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우리/예수와 안티예수

대안없는 비판...

주방보조 2007. 2. 15. 01:34
 <제327호> 대안없는 비판...^^ 2002년 02월 15일
"신은 죽었다
교회의 부패를 보고 니체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원필님은 어떠한지요
신은 살아있다고 확신하고 계시나요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셨지요
니이체는 부패한 곳에는 신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몰랐나봅니다
사울이 주의 법을 어겼을 때 하나님은 사울을 떠나 다윗에게 촛대를 옮겼지요
하나님이 보실 때 원필님의 삶은 어떠하다고 여기실까요
대안없는 비판은 참으로 열매없는 가을나무가 아닐까요
저 자신 또한 로마서 7장 22-25장의 비명을 지르는 한 사람이기에 한번 연락드립니다"

...

허락없이 받은 편지를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막 받은 따끈 따끈한 내용입니다.

이 메일을 제게 보낸 분은 혹 기분나빠하실 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그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 메일을 공개하는 것은
언제나 "대안"이라는 것으로써...토론의 목적을 삼는 일이 유효하고...가치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써...
님의 메일을 받고 마음아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

다음이 제가 솔직하게 드리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

저는 부패한 곳에도 우리 주님이 계신다고 믿습니다.

거기서 우리이상으로 아파하고 신음하신다고 믿습니다.

...

왜 대안없는... 비판이라도 여기서 지껄이냐구요?

안티들이 그러는 것보다는

제가 그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어서 입니다.

...

하나님이 저를 보시면...구토를 하실 것입니다...--;

...

대답이 되었는지요...

저도 질문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
부패한 교회의 모습에 대한

대안있는 비판은 무엇일까요...?"

...

02/15 성직에 대한 기본 입장... 29
은사에 따라...이고
평등하게...입니다.

원필

 

02/15 Re:Re:.../글을 읽으시고...^^ 22
제 마음을 논하십시오^^

원필
:
: >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말한 게 교회의 부패를 보고 말한 것이었었나요????
: >
: > 흐음...
: 유샛다운앳더라이네스
:
: 그렇게 생각해야 칼럼지기님 마음도 편할겝니다.
:
바쿠스

02/15 대안 없이 비판하세요 37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유행한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대안 없는 비판 무용론"일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제대로 된) 대안이 없으면 비판을 하지 마라"는 뜻이지요.

여기서 "제대로 된"이라는 숨겨진 수식어가 중요합니다.
비판받는 쪽에서는 비판하는 사람이 어떤 대안을 제시해도
그게 "제대로 된" 대안이라고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과연 비판의 목적이 대안 제시일까요?

비판의 목적은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비판의 핵심은 "원칙"과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것이지요.
원칙에 부합된 것은 잘됐다고 하고, 원칙에 어긋났으면 잘못됐다고 하는 것...
그게 바로 비판입니다.

비판을 해서 그 결과로 대안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대안을 비판하는 쪽이 마련하든... 아니면 비판받는 쪽이 마련하든....
그 대안이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비판을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비판을 받는 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판자가 제시한 대안을 "우스갯거리"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를 제시하면서 유신을 때렸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소위 "정의 사회 구현"을 주장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건 민주주의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라고 했습니까?
그에 대한 정부의 일차적인 반론은.... "대안 없으면 비판하지 마라"였지요.
"민주주의"나 "정의"라는 원칙을 슬쩍 접고서 "대안"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지요.
이러저러한 대안을 제시하면.... 말로든 총으로든 묵사발을 만들어 버렸지요.

그러니 "대안을 제시하라"는 요구는
"비판이 싫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제시하는 대안을 "원칙"에 비추어 검토할 용의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용의가 있다면 "대안을 제시하라"는 요구조차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부패했다"는 비판은 비판 자체로 족합니다.
"교회의 원칙"이 무엇인지 밝혀만 준다면 말입니다.

십일조는 이러저러해야하고... 교회의 크기가 어떠해야 하고....
선교사 파송은 이러저러해야 하고.... 헌금은 이러저러하게 써야하고...
그런 사소한 대안들은 백날 제시해야 소용없습니다.
그런 대안을 실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실행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토론을 위해서 조차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판받는 쪽은 애시당초 그걸 검토할 용의가 없습니다. 왜요?
그걸 받아들이거나 검토하는 것 자체가 "자기 이익"을 훼손하니까지요.

그저 비판받는 쪽은 최선의 대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원칙"에서 돌려서 "대안"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훨씬 쉬운 싸움이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판을 하려면 자꾸 "원칙"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대안"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말입니다.

루터의 경우를 한번 보실까요? 아마 이랬을 겁니다.
"야... 그럼... 면죄부 발행없이 성베드로 성당 지을 돈을 어떻게 모으냐?
대안을 한번 제시해 봐...."

루터가 그 대안을 제시했던가요? 아닙니다.
"행위(돈이나 선행)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원칙,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했을 뿐입니다.
당시 교회 당국자들에게는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공허한 주장이었겠습니까?
그런 원칙이 성당 지을 돈을 마련해 주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대안"쪽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지요.
그리고는 "원칙"에만 집착했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원칙"이라는 말을 아주 우습게 압니다.
원칙이란 "책에는 써놓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소용없는 것...
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적어도 지난 백년 동안 한국 사회가 "원칙"없는 사회로 유지돼서 그렇겠지요.
(사실은... 원칙을 말하면서도.... 그걸 철저히 외면하는 사회였지요.)
그래서 "원칙으로 돌아가기"를 주장하면 아주 우스운 사람이 돼 버립니다.
심지어 집단적으로 "무엇이 원칙인지" 모르는 상황에까지 봉착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런 "우스운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끈질지게 원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야... 대안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원칙이 없으면.... 나중에라도... 대안이 나올 수 없으니까요.

지금처럼 "원칙" 알기를 우습게 알고...
"대안"으로만 관심을 호도하는 관행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당분간은
"대안 없으면 비판도 하지 마라"는 우습기 짝이 없는 말이
계속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원칙"으로 돌아가는 길은 점점 더 멀어지겠지요.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입니까?
귀기울이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러면.... 원칙을 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실권 쥔 쪽에 빌붙으면 됩니다.

물론.... 그럴 때에는 대안이든 비판이든 해서는 안되지요...
내게도 고물이 떨어질 지도 모르니까....
비판할 필요가 아예 없겠습니다.

죄의식 느낄 필요조차 없습니다.
지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벌써...
그러고들 있으니까요....


조정희 드림.
(성경의 한국 개념)

 

02/15 to 아이엠도사님에게... 17
>그렇다면 자손들이 불충하면 그 사람의 내세는 형편 없겠네요 ?
>자신이 아무리 좋은일 많이하고 살았어도 자손들이 불충하면 형편없는 내세를 보내겠네요 ?

동양적 세계관에선 이것을 인과율이라고 합니다. 바쿠스 같은 불신자가 보기엔 조금도 어색함이

없는 합리적인 사고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3년상을 지내고 나면 혼백은 갈데로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3년상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상(喪) 기간과 혼백의 소멸여부는 별개입니다. 쓰신글은 유교적인 내용은 아니군요.

참고로 공자가 삼년상을 이야기 한 것은 부모님 살아생전에 자식에게 사랑을 베푼 기간을

가장 적게 잡아줘도 삼년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공자님은 그럼 상제님의 성령을 받아서 논어를 집필하셨나요 ?
>유교 가르침에 어디에도 상제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은 본적이 없으며 상제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도 본적이 없습니다.

유교적인 신관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직접화법을 통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리기설(理氣說)에

따르면 하늘의 기와 인간의 기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죠.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성령이 늘 인간에게 임재해 있는 상태입니다.


>불교만큼 기복 신앙이 번성한 종교도 드믈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아이 낳게 해 달라고 3천배하고 공양미 갖다 바치고, 뭐 해 달라고 백일 불공 드리고 시주하고
>소원성취 해 달라고 등을 몇백만원짜리 달고 그리고 절 마다 무속적인 색채가 짙은 무당인지
>스님인지 보살인지 구별이 잘 되지않는 사람들이 사당을 짓고 있고 기독교나 불교나 원래의
>취지에 어긋나는 짓들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복신앙이 가장 번성한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뭐든지 믿음과 기도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종교니까요.


>그러나 종교란 절대적인 힘을 지닌 절대자에게 자신의 답답함을 하소연하고 풀어 달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나 유교에는 절대자란 없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 당선 시켜달라고 헌금을 수억원 한다는지, 대통령 당선 시켜달라고
>공양미 3백석을 시주한다든지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자리를 명당으로 옮긴다든지....

위에 열거한 내용은 예수믿으면 천국간다고 한다는 차원과 무엇이 다른지요?

금전적 문제가 포함되지 않아서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병들고 답답하고 금전적으로 찌들리고 해서 답답함을 하소연하는 차원은 괜찮지 않을가 생각
>됩니다.그런것 까지 기복 신앙이라고 질타한다면 그건 사람의 삶을 모르는 무식함의 소치라고
>생각됩니다.

기독교가 기복신앙이며 미신이라고 했을 뿐, 그것을 질타한 적 없습니다.

바쿠스는 소위 고등종교라 불리는 것이나 원시종교나 특별히 다르지 않게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질타받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기복이거나 미신이어서가 아닙니다. 교리가 폭력적이고

독선적인 데다가, 교인들이 폭력을 휘두르고도 그것을 죄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있기에

그것을 비판할 뿐입니다.


바쿠스

 

02/15 니이체의 신관은 이북의 김일성주의식 초인에 의한 발전이다. 19
니이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외친것은 교회의 타락상에 근거한다기 보다는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하여 기고만장했던 독일 국민들의 타락상을 보고 모든 인간들이 지고한 가치의 목표를 상실하여 이미 이상을 향하여 나가는 방향을 잃었다고 단정한후 그리하여 노예화되고 왜소화한 대중들의 방향을 극복하려면 영혼의 내세적인 것이 아닌(피안적이며 소극적인) 차안적이며 지상적인 현세의 초인에 의한 독재적인 의지로 인도되는 방법을 제안 하면서 필요에 의하여 "신은 죽었다" 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는 초인 영겁회귀주의와 군주도덕 주위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있지도 않은 신을 향하는 것보다 눈으로보고 확실히 있는 초인이나 군주에 의하여 인도되고 자기 극복을 기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는 2000년간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사상의 물락과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상하고 그의 철학을 편 것입니다.

그리고 초인으로서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는 이렇게 말하였다(Also sprach Zaratustra)라는 책으로 짜라투스트라는 철학자가 아니고 초인임을 주장하였다.

그는 철학이란 인간을 변화시킬 아무런 힘도 없으며 사랑을 발견할 수 없으며 아름다움을 발견할수 없다고 하였다.

철학은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단지 철학은 사람들이 가지고 노는 아름다운 문구만을 선사할 뿐이라고 까지 주장하였다.

특히 철학에서 주장하는 신 이라는 존재는 의미없고 공허한 단어일 뿐이며 인간을 신의 피조물인 하나의 사물로 전락시킬 뿐이라고 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또 파괴한다면 인간이 의지대로 할 역활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다.
그럼으로 인간은 삶의 의지를 상실하며 삶은 신의 파괴를 기다리는 하나의 비극이며 감옥이며 긴 노예생활이라고 까지 극언하였다.

그가 짜라투스트라를 거론한 것은 짜라투스트라는 창조주로서의 신은 인정하지 않으며 단지 인간의 의식의 진화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존재가 신(초인) 이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조는 진화를 거부한다고 하였다.
그림을 그려 놓으면 그림이 조각이 진화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따라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인간도 진화할 수 없으며 진화한 인간은 그때 그때 마다 진화된 형태로 수시로 재 창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니이체의 이 장광설에서 그의 이러한 주장의 배경을 살펴 보아야한다.

1. 그당시 교만하고 타락했던 독일 국민들의 상황.

2. 대표적인 염세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실

3. 시력의 감퇴로 교수직 박탈.

4. 5세때 목사였던 아버지의 별세로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람.

5. 목사였던 아버지가 가정에 충실치 못했고 어머니의 재가

6. 그의 정신 병력(결국 그는 정신이상으로 발작을 이르켜서 토리노 광장에서 쓰러진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신을 부정한 니이체는 과거의 경력이나 마음의 상처 등으로 신을 부정했지만 결국은 공허한 영혼의 방황으로 정신적인 병을 얻어 40대의 아까운 나이에 죽었다.
니이체의 영혼은 지금도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도사

 

02/15 니체의 일생이 그랬나요? 22
쓰신 글의 내용이 왜곡이 심각해서 어디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일이 쓰는 것은 재미없고... 정리해 놓은 부분을 들어서 짧게 설명드립니다.

>우리는 니이체의 이 장광설에서 그의 이러한 주장의 배경을 살펴 보아야한다.
>1. 그당시 교만하고 타락했던 독일 국민들의 상황.

니체시대 정도의 타락은 늘 있었던 일로 특별히 타락했다고 볼수 있는 시대는 아닙니다.


>2. 대표적인 염세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이기도 했지만 낭만주의 자이기도 했지요. 니체가 영향을 받은 것은

염세주의가 아니라 바그너와 쇼펜하우어의 낭만주의입니다. 물론 니체는 완벽주의로 훗날

그의 철학에서는 쇼펜하우어 냄새는 전혀 없습니다만...


>3. 시력의 감퇴로 교수직 박탈.

니체의 박사학위와 교수직임명은 그의 천재성 때문이었습니다. 니체는 논문없이 박사학위를

받았던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여러번 교수직 사임을 원했던 사람

입니다. 그가 중병에 시달려서 더이상 활동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교수직 사임을

허락할 정도로 그의 명성은 대단했삽니다.



>4. 5세때 목사였던 아버지의 별세로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람.
>5. 목사였던 아버지가 가정에 충실치 못했고 어머니의 재가

그래도 예수에 비하면 아주 행복한 가정이죠. ^^;



>6. 그의 정신 병력(결국 그는 정신이상으로 발작을 이르켜서 토리노 광장에서 쓰러진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신을 부정한 니이체는 과거의 경력이나 마음의 상처 등으로 신을 부정했지만 결국은 공허한
>영혼의 방황으로 정신적인 병을 얻어 40대의 아까운 나이에 죽었다.
>니이체의 영혼은 지금도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니체가 정신병으로 고생한 것은 긴 기간이 아니라 죽기 전 2년 뿐 이었지요. 또한 니체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니체는 스스로를 누구보다 철저하게 이해했다고 진술

했을 만큼 니체는 멀쩡했습니다.

또한 그는 1844년 부터 1900년까지 56년 동안 살았으며 당시로 써는 평범한 수명이었습니다.

* 기독교인들에겐 니체의 존재는 충격적이었겠지만, 그래도 별 근거도 없이 미워하는 감정에만

사로잡혀 마구잡이식 비판은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악수일 뿐입니다.



바쿠스

 

02/15 Re:니체의 존재가 왜 기독교인들에게 충격적인가요 14
별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니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는 그가 합리성과 이성을 붙들고 있던 근대인들에게 인간의 감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들에게도 참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요...


유샛다운앳더라이네스

 

02/15 Re:니체의 일생이 그랬나요?/그랬습니다 15
프리드리히 빌헤름 니이체는 지구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수많은 인간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그의 주장이 뭐 대단한것도 아니고 수많은 주장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우선 니이체의 사망년도를 찾아보지 않고 1880년 대 말에 죽은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니이체는 35세에 시력 감퇴로 바젤대학에서 퇴직했습니다.

니이체는 그의 저서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이라는 저서에서 과거의 이상을 모두 우상으로 매도함으로 1880년 바그너와 결별했습니다.
니이체가 바그너를 좋아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에 의거하여 몰락을 본 그리스의 비극들을 바그너 음악에서 기대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삶이란 더러운 것이다 라는 편지를 기억은 잘 안나지만 유명한 시인에게 보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저서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인간은 의지에 의하여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프라톤의 이데아와 예술에 대하여 거론하였고 또 성에 대하여서도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니이체가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영향을 받은 것은 그의 천재론과 인간의 의지론에 입각한 형이상학입니다.


정신병이란 갑자기 나타나는 병이 아닙니다.
80%는 유전이며 늘 잠재해 있는 병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병입니다.

니이체가 천재인지는 몰라도 그는 바보입니다.
초인에 의한 자기 극복과 발전을 주장한 것이 바보라는 말입니다.
지식은 있으되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북의 주체사상과 김일성 주의와 힛틀러에 의한 나찌시대가 바로 초인에 의하여 영도되는 사회인데 바쿠스님은 그런 제도가 타당하다고 느끼십니까 ?

아무리 초인일 지라도 그것이 인간일때는 인간이 인간을 영도할 수 없다는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지혜가 모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스러워 지려면 신의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같은 인간인 초인에게 구속됨은 더 불행하다는 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도사

 

02/15 OVER 19 2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내 동산으로 찾아 왔소.
몰약 같은 향기로운 나뭇가지도 꺾고 꿀도 송이째 따 먹으려오.
포도주만 마시랴, 젖도 마시리라.
친구들아, 먹고 마시어라. 흠뻑 사랑에 취하여라.

나는 자리에 들었어도 정신은 말짱한데,
사랑하는 이가 문을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
"내 누이, 내 사랑, 티없는 나의 비둘기여, 문을 열어요.
내 머리가 온통 이슬에 젖었고, 머리채도 밤이슬에 젖었다오."

"나는 속옷까지 벗었는데, 옷을 다시 입어야 할까요?
발도 다 씻었는데, 다시 흙을 묻혀야 할까요?"

나의 임이 문틈으로 손을 밀어 넣으실 제 나는 마음이 설레어
벌떡 일어나 몰약이 뚝뚝 듣는 손으로 문을 열어 드렸네.
내 손가락에서 흐르는 몰약이 문고리에 묻었네


지체 높은 댁 규수라,
신 신고 사뿐사뿐 옮기시는 발,
여간 곱지 않군요.
두 허벅지가 엇갈리는 곳은
영락없이 공들여 만든 패물이요,

배꼽은 향긋한 술이 찰랑이는 동그란 술잔,
허리는 나리꽃을 두른 밀단이요, 젖가슴은 한 쌍 사슴과 같고
한 쌍 노루와 같네요.

----------- 아가서 중에서.. ---------


이정도면 음란서적으로 분류해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바이블은 비닐봉지에 싸서 빨간 스틱커를 붙여서 선데이 서울류와 같이 판매되어야 할텐데...


성윤리 타락을 한탄하는 기윤실에선 이런거 판금서적으로 묶자는 노력은 안하고 뭐하나?

:)


바쿠스

 

02/15 Re:그래서 성경은 재미있고 사실적입니다. 20
우리나라 성인 전기를 보면 성인은 일생동안 잘못한거 하나도 없고 실수 한번도 안하고 완벽하게 살았다고 기술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요 예수님의 조상으로 나열된 수많은 사람들 주에는 창녀도 있고 도둑놈도있고 살인자도있고 부도덕한 인간도있고...

성경의 중요한 영웅인 다윗도 보십시요 그의 죄상을 적라라하게 적었지 않습니까

솔로몬의 경우도 그의 잘못한 점을 그대로 기술하지 않았습니까

아부라함의 경우도 그의 마누라를 누이동생으로 속이고 하는 그의 인간으로서의 약한면을 다 적었지 않습니까 ?

성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적었습니다.

인간이 성행위 안하고 삽니까 ?
그 것 조차도 솔직하게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면까지도 너무나 솔직하게 적었기 때문에 성경은 진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도사

 

02/15 Re:Re:상대의 글에 일일이...답하는 일은.../^^ 19
피식...^^
원필
: 타인의 글에 "피식"웃는 것이 예수가 보기에 기뻐하는 일이라서 예수믿고 거듭난 원필성도님이
:
: 그리하시는지는 몰라도, 불신자가 보기엔 추한 몰골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음에 슬프군요.
:
: 계속 그런자세를 유지하셔서 예수에게 기쁨을 듬뿍 선사하십시요.
:바쿠스
:
: : 성실함이 돋보임으로 좋은 일입니다.
: :
: : ...
: :
: : 그러나
: : 어떤 때는 그냥 피식 웃고 못본채해도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 :
: : ...
: :
: : 저는 요즘 피식 웃는 일이 잦습니다^^
: :

원필

 

02/15 니체의 존재: 기독교... 21
심각할 것도
고마울 것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하

성경이 니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원필

 

02/15 죽음의 극복에 대하여 13
죽음의 극복에 대하여

하나님의 섭리가 아무리 위대하고 신비하더라도
현상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우주의 법칙을 띠는 형식입니다.
누구의 기도에 응답을 하든 죄지은 사람을 벌 주기 위해서든
비를 내리게 할 때는 기압의 높고 낮음을 물리 법칙에 맞추고
대기 중의 물방울 생성을 이치에 맞게 진행시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몇 가지 기적을 예로 들면서 반박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건 그것대로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접기로 하더라도
지금 지구상에서 수억의 사람들이 기독교의 믿음을 갖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자연 법칙을 벗어나는 기적의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있다 하더라도 수학적으로 무시할 수준의 비율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살펴서 알 수 있는 세상사를
과학자나 일반인들은 자연의 법칙이나 경험, 선현의 가르침 혹은
세상의 이치로 살펴 알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왜 혹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도는지, 또는
시간의 본질, 우주의 본질을 과학이 모른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제기된 거의 대부분의 의문은 호킹 박사가 이미 밝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의문은 많이 남아 있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아직 밝히지 못한 인간의 지식의 미완성 문제이지
하나님 존재의 필연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죽음의 문제를 극복한다면
일반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죽음의 공포도 육체 속에서 일어나는 (생리)현상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좀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방의 침으로 죽음의 공포를 없애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니면, 공포가 심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두뇌 속을 MRI 등의
초현대적인 장비로 세밀히 관찰하면 밝혀 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완벽주의」도 알고 봤더니 두뇌 속의 특정 부위에 혈액이 많이 흐르는
현상에 불과했다는 연구 결과를 메스콤에서 접한 후 가지게 된 생각입니다.

믿음으로 극복하든 한방 침으로 날려 버리든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두뇌 속의 어떤 부위 혹은 현상에 공통점이 생깁니다.
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걸 인정하지 않으려 할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멀지 않았습니다. 곧 의사들이 밝혀 낼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2가지 방편으로 극복합니다.
하나는 윤회사상 즉 환생의 믿음인데 육신은 죽더라도 영혼은 살아서
이세상에 다시 온다는 것이니 죽음이 두려울 까닭이 없지요.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것도 불완전하다 보기 때문에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완전한 극복은 2째 방법으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즉 해탈을 해야 한다 봅니다.
생과 사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공포는 공포를 관하면 없어지고
죽음은 죽음을 관하고 생은 생을 관하면 이들에 관련된 편견과 아집이
해체되고 정리되어 진짜 생사를 보게 되기 때문에
공포나 오해나 불안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천당 이론이나 불교의 관법이나 모두 훌륭하다 봅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의 두뇌 속의 어떤 변화가 생겨야 효력을 발휘합니다.
변화에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도 죽음의 공포를 떨치기 어려운 것은
비축된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를 보충하는 방법에는 이치에 맞는 호흡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저는 죽음을 극복하는 제3의 방법으로 호흡 수련을 주장합니다.
호흡은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며
충만한 에너지는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과 꼭 같은 방법으로
정신적인 변화를 일으켜 줍니다.
정신적인 변화는 마음이 가는 우선순위를 따라서 진행됩니다.
죽음의 극복은 그 중의 하나입니다.

호흡은 믿음과 양립할 수 있으며 관법과 조화할 수 있습니다.
배척할 게 아니라 시도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은 죽음을 6개월 전에 안다고 합니다.

갓바위

02/15 오늘의 토론주제로 30
교회의 부패를 얘기하다가, 니이체가 필요했군요.
그런데, 바크스님은 난데없이 웬 아가서?
그러지 마세요.
다시또,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라고 몰고 가려고 하세요?
오늘의 토론주제가 교회의 부패에 대한 비판과 대안없는 비판 이니까...

자꾸 딴데로 새지 마세요.(지금 웃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교회의 부패도 딴데로 새서 생기는 걸로 아는데요.

도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뭇

 

 

02/15 Re:Re:죽음의 극복에 대하여/기독교의 죽음극복은... 17
죽음의 공포는 아주 방대한 프로그램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의 능력을 잃어 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죽음으로 향하는 행동을
방비하고자 마련해 놓은 차단장치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고와 연결되어 있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방대한 프로그램입니다.

이것을 해체하면 그게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 프로그램으로 바뀝니다.
따라서 두려움을 이겨내거나 벗어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해체해야 합니다.
해체하면 그 자리가 에너지의 창고로 바뀌고 그 재료들은 부활 프로그램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불가하다 봅니다.
다만 전번의 제 글에서 공포라는 말 대신에 죽음 그 자체를 대입하고 극복이란 말 대신에 부활이라 놓고
생각해도 같은 이론이 됩니다.

아무튼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극복하면 부활은 자동으로 오는 덤입니다.
갓바위


: 죽음의 두려움에서부터의 극복이란 점에서는 님의 주장하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 기독교인들은 물론 믿음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
: 죽음의 두려움에서(어떤 방법으로 벗어나든...)벗어나는 그것이 최종목표가 된다면 ...
: 기독교니 불교니 마약이니 참선이니 알파파의 극대화니하는 것이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
: 기독교는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 그것은 죽음을 깨트리는 것...부활...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겁냅니다.
: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 부활의 소망을 지니고 사는 것으로 족하다 할 것입니다.
:
원필

 

02/15 아엠도사 님에게.. 정리겸 질문겸 답변겸..겸사 겸사. 34
>우선 니이체의 사망년도를 찾아보지 않고 1880년 대 말에 죽은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습
>니다.죄송합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죄송한 일은 아니지요.

>정신병이란 갑자기 나타나는 병이 아닙니다.
>80%는 유전이며 늘 잠재해 있는 병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병입니다.

천재와 정신병은 공존한다고 하더군요. 천재는 아니었지만 예수도 정신병자중 한명이었지요.

참고적으로 의학계에선 요즘엔 종교역시 정신병으로 본다고 하더군요. 물론, 공식적으로

종교는 정신병이다. 라고 발표는 못합니다만...

요컨대, 정신병도 감기 몸살처럼 하나의 자연스런 질병일 뿐이지요.


>니이체가 천재인지는 몰라도 그는 바보입니다. 초인에 의한 자기 극복과 발전을 주장한 것이
>바보라는 말입니다.지식은 있으되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입니다.그렇다면 이북의 주체사상과
>김일성 주의와 힛틀러에 의한 나찌시대가 바로 초인에 의하여 영도되는 사회인데 바쿠스님은
>그런 제도가 타당하다고 느끼십니까 ?

초인에 의한 자기 극복과 발전을 니체가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만, 이런 말씀을

하게된 근거가 무엇인지 알수 있을까요?

꼭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초인일 지라도 그것이 인간일때는 인간이 인간을 영도할 수 없다는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지혜가 모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인간 세계에선 인간이 인간을 영도합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스러워 지려면 신의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이었으니
>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같은 인간인 초인에게 구속됨은 더 불행하다는 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니체는 인간을 구속하는 모든 권력을 부정했던 사람이지요. 위 질문과 상통하는 내용이니까

질문에 관한 답변을 먼저 들어봐야겠군요.

----------------------------------------------------------------------

>그래서 성경은 재미있고 사실적입니다.

바이블이 재미있는 것은 맞습니다만 '사실적'이지는 못한책입니다.

>우리나라 성인 전기를 보면 성인은 일생동안 잘못한거 하나도 없고
>실수 한번도 안하고 완벽하게 살았다고 기술 됩니다.

(이점은 아엠도사님께서 성인의 전기를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착각일

것이라고 짐작됩니다만) 어떤 성인전기가 그런지 예를 하나만이라도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요 예수님의 조상으로 나열된 수많은 사람들 주에는 창녀도 있고 도둑
>놈도있고 살인자도있고 부도덕한 인간도있고...성경의 중요한 영웅인 다윗도 보십시요 그의
>죄상을 적라라하게 적었지 않습니까 솔로몬의 경우도 그의 잘못한 점을 그대로 기술하지
>않았습니까 아부라함의 경우도 그의 마누라를 누이동생으로 속이고 하는 그의 인간으로서의
>약한면을 다 적었지 않습니까 ? 성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적었습니다.

본래 바이블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인간은 스스로 타락해서 범죄하는 죄인이니까 신에게

회개하고 열심히 굴종하라는 곳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훌륭한 성품을 계발

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인간일 지라도 죄인이다. 라는 곳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바이블에서 인간의 훌륭한 성품이 촛점이 되면 누가 야훼따위의 천박한 잡신을 믿기나 하겠습니까?


>인간이 성행위 안하고 삽니까 ?
>그 것 조차도 솔직하게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면까지도 너무나 솔직하게 적었기 때문에 성경은 진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의 타락상이나 들춰서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진실성이 있는 책이

아닙니다. 일부 찐따 목사들은 아가서를 두고 야훼와 이스라엘간의 사랑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는 멍청한 바보소리도 서슴치 않습니다만, 이 책은 야훼를 잘 섬기면 금은 보화는

물론, 애첩도 많이 거느리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지요.

요컨대, 너도 야훼 잘 섬기면 이웃집 처녀하고 사랑놀이 잘 할수 있어.. 라는 정도의 천박한

교훈을 지니는 책입니다. 책 내용이 너무 변태틱해서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만 30세 이전엔

금서로 묶었던 책입니다.


바쿠스

 

02/15 Re: 니이체는..... 19
점심 식사하고 올라오니까 바로 답을 해야할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니이체의 기본 사상은 초인, 천재, 영겁회귀, 군주도덕론 입니다.
그리고 인간에 의한 인간적인 인간을 위한 초인에 의한 새로운 이상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저서" 반 시대적 고찰" 에서 유럽문화의 회의를 표명하고 천재의 문화를 이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나아가서 "인간적 너무나 인간적인" 에서는 과거의 이상은 모두가 우상이므로 새로운 이상을 주장하였습니다.
신은 죽었으므로 지상에서의 존재 의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선의 피안" 에서는 지금껏 믿어온 기독교가 삶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라고 단정하고 새로운 가치 창조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영혼과 내세라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닌 현세의 지상에서의 차안적인 천재나 초인에 의한 영도와 자신도 초인으로 향하는 끝없는 자기 극복을 해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쓴 글중 일부를 수정합니다.
초인에 의한 자기 극복이 아니고 초인을 향한 자기 극복입니다.
초인에 의한 자기 극복은 말이 안되지요.
문법도 안맞고.

니이체의 책을 다 자세히 읽은 것은 아니고 교과서 수준의 간략한 다이제스트만 읽었습니다.
고등학교때 짜라투스트라는 유행병처럼 번져서 읽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 것도 옛날에
다소 엉성합니다.

이순신 장군 전기와 세종대왕 전기를 읽었는데 평생 잘못한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서사시 용비어천가 에서는 이성계의 6대조서 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전부가 영웅이고 뛰어난 초인입니다.
잘못한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잘한일만 있고....
도사

 

02/15 Re: 글쎄요 ^^; 19
교회의 부패와 니이체는 사실상 큰 연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니이체는 그당시 타락했던 민중들과 권력자들의 삶에 회의를 느껴서 그 때까지 지속되었든 기독교 문화의 대안으로 새로운 초인에 의한 이상을 내 세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문과 출신도 아니고 이공계출신이 니이체라는 어려운 논쟁에 휘 말려서 이거 발을 빼야 겠습니다.

옛날에 교양 서적 쯤으로 읽었던 단편적인 지식으로 야후 찾아가면서 글을 쓸려니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어야 겠습니다.

도사

 

 02/15 바쿠스님의 천박한 잡신 야훼에 대하여... 20
바쿠스님은 천박한 잡신 야훼에 대하여 너무 많이 공부를 하시고 또 너무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잡신에 대하여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시는데 바쿠스님의 진짜 신에 대하여서는 더 많은 공부를 하셨으리라고 생각 됩니다.

논쟁을 하실때는 논쟁의 상대도 존중하는 매너를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상대가 야훼를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받드는 상대인데 그 것을 그렇게 비하하는 매너는 토론의 기본에 어긋난다고 생각 됩니다.

친구와 논쟁하는데 친구 아버지를 욕하면서 느애비가 형편없는 놈이니까 너도 그렇게 형편없지 하면서 토론하는 꼴이 됩니다.
도사

 

02/15 피식 ^^...타당성 22

트집을 잡거나 반박하려고 글을 읽어서는 안되지요.
더군다나 작정하고...벼르고...
물론 무조건 믿거나 그대로 인정할 생각으로 읽어서도 안되고요.
얘깃거리나 그런 자료를 구하려고 읽지도 말아야겠지요.

다만 깊이 생각하고 성찰하기 위해 읽어야 한다...는
베이컨의 [남의 글(책)읽기] 방법론에 공감하는 바, 여기에...
좋은(옳은) 내용에 공감한다면
실천하기 위해 읽는다...라는 말을 덧붙여도 좋을 것 같군요.

...........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토를 달고...시비거리를 연속적으로 만들고
(밥 먹어라! 했는데...반찬 먹으란 얘기 안했다고 시비 걸듯이...)
이거 자꾸 이어지면...짜증 나지 않습니까? (재미있다고요?...피식^^)

피식^^...이라하면 <무시>를 전제로 한 <비하> 느낌이 있습니다만,

마냥 참견하거나 반박하거나 (그럴 가치가 있다는 전제하에)...
한줄 한줄 그대로 옮겨서 조목 조목 잘못을 지적하거나,
아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답한다는 것...

피곤하고 무가치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그냥...피식^^...하고 마는 거지요.

맞나요? (또, 피식^^ 하진 마세용^^)

너구리

 

02/15 교회는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23
다른 사회 집단과 비교해 봤을 때
그리 부패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사람 사는게 다 비슷비슷하기 마련이니까요.

단지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라는 집단에 대한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 문제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잘 발효한 것일 뿐인데
자신들은 부패라고 여기며 코를 쥐는 것이죠.
뵈뵈

 

02/15 신은 죽었다. 니체? 23
제48회 칸 국제광고제에서상을 받진 못했지만
본선에 오른 싱가포르의 한 종교 단체가 출품한 공공 광고
‘니체’가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니체’ 광고는 단조로운 먹 배경에
니체는 죽었다.
GOD
단 한 문장만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신은 죽었다 안죽었다
말도 많지만
니체가 죽은것은 확실합니다.
논쟁이 필요 없죠?*^^*



엔젤

 

02/16 성경에 대한 과잉충성... 21
오랫동안 안티님들에게 지적받던 내용이
어떤 칼럼에 실려있는 것을 복사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멈추게 하시려면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픽션을 사실처럼 내놓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

아래는 펀글입니다.

수년 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발행되는 이브닝 월드(Evening World)지에서는 '태양이 멈춘 이야기'란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성경의 진리가 컴퓨터에 의하여 입증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 있는 커티스 기계회사
사장이며, 우주계획 고문인 해롤드 힐씨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메릴랜드주의 그린벨트에서 연구하고 있는 우리 회사 우주 관계 과학자들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게 하여 주셨다.

그들은 날마다 컴퓨터 앞에서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까지 소급하여 올라가면서 그간의 태양과 달의궤도 진행을 살폈다.

우리가 그 궤도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위성이 가는 궤도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태양과 달과 그 주변의 혹성들의 궤도 조사가 끝나야만 우리가 발사할 인공위성의 궤도 작성을 하게 된다.

우주 과학자들이 컴퓨터 앞에서 과거 10만 년간의 궤도 조사를 하던 중 그만 기계가 정지하여 버렸다.

컴퓨터의 동작이 정지되고 경고를 의미하는 적신호가 켜졌다. 모든 기사들은 긴장되었다.

그것은 컴퓨터에 제공한 정보에 이상이 있든지, 기계상에 무슨 고장이 생겼다는 신호였다.

과학자들은 곧 기계 기사를 불러서 조사를 의뢰하였다. 그러나 기사의 조사결과, 기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우주 과학자들은 컴퓨터가 지시하는 적신호의 원인을 면밀히 살폈다.

결국 판명된 것은 그 궤도 진행상에 꼭 하루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료를 다시 점검하고 입력된 프로그램을 살펴보았으나 어떠한 해답이나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컴퓨터를 작동시켜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하루가 모자랐다. 과학자들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며칠 후 교회에 다닌 일이 있는 한 청년이 일어나서, "선생님들, 제가 어렸을 때에 교회에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옛날 여호수아 때에 태양이 하루 동안 정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모두 웃어 넘겼다.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한 노련한 과학자가, "자 우리가 이대로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성경책을 가져다 자세히 조사하여 그 시대의 궤도를 컴퓨터를 가지고 조사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여호수아 10장 12~14절에서,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는 내용을 찾아내었다.

여호수아와 아무리 족속들과의 전투는 치열한 것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여호수아가 이끄는 군사에게는 극히 불리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하고 외쳤다.

정말 여호수아의 기원대로 해와 달이 그 자리에 머물러 서서 거의 하루 동안 진행하지 않았다.

우주 과학자들은 별 수 없이 잃어버린 하루를 찾기 위해 컴퓨터를 그 당시로 돌려 여호수아 시대의 궤도를 면밀히 조사하게 되었다.

컴퓨터는 23시간 20분 동안 궤도 정지라는 답을 보고하였다.

성경에 '거의 종일토록'이라 했으니 23시간 20분이라는 계산은 정확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40분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만일 40분이라는 시차가 위성 궤도상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면 그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이 때의 40분도 역시 설명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데 아직 그 설명을 할 수 있을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

그 때에 바로 그 청년이 다시 또 말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성경 어디엔가 태양이 뒤로 물러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주 과학자들은 곧 성경 열왕기하 20장 8~10절에서 히스기야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냈다.

거기엔 태양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10도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40분에 해당된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24시간의 행방을 우주 과학자들이 찾아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성경의 기록을 신화처럼 여기던 과학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것이 아닌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하루가 없어졌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속속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0장의 내용을 읽을 때마다 너무도 불가사의했던 일이 현대 첨단 과학에 의해 그 신비가 벗겨졌던 것입니다.

원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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