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스트레일리아/다섯아이키우기

첫눈...

주방보조 2007. 11. 20. 00:42

뉴스에서 눈이 내린다는 소식과 화면을 보고

곧바로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약간 물기가 젖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가을이면 좋겠는데

어제 마지막 단풍든 노란 은행잎에게 무자비한 사형을 집행하더니

마치 혁명을 이룬 점령군처럼

겨울이 눈을 앞세워

속전속결 가을을 접수해 버렸습니다.

 

서울에 올라왔던 첫해

누나와 함께 쌓인 눈을 밟으며 광화문의 가로등과 그림같은 눈을 감탄했던 추억...

그렇습니다.

첫눈은

우리에게서 가을의 남은 기운을 빼앗아 버리는 추억이란 무기로 무장한 점령군입니다.

 

관희와 골목길 비탈을 미끄럼질하던...

규식이와 앞 마당에 가득 모아놓은 눈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킬킬거리던...

대전엔 참 눈이 많이 내렸었는데...

 

아현동 균명중학교에서 서대문쪽으로 빙 돌아 내려오던 길은 눈만 내리면 우리들의 썰매장으로 변했었습니다. 그해 머리를 박박 깍고 눈으로 김이 모락모락나는 까까머리를 문질러 대던...추억이후

더이상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고입 대입...이 눈보다 더 무서운 기세로 저를 윽박질렀기 때문일 것이며

눈을 돌려 더 이상 눈을 보기보다는 여학생들의 얼굴을 감상하는 모드변환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눈은 추억을 만들기 보다는 아픔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의 눈으로 다시 눈을 보기 시작할 때까지...

 

...

 

올해의 첫눈이 내렸습니다.

아이들이 기뻐 날뜁니다.

새집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이미 본 눈을 또 보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수능이 끝나고 학기말 시험을 치고 있는 진실이나, 내일 수학시험을 치는 원경이나 할 것없이...

 

저는 기꺼이 디카를 그들의 손에 내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빌려 내 낡은 도화지에 한번 더 희미한 첫눈의 추억을 삽입합니다.

 

 

 

 

 

 

 

 

 

 

  • 청랑2007.11.20 01:10 신고

    대전, 바람도 모질지요~ ^^
    첫눈과 초겨울에 대한 추억이 입시와 얽혀 있네요.... 비극인지 희극인지 희비극인지....
    눈이 없는 곳에서 살게 되다보니 벌써 아스라한 기억입니다.
    점령군 같은 눈은 시카고에서야말로 어울리는 말이었지요. ^^
    진실이도 원경이도, 다른 모든 가족들도 눈이 주는 포근함을 만끽할 수 있기를 빕니다. 샬롬~

    답글
    • 주방보조2007.11.20 07:29

      대전을 잘 아시는군요.^^
      저는 도청 앞 소방소 바로옆 선화동에서 태어나 ... (어린시절은 온양에서보내고)...다시 초딩시절, 선화동과 목동에서 살았었지요. 호수돈여고 바로 옆에서 ... 몇번 이사를 했고 대전중앙국민학교를 다녔었습니다. 교가도 아직 기억한답니다^^, 보문산 높은 봉에 해가 돋으면~~ㅎㅎ
      언제 남쪽으로 옮겨가셨습니까? 눈이 없다니...
      겨울은 춥고, 눈오고, 얼음얼고 해야 맛이 있는 것인데요. 그래야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시간도 갖고 말이죠.

    • 청랑2007.11.20 23:37 신고

      누님이 호수돈여고출신이지요....
      ^^
      지금 저는 엘에이 근교랍니다.
      그래도 춥긴 춥습니다. 눈은 없지만....

    • 주방보조2007.11.21 00:57

      LA로 가셨군요.
      산불이 지독했다는데 별탈은 없으셨나 봅니다.
      거기서 새로 목회하시는 것인지요.
      부디 좋은 성도들과 아름다운 교회를 꾸미시길...기도합니다.

  • 김순옥2007.11.20 11:43 신고

    뉴스를 보던 아빠가 한빛이에게 밖에 눈이 온단단...라기에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진눈깨비였나 봐요.
    아침에 밖을 내다 보았더니 아무런 흔적도 없더군요.

    가을을 제대로 만끼하기도 전에 겨울이 와 버렸네요.
    눈, 하면 아무래도 어렸을 때를 잊을 수가 없네요.
    뽀드득뽀드득 걷던 길,
    장독대에 쌓인,
    언덕마다 미끄럼틀,
    엷십자로 누워서 사진 찍던...

    이제는 그만큼의 눈이 내리지도 않지만 아무리 눈이 내린들
    그만큼의 황홀함은 없을 것 같네요.

    답글
    • 주방보조2007.11.20 19:36

      저런...북아현동은 도심에 가깝고 한강에서 좀 떨어져 있어 온도가 더 높은가보지요?
      이쪽은 눈 송이가 제법 크게 내렸었는데요. 한시간반쯤...

      아무리 눈이 내려봐야
      어린시절의 추억만한 눈이 다시 있겠습니까?^^

  • Pia2007.11.20 12:18 신고

    저는…눈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서울에서의 눈은 내린 지 몇 시간만 있으면 잿빛으로 변해 버려서 감흥이 없었고,
    처음으로 노르웨이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저를 맞이한 눈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대단한(?) 눈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눈이 오기만 하면, 차 바퀴를 스노우 타이어로 가려야 하는 일, 아이 데리고 언덕 위로 스키나 썰매 타러 갈 때 짐꾼 노릇 해야 하는 일,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하는 일… 등등, 의무적인 일을 하느라 눈을 바라보고 좋아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여긴, 벌써 몇 주 전에 올해의 첫눈이 내렸네요.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넘겼습니다.

    오늘 쩜님의 글을 읽으니, 왠지 고요하고 슬픈 듯한 느낌마저 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게… 나이 때문이긋지요? 제 나이가 아니고, 쩜님 나이… ( 녕감님들이 자주 애용하시는 빨간 모자에 샛노란 셔츠…. 에서 유추해 봤습니다. )
    쿨럭~

    답글
    • 주방보조2007.11.20 19:43

      충신이네 학교 홈피에서 펀 글입니다. 피아님이 공감하실 것같아서요...^^

      8/12
      강원도의 새 집으로 이사왔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태백산맥의 줄기는 위풍당당하다. 부산에서는 눈이 없었지만,
      이 곳은 눈이 많이 온다는데 정말 기다려진다. ^o^
      난 눈이 정말 좋다. 빨리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10/14
      이 곳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다.
      나뭇잎들이 전부 울긋불긋하게 바뀌고 있다.
      산에 올라가서 우아한 자태로 노니는 아름다운 사슴들을 보았다.
      어쩜 저리도 아름다울까!
      분명히 세상에서 제일 멋진 동물이다.
      이 곳은 천국과 다름없다.
      이 곳을 사랑한다.

      11/11
      사슴사냥을 허가하는 기간이 왔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동물을 사냥하려는 사람들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사냥꾼들은 죄다 잡아다 삼청교육대로 보내야 한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슴을 잡는다는 건 도저히 인간이라 여길 수 없다.
      눈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신의 선물... 아! 정말 기다려진다.

      12/2
      드디어 간밤에 눈이 왔다!
      만세! 만세! 만만세다!
      아침에 눈을 뜨자 온 세상이 하얀색으로 덮여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화 같다!
      마당을 쓸고 길을 냈다.
      아내와 눈싸움을 했다. (내가 이겼다!)
      제설차가 와서 길을 치우며 집 앞으로 눈이 몰렸다.
      아내와 같이 치웠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이 곳을 사랑한다.

      12/12
      간밤에 눈이 더 왔다
      아름다운 눈이다.
      제설차가 또 와서 길을 치웠다.
      집 앞을 다시 치웠다.
      아름다운 곳이다.

      12/19
      눈이 더 왔다.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오전 내내 삽질하기에 지쳐 버렸다.
      삭신이 쑤신다.
      이건 뭐 내몸이 내몸같지가 않다. 염병할..
      그 놈의 제설차가 오전 내내 오지 않았다.

      12/22
      하얀 똥덩어리(-_-)가 간밤에 더 쌓였다.
      삽질하다 손에 물집이 생겼다. 우씨~
      이 놈의 제설차는 내가 집 앞을 다 치울 때까지 숨어있다 오는 것 같다.
      사람을 놀리는거야 뭐야! 씨양놈으 시끼!
      빨랑빨랑 와야지!

      12/23
      드디어 몸살이 걸렸다.
      아내도 같이 걸려서 병간호도 해줄 사람이 없다.
      약도 사러 갈 수가 없고..
      우와 진짜 욕나온다.

      12/24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아내와 난 이틀동안 아무것도 못먹었다.
      하지만 힘을 내야지.
      저녁무렵이 되니까 몸이 좀 나아지는 것 같다.

      12/25
      크리스마스라구? 빌어먹을!! 그게 어쨋다는거야
      방송에선 서울놈들이 눈이 안와서 화이트크리스마스가 아니라고
      생지랄들을 떤다.
      개눔시키들! 저것들은 여기로 잡아다 사흘밤낮 눈만 쳐다보게 해야 한다.
      간밤에 끄 망할놈의 눈이 더 왔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일어났는데 말이다.
      빌어먹을 놈의 제설차는 내가 눈을 다 치울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앞으로 잔뜩 밀어놓고 가버린다.
      개눔쉬키! 소금을 잔뜩 뿌려서 녹이면 될텐데 뭐하는지 모르겠다 .
      도대체 대갈통이 도는 새끼들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눈을 제설차로 다 치울수 있다고 생각을 하다니...
      소금을 찔찔 뿌리지 말고
      왕창왕창 퍼붜야지 될것아니냐고 눈을 하얗게뜨고 욕을 한바탕 해줬다.
      쌍놈의 새끼들!
      소금 뿌리는데 들어가는 돈이 지네 돈이야!
      다 쓰라구 있는 국가 예산인데 말이야!

      12/27
      간밤에 더 많은 하얀 똥덩어리들이 쌓였다!
      제설차가 지나갈 때마다 나와서 삽질한 것 빼고는 3일동안 집안에 쳐박혀서
      한일이 없다. 도대체 어디를 갈 수가 없다.
      자동차가 하얀 똥덩어리 속에 파묻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도대체 사람 사는덴가?
      일기예보는 또 30cm 가량의 눈이 더 온단다.
      30cm면 삽질을 얼마나 더 해야하나?
      우와! 돌아버리겠다.

      12/28
      기상대놈들은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겠다.
      그러구두 월급받고 있다니...
      핵폭탄으로 죄다 쥑여버려야 한다.
      그리구 눈속에 파묻어 버려야 한다.
      일기예보가 틀렸다.
      30cm가 온다던 하얀 똥덩어리가 무려 1m나 더 왔다.
      1m30cm다.
      도대체 이렇게 눈이 많이 올수가 있는 건지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모를 일이다.
      이 정도면 내년 여름에나 다 녹을 것 같다.
      제설차가 눈에 파묻혀 운전수 놈이 우리집에 와서 삽을 빌려 달랜다.
      그 놈이 밀어놓은 눈
      때문에 삽을 여섯자루나 부러뜨렸다고 얘기 해주고
      마지막 삽자루는 그 놈의 새끼를 패면서 부려뜨렸다!
      대갈통을 빠개버릴려다 말았다.

      1/4
      오늘 드디어 집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가게에 가서 음식 좀 사고 돌아오는 길에
      빌어먹을 사슴놈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차로 치었다.
      차수리비가 200만원이 나왔다.
      저 망할놈의 짐승들은 다 잡아 죽여야 한다.
      뭣때문에 산에 돌아다니게하는지 모를일이다.
      지난 11월에 사냥꾼들은 뭐 했는지 모르겠다!
      기관총이라도 가지고 와서 염병을 할 사슴이라는 짐승은
      죄다 피작살을 내야 할일이 아닌가!

      3/3
      지난 겨울에 그놈들이 얼마나 소금을 뿌려댔는지
      차가 다 녹이 슬어 버렸다.
      제설차로 밀어야지 도대체 왜 소금을 사용해서
      이모양을 만들어 놓냐 말이다.
      국가예산이 저희돈이란 말인가?
      아껴썼어야 하지 않은가!
      무식한 새끼들같으니라구...
      정말 도대체 신도 포기한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5/10
      부산으로 이사왔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 Pia2007.11.21 15:37 신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우째 이래 제 마음과 똑같답니까. ㅎㅎㅎㅎ

  • Pia2007.11.20 12:47 신고

    음악이 너무 좋습니다. 이 음악 제목이 뭡니까? (지금 나오는 송창식 목소리 말고요... 어제 나왔던 아쟁(?) 소리 나오는 음악이요...) 플레이어에 자막이 흐르긴 합니다만, 제 컴퓨터에선 꼬부랑 글자만 뜹니다. 간간히 들리는 북소리가 심장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듯 희열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고보니, 북이 원시사회에서부터 사용되어온 가장 기본적인 악기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ㅎㅎ 제 구독 리스트에 ‘첫눈’이라는 제목으로 많이들 올라와 있는데, 쩜님의 글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첫눈 다음에 쩜쩜쩜이 있어서… ㅎ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7.11.20 19:52

      다시 올려놓았는데요, 이 노래를 듣고 나실이는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하고 마눌은 천국의 기쁨이 전해진다 하였습니다. 저는 그냥 한꺼번에 사놓은 것 중 하나를 올렸을 뿐이었는데...근데 피아님까지 좋다하시니...괜히 횡재한 기분입니다. 해금이 아니고 아쟁인가요? 음색이 저도 마음에 듭니다. 연주가는 고주희이구요, 제목은 '저 기쁜 곳에서'입니다. 저는 북소리는 알지도 못했습니당^^

      한해가 이렇게 가는데
      안 우울할 늙은이 있음 나와보라 하셔요...ㅜㅜ...

  • malmiama2007.11.20 15:29 신고

    어제 저녁,함박눈...엄청 맞았습니다.
    집에 들어서며 "눈온다!"..했더니 유민이가 가장 먼저 뛰쳐 나가더군요.
    강아지가 따로 없습디다.^^

    제가 균명중고(지금은 환일) 안에 있는 운화국민학교(지금은 예일)..출신인 거 아시지요?
    숨쉬기 곤란할 정도로 눈보라 치던 날이 생각납니다.

    답글
    • 주방보조2007.11.20 20:00

      마음이 깨끗할수록 ...눈의 깨끗함을 즐기기에 적합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신이도 온몸을 다 적셔서 돌아왔더군요.
      저는 그냥 복도에 나가 사진 한장 달랑 찍고 ...들어와 앉았거든요.
      유민이가 충분히 놀기에는 눈이 좀 아쉽웠지요?

      아현동 비탈길
      그곳이 어찌 변했는지 알지 못하지만...당시에는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아서 아이들의 천국이었지요^^ 눈만오면... 그땐 먹는 것 입는 것 부실해선지 진짜 날이 추웠었는데...

  • 하얀파도2007.11.20 19:36 신고

    첫눈이 온다고 창문을 열고 소리치는 딸래미에게..
    시험기간이거든...이라면서 창문을 바라보는 딸래미를 밀치고 창문을 닫아버렸답니다......이긍.
    시험이 뭔지..

    그리곤 남편이랑 둘이서 눈에 대한 추억을 소곤거렸죠..
    딸래미에게 절대로 안들켰구요..ㅎㅎ

    답글
    • 주방보조2007.11.20 20:06

      세상에...
      아무리 시험이라고 해도 너무 혹독하신 거 아니예요?^^ 잠간이라도 나가게 해주시지...ㅎㅎ

      눈에 대한 추억은 두분이 공유한 것이었나요?
      첫눈올때 프로포즈를 받았다든지 하는?^^

  • 마코토2007.11.23 20:16 신고

    으음..잠깐 들러봤어요. 난 이때 졸업고사 기간이어서..제대로 구경도 못했네ㅎㅎ
    이때 천둥번개 치고 그러지 않았었나..? 원경이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었고..늦게 들어와서
    아무튼 첫눈오는 날은 아이들에게 있어 기념해 두고 싶은 일이겠죠..?

    답글
    • 주방보조2007.11.23 23:13

      논술준비하라고 노트북 빌려줬더니
      딸아~~~
      여긴 뭐하러 들리니...

      이 애비가 그레도 눈오는 날이면...니들 많이 챙겨줬었다는 거...꼭 기억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