다.

  • coolwise2008.03.07 21:58 신고

    어.. 근데.. 헬리곱터 부모.. 그 얘긴 어디 신문에선가 본 적이 있는데..
    문제 있더군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 직장까지도.. 결혼까지..
    부모가 다 알아서 잡아줘야 한다는 얘기.. 그렇죠?.

    우리 젊은 시절엔 대학 들어가면 부모들은 거의 손을 놓았었죠.
    그 덕에 나름 삶을 살아온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제 좀 맡겨두실 때 된거 아닌가 하는 생각 듭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어차피 부모들의 감각으로 .. 30년이나 뒷세대인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긴 어렵거든요..
    내버려 두면..알아서 친구들 찾아다니며 상의해서 해결하더라고요.
    제 경우는.. '내 도움이 필요할 때만 요청해라. 그건 도와준다. 그 외는 네가 알아서.."
    대학보낼 때.. 그런 방침으로 했었습니다. 제가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ㅎㅎ
    아이를 볼 때는 아무리 해도.. 어린애로 밖에 안보이지만.. 그래도 자꾸 권리와 책임을 스스로
    느낄수 있도록 먼저 인정하고 맡겨줌으로써 자기 책임을 훈련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고 어디까지 맡겨둘 것인가.. 늘 관심은 두되.. 말은 적게 하는 쪽으로..
    사실 관여는 일일이 안하지만.. 늘 불안하고 궁금하죠.
    부모노릇이 참 힘듭니다. ㅎㅎ
    걍.. 초반부터.. 같이 책임지느라.. 고생하셨단 말 듣고.. 참고로 말씀드렸습니다.

    [비밀댓글]

    답글
    • 주방보조2008.03.08 09:00

      맞는 말씀이세요.
      저는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전혀 간섭을 받지 않았었지요. 중학교까지는 공부해란 소리도 많이 듣고 "네가 집안 기둥"하시면 죽고 싶고 그랬었는데^^
      밥 세끼 먹기도 어려워지면서...그런 말씀들이 뚝 끊어졌구요. 그때가 고등학교 시작할 때였습니다. 거의 꼴찌를 해도...더 이상 한숨외엔 말씀이 없으셨으니까요.

      사실 이번 일은 진실이의 도움요청이 있었지요^^. 그리고 신입생이 알아서 하기엔 지나치게 무리였고요. 전화해서 보냈는데도 다시 돌려보내는 저들의 솜씨도...참 열받게 만드는 작태였습니다. 결국은 총장운운해서야 겨우 움직였다는 것이죠.

      그러니 진실이에게 여러번 다짐을 하였습니다.
      앞으론 네가 전적으로 감당하고 책임져라, 난 등록금과 차비 식비만 책임지겠다. 장학금 타주면 고맙고^^

      스스로 해내는 것을 배우는 것...없어서는 안 될 이 시기의 교육이지요.
      좀 형편없는(수준도 그렇지만 행정처리가)학교를 만난 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비밀댓글]

  • 봄빛2008.03.08 00:10 신고

    울집 작은아들도 수강신청을 하면서
    뚜껑이 활짝 열려 김이 폴폴 났었는데....
    군인 가기전 이수한 과목을
    뭔 자격증을 준다며
    군인 가기 전 딴 학점을 인정할 수 없으니 다시 수강을 하라고 한다나요?
    한 과목도 아닌 두 과목이나.
    것두 A+을 맞은 과목을...

    우쨌든 지들 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구경만 하였지요.
    진실이도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짐짓 모른 척하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네요.
    평안~!!

    답글
    • 주방보조2008.03.08 09:05

      앞으론 짐짓 모른척 하려고 할께요^^
      근데
      제가말이죠...너무 여성스러워서...문제인 것같아요.
      아래로 줄줄이 신경 쓸 놈 잔뜩 있는데..이 큰 놈까지 마음이 여간 쓰이는 것이 아니니...
      어제도 자기가 그 과의 무슨 부장을 맡게 될 것같다고 하여...한참을 말렸으니...ㅎㅎ

'칠스트레일리아 > 다섯아이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떼돈벌다...^^  (0) 2008.03.14
어톤먼트...  (0) 2008.03.10
입학 풍경...  (0) 2008.03.04
절대 후회하지 않을 실험...  (0) 2008.02.28
충신이에게 "진실"을 외치다...  (0) 2008.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